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同族)인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예레미야의 마음은 무척이나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돌이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고 여전히 죄악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다 백성의 모습을 보는 예레미야의 마음은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15절)라고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빨리 돌이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라고 촉구합니다(16절). 동족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예고에도 돌이키지 않아 결국 멸망하게 되면 예레미야는 너무 마음이 아파 은밀한 곳에서 울며 통곡하게 될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17절).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에게 그들의 왕과 왕후에게 가서 그들의 영광이 곧 사라지고 말 테니 스스로 낮추어 겸손하라고 전하라는 부탁을 합니다(18절). 네겝도 점령당하여 아무도 그들을 건져낼 수 없을 것이고, 유다가 모두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9절). 네겝(הַנֶּגֶב, Negev)은 “건조한 땅”이라는 의미로 유다의 남쪽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종종 남방(南方)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지역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했는데, 이젠 유다의 예루살렘과 그 남쪽의 모든 지역까지 모두 송두리째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21절의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약간 애매할 수 있는데, 공동번역 성경은 “너희가 손수 길들인 애인들을 너희의 상전으로 세워줄 터이다”라고 번역했고, 새번역 성경은 “네가 손수 기른 자들이 너를 공격하고 지배하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너의 친구 삼았던 자는 바벨론 제국의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해석합니다.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나 요시아 왕 등의 시대에 바벨론과 우호 관계를 맺고 애굽(이집트)과 앗수르 등을 견제했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한때 친구처럼 지낸 바벨론의 왕들이 유다 왕국을 침공하여 자기의 수하(手下)에 놓게 될 처지에 대한 예언으로 봅니다. 유다 왕국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했는데, 하나님보다는 주변의 강대국들을 의지했고, 하나님보다는 우상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 왕국이 마치 산고(産苦)를 겪는 여인처럼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이런 일들을 당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라고 한탄하겠지만, 유다 백성이 지은 죄악이 너무 크기에 큰 수치를 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斷言)합니다(22절). 치마가 들린다는 표현(22절, 26절)은 마치 여인이 자기의 몸을 유린(蹂躪)당하는 것처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발꿈치가 상한다는 표현(22절)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상해(傷害)를 입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 당시 적국(敵國)의 병사나 포로를 사로잡으면 그 발꿈치를 잘라내어 제대로 걷지 못하게 하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22절부터 26절까지 유다 백성이 겪게 될 고통을 예고하면서, 유다 백성이 죄악에서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다고 진단합니다. 마치 구스인(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의 검은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듯이 유다 백성의 죄악이 너무 깊어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씀합니다(23절). 만약 구스인들의 피부를, 표범의 반점을 바꿀 수 있다면 유다 백성도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유다 백성이 돌이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유다 백성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죄악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25절).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 백성이 받게 될 분깃(몫)이라고 말씀합니다(25절).
하나님은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라고 탄식하십니다(27절). 돌이키지 않고 완악한 모습, 고집불통의 모습으로 죄악에 찌들어 있는 유다 백성에 대한 탄식입니다. 도저히 돌이키기 힘든 상태까지 치달은 유다 백성에 대한 탄식입니다. 아마 그때라도 유다 백성이 제대로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멈추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에게는 그러한 기미(幾微)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백성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예레미야의 마음도 모두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죄악이 고착(固着)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죄가 습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죄악이 내 삶에 고착되고, 습관이 되면 그 죄악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역사(役事)하실 때에만 그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죄악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도 죄악보다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내 삶의 터전에서 내 욕심을 내려놓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께 구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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