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이승하
집과 칩 외
20평 집에서 30평 집으로 넓히는 것이
아내와 아이들의 소원
25년이 걸려 그 소원 들어주었다
손톱만 한 칩 안에 이렇게 많은 집이
대뇌피질 속의 세포들만큼
뇌신경의 복잡한 회로만큼
내 두개골 속에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는지 아느냐
감정은 또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때로는 오리무중인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이 작은 칩 안에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울지 않고 화내지 않는
칩, 맛은 없지만 값도 싼 칩
칩보다 더 더 더 작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물건마다 찍혀 있는 작대기들
생생한 현실에 기능하는 ISBN과 원산지 표시
세계는 하나― 죽어도 바이러스처럼 같이 죽는다
나는 유기물, 때가 되면 사라질 테지만
너는 반은 무기물 반은 유기물
나를 살려야지 너도 살 텐데 왜 공격만 하니
집을 넓히는 일에 25년이 걸렸고
삐삐가 사라지고 스마트폰 안에 컴퓨터가 들어오는 데
사반세기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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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숭배하듯이
이 통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돈이 나가고
돈이 들어왔다
마지막 줄의 “새 통장으로 이월”
통장이 살아 있다니 다행
붓다는 늘 제자들과 함께 다녔다
제자 중에서 제일 똑똑한 회계담당
예수는 늘 제자들과 함께 다녔다
제자 중에서 제일 착실한 회계담당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끔
입ㆍ출금이여 제발
자금 회전이여 제발
돈의 흐름이여 제발
태양을 숭배하듯 돈을 숭배하는 우리
거룩하돈다 빌고, 숭고하돈다 빈다
머니머니해도 돈
돈이 없으면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세상
돈이 없으면 돈까스를 먹을 수 없는 세상
아직은
숨 쉬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구나
아무도 스위스는 건드릴 수 없다
국제은행에 누구의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신도 알 수 없는, 은행장도 알 수 없는
돈…… 돌았다
돈은 잘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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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 『생애를 낭송하다』, 『사람 사막』 외.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외.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