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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Samuel Kim
독도/울릉도 탐방기
2010년 10월 15일(금)
새벽 4시 반에 잠실역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어둠을 달려 묵호항에 도착 했다. 대한제국 칙령 제정 110돌 독도의 날을 맞아 역사의 현장인 울릉도와 독도에서 독도문제의 역사와 우리의 현실을 알아보고, 독도의 주인인 우리의 역할을 찾아보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를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가 다 독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잊을 만하면 사회 잇슈화되는 일본인들의 줄기찬 독도망언에 식상해 했을 것이다. 특별히 개인적으론 유독 독도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독도에 관한 기사거리엔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5년 전부터 육순을 대비한 나름대로의 일정을 계획하고 실천해 가고 있던 차에 우연치 않게 감자탕 프랜차이즈의 대표 주자인 (주)참이맛과 함께 하는 독도 탐방행사 이벤트 응모에 당첨되는 뜻밖의 큰 행운을 얻어 이번 행사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독도수호대의 주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이 제정된 날로 이를 2000년에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로 정한 이후 해마다 이러한 행사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기 위해 독도수호대에 의해 현재 국회에 청원이 되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중이라 한다.
묵호항을 출발한 우리 배는 2시간 정도를 달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을 했다. 실로 22년만에 다시 밟아 보는 울릉도.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숙소인 마리나 호텔로 옮겨 짐을 풀고, 방을 정한 뒤 첫 번째 방문지인 울릉경비대 및 독도박물관을 방문했다. 최종방문지인 독도 경비대의 母부대인 울릉도 경비대를 들러 그들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울릉도및 독도 경비대에 대한 임무와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현재까지는 울릉도와 독도의 치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로선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울릉도 특별히 독도만큼은 해양경찰이 아닌 군인이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화력이 너무 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에선 모 전임 국방부장관이 2016년에 저들이 기습공격을 감행해 독도를 강제 탈환한다는 보도도 있었던 터다. 울릉도는 주민이 많이 살고 있어서 경찰이 주둔하며 치안을 담당하면 되겠지만 독도만큼은 주민 몇 명에 우리 해양경찰들만이 상주하는데 치안업무는 그리 많아 보이질 않는다. 다만, 어업 및 드나들고 지나치는 해양 선박들에 대한 경계 관찰업무 등이 있을 텐데.... 따라서 개인적인 생각으론 당연히 국군들도 해경과 함께 독도를 수호해야 하는 것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동항 산자락에 위치한 독도박물관에는 독도에 관한 많은 자료 및 사료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독도수호대 김대표님의 자세한 설명이 하나 둘씩 마음에 와 닿았다. 박물관을 나오니 동해 바다의 큰 형님 섬인 울릉도에도 땅거미가 뉘엿뉘엿 내려앉았다. 산봉우리 끝에 걸린 상현달은 아직도 하얀색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회의장으로 옮겨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독도강연이 있었다. 강연 후에 질의 응답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독도는 그냥 원래 우리 땅이라고만 외쳤고, 일본인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흥분하기만 했지, 왜 우리 땅이며 언제부터 우리한테 속해 있었으며, 현재는 어떠한 상태인가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확실하고도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지만, 몇 가지 중요한 부분만 기록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종황제는 대한제국 광무4년(1900년) 10월 25일 의정부 회의의 결정사항에 따라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편입하고 구역은 죽도와 석도를 관할한다고 대외에 공포했다. 여기서 죽도는 울릉도 저동 앞의 대나무섬, 석도는 독도를 의미한다. 일본은 석도를 울릉도 앞에 있는 암초라고 주장하나 울릉도 주변에는 암초가 없다. 여기서 저는 독도수호대의 확실하고도 정확한 비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통으로 일본인들한테 주장할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로 한다.
1. 명칭 : 대한제국칙령 제41호 시네마현고시 제40호 2. 주체 : 국가(대한제국) 지방행정기관(시네마현) 3. 시기 : 1900년 10월 25일 1905년 2월 22일 4. 과정 : 내무대신이 의정부회의에 청원서제출 나카이 요부사부로가 영토편입청원제출 의정부회의 통과 내무대신이 비밀문서로 내각회의 요청 고종이 이를 수결 내각회의 통과 5. 고시 : 관보에 게재 회람, 지방신문 6. 내용 : 독도를 울릉도 관제에 편입 독도를 시네마현 오키섬에 편입 7. 기념일 : 2000년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지정 2005년 3월 죽도의 날 지정 독도수호대에서 선정 시네마현 의회 조례 제정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청원 2006년부터 기념식을 하고 있음 (2004년 12월, 2008년 8월)
상기에서 중요시해야 할 점은, 일본은 1905년 2월 22일에 시네마현 고시를 통해 독도가 무주지(주인이 없는 섬)이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5년이나 앞서 제정된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의해 무주지선점 주장은 정면으로 부정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서로 자기네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자료와 문서들이 무수히 많다. 어쨌든, 우리로선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우리 영토이므로 향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독도를 일본의 야욕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것이다.
