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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원리주의란 무엇일까요. .성경에 원리주의적으로 고착한다면, 곧 배타주의에 동의함을 결국 의미하게 됩니다.
의로움의 길은 결국 하나다. 이런 외곬수스러운 정신세계에 돌입하고 말죠. 원리주의 신비주의자의 입에서 남을 이
해한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순수한 오만이고 자신과 남을 향한 기만입니다.
그 믿음에 의하면, 최종적으로 구원받고 의로운 자는 오직 기독인 뿐입니다.
기독교만 그런건 아니고 원리주의적 신앙 일반은 다 그렇습니다. 그런 믿음은 곧 모든 인류와 아니 전 우주가 어떤
한가지 목적, 한가지 용도, 한가지 의도하에 존재하며, 반드시 그 최종결과에 최적화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이원론입니다.
그들은 부인하겠으나, 그 신념은 분명 그렇게 터무니없는 이상주의 맞습니다.
지난 기독교 역사, 그리고 그 역사속 사생아 여호와의 증인교가 바로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이토록 어이없는 신념을 뒷받침 해주는건 황망하게도 오컬트주의, 신비주의 입니다.
성경 신비주의가 이에 대한 강력한 뒷받침이 됩니다.
성경에 반영된 고대인들의 미개한 의식수준을 어떻게든 현대에 알게된 과학이나 사회현상과 조화시키려 온갖왜곡을
가하고, 또 역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것을 일치한것으로 왜곡하면서 더 나아가 [성경이 정확히 미래를 예언하였다]
라고믿는것이죠.
이중 다니엘에 관한 문제들을 보셨는데요, 어느분이 다니엘에 실존인물 하나를 언급한다 하여 나머지 다니엘이 예언
서로서 이 신비주의가 유지될수 있는것으로 생각하신것 같습니다 .
앞으로 다니엘에 관해 토론방에 계속 올릴 내용에서 다루겠으나, 다니엘서는 당대의 사건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것으로 현대까지를 아우르겠다는 생각은 지금 신학자들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전시대의 신비주의를 놓지 않는것은 역시 내재된 기독 이상주의를 벗어나지못한 것이겠죠.
아마도 이분은 현역 여호와의 증인이거나, 적어도 여호와의 증인식 근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독이상주의자
분일수 있겠습니다. (왠지 익숙한 느낌도 듭니다. )
워치타워가 언급한 벨사살 관련 정보를 활용하시면서 전혀 개연성없는 역사성을 입증하려 하시는게 바로 그런 심증을
주네요.
저게 대체, 무슨 상관인지 알수가 없군요.
그래서 " [근본주의자들은]다니엘에서 벨사자르에 대해[ 그 아버지 느부갓네살의]..라고 기록된 부분은 얼마든지 설명
가능하다" .
라고 해드린건데 너무 조롱이 되고 만건 아닌가 염려했더니 그래도 그럭저럭 토론이라고 여겨진것 같군요.
여기까지만도 좋습니다만, 더 나아가 역사사실들을 왜곡하는 부분에 이르러선 경악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분이 올린 이른바 벨사살의 어머니라는 [네부카드네자르의 딸] 니토크리스란 여인에 관해 올린 내용입니다.
고대 이집트어문자-히에로 글리프라 불린 성각문자. 그리고 이후의 데모틱 히에라틱 이 문자들을 종합해봐도
니토크리스란 그리스 이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위의 분은 저게 이집트어라는, 대채 어디설명인지 모를 소릴 하시는데요. 심지어 후기 콥트어로 봐도 저런인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일단 이집트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입니다.
다니엘 신비주의 옹호한다고 있는거 없는거 다 갖다 붙이다보니, 역사상식따위 아랑곳없이 되는대로 이것저것 들이대시죠.
이렇게 보면 정말 bce 5세기경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니토크리스란 바빌론 여왕이 오빠의 복수를 위해 바빌론 왕녀로서 이집
트 왕국 (을 떠맡았다는건지 뭘했다는건지확실지 않음. 번역표현 아닌가 싶군요.. ) 에게 복수하여 헤로도투스가 이집트와 바빌론 양쪽에 이 니토크리스란 동일한 인물로 묘사하였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앞에서
"니토크리스란 바빌론 여왕이 있었다"
이렇게 써놓고. 다음에 헤로도투스의 이집트쪽 니토크리스의 스토리를 이어붙인, 여호와의 증인 추리책 인용문을 연상케 하는 수법입니다.
