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9:1~9)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육체, 물질 추구가
극에 달해 이제 하나님께서 기도, 말씀, 환경, 교회로
속삭이는 단계가 무색해졌다.
심판과 보응의 단계가 되었다.
이스라엘처럼
드러내 놓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노골적으로 세상 것,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은 오히려 순진한 처사일 수 있다.
그보다 교묘한 범죄가 있다.
나와 하나님을 잇는 그 라인에서 교묘히 벗어나
약간의 핀트가 엇나간 것이 심각한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
드러내 놓고 범죄하는 것보다 교묘하고 더 심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잘 식별이 되지 않아
죄악을 더욱 번성하게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있으려 하는 사람을 미혹하는
매우 취약하고 위험한 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앞에 내세우면서도 그릇된 자기 논리로 채우고,
기도를 앞에 내세우면서도 하나님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권력이나 지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많은 성도가 존경하고 따르는 리더가
교묘히 권력과 재물을 크게 하려는 것에 성도를
사용할 수도 있다.
내가 깨달은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교회와 세상 권력자, 즉 큰 교만함을 가진 자,
잃어버리고 상한 영혼을 돕기는커녕 말할 수 없이
큰 악영향을 끼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분노하셨다 오히려 더 큰 악의 도전이고 큰 죄이다.
그들이 매우 능숙하게 오랫동안 자신들이
마치 ‘거룩’한 것처럼 처신하겠지만
범죄가 내면에서 넘치면 하나둘 토사물처럼 튀어나오게 된다.
결국 노골적으로 범죄하고 우상 숭배하는 이들과
아주 동일한 속성을 가졌음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우상-육신-물질’ 등으로 이어지는
범죄의 package를 추구하게 되는데,
우상을 추구하는 영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뿐만 아니라
예전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처럼
이제는 앗수르의 노예가 되게 될 것이기에
분별 없이 추구하는 육신과 물질의 향락도 차단될 것이다.
단지 풍성하게 누리던 것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 요소를 갖추는 일도
힘겨워질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상을 통해 누리던 물질과 육신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길이었으며,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 깨닫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희들 범죄하더니만 고생 좀 해라.
내 복수를 받아라. 고소하다.’ 이런 마음이 아니시다.
언제나 긍휼함과 안타까움을 가지시는 분이시다.
다만 이런 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로부터
돌아오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시다.
누군에게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을 다시 찾는 극적인
역사가 있을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
이제 더 이상 영적 회복 탄성력이 고장이 나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이들이 있어
전혀 그러한 보응과 대가 지불, 절망에 이른 상황도
전혀 치료하는 약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선택권이 최악을 고집하고 놓지 않은 것,
이제 더 이상 고집을 놓을 능력도 상실해 버린 것이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오 주님!’
“하나님! 이스라엘을 심판 및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의 마음,
그 보응의 순간에도 그들이 그 일을 통해서 변심하기를
바라는 회복의 목적을 지니신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저는 너무나 부족하고 모가 많이
나 있습니다. 괴롭습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
제가 성도와 타자들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 실제적 상황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