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 숲길
눈빛 흐려지기 전에
그냥 숲으로 들어 고요해지고 싶은 날이 있다
도시라는 먼지가 이끼처럼 자라고
푸른 권태가 어슬렁대는,
어정쩡한 삶의 중심을 놓고 가면,
나를 받아주겠나 망설이면서도
들어서는 미울 같은 거기
그냥 숲으로 들어 침잠해지고 싶은 날이 있다
―― 허림, 「거기에」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2월 10일(토), 오전에는 가루눈, 오후에는 갬, 미세먼지
▶ 산행인원 : 14명
▶ 산행거리 : 도상 14.3km(1부 4.5km, 2부 9.8km)
▶ 산행시간 : 8시간 30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7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50 - 부목재(扶牧-), 산행시작
09 : 28 - 801.0m봉
10 : 04 - △765.2m봉
10 : 19 - 안부
11 : 05 - 임도
11 : 34 - 444번 도로, 1부 산행종료, 노천저수지 위 406번 도로 옆에서 점심
12 : 34 - 공작현, 2부 산행시작
13 : 12 - 742m봉
13 : 28 - ╋자 갈림길 안부
13 : 46 - 835m봉, ┫자 갈림길
14 : 00 - 공작산(孔雀山, △887.4m)
14 : 40 - 안공작재
15 : 05 - 공작산 북서릉 진입
15 : 38 - 645m봉, Y자 능선 분기, 왼쪽으로 감
16 : 12 - 491.1m봉
16 : 38 - 455.3m봉,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으로 감
17 : 20 - 노내골 노내교, 산행종료
17 : 36 ~ 19 : 40 - 홍천, 목욕, 저녁
20 : 4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영진지도, 축척 1/50,000 확대)
▶ 공작산 동릉 801.0m봉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된 이래 주말에 홍천을 가는 데 오늘처럼 교통흐름이 막히지 않는
것은 퍽 드문 일이다. 스키시즌에 전 세계 스포츠인의 겨울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이 이제 막
시작되어 길바닥에다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 붓지나 않을까 한 걱정은 기우였다. 가평휴게소
도 한산하다. 휴게소 커피 뽑아 선잠 쫓는다.
부목재 고도 599.1m. 준령이다. 그런데 부목재가 무슨 뜻일까? 그 지명유래는 어떠한가?
‘부목’은 한자말일진대 그 한자표기는 무엇일까? 負木(절에서 땔나무를 하여 들이는 사람.
불목지기), 浮木(물 위에 떠 있는 나무), 副木(덧대), 腐木(썩은 나무) 중 하나일까? 한나절
이나 서책, 신문,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지명유래는 고사하고 한자표
기도 발견하지 못했다.
홍천군에 전화민원을 넣었다. 공작산과 대학산 사이에 위치한 부목재의 지명유래와 그 한자
표기는 어떠한지 물었다. 즉답하기는 어려우니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지명유래는 군청 내 아는 사람이나 관련 자료가 없어 모르겠고, 한자표기
는 홍천군지에 ‘扶牧(도울 부, 칠 목)’으로 나와 있는데 그 의미 또한 모르겠다고 한다.
부목재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대학산은 산허리 도는 임도를 따라가면 되는데 왼쪽의 공작산
은 오르는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절개지 두른 낙석방지용 철조망을 벗어난 가장자리 생사면
을 치고 오른다. 낙엽 밑은 땡땡 언 빙판이다. 미끄러워 엎어질 듯 고꾸라질 듯 헛발질이 잦
다. 이런 때 눈이 밝은 것은 오히려 죽음이다. 더덕보다 내가 먼저 죽어난다.
얼굴에 언뜻언뜻 찬 기운이 기분 좋게 스치는 건 가루눈이 내려서다. 전도는 그 눈발로 흐릿
하다. 고도 높여 눈길을 간다. ┳자 주능선 갈림길. 금세 801.0m봉이다. 3개 면(화촌면, 서석
면, 동면)의 꼭짓점이다. 오른쪽은 응봉산(868.0m, 지도에 따라서는 매봉산이라고도 한다)
으로 가고 공작산은 왼쪽이다. 일단 입산주 탁주 분음한다. 탁주는 해피 님이 보내온 잘 익은
덕산 명주다.