원래의 헤로도투스 기록을 아주 휘저어 섞어찌개로 만든 설명입니다. 본인창작인지, 어딘가의 사이비 글질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헤로도투스의 [역사-히스토리아]를 갖고 있으니, 원래 헤로도투스는 무엇을 기록했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 2권에 나온 이집트편에서 나오는 [니토크리스]에 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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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사제들은 내앞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펼치더니 거기에 민왕 이후의 330명의 왕의 이름들을 차례로 읽어주었다.
그중엔 신기하게도 바빌론의 2대여왕이었던 니토크리스와 이름이 같은 여왕도 있었다. 사제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본래 그녀는
이집트왕의 형제였는데 대신들이 왕을 살해하고 니토크리스에게 왕위를 맞겼다고 한다 . 니토크리스 여왕은 형제의 복수를 하기
위해 거대한 지하실을 만든다음 죄가 가장 무겁다고 판명된 자들에 대해 연회를 열었다 .
연회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여왕은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커다란 관을 통해 강물이 들어오게 했다. 그들이 죽고 모든일이 끝난후
여왕도 스스로 재가 있는-(불길이 있는) 방에 뛰어들어 자결했다고 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히스토리아) 2권중 일부 요약-
이게 헤로도투스가 기술한 실제 내용입니다.
바빌론 여왕이 아니라 틀림없는 이집트 여왕으로서 복수에 성공후 자결합니다. 아주 드라마틱한 이야기군요.
대채 이분이 올린 내용은 어디서 나온건가요?
허위정보로 혹세무민을 꾀하는 이 패턴이 왠지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그럼 이 2권의 니토크리스 여왕을 언급하기전에 헤로도투스의 역사1권에서 바빌론의 니토크리스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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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엔 여자통치자가 2명 있었는데 바로 세미라미스(기원전9세기경의 바빌론 여왕인 [삼무라마트]로 보입니다. 그리스식
이름이죠) 여왕과 니토크리스 여왕이었다 .
니토크리스 여왕땐 대대적인 방벽 강화공사가 진행되었다.
또한 니토크리스 여왕은 메디아 방향으로 난 성벽가까이에 유프라데스 강물을 끌어와 둘레가 77 .7 킬로미터(현대 도량으로
변환기록됨)에 이르는 인공호를 만들었다 .
인공호를 만드느라 퍼낸 흙은 유프라데스 강으로 가져가 양변에 높고 두껍게 둑을 쌓는데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유프라데스
강에 인공수로를 만들어서 강줄기가 더욱 구불구불해지게 했다. 이리하여 강의 유속은 상대적으로 느려졌지만 외부에서
바빌론으로 향하는 항해로는 훨씬 복잡해졌다.
니토크리스 여왕이 이처럼 대대적으로 공사를 일으킨 당초의 목적은 니네베를 함락한 메디아로부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
해서였다.
성밖에서 인공호를 만들고 있을때, 성안엔 바빌론을 가로지르는 유프라데스강에 다리를 세우는 작업이 진행됬다.
-헤로도투스의 역사(히스토리아) 1권중 일부 요약
이런 대규모의 안보시설을 만드는장면의 주인공으로 이 니토크리스란 바빌론 여왕을 묘사하죠.
여기서 역사학계의 추적이 한가지 단서를 줍니다.
대 메디아용 방벽과 인공호 즉 거대한 해자.. 이것을 헤로도투스는 니토크리스란 여왕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집트
에도 그런 같은이름의 여왕이 있다고 합니다.
자, 이제 이 메디아 방벽, 수로. 이걸 누가 짓는지 실제 역사를 봅시다.
이 시절이 니네베 함락 시기 이후라면 나보폴라살-네부카드네자르 치세 시절입니다.
예의 헤로도투스가 묘사하는 메디아 방벽과 시라반-세파르 강 관개수로는 메디아제국을 신경쓰던 네부카드네자르가 지은것
입니다.
벽돌 하나하나마다 네부카드네자르의 이름이 들어가 있고 이곳저곳에 자랑스레 기록해놨죠.
특유의 [이 위대한 국가 바빌론은 나 네부카드네자르 짐이 건설한것이 아닌가] 이런 거만을 떨면서 말입니다.
