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눨 10일
어제만 해도 20도가 넘는 따뜻한 초 여름 날씨였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과 함께 기온이 떨어져 3차 대간팀이 대간 날임을 가늠 할 수 있었다.
태백으로 들어가는 입구 부터는 안개가 자욱하여 전방 30m 앞을 볼 수 없었다. 화방재에 도착하여 함백산으로 들어가는 산행이 시작되였다.
함백(咸白)은 태백과 같이 크게 밝다는 뜻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함백산도 태백산과 같이 신령한 산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태백산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산이었고 함백산은 하늘의 은총을 입은 산이 아니었을까? 산으로 들서는 모든 이들은 야생화 천국을 이룬 이 산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산길 지나며 삶의 고단함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희망 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산을 크게 밝은산이요 이 땅에 이루어진 천상세계라고 생각함은 이상한 일이 아닐것이고 또한 산줄기 금대봉으로 이어져 한강과 낙동강을 품어 흐르게 하고 있으니 하늘의 은총을 입은 산줄기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첫 봉우리인 수리봉(1214m)으로 오른길에 이제 땅을 뚫고 갖 올라온 새싹들은 새생명의 시작임을 알리고 조릿대 우거진 길 지나니 수리봉이 였다.수리봉은 독수리의 일종인 수리가 살았다는 봉우리이다.남한땅에서 여섯번째로 높다는 함백산을 오르기위해 잠시 쉬었다가는 만항재(1330m)에 도착하였다.야생화 천국이란 명승에 맞게 목책으로 야생화 시험 재배지를 표시해 두었고 나비 조형물 등 야생화를 알리는 펫말들이 눈에 띄였다. 우리나라에서 정기노선 버스가 지나 가는 제일높은 재이다.태백과 영월을 경계하는 재로서 1980년대 까지 이 일대에서 캐낸 석탄을 옮기던 운반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만항(晩項)재의 뜻풀이를 하면 늦은목이재라고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고 완만한 경사가 이루어진 산길을 걸어 옛 고조선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몇년전에는 고인돌만 있었는데 지금은 ㄷ자형 석축을 쌓아 놓고 함백산 제단이란 글씨를 쓴 나무 푯말이 있었다.이 고인돌의 무덤이 태백산 천제단 처럼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의구심을 뒤로 하고 포장도로를 가로 질러 함백산으로 향했다. 함백산을 오르는 길은 가팔랏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돌로 쌓아올린 돌탑과 함백산 표지석이 반갑게 마지하고 있었다.함백산(1572m)은 조선 영조때 실학자 여남 신경준이 동서남북으로 뻗친 대간과 지맥 분포를 살펴 산경표에 대박산(大朴山)으로 기록되여 있다. 정선 총쇄록에는 上咸朴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함백산은 근세에와서 불의나라(석탄생산지) 물의나라(양강발원지) 천상화원(야생화천국)이라고 부른다.
은대봉으로 발길 옮겼다.한참을 내려서니 정암사 갈림길에 샘터가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남대장 샘터에 물을 먹으려 200m나 되는 거리를 내려갔다가 다시온다.정암사(淨巖寺)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 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자장법사가 636년(선덕여왕5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문수도장(文殊道場)인 산서성 운제사에서 21일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후 5곳에 나누어 모셨는데 그 중한곳이 정암사이다. 신보는 석가의 정골사리와 가사염주 등인데 지금도 사찰 뒷편 함백산에 남아있는 보물제 410호인 수마노탑(水馬瑙塔)에 넣어 봉안되여 있다고 하여 법당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절을 창건할 당시 자장법사가 탑을 쌓기전 정성껏 기도를 하니 용왕이 감복하여 빛이 고운 수마노(석영의 일종)를 하사했고 이를 받아와서 탑을 쌓다고 한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와 함께 5대 적멸보궁으로 꼽힌다. 또한 천년기념물 제7호인 정암사 열목어(熱目漁)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은대봉으로 가는 길에 안개가 바람에 밀려 골에서 부터 능선을 넘어 골로 다시 내려가는 것이 꼭 폭포처럼 쏟아져 간다. 안개 자욱한 길을 지나 은대봉(銀臺峰144,2m)에 올랐다. 함백산 3개의 봉우리중 상함백을 가르킨다.정암사를 창건할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 났다고 전한다.한국 기차역중 제일 높은곳(885m)에 있는 추전역이 있다 이 역을 하늘이 가깝다고 하늘아래 역이라 부른다 또한 낙동강의 발원샘 은대샘(너덜샘)이 있다.낙동강의 발원샘은 은대봉의 너덜샘에서 시작한다. 그러하므로 전문가나 향토 사학자들은 너덜샘은 낙동강 발원샘이라고 하고 황지연못은 낙동강 발원지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이 깃든곳 두문동재로 향했다.
두문동(杜門洞1268m)재에 내려서니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산불감시원들이 대표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다음 불조심에 대한 말과 함께 길을 열어주었다.
두문동은 원래 이북땅 개풍군에 있는 지명이다. 개성 송악 서쪽자락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개풍군지에는 만수산 서 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해있고 빈봉산 동 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는데 이성계가 출사할것을 희유 했지만 끝내 출사하지 않자 이성계는 그 두곳에 불을 질러 불바다를 만들어 버렸다. 많은 이들이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정선에 숨어들게 된것은 이중 한 사람 전오륜의 연고지 정선전씨 조상의 고향이기 때문이였다.이러한 일로 전오륜의 후손들은 조선시대에 핍박과 가난에 헤여나지 못한 삶을 살았으며 전주이씨와 혼인도 하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척지고 살았다.정선의 골짜기에 은거한 7현은 불사이군의 충절속에서도 가족에대한 그리움 망향의 설움 고려왕실에대한 충절등을 달랠길이 없었다.이러함에 참담한 심사를 한시로 담아 내는 도원가곡(桃園歌曲)을 읊었다고 한다.그 한시를 보면 아래와 같다.
