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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아소케 공동체의 경우 / 번역 김민희 minnie3@empas.com
1. 서문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 데 비해, 석유, 가스, 광물, 깨끗한 물과 같은 자원의 매장량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학에 매몰되어 남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더 큰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자유무역체제와 인간의 욕심이 바로 소수를 위해 다수의 서민을 갈취함으로써 분배의 부정, 빈곤, 갈등을 야기한다. 빈곤하고 취약한 계층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부유하고 특권을 누리는 계층은 더 충분히 가지지를 못해 안달이다. 그러나 법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개발 패러다임이 산업화에 바탕을 두어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재화를 창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가 간 경쟁의 척도가 되는 것이 바로 국내 총생산량(GDP)이고, GDP의 상승은 자연자원을 더 많이 개발하여 이윤을 얻어낸 ‘좋은 경제’ 혹은 ‘경제 성장’을 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반면, 일상에서 누적되는 문제들은 늘어가는 빈곤층, 기아, 불평등한 분배 등이다. 게다가 산업체들이 배출하는 오염물질로 인한 심각한 환경오염은 인류를 놀라게 했다. 다행히도 잠깐뿐이었지만.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운동도 여러 번 있었지만, 어느 것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런 문제들 속에서 불교는 우리에게 탈출구를 찾아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괴로움과 고통의 근본을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서 찾는 것이 불교이기에, 불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욕심, 무절제한 소비, 자연자원의 착취 등에 반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단계의 수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성공을 거둘 것이다.
20세기 초 진행되었던 반세계화 운동은 인류가 그동안 보아왔던 여러 형태의 갈등 중에서 아주 큰 사건이었다. 전쟁뿐 아니라 국가와 종교,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 혹은 마을 간, 이웃 간, 가족 간, 학교 친구들 간의 싸움 등을 비교해 보았을 때 말이다. 인류사에서 긴장감, 부정행위, 폭력 등이 난무했던 이유는 오해, 두려움, 정의롭지 못함, 무지, 공격성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 점을 생각해볼 때, 빠르게 성장하는 현대사회에서 윤리와 도덕의 문제는 가장 뒷전인 것 같다. 작은 마을 단위에서 깨끗한 물을 지키기 위하여 산업체에 대항한 싸움이라던가, 대형 어선을 대상으로 하는 어부들의 투쟁, 환경을 지키기 위한 채굴과 벌목 반대 운동 등이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대량화되고 빠르게 진행되는 교육은 인간을 자본주의에 더 편입시켜 더 많은 발명과 특허권을 따도록 종용하고 있다. 더 많은 교역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더 많은 편의와 즐거움을 주는 신기술들을 계속 따라잡고 익히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족 간 유대는 점점 사라져 간다. 아이들은 홀로 남겨져 고독 속에 자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원치 않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안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욕구를 느끼며, 물질적 부를 향해 절름발이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갈등과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실은 모든 종교의 바른 가르침과 실천,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이런 갈등과 전쟁은 존재할 수 없다. 종종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다. 물질적 소유의 정도가 부의 척도인지, 부가 행복을 가져오는지, 문명화된 사람이라는 것이 현대의 기술들을 소유한다는 뜻인지 말이다. 달라이 라마가 농담조로 이런 말씀을 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벌었던 돈을 모두 쓴다. 그리고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늘 미래를 걱정하며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죽는다.”
이러한 현대사회 속에서 삶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 종종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태국불교에서는 가장 큰 고통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 즉 음식, 물, 공기, 주거, 이웃 등이 부족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종교적 수행 차원으로 볼 때 ‘도덕성’의 문제와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자본주의로 인하여, 승려들이 소유하고 있는 현대적 기술이나 물건 등이 종종 세간의 의심을 사게 한다. 왜냐하면 태국에서는 승려를 거지(혹은 구걸하는 자)와 똑같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승려가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것이 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길이고, 승려들의 도덕적 행동은 모두로부터 당연히 기대되는 덕목이다. 사찰과 주민들의 삶 터가 상호 연관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불자들이 행하는 보시 등과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승려들만 비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태국불교계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이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태국불교 개혁운동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는 ‘아소케 불교 공동체’가 성공을 거둔 후에는 특히 더 큰 힘을 받았다.