고대문헌학자 톰 홀랜드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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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부카드네자르는 메디아의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선을 굳건히 하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 사이의 확 트인 평지를 막기
위해 너비 8미터 높이 10미터의 장대한 방벽을 세웠다.
이 메디아방벽은 이 방벽을 세운 군주가 바로 그 네부카드네자르세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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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학자 앙드레 보나르의 설명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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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부카드네자르왕이 메디아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바빌론 북부지역에 여러가지 방어책을 마련한것은 정확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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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걸까요?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니토크리스란 여왕이 했다는 일은 실은 네부카드네자르의 업적입니다.
이 실제 역사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자초지종을 파악할수 있습니다. 바빌론 왕궁의 크기를 터무니없도록 과장하여 말하기도 한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볼때 그는 바빌론왕궁을 현지답사하고 관련 문헌을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걸로 볼수 있습니다.
즉 당시의 페르시아문헌과 페르시아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바빌론정보를 얻었던것이죠.
페르시아어에 익숙지 않았던 그는 아마 당대의 페르시아어발음으로 네부카드네자르란 이름을 니부크드라챠라 이렇게 들었
을것이고, 이 이름을 여성형으로 생각한 그는 그리스식인 니토크리스란 여왕의 이름으로 기록하기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헤로도투스가 말하는 바빌론의 니토크리스란 결국 네부카드네자르입니다.
헤로도투스의 그리스어에 익숙한 귀에는 이집트 여자이름 또한 비슷하게 들렸나 봅니다. 아마도 그가 들었을 그때까지의 이
집트 왕궁의 여인명으로 니티크리티, 네페르티티, 이런 이름을 생각해볼수 있겠습니다.
현재로선 헤로도투스가 말하는 이집트여왕이 누구인가는 알수 없습니다. 일찍 사망한 6왕조의 메레넵트 2세의 일대기가 이
이야기에 관련된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정도가 존재하죠.
"니토크리스"에 대한 헤로도투스의 오해는 한가지 더 있습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다시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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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가 바빌론에 진군할때] 이때의 바빌론의 국왕은 니토크리스 여왕의 아들 라보네투스 였다.
-헤로도투스의 역사(히스토리아) 1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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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니토크리스 여왕의 아들을 누구라고 묘사합니까
벨사살이라고도 안합니다
라보네투스 즉 나보니두스 입니다.
워치타워 협회의 성경통찰에선 저 니토크리스 여왕의 아들을 나보니더스라 말하고 있는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대해선 말
을 뚝 자르고, 그저 [니토크리스의 아들과 키루스가 전쟁에 임한다고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나와있다] 이렇게 인용함으로
해서 왜곡을 부추깁니다.
결국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실제 봐도 어느모로 보나 이미 넷상에 떠도는 벨사살 어머니 설하고 맞는게 없어요.
실제의 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를 확인해보지 않은 기독네티즌들이 반복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그걸 확대 재
생산하는 과정이 되풀이된것입니다.
이분 익명의 다니엘 신비주의자분이 그 생생한 실 사례군요.
이들은 자신들이 역사왜곡을 한다고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자신들의 의로움을 확신하므로 그것이 역사왜곡이 아니라 또한 그
의로움을 위한 일이라고생각하죠.
이미 확인했듯이 여기 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분도 자신이 이미 올린 완벽한 날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이런 거짓된 역사인식과 시선 위에 이들의 종교사업은 성립됩니다.
첫댓글 다니엘서를 부정하기 위해 헤르도토스를 느부갓레살과 니토크리스도 구분 못하는, 남자와 여자도 구분 못하는, 왕과 여왕도 구분 못하는, 아버지와 딸도 구분 못하는 허접한 인물로 만들어 버리시는 군요. 반박글을 올려드리죠.
왜곡을 왜곡이라 인정않고. .아무리 지적해줘도 계속 정당함을 자처하며 다시 왜곡으로 왜곡을 돌려막기하는것도 여러분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한 기독 이상주의자들의 특기죠.
니토크리스와 느부갓레살이 동일 인물이라면,
키루스가 바빌론을 공격할 당시, 느부갓레살의 아들이 왕이었습니까?
바빌론의 수로 공사는 느부갓레살 당시에 끝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딸에 의해 완공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헤르도토스는 온전히 정확한 역사조사를 했던건 아니었던것이죠
[키루스가 바빌론에 진군할때] 이때의 바빌론의 국왕은 니토크리스 여왕의 아들 라보네투스 였다.
