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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21篇 田子方篇 第4章(장자 외편 21편 전자방편 제4장)
공자孔子가 노담老聃을 만났는데 노담老聃은 그때 막 새로 머리를 감고 나서 바야흐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햇볕에 말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꼼짝도 않고 있는 그 모습이 사람 같지가 않았다.
공자孔子는 물러나 기다리고 있다가 잠시 뒤에 뵙고 말하기를 “제 눈이 먼 걸까요. 아니면 참으로 그랬던가요. 아까 선생의 형체는 우뚝 서 있는 마른나무와 같아서 만물萬物을 잊고 인간세계를 떠나서 홀로 서 계신 것 같았습니다.”
노담老聃이 말했다. “나는 만물萬物의 근원에서 노닐고 있었소.”
공자가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노담이 말했다. “마음을 아무리 괴롭혀도 알 수 없으며, 입을 아무리 크게 열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시험 삼아 그대를 위해 그 대략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순수한 음기는 고요하고 차며 순수한 양기는 밝게 빛나고 뜨거우니, 고요하고 찬 음기는 하늘에서 나와 땅으로 내려오고 밝게 빛나고 뜨거운 양기는 땅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니, 이 지음至陰과 지양至陽의 두 기氣가 서로 통해서 혼합하여 화합을 이루어 만물이 생기는데, 무엇인가 혹 처음을 이루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으며, 만물이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되풀이하고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함이 날로 바뀌고 달로 변화하여 날마다 작용이 있지만 그 공功을 볼 수 없습니다.
생성生成되는 사물은 싹트는 바가 있고 사멸死滅해가는 사물은 돌아가는 곳이 있어서, 처음과 마침(생生과 사死)은 끝이 없는 데에서 서로 반전反轉(생生은 사死로, 사死는 생生으로, 시始는 종終으로, 종終은 시始로)하여 그 궁극의 끝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지음至陰과 지양至陽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여기에 노닌다고 함은 무슨 뜻인지 묻고 싶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무릇 이 지음至陰과 지양至陽을 얻으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즐거워지니 지극한 아름다움을 체득하여 지극히 즐거운 경지에 노니는 사람을 일러 지인至人이라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원컨대 그 이치를 듣고 싶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초식동물은 수풀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물속에 사는 동물은 물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행동이 조금 변해도 커다란 〈삶의〉 원칙을 잃어버리지는 않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 따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흉중에 침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릇 천하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일체로 존재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니 일체一體를 얻어서 동화하면 〈나의〉 사지四肢와 온몸은 장차 티끌이나 때와 다를 것이 없는 존재가 되며 사생종시死生終始가 장차 낮과 밤과 같은 자연의 순환으로 여겨져 아무 것도 어지럽힐 수 없게 되는데, 하물며 득실得失이나 화복禍福 따위가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사정이 있어서〉 노예를 버리는 사람이 마치 진흙을 버리듯 함은 자기 몸이 노예보다도 귀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이 나의 마음속에 있으면 변화로 인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육체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해서 애초에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니 대저 무엇이 마음을 괴롭히기에 충분하겠습니까? 이미 도道를 닦은 지인至人이라야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선생은 덕이 천지와 짝하는데도 오히려 지언至言을 빌려서 마음을 닦고 있으니, 옛날의 군자가 이런 방법을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은 아무런 작위가 없이 재질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고, 지인至人이 덕德을 체득함에는 수양이라는 작위가 없어도 만물만민萬物萬民이 〈그를 사모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이 저절로 높고 땅이 저절로 두텁고 해와 달이 저절로 밝은 것 같은 것에 무슨 닦음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나와서 안회顔回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도道에 대해 아는 수준은 아마도 항아리 속의 초파리와 같다고 할 것이다. 노담 선생이 나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지자연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원문과 현토 및 해설]
孔子 見老聃 老聃新沐 方將被髮而乾 慹然似非人
(공자 현노담한대 노담이 신목하야 방장피발이간하야 접연사비인이어늘)
공자孔子가 노담老聃을 만났는데 노담老聃은 그때 막 새로 머리를 감고 나서 바야흐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햇볕에 말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꼼짝도 않고 있는 그 모습이 사람 같지가 않았다.
孔子 便而待之 少焉見曰
(공자 편이대지러니 소언코 현왈)
공자孔子는 물러나 기다리고 있다가 잠시 뒤에 뵙고 말하기를
☞ 신목新沐 : 목욕沐浴의 목沐은 머리를 감는 것이고 욕浴은 몸을 씻는 것.
☞ 방장피발이간方將被髮而乾 : 피被는 피披와 통용한다. 간乾은 햇볕에 말림.
☞ 접연사비인慹然似非人 : 접연慹然은 움직이지 않는 모습.
☞ 편이대지便而待之 : 편便은 병屛의 가차자(章炳麟). 여기서는 물러난다는 뜻.