아라리 아라이 아나이요(我羅理 啞羅肄 餓稬彝要)
아의랑 고개로 나모간다(哦義朗 古稭露 懶慕艱夛)
뜻을 보면 내가 살아가는데 벙어리 되기를 배우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의로움을 세우려하나 옛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고 어려웠던 기억들도 아련히 다가온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선 아리랑의 시원이다.정선아라리의 대표적 노랫말을 보면 어둡고 구슬픈 느낌이 절절 하다. 그 대표적인 노랫말은 ...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 막모여든다
명사십리 아니라며 해당화는 왜피며
모춘삼월 아니라며 두견새는 왜울어
강초일일에 환추생하니
강물만 푸르러도 고향 생각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이와같이 많은 노랫말은 도원가곡으로 부터 시작 된것으로 보인다.이 노랫말속에는 고려 마지막 왕 고양왕에 대한 그리움도있다.공양왕은 삼척 궁촌에 유배와 있었다.두문동에 은거한 7현은 전오륜, 김충한, 고천우, 이수생, 신안, 변귀수,김위.등이다.
아픈 역사의 현장을 뒤로하고 금대봉으로 향했다.금대봉은 우리나라 제일의 야생화 군락지인 동시에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이며 식물유전자 보호구역이다. 천연기념물인 하늘 다람쥐가 서식하고 꼬리치레 도룡뇽의 집단 서식지도 있는 곳이다. 또한 모데미풀 한계령풀 대성쓴풀 가시오가피등 희귀식물도 자라고있는 지역이다.비록 야생화는 보지 못했지만 자연생태는 잘 보존되어있었고 백두대간 이어가는 길은 열려있었다. 산림청에서 대간길을 열어놓은 것이다.열려있는 길을 바라보았다.사람과 자연이 살아갈 때에만 사람도 자연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든다.나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 마음 설렛다. 거절 당하고 배척당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금대봉에 올라서니 양강발원봉이라는 표지목이 다 지워져 한쪽으로 쓸어질듯 서있었다.마음 안타까웠다.한강과 낙동강이 발원하는 봉우리가 너무나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서글펏다.한강과 낙동강이 이 땅에서 얼마나 소중한 강인가 말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얼마나 의미 깊은 강이란 말인가. 한강에 의지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낙동강에 기대여 사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이러한 것을 보더라도 좀 소중히 생각했어면 한다.금대봉은 양강 발원봉이다.(낙동강, 한강)검룡소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한강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 천리 물길로 이어진다.예전에는 평창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 발원지로 알려졌으나 1980년대 정밀 측정결과 검룡소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길이가 32km나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룡소가 한강 발원지로 알려지게 된것이다.정상일대는 천상화원으로 야생화 천국이다.금대란 말은 원래 검대로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신이사는 곳이 오늘날 야생화 천국으로 조성되어 의미가 더해진다.
쑤아밭령으로 내려 섰다. 쑤아 밭령이란 이름에는 여러설이 있다. 소나무 밭에 해당한다고 하여 솔 밭이 소리 변음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사리밭이란 음이 전음이 된것이란 설도 있어 사리는 (솔)이란 이두 문자에서 발음이 된것이다. 또한 수화밭령(水禾田嶺) 즉 옛날 어렵게 살아갈때 밭벼를 심어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에 이 부근어디쯤에 밭벼를 심었던 장소가 있다하여 수화밭령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비단봉을 지나 매봉산으로 가는 길은 온통 고랭지 채소밭이 였다. 대간길은 밭으로 변해있고 대간길을 가지 못하고 밭옆으로 난 길로 가야했다.바람의 언덕을 지나 매봉산에 올랐다.원래 이름은 천의봉, 하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흘러 들도록 물줄기를 만들어 주는 산으로 부산 몰운대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을 떨구어내는 산이기도 하다. 산경표에는 수다산(水夛山)으로 표기 되어있다.천의봉에서 시작된 낙동정맥은 백병산,통고산, 백암산, 주왕산, 가지산,신불산을 거쳐 부산금정산을 지나 백양산을 넘어 다대포 몰운대에 이르는 도상거리 351,2킬로미터로 거대한 산줄기를 뻗어내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인 삼수령(三水嶺)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고랭지 채소밭 사이로 이리저리 돌아서 가야했다.풍력발전단지의 발전 날개는 돌지 않고 가끔은 윙 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였다.강원도 태백시 적각동에 위치한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고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또한 삼강의 발원지이기도하다. 이곳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따라 황해로 가고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가고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하여 삼수령이라고 부른다. 또하나의 이름은 피(避)재인데 정감록 십승지 중 하나인 이상향(理想鄕)으로 알려진 황지로 삼척지방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넘었던 고개라 하여 피재라고 한다. 먼저간 일행중 현수씨 라면을 끓이고 후미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수씨 끓인 송이 라면과 막걸리 한잔에 피로를 풀어본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3차팀 대간가는 날 역시 하늘도 알아주는 듯하다.차에 오르니 손만승씨 대간 시험 문제 출제에 차안은 웃음 바다였다.즐거운 하루였다.
두대장 선 후미에 이끌어 주어 고맙고 함께한 모든 분들 고생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