이 문장은 어떤 책을 인용하신 것인지 모르지만, 문제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 문장은 니토크리스의 아들이 나보니더스라는 말이 아니라, 니토크리스가 나보니더스의 아들을 낳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원문은 답글에 올렸습니다. 참조하시길.
저것도 원문이 아니죠
니토크리스가 그리스식 이름이라고 계속 주장하시지만,
희랍 역사가인 헤르도토스는 당연히 바빌론식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발음한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나보니더스도 라보네투스라고 음역하지 않습니까?
나보니더스 또한 그리스식 발음입니다 아마도 나보나이드 이 발음이겠죠.
니토크리스가 느부갓레살과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은 솔직히 황당하군요.
이런 주장은 들어본적도 없고, 단지 둘다 바빌론의 요새화를 했다는 기록 때문에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는것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바빌론 요새화는 방대한 공사였으며, 당연히 느부갓레살부터 그의 딸인 니토크리스까지 이르는 국책 사업이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며 합리적인 해석입니다.
더우기 니토크리스의 아들을 키루스가 공격했다는 것은 님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를 명백히 알려줍니다.
헤르도토스를 그렇게 허접하게 생각하셨다니, 너무나 의외군요.
저 이집트 여왕과 관련지어 올린 님의 왜곡 소설부터 설명이 필요합니다.
헤르도토스가 님이 설명한대로설명했던가요?
협회서 꼼수만 느셨군요?
다니엘서를 비롯한 성경의 역사성은 워타의 전유물이 아니며, 여러 각도로 증명되고 있는데 엉터리 단편적인 지식으로 그것을 억지로 부정하고자하는 이글쓴이의 무식함은 오히려 워타를 도와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어떻게 증명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시죠?
앞서 이 증인님은 거짓말까지 해가며 그 (신비주의적)역사성이니 뭐니를 억지로 증명하려 들다가 들통난겁니다.
그렇게 억지로 유지되는건 오히려 성경에 대한 (원리주의적) 역사성 믿음 같은데요?
유식할것으로 추측되는 님이 원리주의를 증명해보십시오.
그리고 다니엘 기록시기 문제는요..어디 신학대학에서 주최하는 강의라도 한번 들어보시죠.
기원전160년경이라 설명하는거 들으면 아마 깜짝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렇게 좋아하는 성경 부정확하게 말해 욕되게 하는건 님과 워타가 될것 같군요.
신학자들이나 워타의 주장이 잘못이라는것하고 성경이 역사성이 없는 것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성경 자체의 내용을 사용하여 그것의 역사성이 허구라는 점을 증명해주시면(선생님이 문제제기를 하셨으므로 선생님이 증명하실 의무가 있습니다) 그부분에 대하여 답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성을 믿는 사람을 전부 원리주의자로 매도하는 것도 논리의 비약이며,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들만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고 글을 쓰셔야지 모든 것을 단정적으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워타는 잘못한거 맞는데요..적어도 저 다니엘 기록시기와 관련하여 현재 신학자들은 별 잘못이 없어보입니다.
분명 강의라도 한번 가보시면 아실거라고 위에 제가 썼는데요?
이분들은 왜 자꾸 남의 이야기를 구부리는데만 혈안이 되어있는지 모르겠군요...
밑의 증인님도 헤로도투스가 바빌론최후의 왕 이름을 라비네토스라 기록했다는거 하나 뒤집으려고 별 같잖은 영어해석쇼 벌인거 보셨죠.(원문은 영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죠
어째서 다니엘의 실제 기록시기를 논하면 성경엔 역사성이 없다..이렇게 말하는게 되는지 그것부터 논해보시죠?
제 주장도 아니고 (무식한?)학계 일반적 결론이니 그들을 향해서도 답하시면 좋겠군요.
그리고 무식한놈이라고 했다가 갑자기 점잖은척 선생님이라 했다가 왔다갔다하지말고 지칭은 통일해주시죠. 유식한 기독인님?
전 님의 선생이 아닙니다.
이 "유식한" 분이 여지껏 말한 다니엘내의 내용상 문제로 인하여 확인하는 실제 기록연대에 관한 설명을 이해못하고 있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선생님'은 상대방에 대한 일반적인 존칭으로도 쓰이며, 저는 선생님을 '무식한놈'이라고 칭한적이 없으며, 얕은 지식을 뽐내며 함부로 남을 헐뜯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리고 윗글의 어디에도 성경내용으로써 성경의 비역사성을 증명한 것은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비판한 수준에 불과한 내용들입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을 온갖 표현들로써 비하하면서 자신이 무식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흥분하시는군요.