2. 불교적 가치관과 아소케 공동체
태국은 상좌부불교(남방불교)와 대승불교(북방불교)를 모두 따른다. 우선 태국 사회가 이해하는 ‘불교적 가치관’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태국에 상좌부불교는 아소카 왕 시대의 ‘소나 스님’과 ‘우타라 스님’에 의해 전파되었는데, 당시 그 지역은 ‘수완나폼(Suvarnabhumi)’이라 불렸던, 불교가 퍼진 9개 지역 중 하나였다. 고대 학자들에 따르면, 태국에 세워진 최초의 불교 탑은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방콕 서쪽 지역인 나콘 파톰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그곳이 수완나폼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승불교는 5세기경 북인도 지역의 대승불교 승려로부터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태국 남쪽 지역에서 현재까지 번성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이후 1070년, 태국 중부 지역과 캄보디아로 전파되었다. 캄보디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태국불교는 캄보디아가 받아들였던 브라만 문화와 영합한 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로 산스크리트어는 태국 문화 속에 깊게 뿌리내리게 되었다. 태국은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 모두를 받아들였지만, 오늘날 대다수 태국인들은 상좌부불교를 따르며, 중국계 태국인들이 대승불교를 따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 사회는 불교의 비물질주의적 가치관과 마음 수행의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다른 불교 국가들과는 다르게, 태국 승려들은 비정치성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많은 승려가 정치적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삼림개발에 반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경제적, 환경적 위기를 맞이한 이후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방식을 익히며 마음 수행을 하고자 한다. 아소케 공동체는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룬 이 분야의 개척자라고 생각된다. 아소케 구성원들은 과도한 물질적 소유를 부정하고, 최소한으로 생존에 필요한 물질만을 소유하며 ‘복’을 쌓는다는 의미에서 보시를 실천하며 성실하게 일한다. 1969년, 아소케 수행을 하는 승려들과 재가불자들의 헌신을 통해 이러한 삶의 철학을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체계화시켰다. 또 재활용과 재사용을 통하여 쓰레기를 최소화시켰다. 1975년 초, 지도자 프라 보디라(성공한 전직 TV 연예인)가 태국 승려 위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를 모두 적용한 수행법을 만든 뒤에 방콕 북쪽 외곽지역에 ‘산티 아소케’라는 첫 번째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아소케’란 단어는 ‘고통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 ‘산티’는 ‘평화’를 뜻한다. 의·식·주 및 약의 4가지 기본적 욕구를 만족시키며 사는 것만이 오염된 마음이 야기하는 사치스러운 삶을 방지하는 길이다. 아소케 공동체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바탕으로 한 대안적인 경제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들이 유일하게 얻는 이익은 ‘복’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본주의(Tun-ni-yom)를 거부하며, 복 짓기 주의(Bun-ni-yom)에 대한 열정을 키워준다. 복 짓는 수행을 통해 오계가 지켜지고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성취되며 더 발전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전통적인 운동이다. 오계는 살생하지 말며, 훔치지 말며, 음행하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며, 중독성 있는 것들을 취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2004년에는 4개의 힘을 기본으로 한 ‘복 짓는 단체(Bunniyom Society)’가 태국 내에서 처음으로 출범하였다. 4개의 힘이란 첫째 도덕적 원칙을 가르쳐주시는 담마(부처님의 가르침), 둘째 담마의 가르침에 따르는 윤리적 행동, 셋째 종교적 사회적 통합, 넷째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비로운 행동을 하도록 하는 행동의 법칙인 카르마이다. 이후, 이러한 시스템과 원칙을 따르는 많은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은 대다수 빈곤층과 검소한 중산층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급자족하는 공동체 모델은 자연친화적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수확하여 얻은 것만을 소비한다. 이를 위하여, 공동체 내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이들이 각자 조화롭게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첫 번째 그룹은 비구니, 비구, 그리고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공동체의 법사로서 혹은 정신적 멘토, 조언자로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그룹은 농부들이다. 이들은 안전하고 깨끗한 먹거리를 공동체가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 세 번째 그룹은 건강과 교육을 책임지는 그룹이다. 건강하고 단단한 농경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팔정도’를 따르는 길이며 살생을 하지 않는 ‘바른 직업’을 따르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나 정원사가 이에 해당하며 깨끗하고 푸른 자연환경은 필수적이다. 풀, 씨앗, 허브, 과일, 땅, 물, 곤충, 비료 등 모든 것이 신중히 다루어진다.