丘也眩與 其信然與 向者先生形體 掘若槁木 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
(구야는 현여아 기신연여아 향자에 선생의 형체 굴약고목하야 사유물이인이입어독야로다)
“제 눈이 먼 걸까요. 아니면 참으로 그랬던가요. 아까 선생의 형체는 우뚝 서 있는 마른나무와 같아서 만물萬物을 잊고 인간세계를 떠나서 홀로 서 계신 것 같았습니다.”
老聃曰 吾遊心於物之初
(노담왈 오는 유심어물지초하노라)
노담老聃이 말했다. “나는 만물萬物의 근원에서 노닐고 있었소.”
孔子曰 何謂邪
(공자왈 하위야잇고)
공자가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 굴약고목掘若槁木 사유물이인이입어독야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 : 굴약掘若은 우뚝 솟은 모양. 유물이인遺物離人은 만물을 잊고 인간세계를 떠남. 이 장의 시작부분부터 여기까지는 〈제물론齊物論〉 제1장에 보이는 남곽자기南郭子綦와 안성자유顔成子游의 대화와 유사한 전개방식이다.
曰 心困焉而不能知 口辟焉而不能言 嘗爲汝 議乎其將
(왈 심이 곤언이불능지하며 구 벽언이불능언이니 상위여하야 의호기장호리라)
노담이 말했다. “마음을 아무리 괴롭혀도 알 수 없으며, 입을 아무리 크게 열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시험 삼아 그대를 위해 그 대략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심곤언이불능지心困焉而不能知 구벽언이불능언口辟焉而不能言 : 마음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고 아무리 말로 표현하려 해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막측함을 뜻한다. 곤困은 ‘피곤하게 하다, 고민하다’의 뜻. 벽辟은 입을 열다는 뜻으로 벽闢(열 벽)과 같다(胡文英).
至陰肅肅 至陽赫赫 肅肅出乎天 赫赫發乎地
(지음은 숙숙하고 지양은 혁혁하니 숙숙은 출호천하고 혁혁은 발호지니)
순수한 음기는 고요하고 차며 순수한 양기는 밝게 빛나고 뜨거우니, 고요하고 찬 음기는 하늘에서 나와 땅으로 내려오고 밝게 빛나고 뜨거운 양기는 땅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니,
兩者交通成和 而物生焉 或爲之紀而莫見其形
(양자 교통성화하야 이물생언호대 혹위지기이막견기형하며)
이 지음至陰과 지양至陽의 두 기氣가 서로 통해서 혼합하여 화합을 이루어 만물이 생기는데, 무엇인가 혹 처음을 이루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그 형체를 볼 수 없으며,
☞ 양자兩者 교통성화이물생언交通成和而物生焉 : 양자兩者는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를 지칭한다. 성화成和는 음기와 양기가 조화된 상태를 이름.
☞ 혹위지기이막견기형或爲之紀而莫見其形 : 기紀는 사물의 시초. 는 “암암리에 진재眞宰(도道의 본체 곧 하늘)를 가리킨 것이다.”(劉鳳苞)
消息滿虛 一晦一明 日改月化 日有所爲而莫見其功
(소식만허와 일회일명이 일개월화하야 일유소위이막견기공하며)
만물이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되풀이하고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함이 날로 바뀌고 달로 변화하여 날마다 작용이 있지만 그 공功을 볼 수 없습니다.
生有所乎萌 死有所乎歸 始終相反乎無端而莫知乎其所窮
(생유소호붕하며 사유소호귀하야 시종상반호무단이막지호기소궁하나니)
생성生成되는 사물은 싹트는 바가 있고 사멸死滅해가는 사물은 돌아가는 곳이 있어서, 처음과 마침은 끝이 없는 데에서 서로 반전反轉하여 그 궁극의 끝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 시종상반호무단이막지호기소궁始終相反乎無端而莫知乎其所窮 : 처음과 마침(生과 死)은 끝이 없는 데에서 서로 反轉(生은 死로, 死는 生으로, 始는 終으로, 終은 始로)하여 그 궁극의 끝을 아무도 알지 못함. 삶과 죽음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지만 한편 서로 연속된 것임을 지적하고 그런 과정이 끊임없이 순환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非是也 且孰爲之宗
(비시야면 차숙위지종이리오)
그러니 이 지음至陰과 지양至陽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孔子曰 請問遊是
(공자왈 청문유시하노이다)
공자가 말했다. “여기에 노닌다고 함은 무슨 뜻인지 묻고 싶습니다.”
老聃曰 夫得是 至美至樂也 得至美而遊乎至樂 謂之至人
(노담왈 부득시면 지미지락야니 득지미이유호지락을 위지지인이라하나니라)
노담이 말했다. “무릇 이 지음至陰과 지양至陽을 얻으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즐거워지니 지극한 아름다움을 체득하여 지극히 즐거운 경지에 노니는 사람을 일러 지인至人이라 합니다.”
孔子曰 願聞其方
(공자왈 원문기방하노이다)
공자가 말했다. “원컨대 그 이치를 듣고 싶습니다.”