선생이라고 하지 마세요.
전 그런 자가 아니며 님의 [무식]지칭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유식님. 그거야 님의 정의에 불과하고 실제 무식한면도 많으니까요 그에 대해 전 한번도 해본적없는일.( 제 온갖 비하표현이란게 뭐죠?)
남을 무식하다고 결정하는 강력한 일도양단을 내리는 님을 전 유식하다고 확신하겠습니다.
남에게 무식하다는 결정적인 말을 할땐 당연히 자신의 상대적 유식을 확신하는거 맞죠?
저 다니엘 기록시기는 제 주장도 아닙니다.
이미 학계의 합의가 되어있는 연구 결과물이죠.
그에 대해 무식이라 단언한 님이 그 연구를 향해 증명해야할게 있어 보이는데요?
저 증인양반 해석놀음같은거 말고
'학계의 합의가 되어있는 연구 결과물'이라고 막연히 이야기하지 마시고 누가 어떻게 말했다라고 정확하게 인용하시든지 님의 말씀으로 주장해 보시면 그것에 대하여 제가 반론하겠습니다. 문제를 제기하신 분이 증명하시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성경근본주의를 확신하며. 그에 의문가진자를 근엄히 아주 쉽게 평가하는것도 원리주의기독인들특징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
학자의 이름만 알면 되시는가 보죠? 국회도서관에 가셔서 엄주현 교수의 논문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신학대학 교수시죠
님께서 막연하게 학계의 주장이라고 하시니까 정확하게 말씀해 보시라고 한 것일뿐이며 이름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원리주의자 운운하며 옆 길로 새지 마시고 성경연대의 어디가 잘못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신학대를 나오신 분 같은데 저는 님처럼 신학교수를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들의 논문을 읽어 볼 생각이 전혀 없으니 필요한 부분을 님이 인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문제제기하신 님이 하실일이지 제가 수고할 일이 아닙니다.
제게 무식하다고 하며 [여러 각도로 증명]을 말하시기에.. 아마도 성경학계의 연구가 아닌가 하여 바로 그 학계의 논문을 알려드렸더니 그것을 믿지 않는다니.. 대학 도서관에 비치된 논문 몇개만 읽어봐도 속속 나올이야기들인데 님의 유식은 이미 그런 공부노력조차차필요없는 수준이군요.
그들 교수들은 고대원어 수개이상 해독해가며, 고고학정보들 최신 업데이트등을 지속적으로 체크하며 그 연구들을 해나갑니다. 그런 노력따위 초월한 분인줄 몰라뵜네요. 님을 위해 국회도서관에 갔다올만큼의 여유도 현재 없고, 또한 학계의 권위따위 믿지 않으신다니.. 저따위 무식한 자가 상대할수있는분이 아니십니다.부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러니까 님은 신학자들의 권위를 등에 업고 성경의 역사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것이군요. 신학자들이야 성경비판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어떤 주장인들 할 수가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 사람들이 주장했으니 옳다는 식의 님의 주장 자체가 바로 님의 지식이 얕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신학계 운운하지 마시고 단 한줄이라도 자신의 의견으로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도 못하는 얕은 지식으로써 남들을 함부로 폄훼하시니까 무식하다고 제가 말씀드린것입니다.
여지껏 논증하고 말한것을 깡그리 없이 생각하는 대학자분께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님께서 논증하셨다고 주장하신 것 중에 어느 것도 성경 내용의 역사상 오류를 성경의 내용을 사용하여 증명한 것은 없으며, 기껏해야 성경에 관하여 의견을 피력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비판 한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주장이 틀린 것하고 성경의 역사성이 없다는(님의 주장)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에 더하여 님께서는 아무런 근거없이 많은 사람들을 원리주의자로 매도하면서 폄훼하였습니다. 그래서 님의 경박함을 지적한 것입니다.
대학자님. 님이 주장하려는 이른바 [역사성]이란 다니엘이 미래를 소름돋도록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초현실주의고. .그건 바로 종말론과 연결됩니다. 세상국가체제를 하나님이 심판한다는 심판론이죠.
