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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로 불이 난 부산 미 문화원 건물을 소방차가 출동해서 진화하는 모습. ‘부미방’을 계획한 이들은 1980년 12월 광주 미 문화원 방화 때보다 더 큰 화재로 이슈를 일으키려 했다. 다량의 휘발유에 불 붙을 때 인화력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부산 미 문화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대학생이 숨지고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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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한국사회는 4월 2일의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핫이슈가 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역사현장'에 복귀한 것이다. 사제단은 비록 깃발도, 강령도 없는 조직체이지만 불의가 판치고 정의가 핍박받는 현실에 침묵할 수 없는 모임이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부산지역의 대학가에서 시위가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대학생들은 3월 2일 <살인마 전두환 북침 완료>라는 제목의 "부산시민들이여 총궐기하자. 군부정권 타도하자"는 내용의 벽보 20매를 부산대 의대 부속병원 정문 앞 육교기둥 18개소에 붙인 뒤 부산시내에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3월 18일에는 김현장, 김영애,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가 12.12사태 때 신군부의 군사 행동을 방조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 중이던 1980년 5월 23일 위컴 한ㆍ미연합군사령관이 연합사 소속 병력의 광주 시위 진압에 동의하는 등 미국이 광주학살 및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을 지원ㆍ인정한 것에 대해 항의하면서 부산미문화원에 방화하였다.
이들은 부산 미문화원 현관에 휘발유를 붓고 방화한 후,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나라"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문화원 내에서 책을 보고 있던 동아대생 장덕술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주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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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미방 사건으로 구속된 최기식 신부 부산지방법원 법정에 들어서는 최기식 신부. 천주교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는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 주역인 문부식과 김은숙의 은닉을 도왔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부미방 사건으로 천주교 신부까지 구속되자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크게 반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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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화 내무부장관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현상금 2,000만 원을 내걸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다. 성당에 피신 중이던 주역 문부식과 여자친구 김은숙이 신부들의 주선으로 자수하였다. 정부는 4월 5일 이들의 배후 인물로 알려진 김현장 등을 은닉해준 혐의로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를 구속했다. 최신부는 원주교구 교육원에 그를 은신시킨 혐의였다.
사제들은 종교적인 신념에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을 보호하고 본인들의 뜻에 따라 자수시킨 것인데, 정부는 이 기회에 사제단과 천주교를 마치 초토화시키려는 듯 심하게 몰아쳤다. 11명의 사제와 수녀, 가톨릭농민회 간부들을 연행하거나 수사의 대상에 올리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본질보다 은신시켜준 데 대해 온갖 폄훼를 일삼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은 4월 12일 〈최기식 신부의 구속에 대해 당국에 묻는다〉는 성명을 통해 정부의 비열한 행위를 비판했다. 성명서의 서두 부분이다.
최근의 정부 발표와 보도를 종합해볼 때, 정부 당국은 부산미국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하여 사건의 실체에 대한 진상의 조사와 발표보다는 천주교 신부의 범인은닉 문제를 확대선전, 발표함으로써 사건의 본말을 전도시키고 나아가 의식적으로 천주교를 음해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우리는 예수 수난의 성주간에 또 하나의 수난을 겪으면서도 은인자중하는 가운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 왔다.
국민과 교회를 분열, 이간시키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우리의 진실을 밝히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로 그동안의 경위를 스스로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당국이 우리의 겸허한 물음에 답함으로써 그동안의 경위와 진실을 밝혀 주기 바란다.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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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무기수생활을 하던 부산신학대학생 문부식씨가가석방되어 서울민협으로 올라와 아버지와 나란해 앉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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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정권과 여기 빌붙는 자들에게 부산미문화원 사건은 영양가 높은 먹잇감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불공정한 재판과정과 함께 언론의 왜곡 편파성 보도에 참고 견디기 어려웠다. 재판이야 어차피 유신시절부터 권력자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사법부 법비들의 '예정된 과정'이라 치더라도 명색이 언론기관이라는 신문ㆍ방송의 행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진행된 1심 공판을 지켜본 사제단은 7월 30일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과 최기식 신부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① 사건일지 ② 교회내의 동향 ③ 왜곡보도 사례 ④ 재판일지 ⑤ 문제점 등을 정리한 이 〈보고서〉는 "정부 당국자의 허위 발표와 이에 덩달아 동조하고 나선 매스컴의 보도" 등을 비판하면서 교회와 국민 간을 이간시키려는 정부의 의도를 통렬하게 지적 비판했다. 요약한 '왜곡보도' 사례이다.
교회부분
① 김현장이 원주교구청에 은신, 교육원 강사로 용공 의식화 교육을 담당했다고 허위 보도.
② 최기식 신부는 의식화 교육의 장소를 제공, 자료제공은 물론 보고를 받으며 격려해 왔다고 허위 보도.
③ 교회가 불순분자, 국가보안사범을 비호하였다.
④ 교회가 성역과 특권을 주장한다는 식의 보도.
⑤ KBS 모 방송 해설위원은 고백성사 자체까지도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해설.
⑥ 최기식 신부는 도피자금 50만 원을 문길환을 통해 김현장에게 주었다고 공소사실 거의 시인했다며 허위 보도.
⑦ 각종 TV 뉴스를 통해 부산 중앙성당, 원주 원동성당 내부 등을 비추고 특히 봉산동성당 제대를 교육원인 양 보도, 방화사건과 교회가 깊은 관련이 있는 듯 부각시켰다.
⑧최신부 방 옆 벽을 뚫고 다락방을 만들어 그곳에 김현장을 은신시켰다는 허무맹랑한 보도.
농민회 부분
① 농민회원 아닌 사람을 회원으로 보도(김현장ㆍ박계동ㆍ박시영, 조문석 등)
② 농민회 교육은 주제발표 후 격렬한 토론으로 미리 의도된 결론으로 유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내용은 비밀 엄수해야 한다는 등.
③ 교육 중에 현실 비판하는 주장 등을 피켓 만들어 구호를 외쳤다는 등.
④ 정순철 농민회원이 "군사 파쇼 정권 타도 위한 광주시민의 항거에 호응하기로 합의" 등.
⑤ 농민운동이 1단계 경제운동, 2단계 민주화운동, 3단계 정치운동으로 설립목적에 위배된다는 등. (주석 7)
주석
5>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403쪽.
6> <암흑속의 횃불(5)>, 110~111쪽.
7> 앞의 책, 16~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