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더욱 꼬이는 모양새다. 한국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조치에 대한 공조 차원에서 수출 허가 대상 품목을 확대하자, 러시아는 27일 보복 조치를 경고했다. 호혜평등의 외교 관계 원칙에 비춰보면 당연한 러시아측 대응이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 보복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지만, 반드시 대칭적인 성격을 띤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의 이번 조치는 양국간의 실질적인 협력에 해를 끼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녀는 또 "한국의 대러 제재 확대는 미국의 요청에 따른 비우호적인 조치"라면서 그러나 "이는 유감스러운 일이며, 한국측이 '러시아와 건설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한 의도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사진출처:러시아 외무부
자하로바 대변인의 발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칭적인 성격을 띤 것은 아니다. 나중에 놀라지 말라'는 대목이다. 한국의 조치에 버금가는 보복 조치가 아닐 수도, 더 가혹한 조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이달 초 이도훈 신임 주러시아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서 한-러 관계에 대해 "협력 관계를 양국에게 매우 유익한 파트너십의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한 지는 한국 정부에 달려 있다"며 "존경하는 이 대사님, 우리는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크렘린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한 이도훈 주러 한국대사/영상 캡처
뒤이어 주한 러시아 대사로 새로 임명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외교부 제 1 아주국 국장은 지난 18일 대사 자격으로 현지 언론(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과 가진 첫 인터뷰에서 "한국은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했지만, 비우호적인 국가들 중 가장 우호적인 나라 중 하나"라며 "한국이 비우호적인 국가로 전락한 것도 자의가 아니었다라고 느낀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외무부에서 한국과 북한, 중국, 몽골을 담당하는 제 1아주국 부국장(2012∼2016년)과 국장(2018∼2023년)을 지내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을 직접 담당한 고위급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제 1아주국 국장과 주한 대사 자격으로 각각 가진 그의 인터뷰 내용들은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을 짐작해보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는 지난 9월 초 동방경제포럼에서 외무부 제 1아주국 국장 자격으로 관영 타스 통신과 회견을 가진 바 있다.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 대사의 타스 통신 9월 회견 기사/웹페이지 캡처
다음은 코메르산트 18일자 인터뷰 내용이다.
Q(질문):
일본은 처음부터 아시아에서 러시아를 '억제하는' 엔진(역할/편집자)을 맡았다면,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반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는 인식이 러시아 언론계에는 퍼져 있다. 같은 느낌인가? 이상론인가?
A(지노비예프 신임 대사 답변):
같은 느낌이다. 한국은 한-러 양국의 우호관계 발전의 논리에 어긋난,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로 전락했지만, 자기 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수교 이후 30여년간 모스크바와 서울 사이에는 어떠한 정치적 문제나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국민의 상호 관심과 공감대 위에서 (다행히 최신 정치적 대격변의 영향도 받지 않음) 역동적으로 발전해 왔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균형있고 건설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으며, 이견 해소를 위해 한국 등 관련 당사국과 상호 수용 가능한 정치적, 외교적 방법을 찾는 데 협력해왔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의 하나로서 2022년 2월, 3월 금융 및 수출 분야에서 대러 제재 조치를 최소한으로 제한했으나, (러시아로부터) 대칭적인 보복 조치를 불렀다. 안타깝게도 그 후, 양국관계가 경제 분야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역학 과정이 만들어졌다. 새해에는 더 나은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며,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한국과 관계를 구축할 때, 흑백논리를 고수하지 않고 묘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을 '비우호적인' 국가 중 가장 우호적인 나라의 하나로 여긴다. 우리는 한국이 양국 관계의 급격한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서방의 제재가 한-러 협력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현 국제 정세에 대한 평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과의 협력 잠재력을 유지하면서 보다 나은 외부 여건에서는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제반 상황을 조성하기로 했다. 동시에,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공급을 자제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이 시작되면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할 것이다.