2010년 10월 16일(토)
독도탐방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기상관계로 접안이 어렵겠다는 통보를 받고 우리는 내일로 독도 입도를 연기하고 울릉도 일주 탐방을 했다. 울릉도의 전체 둘레는 56Km 이며, 해안일주도로가 거의 완공이 되어있으나 내수전 전망대에서 석포(북망루터)까지 4Km는 아직 연결이 안 되어 도보로 진행을 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일주도로가 완전개통이 안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올레길 시작부터 도로 확장공사를 한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으며, 때 아닌 이상한 석축을 흉물스럽게 약 500여 미터를 왼편으로 쌓아 놓았다. 석축이 주는 느낌은 일반 화강암 일명 쑥돌이 주는 포근함이나 친근감은 전혀 없었으며 색상도 파르스름한 빛을 띠어 차갑고도 낯설었다. 모두의 생각이 일치했다. 이 산책길 만큼은 그냥 원시그대로 살려서 잘 보존할 필요가 있겠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 곳 울릉도에 와서 다녀 본 지금까지의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 도로와는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다. 거의 원시림에 가까운 수목과 아름다운 야생화들 그리고 고사리, 고비 등 섭생식물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와 계곡을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소리 그리고 나뭇잎들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 어느 것 하나 그냥 흘려버리기엔 너무도 아깝고 고마운 자연의 친구들이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동네, 울릉도가 자랑하는 나리분지.... 사방이 온통 산봉우리로 둘려 쌓인 널따란 평지, 그래서 분지란 표현을 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안데스 산맥 꼭대기에 위치한 마추피추를 연상케 하는 평온한 동네. 보이는 것은 사방의 산봉우리 그리고 파란 가을 하늘. 울릉도 특유의 너와집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지붕에 너와가 얹어져 있다 해서 부쳐진 이름이란다. 과거 울릉도 생태환경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너와집은 주인을 잃은 채 관광객들의 피사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이웃에 위치한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꾸민 식당에서는 굴뚝위로 하얀 연기를 뿜어대며 연실 손님들을 맞이한다. 일부 유명 인사들도 다녀 갔는지 그들의 흔적인 싸인지가 사방 벽에 여기저기 붙어 있다. 이곳 특산품인 명이나물이 아주 인기다. 서울이나 일부 대도시에서는 고급 갈비집에서나 겨우 맛 볼 수 있는 쉽지 않은 나물반찬이다.
저녁을 마친 우리 일행이 찾은 저동항은 이미 어둠이 내리고 관광객들이 다 빠져 나가 황금빛 달빛만 고요하게 칠흑같이 어두운 동해바다를 비추고, 멀리 밝게 빛나는 오징어배들의 집어등들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오징어 잡이에 한창인 소리없는 아우성만 들리는 듯하다. 울릉도에 온 첫날 산 오징어가 없어서 크게 실망을 했던 우리 일행은 둘째 날에야 겨우 행운을 얻어 산 오징어 회를 먹으며 친분을 쌓아갔다. 광주대 K교수님의 우렁찬 싼타루치아 노래가 밤하늘을 뒤흔들며 하늘 높이 울려 퍼져나갔다. 노래만큼이나 시원한 울릉도 밤바람이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여흥은 호텔로 돌아와서도 로비 커피숍에서 늦게까지 계속됐다. 일행으로 같이 참가한 인터넷 음악방송인 라디오21의 진행자 가수 이지상님의 이동 스튜디오를 옆에 두고 생방송으로 음악을 신청하여 듣는 재미도 있었다.
풍랑관계로 하루가 연기된 독도 탐방, 정해진 일정을 하루만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불안한 가운데 잠을 청해 본다.
