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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가을 바람이 문득 반갑게만 느껴 지던 지난 해에는, 가을이라는 절기가 내게 부여하는 쎈티 덕분에 말 못할 외로움으로
몸살을 앓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우리 느림보님들과 함께 속리산 묘봉을 올라 보았다.
상주 화북분소에서 문장대를 경유하여 묘봉으로 이르는 암릉길은 그간 휴식년제로 입산이 통제되었다가 최근에 개방된 처녀림
이여서 인지 아직은 등산로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고독한 등처가가 홀로 쓸쓸히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엔 너무도
참한 산행길이었던 기억이 나는 오묘한 암릉길이다.
등처가란 저 처럼 마눌님 등을 쳐서 먹고 사는 넘을 말합니다. 모오 머냐 기둥 서방 비스꾸무리 한 것이져.
느림보 여전사님들이 문장대 위에서 사진 찍느라 부산한 틈을 타서 언제나 처럼 묘봉으로 향한 등산로를 홀로 걷다 어느 구비를
돌아 드니 우리집 안방보다 더 넓직한 바위 위에서 사진 촬영에 열중이신 시나브로님을 만난다.
세속의 온갖 고뇌를 혼자서 삼켜 버린 듯한 약간은 짜증스러워 보이는 눈가에 어쩌다 흘리는 씨니컬한 미소가 전부인 시나브로님
께서 진땀을 뻘뻘 흘리시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작품 활동에 몰두하신 피사체는 아마도 모델 학교를 졸업하여 C.F. 촬영도
여러 번 했었던 것 같은 야생화님과, 함께 오신 앙개님이시다.
현란한 등산복 코디와 버라이어티한 포즈가 내 시선과 발걸음을 잡아 맨다.
세 분의 배려 덕분에 마악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포로로 잡혀 온 넘 처럼 마냥 어설퍼 보였던 내가 황감하게도 두 분
미녀님들 틈바구니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광영도 누려 본다. 아직도 쪕 쪕 하고 입맛이 다셔 지는 내 인생 최고의 날이였다.
오늘 우리 느림보는 미남봉, 매봉, 상학봉을 경유하여 묘봉에서 운흥리로 하산케 되는 제법 멀고도 긴 산행길이다.
오늘 난 나 혼자만의 산행이였으면 아마도 매봉 정도에서 퍼 질르고 앉아서 한참을 신선 놀움이나 하다 하산했을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아득한 묘봉 암릉길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저 마다의 개성과 장점이 돋 보이는 여러 느림보님들과의 함께 하는 산행 아니면 나에겐 몹시도 어려운 일이란 생각만 간절하다.
세간에서 말 하는 시너지 효과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 나는 묘봉으로 향한 힘겨운 암릉길은 감탄 그 자체일 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대중생활은 자동차의 기어, 요즘 우리 강 대장님이 심취하시는 자전거의 체인이나 톱니 바퀴의 요철처럼
제 각각의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도 서로가 맞 물릴 때에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치합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하는데, 말과 행동이
신중치 못한 난 늘 걱정이 많다.
원활한 치합으로 마냥 분위기가 좋은 우리 느림보 산악회를 잘 굴러 가게 기름을 부어 주진 못할 망정 재나 모래를 뿌리는 인간이
아닌 가 하는 우려 아닌, 어쩌다 나타 나는 현실 때문에 산행을 마치고 돌아 와선 전 사실 반성을 많이 하긴 합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싸 주시고 제가 철딱서니 없는 말과 행동을 할 적엔 우리 강 대장님처럼 항시 누님이나 형 처럼
바른 길로 잘 인도해 주시길 고개 숙여 당부드립니다.
처음으로 느림보에 입회를 하여 우연히 강 대장님과 나이를 따져 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 보다 딱 한살이 아래 이신 강 대장님은 달수로는 이 삼개월 정도 밖에 차이가 없자 금새 야자 타임을 갖자고 하시더군요.
물론 농담이셨지만 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맞쨩은 커녕 체구는 비록 아담한 여인네이지만 아무래도 언행이 내 큰누님 같아 보인다고 말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여러 번 저를 향한 강 대장님의 시선을 몸으로 느껴 봅니다. 물가에 세워 놓은 어린아이 보는 듯한 그 눈길. 으흐
속세의 명리는 떠난다는 속리산을 처음 올라 본 것은 군바리 제대하고 얻은 첫 직장인 청주 지점에서 근무할 무렵 함께 대중 생활
을 하던 하숙생들과의 단합 대회 였었는데 물론 문장대나 묘봉은 근처에도 가질 않고 계곡에서 발 담구고 놀았을 뿐 이지만
막상 묘봉을 올르고 보니 마냥 철 없이 뛰 놀던 그 때 그 시절이 어제 일 처럼 아련합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청주 한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하숙집은 사무실 근처인 수동에 있었는데 방 두칸 별채와 ㅁ자 건물
인 본채가 있었는데 본채는 전방과 좌 우로 방이 네개가 있었고 전면으로 나 있는 대청 마루를 지난 건물 중앙에 안방과, 당시
청주에 있는 모 여대를 다녔던 여학생 두 명이 거주하는 자그만 방이 붙어 있었는데 내 방은 본채 우측 맨 뒷편에 있어 별도의 창
문이 없이 옛날식으로 문고리가 달린 한식문만 달려 있었다.