Q: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러시아를 방문한 뒤, 한국과 서방은 북-러 양국이 불법 무기 거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포탄 100만 발을 받았다고 했다.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러시아 대사/사진출처:러시아 외무부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대사의 코메르산트 회견/웹페이지 캡처
A: 북-러 간의 불법적인 군사기술 협력에 대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비난은 공허하고, 근거도 없다. 서방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그럴싸하게' 만들어졌다. (북한에 대한 제재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제 1718 위원회를 포함해 유엔에는 이 문제를 감시하는 메커니즘이 있는데, 그 어디에서도 이와 관련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 제기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잘 알려진 대북 안보리 결의안을 포함해 국제적 의무를 책임감 있게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는 평양과의 전통적인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Q: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치명적인 무기를 보내는 문제를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미국 측이 의도적으로 '모스크바가 북한에 일부 민감한 군사기술을 이전했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한국이 향후 키예프(키이우)에 무기를 보내기로 결정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A: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기술 이전 추측이 미국 측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버전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접근 방식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키예프에 직간접적으로 무기와 군사 장비를 제공하는 성급한 결정에 대해 경고한다. 우리는 '키예프에 치명적인 무기 공급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한국 측 발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에 대한 한국의 군사 지원 접근 방식이 앞으로도 변함없기를 바란다. 더욱이, 내가 아는 한, 한국은 법적으로 분쟁 지역에 치명적인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의 한국 파트너들이 전장에서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가하려는 서방과 워싱턴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러시아의 항복 - 영토 점령, 배상금 지급, 특정 범죄의 단죄 '재판소' 설치 등을 상정하는 소위 '젤렌스키 평화안'의 실현을 희망하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나의 외교 경험에 따르면, 극동 이웃 국가들은 주로 냉철한 실용주의자들이지,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고, 자신과 타인들의 환상과 이념의 세계에 살고 있는 눈 먼 교조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특수 군사 작전'이 끝난 후, 어떻게 할 지 미리 계획하고 러시아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옛날부터 그래왔던 것 처럼, 러시아를 우호적인 이웃으로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Q: 2022년 2월까지 한-러 무역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 중 하나는 한국 자동차 산업 제품이었다. 한국 자동차는 러시아 시장에서 가전제품과 마찬가지로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실상 퇴출되고 있다.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과 양국 교역 전반에서 남은 비중은 현재 얼마나 되나?
A: 한국의 대러 제재 참여는 양국 경제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양국간 무역액은 305억 달러라는 최대 기록을 달성했다. 올해는 2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적어도 서울은 여전히 러시아의 주요한 무역 및 경제 파트너다.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산 자동차와 가전제품들은 유망한 러시아 시장을 스스로 떠났다.
비어 있는 시장에서 중국 경쟁업체들이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1위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수십년간 쏟아부은 한국 기업의 노력은, 서방의 기회주의적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의해 희생됐다. 하지만 상황이 그다지 슬퍼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한국 기업들이 공식적으로 러시아 철수를 발표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마련할 방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우리는 (한국 기업들의) 시장 복귀를 환영하고 이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
Q: 지난 12월, 10년 만에 속초~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을 운항하는 페리호(오리엔탈펄 6호/편집자)가 운항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2번 운항한다. 이는 지속적인 관광 교류와 무역에 대한 양국의 관심을 보여준다. 앞으로 몇 달 안에 항공 직항편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할만 하냐?
A: 해상운송 부문에서 한국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해상 운송 노선이한국 측이 유류비및 지상 서비스 비용 지불과 러시아 은행의 SWIFT 시스템 배제, 운항 보험 문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지난 2022년 운항을 중단한 정기 항공 직항편을 제대로 대체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아주 큰 시베리아 항로 이용도 거부했다.
러시아 항공사들은 1년 넘게 한국의 항공 당국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과 유즈노사할린스크, 이르쿠츠크에서 (서울로 가는) 지역 항공편 운항 허가를 얻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현재의 상황 논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왜 해상 운송은 가능한데, 항공 운송은 불가능한지. 이 문제 해결의 진전을 이룩하는 게 나의 새 자리(주한 대사/편집자)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본다. 그 해결은 한-러 비자 면제 체제와 크게 연관된 양국 간 인적 교류에 대한 인위적인 장벽을 제거할 것이다. 한국 파트너의 건설적인 접근을 기대한다.
Q: 몇 년 전 러시아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붐이 일었다. 양국 간의 인문 분야는 현재 어떠하냐?
A: 문화-인문 분야는 학계, 학생 및 청소년 교류와 함께 제재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받는 분야로 남아 있다. 문화 프로젝트의 상호 교류및 협력이 이뤄진 2020~2021년 '러시아 시즌'(러시아의 해/편집자)를 통해 추진력을 얻은 과학과 예술, 교육 등 문화-인문 분야의 협력및 발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에는 한국도 공감했다.
러시아에서는 한국 문화원이 운영되고, 한국에서는 우호적인 러시아 NGO 단체들이 계속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양국 정상들이 합의한 '한러 대화'와 같은 민간 차원의 중요한 교류 메커니즘도 작동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세미나와 콘퍼런스도 개최되고 있다. 올해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지난 11월 화상회의 형식으로 개최된 제10차 한-러 주요 대학 총장 포럼이었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0차 한-러 인문 포럼 '우정의 다리'에는 미하일 슈비드코이 대통령 국제문화협력 특별대표가 참석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문화-인문 분야는 한-러 관계 전반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며, 양국 국민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고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