3. 아소케 공동체의 경제
아소케 공동체가 어떻게 생계를 꾸리는지 외부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일반적으로 공동체는 마을, 사원, 학교로 이루어진다. 아소케 소비 시스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다. 그 원칙은 말과 행동, 생각에서 친절하기,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행동하기, 공동으로 소비하기이다. 복 짓는 수행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여 성실히 일하며, 스스로에 의지하고, 건설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다른 이를 이용하지 않는 삶의 원칙들을 지켜나가면서 공동체는 더욱 결속된다. 이들은 “적게 소비하며 많이 일하고, 사회에 환원하자.”라는 슬로건에 따라 생활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은 공동소비에 있다고 믿는다. 이 사회에서 ‘복’은 공동체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인생이 끝날 때까지 수행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태국인들은 윤회를 믿는다. 이번 생애에 지은 ‘선업(복)’이 다음 생애에는 반드시 좋은 삶을 만들어줄 것이며, 이번 생 역시 지난 생에 지은 행위의 결과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이 나라 사람들을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있어도 크게 다투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었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소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복 짓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이 정신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종교, 정치, 언론, 상업, 교육, 금융, 산업, 농업, 건강, 음식, 쓰레기 처리, 문화와 예술 부문의 발전에 기여한다. 언론 분야에서 아소케 공동체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새롭고 교육적인 책들을 출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책자로 펴내는 작업도 진행한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국을 직접 운영하여 주민들을 대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 건강관리, 의약품, 허브 음식 및 기타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한다. 아소케 공동체가 방송을 통해 외부 세계에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공동체의 성공은 많은 태국인에게 아소케의 철학인 ‘행함으로 배우기’를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산티 아소케 공동체에는 채식 식당, 슈퍼마켓, 재가자들을 위한 주택, 기숙사, 승려들을 위한 숙소, 학교, 사원, 출판사, 회의장, 식당, 치과 등이 있다. 공동체의 성공으로 인해 방콕을 넘어 외부에서 찾아오는 회원들이 늘어나, 이제는 9개의 아소케 불교 생활공동체가 태국 전역에 설립되었다. 1976년 산티 아소케, 시사 아소케, 살리 아소케가 생겼으며, 1980년 파톰 아소케, 1990년 시마 아소케, 1994년 라즈취타니 아소케, 1995년에 트랑의 탁신 아소케, 치앙마이의 푸파파남, 차이야품의 힌파파남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더 작은 규모로 아소케를 따르는 회원들의 공동체들이 있다. 복 짓는 사회를 구축하려면 각 공동체 내의 작은 땅들을 회원 가족들이 공유한다. 방콕 외곽지역에 설립된 아소케 공동체들은 필요한 경우 농경지역, 주거지역, 저수지를 갖추며 정착했는데, 이는 산티 아소케 공동체의 생활을 지원하는 코뮌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지도자인 보디락 스님은 태국 정치인들의 부패와 타락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에 여러 번 가담했는데 이는 외부에 ‘불법의 군대(Dharma army)’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전에 방콕 시장을 지낸 잠롱 스리무앙의 정치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보디락 스님은 방콕 서부 칸차나부리 주에서 열린 잠롱 스리무앙의 ‘리더십 학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덕분에 태국 사회의 부패와 고질적인 병을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 아소케 공동체가 정치인 잠롱 스리무앙과 긴밀하게 협력해서 활동한다는 점이 대중에게 알려진 지 20년이 넘었다.
성실히 일하여 좋은 농산품을 생산한 뒤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 마을 공동체의 경제를 균형 있게 만드는 명석함을 갖추는 것이 바로 큰 복을 짓는 일이다. 생산품의 시장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제조업에 현대 기술이 필연적으로 도입되었다. 시장 매대에 올려져 있는 각각의 물품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정직하게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이라고 적혀 있다. 1997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아소케 공동체는 더욱 유명해졌고, 자본주의 사회와 대비되며 강점을 인정받았다.
