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의 문인 구양수(歐陽修)가 말하였던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삼다(三多)는 글쓰기에 관한 명쾌한 지침이다.
구양수의 삼다 이외에 '글을 많이 쓰고는 찢어버려라'라고 한 아국의 시인도 있단다.
좋은 말인 것 같은데... 나한테는 그렇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쓰고, 쓴 것을 자꾸 찢어버리라는 것은 글다듬기일 게다.
난는 이렇게 말한다.
三多하고, 글 쓴 종이를 찢어버릴 시간이 있다면, 그럴 만한 여유 시간이 있다면 먼저 운동화를 신고, 바깥으로 나가 봐, 햇볕 빛나는 세상, 비 내리는 세상에는 온통 글감들이 넘치고 넘치도록 쌨어. 글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 손으로 쓰는 게 아녀. 손보다는 발로 쓰는 거여. 넓은 곳으로 찿아가서 멀리 바라보고, 가까이 들여다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먹고, 여럿이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거여. 일하면서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 진짜로 살아 있는 글이여.'
나는 아무 거나 다다닥 하면서 자판기를 누른다.
이제는 종이에 글 쓰는 것보다는 컴퓨터 자판기를 두들긴다.
길 가다가 생각이 나면 메모지에 두어 단어 긁적이고, 아무 것이나 보고 듣는 것을 메모해 두었다가 집에 돌아온 뒤에 기억을 더듬으면서 자판기를 마구 누른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컴퓨터 검색기로 검색하고, 책을 꺼내서 관련 사항을 읽는 것이다. 본질은 발로 쓰는 것이다.
얼마 전 수필대가라고 자칭하는 분의 글을 읽었다.
해외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현지에 가 본 것인 양 자세히도 글 썼다.
대단한 필력가로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고개를 가우뚱했다. 어떤 한계점을 보았기에.
나는 1949년 1월 생이다. 서해안 갯바람이 야트막한 능선을 넘어오는 곳, 산말랭이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컸기에 세상물정은 잘 모른다. 어린시절 대처에 나가 공부했어도 가난한 학생이라서 이런 저런 경험이 없거나 적었다. 젊은날에도 취직시험에 매달려야 했고,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결혼했고, 딸과 아들이 넷이나 되다보니까 세상 바깥으로는 별로 나가지 못했고, 퇴직한 뒤에는 그참 시골로 내려가서 살았기에 아직도 물정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2018년 1월이 막 시작한 지금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역 부근으로 나가면 대형백화점들이 즐비하고, 상가에는 먹을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외국 농산물. 도대체 어떤 먹을거리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겠고, 그게 무슨 맛과 냄새, 질감인지를 짐작도 못한다. 이런 내가 그 먹을거리에 대해서 글 쓴다면 끄적거릴 수는 있다.그냥 피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얼렁뚱땅으로 글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글맛이 나랴? 그냥 글자로 끄적끄적 대고, 긁적거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무런 맛도 없이 밍밍한 맛을 게다. 물론 내가 60여 년간 책을 읽고 글을 쓰늩 체하니 문장이야 그럴 듯하게 깔끔하게는 쓸 게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런 글맛이 없어. 아무런 지식도 지혜도 없어. 그냥 잡글이여.
내가 사는 잠실 아파트. 아파트 주방 뒷편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높다는 롯데몰 123층 빌딩이 보인다. 높이 555m인 빌딩이 넘어지면 혹시 우리 아파트를 덮칠까 하는 걱정이 생기는 건물이다. 나는 555m 높이에 올라서 땅을 내려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상상은 가능하다. 그 높은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다. 숱하게 지나가는 차량들,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고 싶다. 아쉽게도 나는 자동차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을 글로 그려낼 재간이 없다. 차동차는 장난감 자동차만 할까? 사람은 개미 같을까?
내가 제대로 지식과 정부, 느낌을 알려면, 직접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는 땅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장 정확할 게다. 직접 해 보지 못하기에 나는 생생한 글을 쓸 재간이 없다.
또 하나의 예다.
먹구름이 가뜩 끼고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 천둥 번개가 으르릉거리고 번쩍이는 날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겁이 난다. 천지가 개벽할 것 같아서, 벼락을 맞을까 두려워서. 이런 날 글 쓰면 어떤 느낌의 글일까?
그런데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10km 이상으로 올라가서는 비행기의 유리창으로 바깥을 내려다보면 하늘 한 구석에 구름이 조금 끼어 있고, 어느 한 쪽에서는 불빛이 번쩍이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볼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 10km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100km, 1000km을 넘어서 광활한 우주 끝에서 내려본다면 번갯불이 보이기나 할까? 하나의 점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게다.