2010년 10월 17일(일)
오전 7시에 도동항에서 독도를 향해 출발했다. 출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운이며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로 독도는 누구에게도 쉽게 출항및 입도를 허락하질 않는다. 예상 항해시간은 약 2시간 반 정도라 했다. 겨우 한 시간 지났을까,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 할 정도로 독도가 보고 싶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 통 바다와 파도 그리고 혹시나 하고 따라 오는 괭이 갈매기들 밖에 안 보인다. 파고가 그리 높지 않아서 안심은 되면서도 접안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했다. 독도 앞바다의 파고 사정을 봐야만 접안이 가능하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동해바다는 따라오던 갈매기들도 지쳤는지 모습을 감추었고 잔잔한 파도만이 일렁이며 멀리 무역선 한 척만이 하얀 점으로 보였다가 점점 커져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항구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오른쪽 창문을 통해서 바라다 보이는 동해는 크고 작은 파도가 오르락 내리락하며 아침햇살을 받아 생선비늘이 반짝이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2시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우와 ! 하는 소리에 다들 창문 쪽으로 달려들었다. 멀리 까만 물체가 보였다 안 보였다 를 반복하며 점점 큰 산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파도에 선수(船首)가 좌우로 흔들리며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무튼 까맣게 보이는 그 큰 산은 바로 독도였다. 동해바다 한 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우리 섬 독도. 그 빠른 배로 2시간여를 달려 겨우 모습을 드러낸 돌 섬, 독도. 울릉도 내수전 전망대 쪽에서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도 관측된다는 독도. 어느 울릉도 지킴이가 그곳 자기 집에서 찍었다는 독도 사진, 독도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었다. 배안은 일시에 시끄러움이 더해졌다. 이내 들려오는 안내방송 “ 이제 곧 독도에 접안을 시도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접안이 어려우면 독도를 배로 두 바퀴 선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라는 멘트에 다들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일부 기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눈앞에 나타난 동도와 서도, 까맣게 보이던 섬이 누런색, 초록색 등으로 빛나는 것이 여느 돌 섬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확실한 우리 땅 독도인 것이다. 그 독도가 바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접안을 마치고 순서대로 계단을 내려 동도에 발을 디뎠다. 순간 나도 모르는 황홀감으로 감격하고 말았다. 마치 1969년 7월 21일 오전 10시 52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호에서 달에 내려 미국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나라에 첫발을 디디며 내뱉은 말이 생각이 났다. “ 휴스턴, 이쪽 고요의 기지. 이글은 착륙했다. (Houston, Tranquility Base here. The Eagle has landed.) ” 그렇다, 그가 느꼈다는 그 감격과는 차원적으로 또 다른 감격과 기쁨을 나는 만끽했다. 달은 그 누구의 땅도 아니지만 독도는 엄연한 우리 땅인데도 영토분쟁에 시달리고 있어서 마음 한 구석엔 늘 불안한 감이 잔재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독도에 입도한다는 것은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고는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잠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다음 배가 독도 접안이 불확실하여 당초 일정과는 다르게 일반 관광객들처럼 25분이 주어졌다. 일분 일초가 이렇게 소중하기는 내 생에 처음일 것이다. 접안 시설이 없는 서도는 일반인으로선 착지가 곤란하다. 오전 햇살을 받은 서도의 얼굴은 온통 누런빛이다. 서도에 비해서 햇살을 등에 진 동도는 덩치도 서도보다도 훨씬 크며 온통 검은빛이었다. 땅도 만져보고 튀어나온 바위도 만져보고 언제 또 와 본 다는 기약이 없기에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추억이다. 한반도의 최동단 울릉도, 둑도. 육순을 맞이하기 전에 4개의 꼭지점, 즉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에 반드시 서겠다는 계획 하에 모든 일을 순조롭게 진행해 가고 있던 차에 뜻밖의 행운을 얻어 무료로 울릉도, 독도를 탐방할 기회를 잡았으니 나야말로 행운의 사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는 독도 홍보대사 통합세계권투챔피언 김주희선수, 독도수호대,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정신대연구소, 연합신문기자, 한겨레신문기자 그리고 대학교수, 인터넷음악방송 진행자 등등. 이번 울릉도, 독도탐방은 그야말로 독도의 날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멤버들의 뜻 깊은 탐방인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승선을 독촉하는 독도경비대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 달려 온 우리 땅 독도, 기다린 세월에 비하면 아주 순간적인 만남, 그 만남의 감격과 이별의 아쉬움은 남북이산가족들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별이 없는 만남이 아니라 다음 기약이 없는 만남인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기만 했다. 접안시설에 서서 내내 손을 흔들어 주는 독도경비대원들의 아쉬운 작별 속에 우리 땅 독도는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무언가 허전한 마음은 파도에 너울대는 Sun Flower호 처럼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이제 다음 목표인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등정 및 최남단 마라도탐방이다. 내년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10년 10월 18일(월)
