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남 장소: 사당역 7번 출구 나와서, <사당 만남의 공원>
2. 원각사( 관악구 남현동 소재 작은 사찰)의 臥佛(누워있는 부처)
3. 미당(未堂) 서정주 (徐廷柱:1915~2000, 시인)의 집 [2층 집]
*"한국 시(詩)의 대통령", 심지어 "한국 문학의 대통령"으로까지 일컬어졌던 미당(未堂)의 창작 산실로, 관악구 남현동 "사당 초등학교" 뒷편 주택가에 위치한 2층집이다.
*이 집의 원래 이름은 "봉산산방(蓬蒜山房)", 곰이 쑥(蓬) 과 마늘(蒜)을 먹고 웅녀(熊女)가 되었다는 단군 신화에서 따온 것으로,시인이 직접 지었다.
*이 곳에서 <국화 옆에서>,<질마재 神話>(이상 1975),<떠돌이의 詩>(1976),<팔할이 바람>(1988), <山詩>(1991)같은 주옥같은 시집이 탄생하였다.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는 2001년 개관한 "미당 시 문학관"이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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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1915~2000) 시인은 위 집에서 1970~2000년 작고(作故)할 때까지 거주하였고, 관악구청이 위 집을 매입하여, 동국대학교가 보관한 유품 20,000 여점 가운데 가방,여권,지팡이등 60여점을 갖추어, 사후(死後) 10년만인 2011년 <미당 서정주의 집>을 개관하였다.
*2000년 10월, 63년을 해로(偕老:부부가 일생을 함께 지내며 늙어 감)한 아내(방옥숙)가 작고(作故)하고, 2개월 후인 2000.12.24 눈이 많이 내린 성탄 전야에 미당(未堂)도 이승을 하직하였다.
4.까치산 산책로
*<까치산>: 서울 동작구 사당동 위치, 해발 120m의 동네 뒷 산으로, 대로변을 사이로, 건너편 관악구 남현동의 <관악산>(해발 629m) 기슭과 생태다리로 연결됨
5.서울 시립 남서울 미술관 <---前身:벨기에 영사관
6.조각가 권진규(1922~1973)
사람들은 권진규를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부른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미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조각가 권진규. 비록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계를 묵묵히 걸어간 예술가로 평가 받는다.
2021년 유족들이 50년간 지켜 온 권진규 작품 141점을 서울 시립 미술관에 기증한 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 최근에야 문을 열었다. 그 곳이 바로 서울 관악구 남현동 소재 서울 시립 남서울 미술관 1층의 <권진규의 영원한 집>!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의 외삼촌 권진규>가 아래와 같이 2023년 연말까지 진행된다.
--1,3 주 목요일 오후 2시 --->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2,4 주 목요일 오후 2시 ---> 허경회 박사(권진규 기념 사업회 대표)
http://www.jinkyu.org
*위는 <권진규 사이버 미술관:권진규 기념 사업회> 홈피임
*권진규와 조각 작품:<제자의 얼굴> <---출처:권진규 기념 사업회
7. 권진규의 죽음(자살)에 대하여 <-----<오 마이 뉴스>(2019.11.14):황정수 기자
*아래는 황정수 기자가 작성한 <33년 만에 밝혀진 천재 조각가 죽음의 진실>의 일부를 소개한 것임. ▲ 박혜일에게 남긴 유서 ⓒ 황정수
권진규의 굴곡이 많았던 삶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은 그가 죽음(자살)을 맞이한 순간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세 점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들어가게 되자 매우 즐거워한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치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천천히 전시장을 둘러본 후 자신의 동선동 아틀리에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대에 목을 매 세상을 떠나는 비극적 순간을 연출한다.
그는 죽음의 거사를 실행에 옮기기 전 가까웠던 두 사람에게 유서를 남긴다. 유서를 받은 두 사람은, 말년에 가까이 지낸 서울대 박혜일 (교수: 핵물리학 전공 , 권진규 작품 2점을 구매함--인용자) 과 대학 강사 시절(수도여사대,현재 세종대 학부생---인용자) 제자였다.
그가 남긴 유서는 그의 특별한 죽음만큼 파격적이라 많은 화제가 되었다. 박혜일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혜일 선생 감사합니다. 최후에 만난 우인들 중에서 가장 희망적인 분이었습니다.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 오후 6시 거사"
그동안 미술사에서는 대체로 권진규의 자살 원인을 우리 조각 미술계에 내재해 있는 차별과 그에 절망한 권진규의 좌절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특히 당시 한국 조각 미술계에 만연한 교수 자리를 둘러싼 암투, 기념물과 같은 대형 조각물을 일부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실망감에서 죽음의 원인을 찾았다. 당시 국내 조각계의 풍토에 실망한 권진규의 좌절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6년 연인 같았던 제자가 소장하고 있던 편지들과 작품이 권진규가 세상을 떠난 지 33년 만에 한 미술품 경매회사에 출품되며, 죽음의 이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당시 제자는 권진규가 출강하기 시작한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학생이었다. 제자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정인이 있었으나, 제자를 향한 권진규의 사랑의 불꽃은 거침이 없었다.
공개한 편지 속에는 나이와 현실을 뛰어넘은 권진규의 애틋한 사랑의 행보가 잘 드러나 있다. 편지의 내용은 사랑하는 제자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고, 때론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였다. 특히 마지막 편지에는 박혜일의 유서에 있는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이다. 거사 오후 6시"라는 구절이 그대로 나온다. 이로 보아 그의 죽음은 즉흥적인 판단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권진규라는 위대한 예술가가 당시 조각계의 현실이라는 사회적 문제 때문에 자살했다고 알려져 왔다. 조금은 건조한 이유였다. 그런데 예술 작품을 이루는 모티브의 생명과 같은 '사랑' 때문에 생을 마감했다는 흔적들을 보며, 한 위대한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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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가 1/서울사람/시간있는 분,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바랍니다.
저희동네 입니다
참석 하겠습니다! ...♡♡♡
참석합니다 ^^ 감사합니다 😊🌸
명찰 없습니다 구매합니다
저는 오전엔 시간이 안되어
오후 2시 남서울미술관만
참석을 합니다.
당일 오후 2시 정각, 서울 시립 남서울미술관 1층 복도에서 고려대 허명회 명예 교수
(권진규 조카)가 직접 안내,해설을 시작,오후 3시경 종료하니,시작 5분전
까지 해당 장소로 모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울사람
네..알겠습니다
시간에 맞춰서 참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석합니다
참석합니다.
참석할게요/이쟈벨/감사합니다
동참해봅니다~
참석합니다
참가합니다
참석합니다~
참석 합니다.
참석합니다
참석합니다
참석희망자[현재 14명]
:서울사람/안개초/노올(명찰1)/미소와사랑/유수/다올/이쟈벨/난타/휘경/팽이/아란/그린비/쥴리아/라라.
오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