전면으로 창이 있는 내 옆방과는 본래는 한방이였던지 도배를 한 벽을 두드려 보면 양쪽으로 종이만 발른 미닫이 문이여서 쿵 쿵
하는 북소리가 났었는데 창이 있는 방주인은 청주에 있는 모 공고를 졸업하곤 아마도 기계를 다루는 기술이 무척 뛰어 났었는지
군대도 면제를 받고 모교에 기술 교사로 특채된 이제 겨우 나이 스물 한살의 어린 선생님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엔 밤 열두시만 되면 통행이 금지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하지 않은 충청북도는 예외로
야간통금이 없어서 나 처럼 밤 늦게 술 쳐 먹고 돌아 다니는 인간들에겐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성별,나이,직업이 천태 만상인 하숙생들은 퇴근을 하고 돌아 오면 백원 땡땡이 고 스톱 부터 해서 노래 자랑 까지 함께 어울리며
정말 잼 나게 놀았었는데 밤이 이슥토록 놀다가도 배가 출출하면 길 하나만 건너면 난생 처음 보는 야식집이란 곳이 여럿 보인다.
그 날도 동쪽 하는 샛별(금성)이 반짝 반짝 빛날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내 방으로 돌아 와서 늘상 펴 있는 요 위에 몸을 눕히곤
얼큰한 기분으로 천정만을 바라 보면서, 창문이 없는 방은 어둡고 아내가 없는 방은 마냥 넓어 보인다 라는 생각만을 간절히
하노라니 고요한 적막 속에서 참으로 기괴한 소리가 끊어 질 듯 끊어 질 듯 계속해서 이어 진다.
옆방에 있는 공고 선생은 아침만 되면 괴성을 질러 댄다.
장닭 붕알처럼 둥그런 눈에 덧니가 무척 요란했던 이 젊은 선생은 아마도 성격이 무척이나 소심해서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어 어느 성격을 개조한다는 과정에 입교를 하여 교육을 받고 돌아 온 이후론 성격 개조 스쿨의 선생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요란하게 틀다가 마침내는 나는 한다면 할 수 있다를 비롯해서 여러 자기 암시를 줄 수 있는 구호를 미친 넘 처럼 부르
짖는데 심야에 고양이 암내 내는 듯한 앗 아 아 앗 앗 하는 숨 죽인 소리는 처음이여 잠시 의아해 하며 잠을 청 하다 난 갑자기
불에 덴 넘 처럼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운다.
사실 나 처럼 진짜 느림보 인간이 죽을 힘을 다 하여 열씌미 산을 올르는 목적은 딴 곳에 있다.
산행 들머리에서 우연히 만난 미소님께 오늘도 산미인 대장님 께서 큼직한 스테인리스 양푼이를 준비해 갖고 왔냐고 슬쩍 물어
보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자신은 시골에서 짜서 올린 진품 들기름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산미인표 양푼이 비빔밥 얻어 먹을 욕심에 굴르고 자빠지며 혼신의 힘을 다해 따라 붙었다.
산 위에 올라 먹는 열무 넣고 손으로 쓱 쓱 비빈 양푼이 비빕밥, 으 흐 우리 느림보가 아니면 증말 언감생심이다.
슈퍼 모델감인 우리 산미인 대장님의 가장 눈에 띄는 챠밍 포인트는 폴리 글러브 끼고 비빔밥 만드시는 길고 가는 섬섬옥수임을
아는 분은 다 아신다. 아름다움이 얼굴이나 롱 다리 뿐 아닙니다.
늘 감사 드리며 어떨 적에는 속으로 눈물을 질금 질금 흘리며 먹는답니다.
아까 옆 방에서 나던 소리 어찌 되었느냐구요?
방이 워낙 작기 때문에 내가 누운 곳에서 옆방과의 경계벽까지는 불과 2 미터 정도이고 공고 선생의 잠자리 즉 아랫목은 이 벽에
붙어 있기 때문에 벽 쪽으로 가까이 접근할 욕심에 무릎으로 한걸음 기었다가 들어 올리니 이미 흥건히 흘린 진땀 때문에 무릎이
비닐 장판에 붙었다가 떨어 지는 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리는 지라 벼게에 덮어 두었던 큼직한 타올을 방바닥에 슬쩍 펼 치고는
높은 포복으로 기었다.
변태 성욕자들의 괴상한 취미 생활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겠다는 생각만을 꿀뚝같이 떠 올리며 엉거주춤하게 엎드려서 벼루빡에
귀를 바짝 드리 댄 내 꼬락서니는 참으로 볼 만 하였는데 으 으 음 솔직히 말씀 드리면 구런걸 오르가즘이라고 합니껴?
위로는 머리카락에서 부터 아래론 발끝꺼정 전류가 돌아 댕기는데 도저히 언설론 표현키 어렵습니다.