등로는 제법 눈이 깊다. 우리가 눈길 뚫는다. 완만하게 내리다가 △765.2m봉에서 주춤하고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가파르고 긴 내리막은 설사면 혹은 빙벽이다. 이제는 별 수 없다. 발밑
에서 느끼는 짜릿한 잔재미 마다 하고 아이젠을 맨다. 작년만 해도 땅이 파일까, 바위가 긁힐
까, 나무뿌리가 찍힐까, 아이젠 매기를 주저했었다.
바닥 친 안부. 휴식하여 술추렴한다. 어차피 공작현에서 (두메 님 버스에 배달한) 점심을 먹
기는 글렀다. 공작현까지 도상 5.0km나 남았다. 안주발에 술잔을 거푸 비운다. 아까는 스틸
영 님이 보온병에 따듯하게 담아온 수육이었고, 이번에는 메아리 대장님의 시원한 과메기다.
이러하니 겨울이 우리에게는 비육의 계절이다.
2. 부목재 고갯마루, 오른쪽은 대학산, 왼쪽은 매봉산 또는 공작산으로 간다
3. 등로,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심하다
4. 등로, 거목의 노송을 자주 만난다
5. 공작현까지 가지 못하고 임도에서 방향 틀어 잣나무 숲을 지나 444번 도로로 간다
6. 잣나무 숲
7. 오른쪽 사면은 잣나무 숲이 울창하고 왼쪽 사면은 측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 공작현, 공작산(孔雀山, △887.4m)
얼굴에 맞는 가루눈이 시원한 푹한 날씨다. 683m봉 오르막이 땀난다. 봉봉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임도가 나온다. 능선 마루금 그 절개지는 절벽일 것. 해마 님 예단대로 미
리 오른쪽 사면으로 틀어 내렸으면 수월했을 터인데 바짝 다가가서 내리려니 적잖이 곤욕을
치른다. 임도 따라 왼쪽 산허리를 돌고 돌다 도로 가깝고 경사 느슨한 잣나무 숲을 내린다.
끝 간 데 없이 울창한 잣나무 숲이 일대 장관이다. 부동자세의 무수한 열주를 사열하니 발걸
음이 저절로 우쭐해진다. 우윳빛 빙하로 변한 덕치천(德峙川) 위 444번 지방도로에 내려서
고 두메 님 버스 부른다. 금방 달려온다. 공작현으로 향한다. 점심자리 펴기에 좋을 장소를
찾다가 공작산저수지 위쪽의 임도 갈림길을 골랐다.
버스로 바람 막고(아무리 살살 불어도 칼바람이다) 둘러앉는다. 여기서 우리가 점심을 먹은
건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공작현에는 산불감시원 초소가 있고 연만한 감시원은 근
무 중이었다. 혹시 라이터 등 화기가 있으면 자기에게 맡겨두라고 다그치는 판이니 공작현이
양지바른 너른 공터이지만 이 맛있는 라면을 어찌 삶을 것이며, 커피인들 끓일 수 있겠는가.
자칫했으면 공작현에서 언 밥 먹다가 이빨 부러질 뻔했다.
공작현도 준령이다. 고도 500m 남짓. 대로인 등로는 능선 마루금 비켜 완만한 왼쪽 사면으
로 났다. 가루눈은 멎었다. 오르막에서는 땀난다. 겉옷을 벗는다. 한 피치 잠깐 올라 주릉이
다. 노송의 위호를 받으며 약간 내렸다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막아놓은 암릉을 오른쪽 사
면으로 돌아 오른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문바위골로 내리는 ┫자 갈림길 지나고부터는 거의 수직으로 가파르다. 갈지자를 하도 자주
그리다보니 현기증이 다 난다. 낙엽은 그 밑이 얼음장이라 피하거나 낙엽 쓸어 확인하고 오
른다. 742m봉이 공작산의 제1의 관문이다. 비지땀 흘려 돌파한다. 수렴에 가린 공작산 연봉
이 보인다. 눈길 미끄럼 타며 한 피치 주르륵 내리면 ╋자 갈림길인 안부다.
정면에 위압적으로 보이는 첨봉은 공작산의 제2관문인 835m봉이다. 곧추 오르고 감히 덤벼
들기 어려운 암벽과 맞닥뜨린다. 오른쪽 가파른 사면에 좁은 테라스로 난 눈길 등로 따라 돌
아간다. 설벽 가로지른 팽팽한 가드레일 밧줄이 안전판이다. 주릉에 올라서면 ┫자 갈림길이
나오고 고정밧줄 달린 외길 암릉이 이어진다.