아소케 교육 체계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직업학교가 있다. 교사들 대부분은 나라에서 인정하는 교원 자격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이지만, 일부는 자격증이 없는 봉사자들이다. 자격증이 없는 분들은 주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다. 이들은 농사, 정원 손질, 요리, 바느질 등의 기술에 탁월한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 유기농 비료, 바이오 연료, 허브 약초, 농산품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은 꾸준히 일함으로써 자신이 필요한 것보다 많이 생산한 뒤 시장에 내다 팔거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나눔으로써 복을 짓는다. 요즘 아소케 공동체들은 농부, 학교, 정부 기관 등을 대상으로 유기농법, 쓰레기 재활용 및 재사용법 등에 대한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아소케 공동체는 지속 가능한 자급자족 경제를 마을 단위로부터 이루어 낸 경제 혁명의 아이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4. 시사 아소케 공동체의 기원과 삶
‘시사 아소케’ 역시 다른 아소케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로 인해 출범된 불교 마을 공동체이다. 산티 아소케 공동체를 따라, 1969년 태국 북동쪽 시사켓 주 칸타라락 군의 사람들이 모여 시작되었다. 이 마을의 땅은 화학비료로 인해 토질이 악화되어 버려진,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쿠안딘 싱캄’이라는 사람이 그 지역에서 몇몇 가족들을 모아서 전통적인 비료였던 소똥을 사용하여 토질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유기농 공동체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비옥한 땅을 만들기 위하여 일본에서 유기농법으로 유명한 농부인 ‘후쿠오카’의 농사 방식을 따라, 먼저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들의 지도자인 아소케 비구와 비구니 승려들이 정서적으로 많은 지지를 해주었다. 이 공동체에 합류하고자 하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공동체의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실히 일하기’ ‘오계 지키기’ ‘채식하기’이다. 그래서 이 마을은 최초 시작할 때 ‘오계 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74년부터 1976년 사이에는 생계에 필요한 충분한 작물과 생산품이 없어서 마을 전체가 외부의 보시와 기부에 의존하여 살았다. 그러나 복 짓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한 끝에 공동체는 그 후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버섯, 허브차, 허브 비누와 샴푸 등과 같은 생산품도 팔고 있다. 돈이나 물건으로 대가를 받지 않고 타인을 위해 일하며, 그들은 자신들이 수확한 것만 소비하며 필요한 것들은 직접 키운다. ‘물의 심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공동체의 가게가 바로 그들의 물건을 외부 사람들에게 파는 장소이다. 이 중에서 샴푸가 가장 판매도가 높은 인기 물품이었으며, 방콕 내 산티 아소케 가게로도 보내져 판매되고 있다.
이 공동체는 계속해서 확대 발전하다가, 1986년에 ‘부다탐’이라는 사원 마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이후 ‘시사 아소케 마을’로 태국 지도에 표기되기 시작했다. 방콕에서 관광객들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찾아와 다정하고 친절한 미소 속에서 이 풍요로운 불교 전통 공동체를 경험하고 간다. 그들에게 이 공동체의 작업장, 학교, 가족, 사원들은 단순 소박한 삶의 가치와 자비로운 생활 서비스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정원과 논 이외에도 시사 아소케 공동체에는 방앗간, 두부 공장, 채식 식당 및 가게, 사무실이 있다. 주민들은 남는 음식 재료들을 이윤을 남기지 않고 팔거나 기부한다. 그들은 약이 될 수 있는 허브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태국인들 모두와 공유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많은 이들의 고통을 해소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 학교에서 학생들은 벼농사 법과 채소 농사법을 배운다. ‘행함으로 배우기’ 원칙하에 학생들도 농사를 짓는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가슴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보다 자비롭고 책임 있는 시민들로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학생들은 무주상보시 즉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을 배운다. 시사 아소케 공동체는 학생들 역시 철저하게 오계를 따르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진다. 종교적 수행을 통한 바른 태도와 바른 행동의 결과는 이곳 학생들의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수행은 세간의 관심을 끌어, 외국에서 이를 연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북동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방콕에 비해 훨씬 더 평화롭고 매력적인 문화적 환경을 갖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방문객 역시 방문하는 기간은 채식을 해야 한다.
시사 아소케 마을 사람들은 복을 짓는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마음과 정신의 기둥인 사원, 두 번째는 지식과 사회적, 직업적 개발을 돕는 ‘숨마식카’ 학교, 세 번째는 부모와 함께하는 가정으로, 완전한 삶과 몸의 성장을 담당한다. 시사 아소케는 불교 오계를 철저하게 따르는 80가정의 재가 신자 200여 명과 277계를 따르는 아소케 스님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참고로 상좌부불교의 승려는 277개의 계율을 지켜야 한다. 마을 주민들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유지하며 검소한 삶을 살고 다른 이들을 돕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조금 많이 생산했다면 남는 물품은 가게 매대 위에 올려두고 적정한 가격을 매겨 놓는다. 이를 통해 약간의 수입을 얻는다. 시사 아소케 공동체의 기본 수입의 원천은 유기농 비료이며, 이는 태국 전역의 소매점을 통해 가장 잘 팔리는 물품이다.
