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兄第의 絶命詩】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나라는 이미 사라졌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 돌이켜보니 문자나 안다는 사람 인간되기 어렵구나
-매천 황현 절명시 4수 중에서
1910년 8월 한일합방 소식에 지리산자락 구례에 살던 한 선비가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는 소식은 전국에 퍼졌다 선비들은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베껴 외었다.
그렇게 매천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매천의 아우 석전 황원의 절명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석전 황원은 매천의 15살 아래 동생으로 1910년 9월 10일 매천이 순절한 이후 형의 순절을 세상에 알리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
형 매천처럼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굽히는 법이 없이 당당하였고 의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았다 한다 그를 잘 아는 사람도 구례 황 아무개 하면 모두들 자리를 피했다. 일제감시의 추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일제의 포악이 극에 달하던 1944년 2월 17일, 황원의 나이 75세, 천은사 가는 길목에 있는 월곡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그의 옷깃에 꼬깃꼬깃 접어서 꿰맨 절명시가 숨겨 있었다.
절명시(絶命詩) / 황원(黃瑗)
滄海滔滔日倒流 푸른 바다 넘치고 날은 거꾸로 흐르는데 蒼生不救竟無謀 백성을 구하지 못하고 마침내 꾀도 다하였네
空老人間無一補 헛되이 늙은 인간은 조금도 보탬이 안 되니 不如先去帝京遊 먼저 하늘나라에 가 노는 것만 못하는구나
國已邱墟民又亡 나라는 이미 폐허가 되었고 백성 또한 망했는데 何必忍辱守書床 구태여 욕을 참고 책상만 지키고 있으랴
小事營營如大事 작은 일도 큰일처럼 분주하게 쏘다녔으나 丈夫志氣愧田光 대장부의 기개는 전광에 부끄러울 뿐이네
매천 황현과 석전 황원 형제의 두 죽음, 두 절명시 사이엔 1910년에서 1944년까지 35년의 세월이 흐른다. 여기에 1945년 한 해를 더한 36년은 이 강산이 깊은 어둠 속에 묻혔던 시기와 일치한다.
매천 황현, 석전 황원 두 형제가 살았던 구례 간전면 수평리 구안실이다. ‘구차하지만 그런대로 지낼만하다’는 뜻의 구안실은 매천의 ‘구안실을 짓고서’라는 시에 그 정경이 잘 그려져 있다.
16년 동안 살면서 후학을 기르고 「매천야록」 등 저술과 1,000여 편의 시를 지었다는 곳인데 집터는 허물어져 알 수가 없으나 희미한 흔적이 남아있는 샘터만이 헛헛한 마음을 달래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찾아온 이들이 잠시 쉬어갈 만한 정자 하나쯤은 있어도 좋으련만, 꼬마전구처럼 작은 감을 매달은 구안실길 늙은 감나무가 미안하다는 듯 눈을 깜박 깜박댄다. |
첫댓글 매천 황현, 석전 황원 두 형제가 살았던 구례 간전면 수평리 구안실이다.
‘구차하지만 그런대로 지낼만하다’는 뜻의 구안실은 매천의
‘구안실을 짓고서’라는 시에 그 정경이 잘 그려져 있다(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