에버랜드에서 타 보았던 청룡열차의 내려 꽂히는 하행길을 생각하문 딱입니더. 오금과 사타구니의 저릿함이란...
늦게 배운 도적질이 날 새는 줄을 모른다고 하더니만 잔잔한 비명 소리로 여러 날을 남의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하던 이 인간이
아마도 쎄컨드를 얻었나 보다.
이 년은 제법 소리가 클 뿐만 아니라 보진 못 했지만 발버둥을 치는 가 보다.
한참을 지랄 맞은 소리를 내다간 퍽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발로 차는 소린가 본데 젊은 선생이 일어 나는 소리가 황급히 들리는 가 하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고는 또 지랄 발광
을 한다.
컨디션 좋은 날은 하룻 저녁에 문을 세번이나 발로 차서 열어 제키니 이제 훔쳐 듣는 쏠쏠한 재미는 고사하고 날밤을 꼬박 새운
이내 몸이 회사에 출근을 하여선 직장 상사로 부터 갖은 오해와 나무람으로 시달림을 받게 된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동네에 있는 야식집에서 얼큰한 동태 찌개 한 냄비를 시켜선 이 젊은 선생과 처음으로 대작하는 기회를
만들고는 통사정을 했다.
제발 암고양이 처럼 가늘고 기인 소리를 내는 년은 내가 서울로 가는 주말에 델꾸 오고, 오리 처럼 꽥 꽥 거리면서 발버둥을 치는
년은 내가 충주로 출장을 가는 화나 수요일에 부디 입방을 시키라고, 아니 어려운 말로 합궁을 해 주시라고 두 손을 싹 싹 빌었다.
뜨으발
묘봉에서 강 대장님을 비롯한 일행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난 또 혼자서 이 대장님이 돌로 잘 고여둔 표적지를 제대로 확인을
하고선 하산길에 접어 들었는데 아뿔싸 지도상으로 보아선 틀림없이 우리가 하산하는 운흥리 반대편에 있어야 하는 여적암을
향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화들짝 놀라서 강 대장님께 어렵게 핸펀을 열어서 한참을 징징거리고 있노라니 손 희정님의 예쁜 등산모가 나무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며 다가 오신다. 휴우 살았다.
이정표가 누가 봐도 이상하다.
남들은 정상을 향한 상행길이 힘 들다고 하는데 난 그 반대다.
모오 이상할 것도 업따. 난 일단 하산길만 접어 들면 온 신경이 찬소주 얼큰하게 마시는 뒷풀이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뒷풀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경치고 머고 눈에 띄는 것이 없다.
마냥 하산길이 멀게 느껴 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인데 집결지인 운흥리 어느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골뱅이 비빔 국수를 만드시는
산미인 대장님의 훤출한 모습이 보인다.
까진 정갱이 때문에 패잔병 처럼 찔뚝거리며 다가 가니 자비심 넘치는 측은한 눈빛으로 내 상처를 한참이나 보시더니 우선
소주나 한잔 마시라며 꼴뱅이를 구냥 세꼽빼기로 듬성 집어 주신다.
하늘 같은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까 하는 생각만을 하면서 벳때지 터 지도록 먹고 또 먹었다.
다음 화요 산행은 설악산 십이선녀탕이라고 하네여.
선녀가 아무리 이쁜들 우리 느림보 여전사님들 발꿈치 정도나 되겠습니까만은 구래도 우린 가고야 말겠지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시너지 효과로 명품 느림보 산악회를 더욱 빛나게 해 보심도...
탄천변에서 꽥꽥 거리는 한마리 청둥오리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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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속리산 묘봉코스를 무리없이 다니시는 돌삐님은 누가 뭐래도 이제 전문 산악인 반열에 드셨습니다..
산행을 제법했다고 생각하는 저도 겨우 단 한번 밖에 못가본 곳이고 그것도 꽤나 힘겨웠던 기억이 나니까요..ㅎㅎ
청주의 하숙집에서 고생꽤나 하셨군요..ㅋㅋ 예전 총각시절에 가끔 바깥잠을 자야했을땐 여인숙이
대세인데 그때 겪은 말못할 고충들이 오버랩됩니다..ㅋㅋㅋ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ㅋㅋㅋ우째 그런일이 있었을까....난 공부만 해서 .....지금도 구구단은 잘하지요.
가장 후미에서 출발하는 산나리는 산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돌삐님과 발걸음을 맞출때가 있습니다.
산행기를 보다보면 돌삐님이 꽤나 어눌하게 본인을 표현하고 계시지만
잰 걸음걸이나 예리한 관찰력은 누구도 따라가질 못하지요.
어느때는 일부러 돌삐님과 걸음을 같이 할때도 있습니다.
돌삐님 입에서 나오는 무궁무진한 얘기들이 흥미진진하거든요.
그 해박한 지식과 입담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나름 분석해가며 걷다보면
산길이 어느새 끝나가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하지 못합니다.
돌삐님이 지칭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백프로 사실이라 믿기보다는
재미있는 글의 구성으로 보시면 더 편할것..입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 보시면
돌삐님이 얼마나 울님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돌삐님은 느림보의 보배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