曰 草食之獸 不疾易藪 水生之蟲 不疾易水
(왈 초식지수는 불질역수하고 수생지충은 불질역수하나니)
노담이 말했다. “초식동물은 수풀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물속에 사는 동물은 물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 초식지수草食之獸 불질역수不疾易藪 : 수풀을 옮겨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 삶과 죽음을 초식동물이 수풀을 바꾸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역易은 바꾸다는 뜻.
☞ 수생지충水生之蟲 불질역수不疾易水 : 삶과 죽음을 물속에 사는 동물들이 물속을 헤엄쳐 이리저리 다니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行小變而不失其大常也 喜怒哀樂 不入於胸次
(행이 소변이불실기대상야라 희로애락을 불입어흉차하나니라)
행동이 조금 변해도 커다란 〈삶의〉 원칙을 잃어버리지는 않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 따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흉중에 침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 행소변이불실기대상야行小變而不失其大常也 : 삶과 죽음의 변화를 다른 존재로 바뀌는 것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 속에서 존재의 영속성이 이어지고 있다는 암시를 포함하고 있는 부분이다.
夫天下也者 萬物之所一也
(부천하야자는 만물지소일야니)
무릇 천하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일체로 존재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得其所一而同焉 則四肢百體 將爲塵垢
(득기소일이주언이면 즉사지백체 장위진후며)
그러니 일체一體를 얻어서 동화하면 〈나의〉 사지四肢와 온몸은 장차 티끌이나 때와 다를 것이 없는 존재가 되며
而死生終始 將爲晝夜 而莫之能滑 而況得喪禍福之所介乎
(이사생종시 장위주야라 이막지능활이온 이황득상화복지소개호따녀)
사생종시死生終始가 장차 낮과 밤과 같은 자연의 순환으로 여겨져 아무 것도 어지럽힐 수 없게 되는데, 하물며 득실得失이나 화복禍福 따위가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棄隸者 若棄泥塗 知身貴於隸也 貴在於我 而不失於變
(기예자 약기니도는 지신이 귀어예야니라 귀재어아면 이불실어변하나니)
〈사정이 있어서〉 노예를 버리는 사람이 마치 진흙을 버리듯 함은 자기 몸이 노예보다도 귀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이 나의 마음속에 있으면 변화로 인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 기예자棄隸者 약기니도若棄泥塗 지신知身 귀어예야貴於隸也 : 노예가 귀중하지만 자기 몸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주主와 객客에 대한 가치의 결정적 차이를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且萬化而未始有極也 夫孰足以患心 已爲道者 解乎此
(차만화이미시유극야어니 부숙족이환심이리오 이위도자아 해호차하리라)
게다가 인간의 육체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해서 애초에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니 대저 무엇이 마음을 괴롭히기에 충분하겠습니까? 이미 도道를 닦은 지인至人이라야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위도자已爲道者 : 이미 도를 터득한 사람.
孔子曰 夫子德配天地 而猶假至言 以修心 古之君子 孰能脫焉
(공자왈 부자는 덕배천지하난대 이유가지언하야 이수심하시니 고지군자는 숙능탈언이리오)
공자가 말했다. “선생은 덕이 천지와 짝하는데도 오히려 지언至言을 빌려서 마음을 닦고 있으니, 옛날의 군자가 이런 방법을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老聃曰 不然 夫水之於汋也 無爲而才自然矣
(노담왈 불연하니라 부수지어작야에 무위이재자연의오)
노담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은 아무런 작위가 없이 재질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고,
☞ 수지어작야水之於汋也 무위이재자연의無爲而才自然矣 : 작汋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샘. 인공적으로 만든 샘이 아님을 의미한다. 재才는 재질才質.
至人之於德也 不修而物不能離焉
(지인지어덕야에 불수이물불능이언하나니라)
지인至人이 덕德을 체득함에는 수양이라는 작위가 없어도 만물만민萬物萬民이 〈그를 사모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若天之自高 地之自厚 日月之自明 夫何脩焉
(약천지자고와 지지자후와 일월지자명은 부하수언이리오)
하늘이 저절로 높고 땅이 저절로 두텁고 해와 달이 저절로 밝은 것 같은 것에 무슨 닦음이 있겠습니까.”
孔子 出以告顔回曰 丘之於道也 其猶醯鷄與
(공자 출하야 이고안회왈 구지어도야에 기유혜계여인저)
공자가 나와서 안회顔回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도道에 대해 아는 수준은 아마도 항아리 속의 초파리와 같다고 할 것이다.
☞ 구지어도야丘之於道也 기유혜계여其猶醯鷄與 : 혜계醯鷄는 초파리, 술파리. 혜계옹醯鷄甕이라고 하면 초파리가 항아리 안을 하늘로 여긴다는 뜻이다.
微夫子之發吾覆也 吾不知天地之大全也
(미부자지발오복야를 오부지천지지대전야랏다)
노담 선생이 나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지자연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미부자지발오복야微夫子之發吾覆也 : 발오복發吾覆은 나를 덮고 있는 천박한 지식을 깨우쳐줌을 의미한다. 미微는 비非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