그리고 그건 곧 기독이상주의-그 심판에 속하지 않아야한다는 구원론을 낳기도 하고 또 대전환 현세적 이상주의와 연결됩니다.즉 인간은 신에게 심판받아야 한다는 교리로 연결되죠..
이걸로 종교는 장사를 합니다 .
님은 그밭이 되어주고 신비주의 강화에 한몫하면서 권위화에 기여합니다. 이게 기독 이상주의 반복역사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현대에 다시 성경을 냉철히 조사할수 있게됬죠 .
그래서 이 다니엘은 당대의 역사를 반영한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됬습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함은 님에게서 보듯 학자들이 평생을 걸고 연구한 결과를 쉽게 폄훼하는 신비주의자들뿐입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엔 [인자같은 이] 라는 말이 등장하죠.(7:13) 이건 아들을 의미하는 바르,인간을 말하는 에나쉬,바르 에나쉬는 크.(-같은)에 의해 수식을 받습니다..이렇게 정교하고 모던한 용법은 이전에 없었던 용법입니다. 이게 달라지면 이 구절에 대한 신학적 해석
도 상당부분 달라질 것입니다.
즉 이 모던한 용법은 이 용법이 쓰이던 당대에 애초에 쓰인 용법입니다. 인자가 아니라 인자같은이... 어떤 특정한 역사적 인물과 동일시되는 문제가 고려된것일까요?
. ..이는 신인사상까지를 고려해볼만한 부분입니다. 물론 종파마다 종단마다 이 구절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죠.어쨋든 이런식으로 고대엔 사용되지 않던 모던한 용법이 다니엘에 있어요.그리고 그것들은 용의 주도 합니다.
다니엘시대에 없던 문장들 그리고 언어들..이것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진정 프로파간다적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신학자란 입장은 당연히 신비주의가 유지되는쪽이 전반적으로 더 좋은 입장입니다.
분명 후대의 아람어 단어. 그리고 용법에 의해 지탱되는 해당 구절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자앞에 인도되는 부분에서 절정을 맞습니다. 여기서 옛적부터 계신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의 그리스어 역본(70인역)을 보면 ' 날 수가 오랜 분 처럼 왔고'라는...이 인자같은 이와 동일시하는 번역을 하고 있죠..혹시 이쪽이 원본에 가까운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부분의 인자같은이와 옛적부터 계신이라는 두 인격체에 대한 관점은 근본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은 그리스어 단어의 비슷한 발음,(헤오스,-에게로. 호스- 처럼의 혼동?)의 문제에서 벌어진 오류일수도 있죠.
이 부분을 확정하기위해선 다시 문맥들을 분석해야합니다.
다니엘서의 이 일부분의 원문의 문제를 보시면..증인님외 다른분들 주장처럼...필사과정에서 후기어가 들어가지 않았는가...라는 이야기는 현실과 전혀 다르다는걸 느끼실것입니다.
이는 원래 그런 언어로 기록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않는 중대한 문장입니다.
이런 성경내의 퍼즐과 도해를 재구성하는 학자들의 노력이 어떻게 해서 여러분 세치 혀로 한꺼번에 단순한 프로파간다로 전락할수 있다는거죠?
어쨋든 끝내 그 신비주의적 "역사성"만이 진실이라 고집하신다면..그리고 이런 노력들은 무식한것이라 간주하신다면..저로선 할 말이 없습니다.
다니엘에서 '인자'는 예수를, '옛적부터 항상 계신자'는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성경비판자들은 자기 멋대로 해석들을 할것이며, 님도 어떻게 주장하시든 그것은 님의 자유이지만, 님께서 중언부언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저는 도저히 해독을 못하겠으므로 님과의 향후 대화는 무의미한 것으로 판단되어 이것으로 중단하겠습니다. 혼자서 그 알량한 지식 자랑 많이 하시고 그 어지러운 문장을 해독하실수 있는 분하고나 대화하시기바랍니다.
내용적 논증을 원하시기에 말씀드렸더니..이럴줄 알았습니다. 전형적이십니다..
진정 문제들을 직시하는 기독인은 저도 존경합니다만 독불장군기독인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도대체 상대방의 지식의 출처 근원은 무조건 깡그리 무시하려고 들면서 어떻게 논리적인 답을 찾아나간다는거죠?
편협 그리고 편견이란 벽을 쳐두고선 무슨토론이 되고 답을 찾는다는건지....
그러면서 그들은 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말하겠죠...." 종교에 관계없이, 편견없이 한번 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