역사적인 독도 탐방을 마친 우리는 당초 계획인 4시간 여의 탐방을 못하고 잠시 입도한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던 점이 끝내 아쉽긴 했지만 나름대로 우리 땅 독도를 직접 밟았다는 뿌듯함과 자긍심이 큰 만족감을 주었다. 마지막 일정인 성인봉 산행이 있는 날이다. 지난 1988년 8월 15일 울릉도까지 와서 성인봉 등산을 못했던 나로선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도동항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우리 숙소인 마리나 호텔 주차장 쪽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이내 잡풀 숲을 지나 텃밭이 있는 민가를 지나니 KBS 송신소가 나타난다. 여기를 지나면서부터 시멘트길도 끝이 나고 본격적인 산행코스가 시작된다.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 울릉도, 아침나절에 산속에 은은히 퍼지는 솔향, 사람의 몸에 가장 가깝고 좋다는 소나무 향기는 깨끗한 섬 공기와 함께 내딛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새벽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 같았다. 여느 일출과 마찬가지겠지만 울릉도 정상에서의 일출은 또 다른 맛이 있겠겠지 ? 두서너 번 쉬는 가운데 어느덧 팔부능선을 지난다. 이번 탐방행사 참가인원 중에는 초등학교 6학년인 박달나무라는 친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3일을 지내는 동안 그의 영특함에 천하가 다 놀랠만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유난히 크다고 해서가 아니다,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학문적으로 박식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나라 역사관과 민족의식이 뚜렷했다. 더욱이 친일파 청산에 대한 자기주장이 완벽했다. 민문련에서 편찬한 친일파 사전에 담긴 사람들의 숫자, 첫 번째 인물은 누구고 제일 마지막 인물은 누구고, 중간 중간 누구는 어떠하고 등등...줄줄이 뇌이어 갔다. 성인봉 정상을 얼마 안 남기고 잠시 쉬고 있던 그와 동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서울 망원동인데 북한산을 열네 번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유수한 산악인들에 대해 줄줄이 토해내는데 거칠 것이 없었다. 특별히 히말라야 등정에 대한 얘기는 거침이 없었다. 오은선대장의 14좌 등정 얘기의 진실공방에 관한 자신의 입장, 에베레스트 등정가들에 대한 상세한 얘기들.... 그의 얘기를 듣다가 어느 순간에는 소름이 기칠 정도로 전율이 왔다. 따라 부르기도 쉽지 않은 외국 산악인들의 정확한 이름, 년도 및 등정한 산의 높이 등등.... 가히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는 듯 했다. 2시간을 오르며 몸과 마음이 다 지쳐가던 차에 참으로 신선한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는듯 뿌듯했다. 몇 몇 어린 친구들이 부모 또는 가족과 함께 동참한 것에 비해 홀홀 단신 참가한 것을 보면 기가 차기도 했다. 독도수호대 카페 회원이면서 장차 희망은 함께 온 일행 중 한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소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 거침없이 이야기 한다. 그렇다, 그가 바라는 대로 잘 커줘서 민문련 소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 좋은 기관 아니 더 훌륭한 일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솔직한 내 표현이다. 산행 중에 농담 삼아 ‘성인봉은 成人들만 오르게 되어 있는 봉우리다“ 라고 했더니 그는 내 말끝에 바로 반론을 제기한다. “성인봉은 그 成仁봉이 아니고 聖스러울 聖字를 쓰는 聖人峰이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 오를 수가 있습니다” 라고 반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엄청난 지식과 말재주에 정신이 팔려 힘든 줄 모르고 울릉도 최고봉 성인봉(984m)에 섰다, 22년 전에 오르지 못했던 성인봉 정상에 서는 순간 감회가 남달랐다. 해냈다는 무한의 성취감, 그 기쁨, 그 이상 더 오를 곳이 없는 제일 높은 곳에 섰다는 자부심. 사방으로 내려다 보이는 맑고 푸른 동해바다. 천하를 갈보며 사자후를 토하고도 싶었지만 요즘은 산짐승들 보호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자제하고 있다. 서쪽으론 묵호항이 보일까? 동남쪽으론 혹시 독도가 보이지 않을까 ? 내심 파란 가을 하늘이 동해바다와 맞닿은 수평선을 주시해 본다. 저 멀리 수평선 끝은 흐릿하여 자세히 보이지를 않는다. 이곳 울릉도 최고봉 성인봉에서 독도가 지금은 안 보일지라도 어떤 개인 날, 아니 운 좋은 날은 독도가 보인다고 하니 이다음에 독도엔 다시 못가는 일이 있어도 울릉도 오게 되면 성인봉에 다시 올라 멀리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이 온다면 일본 오끼섬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안 보이는 우리 땅, 독도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사진도 찍고 싶다. 어찌 보면 박달나무란 어린 친구와 성인봉에서 인증샷을 찍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 온다. 도동항 우측으로 산책로를 따라 걸어 본다. 발밑에 와 닿는 깨끗한 도동항 바닷물을 들여다보며 신선한 회에 막걸리를 마셔본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은 높기만 하고 군데군데 생명력을 이어가는 울릉도만의 연보라색 해국(海菊)을 바라보며 저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피어나는 해국처럼, 우리 땅 독도도 동해바다 한 가운데에 우뚝 서서, 한 겨울 내내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여름 한철 땡볕이 내리 쬐어도 꿋꿋하게 버티어 서 있어주길 바란다. 그 다음에 저들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동해바다 막내 독도야 ! 잘 있어라 ! 그리고 또 보자, 다음에 가면 오래 아주 오래토록 함께 있어 주련다....
2010년 10월 20일 울릉도/독도 탐방을 마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