책상 위에서 상상으로 그려낸 것들은 허구의 소설, 영상안화 등에서나 가능한 꾸며낸 이야기이다.
구태에 바깥에 나가서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된다. 눈 감고 상상하면 머리에 엉뚱한 착상과 망상들이 떠올릴 수 있기에. 창작이기에.
하지만 산문인 생활글은 창자품이라기보다는 직접 발로 쓰는 글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가장 정확하다. 수필 산문이 사실 그대로를 적는 뉴스, 기사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껏은 주관적이며 창작성을 가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뭇 거짓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흙 파먹는 촌사람이기에 생활에서 얻는 소재로써, 자연적인 글감으로써 글 쓴다.
발로 쓰고, 눈으로 쓰고, 귀로 쓰고, 코로 쓰고, 입으로 쓰고,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부대끼며 살면서 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오감을 넘어, 육감을 넘어서 쓴다.
2.
오후에 잠바를 걸치고는 잠실 석촌호수로 나가 바람이나 쐬자고 아내한테 말했더니만 미용실에 가서 머리손질을 해야 된다며 거절했다.
나 혼자 털모자를 눌러쓰고는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23층이니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무릎이 시원찮으니 다다닥 하면서 빠르게 내려갈 수는 없고, 느리게 게으르게 발을 내밀면서 자꾸만 밑으로 내려갔다. 아마도 5분 정도는 걸리겠다.
석촌호수 서호 쉼터에는 노인네들이 운동기구에 매달려서 느리적거리는 몸을 풀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도 있다.
천천히 걸기 시작했다. 산책로는 빗질해서 깨끗한데도 나무들이 서 있는 터에는 사각형의 작은 종이(3.5cm쯤)가 정말로 많이 흩어져 있었다.
청소 다 했다고 뉴스에 보도하더니만 순 거짓말이네?
하면서 호수 건너편 북쪽 하늘에 높게 서 있는 123층 롯데몰 건물을 보았다.
지난 12월 31일이 막 끝날 무렵, 롯데회사에서는 2018년 새해 맞이한다면서 123층 꼭대기에서 종이조각을 숱하게 공중에 쏘아올려서 화려한 불꽃놀이 행사를 했단다. 하늘에 쏘아올린 흰 종이가 순식간에 공중에 올랐다가 바람에 날리면서 지상 아래로 떨어진 흔적들이다.
서호보다는 동호는 더욱 심했다 온통 사각형의 작은 쓰레기가 곳곳에 떨어져서 쌓이다시피했다.
욕이 나온다. 롯데회사는 어떤 돌대가리들이 이런 구상을 했는지를 모르겠다. 12월 31일 밤중, 1월 1일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쇼를 연출하기 위해서 숱한 종이쓰레기를 공중에 쏘아올린 그 무모한 짓거리가 혐오스러웠다.
그런데도 그 종이 쓰레기를 다 수거한 것인 양 언론에서 기사를 썼다. 별 것 아닌 양.
맞다. 돈 많은 장사꾼의 시각이나, 돈 많은 업자의 눈치를 보는 기레기(기자를 쓰레기처럼 빗댄 뜻이란다)들은 이런 것은 쓰레기기 아닐 게다. 그냥 아무 것도 아닐 게다.
가로 세로 3.5cm즘의 사각형 흰 종이는 동호수 수면 아래에 숱하게 가라앉았을 것이고, 나무들이 들어 있는 구석구석마다 종이를 부어놓은 듯이 덮혀져 있었다. 이런 종이 쓰레기를 일일히 손으로 주워내려면 청소인력이 엄청나게 투입될 거다.
설마하니 롯데 회사가 청소비 내겠어?
송파구청에서 뭐라고 하겠어?
저 123층 건물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기우뚱하면서 일직선으로 쓰러진다면 혹시 내 아파트를 덮칠까를 눈으로 어림짐작했더니만 내 아파트까지는 미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럼 잘 됐다. 오늘 밤이라도 좋으니 한 번 기우뚱 해 봐. 나는 구경 잘 해서 글감이 엄청나게 생길 것인데...
이런 기대를 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다시 서호로 되돌아왔다.
서호 쉼터에서는 노인네들이 아직도 운동기구를 붙잡고 어정쩌정한 몸매로 꼼지락거리면서 바둥댔고, 차가운 돌벤취 위에서는 영감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장기판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장기를 잘 두는 영감은 행동가짐이 느긋한데 비햐여 기력이 딸리는 영감탱이는 손발을 오두방정 떨면서 장기알을 만지작거리고, 두었다가 되물리기를 번번히 했다. 촉살대는 꼬라지가 밉기까지도 했다. 보나마나 공격할 말이 부족해서 비길 것 같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아무도 없었다. 뻔한 결과이며,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는 증거다. 이 추운 날 석촌호수 서호 쉼터로 나와서는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장기 두는 것으로 소일하는 영감들의 행태가 그저 그랬다.