5. 아소케 공동체의 학교
시사 아소케 공동체는 이곳의 아이들을 위해 처음에는 일요학교만을 운영했고, 198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철학에 맞는 학교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아소케 공동체가 중앙정부 교육에 대해 발견한 중요한 사실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정부의 학교 시스템은 마을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2) 외부인들이 만든 교육시스템은 명석한 학생들을 해당 지역에서 ‘훔쳐’ 다른 지역을 위해 일하도록 하고 그 지역에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만 남겨 놓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그 지역은 어떻게 발전하겠는가?
3) 중앙정부로부터 내려오는 교육 커리큘럼은 모두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꿈꾸게 하고 매우 피상적인 교육 방법을 가지고 있다. 실제적으로 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경쟁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게 하면서 윤리와 도덕에 대한 교육은 부족하다.
4) 학생들은 공동체 밖 학교를 다녀오면 태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자녀가 그런 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위해 일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들은 자녀를 그 학교에 보내기 위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때로는 빚을 지기도 한다. 물질주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노예가 된다.
아소케 학교에서는 새벽 4시에 하루가 시작된다. 이 시간에 학생들은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1시간 동안 공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교 공부를 한다. 학생들의 교육시간 중 40%는 교과수업과 종교적 수행을 위해 할애되고, 35%는 그들의 선호도에 맞게 ‘행함으로 배우기’라는 체험학습을 위해 사용하며, 나머지 25%는 과학과 기술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다. 아소케 교육 시스템의 성공은 1991, 1994, 1995, 1997년에 아소카 직업학교가 최고의 직업학교 상을 받았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2004년에는 최고의 불교 학교로 선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가장 잘한 최고의 학교로 선정되었다. 이 모든 상은 시사 아소케 공동체가 수행을 잘 실천하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아소케 학생들은 주변 지역사회에서도 리더십을 가진, 창의적이고, 겸손하며 예의 바르고, 마약을 하지 않는 우수한 학생들로 정평이 나 있다. 아소케 학생들의 이런 자질들은 자랑할 만한 것이며, 이는 안타깝게도 현대의 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아소케 공동체에서는 사람들이 건강과 영적 수행을 위해 맨발로 걸어 다닌다(대지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풀로 만든 매트 위에서 자며, 유기농 채소만 먹으며, 구조가 단순한 깨끗한 집에서 산다. 공동체에서 배출한 쓰레기는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다시 4종류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가 다시 쓸 수 있는 것, 두 번째가 수리해서 쓸 수 있는 것, 세 번째가 재활용이 가능한 것, 네 번째가 폐기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일하는 공동체이기에, 노인들이 플라스틱 끈으로 바구니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완성된 제품은 가게에서 파는데, 바구니 가격은 들인 시간을 고려해서 협상이 가능하다. 공동체의 슬로건인 ‘적게 소비하고 많이 일하자’에 따라 식사는 하루에 1~2끼만 한다. 그럼으로써 요리하고 먹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수행하고 남을 돕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6. 건강관리
아소케 주민들에게 건강이란 몸과 마음의 균형 잡힌 관계이다. 공동체는 주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건강관리 종합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건강한 마음과 감정 갖기, 정직하고 의미 있는 일하기, 깨끗한 자연환경, 채식, 운동, 병을 치유하기보다는 예방하는 차원에서 독소 제거를 통한 깨끗한 몸 유지하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들어 있다. 공동체 병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지만 병원에 오는 환자는 거의 없다. 아소케 주민들은 육체적으로 열심히 일하여 사람들에게 보시를 실천하고, 그로 인해 복을 지어 정신적으로 행복하다. 이는 결국 자가면역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뜻이다. 복 짓기 수행은 아소케 공동체만 따르는 것이 아닌, 태국 국민들 대다수가 따르는 전통적인 수행이다.