철망으로 막은 협곡을 지나고 슬랩 오르면 공작산 정상이다. 골짜기가 깊고 기암절벽으로 된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르듯 겹겹이 솟아 있는 모습이 공작새와 같다 하여 공작산이라 한다.
큼지막한 정상 표지석을 새로이 설치했다. 삼각점은 북쪽 건너편 공터에 있다.
청일 21, 1988 재설. 미세먼지로 원경은 물론 근경도 흐릿하다. 그간 오지산행에서 공작산을
몇 번 올랐으나 그때마다 조망이 시원치 않았다.
8. 공작현에서 공작산 가는 등로
9. 낙엽 밑은 빙판이다
10. 공작산 북서릉, 중간 분기봉(645m)에서 왼쪽으로 간다
11. 공작산 정상에서
▶ 공작산 북서릉, 노내골
공작산 북서릉을 어떻게 내릴까? 8년 전이었다. 안개 속 춘설이 분분이 날리던 날이었다. 산
행인원 19명(영희언니, 버들, memory, 벽산, 배대인, 악수, 대간거사, 더산, 모모, 캐이, 주유
천하, 한메, 상고대, 요산자, 동그라미, 해마, 인샬라, 산소리, 메아리)이 오늘과는 거꾸로 북
서릉 암릉을 타고 공작산을 오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때가 바로 어제의 일인 듯 생생하여
설벽을 치고 내리는 일행들의 뒤를 따르지 못하고 나를 포함한 8명은 안공작재로 향한다.
안공작재로 가는 공작산 서릉도 내리기 만만하지 않다. 짜릿하고 아기자기한 세미클라이밍
코스다. 눈 쌓인 암벽을 간신히 트래버스 하고 가파른 바위 슬랩을 기어내리기 반복한다. 북
서릉에 붙을 방법을 찾으려고 연신 오른쪽 설사면을 살핀다. 멀리서는 덤벼볼 만해도 막상
다가가서 보면 아득한 절벽이라 그만 움츠러들고 만다.
주춤주춤하는 사이에 안공작재까지 와버렸다. 북사면 큰골 가는 눈길이 뚫려 있다. 골짜기
너덜이 시작되자 내리 쏟기를 멈추고 사면 치며 돈다. 오랜만에 오지산행에 나와서 힘들어
하던 자연 님과 불문 님은 큰골로 탈출한다. 해마 님이 자기 산행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들과
아름다운 동행한다. 우리 5명은 지능선 세 줄기를 횡단한다. 북쪽 사면은 설원이고 눈 녹은
남쪽 사면은 낙엽이 수북하다.
북쪽 사면의 드넓은 설원을 지쳐 내릴 때는 아주 신이 났다. 크로스컨트리 경주하듯 이리저
리 눈길을 헤치며 막 내달린다. 낙엽을 헤치며 오르는 것이 설원 오르기보다 더 미끄럽고 더
힘들다. 공작산 북서릉 설벽을 내린 안전지대에서 목청 높여 이정표 보내며 우리 오기를 기
다리는 일행과 만난다. 그새 반갑다. 복분자 섞은 탁주로 목추기고 줄지어 간다.
찬바람이 인다. 우리 내닫는 발밑에서 우수수 흩날리는 낙엽이 쾌속선이 지나며 이는 포말
같다. 645m봉은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왼쪽으로 간다. 오늘 산정무한 님은 산행이 되는 날
인지 아니면 예전의 감각을 되찾았는지 시종 나는 듯이 앞서간다. 지난주만 해도 에누리 없
는 장사가 어디 있느냐며 모름지기 산행은 잘라먹는 맛이라고 발맛 다시던 산정무한 님이다.
491.1m봉이 대단한 첨봉이다. 바람에 떠밀려 오른다. 아름드리 적송과 동행한다는 것은 언
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등로를 간다. 봉봉마다 벙커가 지키고 있다. Y자 능선이 분기하
는 455.3m봉에서는 교통호 넘어 앞서간 산정무한 님의 눈길 발자국을 찾아내어 오른쪽으로
간다. 잡목 숲 간벌지대를 조심스레 지나고 산행은 어느덧 파장이다.
야트막한 안부에서 빛 무리 그라데이션의 잣나무 숲을 내린다. 노내골이다. 너른 농로 따라
삼포 지나 군업천을 노내교로 건너고 스틱 접는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오후 5시가 훨씬 넘
었는데 한낮처럼 훤하다.
14. 공작산 정상에서 서쪽 조망
15. 공작산 서릉 797.9m봉
16. 오른쪽 멀리는 대룡산
17. 하산 길의 잣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