나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에 늘 이방인이여 외톨이었다.
석촌호수를 천천히 돌 때다.
커다란 새인 흰색 거위 네 마리가 눈에 띄었다. 두 마리는 호수물이 얼지 않는 물속에서 천천이 헤엄치고 있었고, 두 마리는 나무벤취에서 쉬는 할매들이 쪽쪽 빨아대는 우유팩에 눈독을 들여서 사람 가까이로 다가왔다. 주황빛깔의 발가락과 다리가 독특했다. 물갈퀴 발로 기우뚱 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왔으며, 꽥꽥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거위 소리를 자세히 들을려고 귀을 기울였다. 어떻게 우리 한글로 나타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우리 글자로 거위가 내지르는 소리를 거의 비슷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분명히 소리는 있는데도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냥 꽤엑꽥이라고 어설프게 표현한다. 한 십 분 가까이나 귀를 기울었어도 내 어두운 귀로는, 내 둔한 손으로는 그 소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발길을 돌렸다.
석촌호수 가생이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밀집되어 있다.
나는 매실나무 가지를 잠깐 들여다 보았다. 키를 낮추려고 톱으로 과감하게 자른 가지에는 작은 곁가지가 움 텄고, 그 가느다란 곁가지에는 꽃눈이 달려 있었다. 추운 겨울철에도 매실나무는 꽃눈을 부풀리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는 이른 봄날에는 모두 꽃을 피루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이름이 레이크 - 팰리스인 잡실4단지 안에도 크고 작은 정원수들이 잔뜩 있다.
나는 양앵두 나무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키를 낮춰서 전정한 양앵두 가지에도 꽃눈은 형성되어 있었다.
키 작은 사철나무, 연산홍의 잎들은 냉해로 퇴색해서 많이도 죽었고, 아직도 잎사귀가 푸는 소나무와 반송은 싱싱했다. 한국의 기온에는 낙엽수롸 상록수로 나누지만 날씨가 더우면 낙엽활엽수도 어쩌면 상록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냉해를 입어서 그렇지 냉해를 입지 않는 곳에서는 활엽수도 사실은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이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내가 눈으로 보는 상식과 지식은 다른 자연환경, 지역, 때에서는 전혀 다르거나 틀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조차도 때로는 달리 봐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 흔한 사물에서도 늘 가르침이 있고, 눈 높이를 낮추면 스스로 배우고 터득할 것이 무진장하다는 것을 또 배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김율환 선생님
대전에서 사는 남금자님?
저는요. 1960년부터..1974년 말부터 1977년까지 대전 중구 은행동에서 만 11년이 넘도록 살았지요.
지난해 늦가을 대전 서구 신도안동 그 부근의 결혼식장에 가는데... 세상에나 천지가 바뀐 것처럼 대전 유성지방의 지리가 생소하대요. 대전 중구의 보문산, 동구의 식장산, 회덕으로 나가는 길목의 계족산 말랭이는 눈이 익었는데도... 이제는 대전에 대해서 이야기 못하지요. 옛기억 속에나 있는 것 이외에는.
남 시인님의 글 자주 읽습니다.
댓글 고맙지요.
남 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지요? 저는요. 최윤환이거든요. 한번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제 탓이지요?
@최윤환 네 시인님
시화전에서 국보 사무실에서
뵈었지요
선생님은 절 기억하실지
모르나 저는 선생님 얼굴을
기억 합니다
글도 다는 아니어도 읽었습니다
일월에 행사때 뷥겠지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쓰고 다듬어야 지요
벌써 댓글 달았어요?
지금도 다다닥하고 초안을 쓰고 있는 중이지요.
글 다듬지도 않은 생짜 초안이지요.
조 선생님을 잘 하실 거예요. 늘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글감을 생각하고, 또 많이 쓰고, 쓴 것을 다듬으려는 마음이 있기에 잘 하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럼요.
글은 무엇보다 내 생생한 눈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직접 경험으로 체득했을 때
더 실감이 나고 감동도 주지요.
남한테 듣거나, 글을 읽은 간접 경험이나
머릿속으로 그리는 상상 경험은 그 만큼
실감이 덜 나고 감동도 작지요.
이런 이런...
저는 지금에서야 겨우 알았는데...
예, 댓글이 무슨 말씀을 더 하시려는지도 짐작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