시사 아소케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독소를 제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회원이었던 엔지니어 카엔파 사엔명의 병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였다. 허브를 사용해서 간의 독을 빼는 방법이다. 2013년 9월에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시사 아소케로 찾아온 사람들만 30,000여 명이 넘었다. 태국 전역에 시사 아소케 방법을 따르는 보건소가 20개 이상 세워졌고,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화학적 독소가 들어간 음식인 고기와 지방이 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가르친다. 몸, 발, 얼굴 등에 쌓여 있는 독을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서 자원봉사자들은 무료로 스파와 마사지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내장과 간 속에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것으로 체내에 쌓여 있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해준다. 예방적 차원의 치료법이다. 아팠던 사람들 대부분이 건강이 회복됨을 느끼고 돌아간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 속에서 인간의 따스함, 미소 짓는 아름다운 얼굴, 자기를 내려놓고 하는 봉사의 정신을 경험한다. 이것이 아소케 공동체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시사 아소케는 다른 아소케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매년 11월에 아소케 스님들을 위하여 지정된 장소에서 ‘마하 파와라나’라는 큰 회합을 개최한다. 이때 상정되는 주제는 마을 공동체 주민들의 삶과 연관된 것으로 그해 동안 발생했던 문제들을 함께 논의함으로써 향후에는 그런 점들이 개선되어 그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각각의 아소케 공동체들은 마을을 홍보하는 특별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새해 첫날이나 왕의 생일(12월 5일, 아버지의 날)을 축하하는 기간인 ‘아리야’ 동안에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장을 열어 그들이 생산한 쌀과 채소, 세안제 및 허브 약초 등을 이윤을 남기지 않고 판매한다. 채식 식당도 개설하고, 채식으로 된 음식도 무료로 나누어 준다. 데모가 발생하면, 아소케 자원봉사자들은 참여자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준다. 이렇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이유는 외부 사람들에게 채식 식단을 경험하게 하고 권유함으로써,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간접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주는 것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아소케 공동체의 핵심 가르침이며, 이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종종 전달된다.
시사 아소케 공동체는 불교적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싶은 방문객들을 환영한다. 다만 그들이 오계를 지킬 것을 동의하고 채식을 한다는 조건에서만 받아들인다. 열심히 일하고 적게 먹는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모든 것은 무료이다. 불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풍요로움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행함으로 배우는’ 장소인 아소케 공동체에 여러분 모두를 환영한다!
7. 결론
물질적 소유를 추구하는 시대에 많은 사람이 ‘문명화’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버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아소케 공동체는 이를 정확히 짚어내어 자본, 욕심, 재물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적어도 태국에서는 이러한 삶의 리더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 시스템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로서 ‘행함으로 배우기’를 추구해야 한다. 농사를 지을 때 우리의 땅과 음식에 화학제품과 독성이 있는 물질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 정신과 책임감이다. 불교적 가치관인 ‘복 짓는 수행’은 아소케 공동체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후세대를 위하여 오늘날 자기 자신을 비우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재산의 유무와 상관없이 아소케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자 한다. 자급자족하며, 진지하게 수행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동하는 것은, 사회 개혁을 논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서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태국 사회가 빠르게 받아들이며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불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경제 시스템을 이루기 위한 핵심 조건은 바른 행동과 바른 교육을 실현시키는 윤리와 도덕이다. 그렇게 한다면, 환경을 살리는 녹색 산업은 가능해진다. 모든 이가 방법은 다 알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결국 그것을 자신의 삶 일부로 받아들여 끝까지 실천하겠다는 결심이다.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법은 말로써 믿는 것이 아니다.
법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감으로써 믿는 것이다. ■
피쿨 와니차피차트(Pikul Wanichapichart) / 태국 송클라 국제불교대 집행위원. 1975년 태국 출라롱콘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1985년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대학에서 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부터 2012년까지 태국 송클라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산티 아소케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김민희 / 이화여대 불문학과,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졸업(석사). 조계종 포교원 발행 Hello Dharma School 편찬위원, 지엘통번역센터 번역연구원으로 일했다. 조계종 교육원 발행 영문잡지 제작과 국제학술회의 번역 등에 참여하고 있다.
첫댓글 스님이 저런 공동체 만들어주시면 머슴처럼 일하겠습니다 ㅎ 단순한 육체노동 좋아해요.
저 자랑이긴 한데요 2008년도에 u.k.하이랜드에 있는 핀드혼 공동체도 다녀왔어요. 2박3일밖에 못있어서 수박 겉핥기로 구경했지만요. 밥먹을때 말안해도 되는
silence table 이 그곳에도 있어서 사진 찍었죠.
누구나 이용할수 있는 원형 명상실.
그곳 회의실도 원형이었는데 커뮤니티의 일은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고 의견수렴이 안되면 다같이 명상 후에 또 회의한다고 들은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