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영선생님 들려주는 장성 태백이야기
장환영선생님은 장성에서 장성초등학교, 태백중학교, 황지고등학교에 나왔어요.
장성초등학교 1938년에 개교했어요. 23회인가 24회예요.
태백에서 공무원 생활 35년을 하셨습니다. 내년에 퇴직을 앞두고 있어요.
부모님이 하신 일은
장성 시내에서 양품점은 어머니가 하셨어요.
위에 예배당고개 위에서 아버지가전파사를 했어요.
예배당고개 아직도 그 집이 있어요.
길쭉한 집 파란색 나는 집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전파사는 레코드가게, 전축하고 하다가 안 되어서 양품점을 했어요.
양품점은 기성품 팔았어요.
제가 60년대 태어났으니 7,80년대에는 초중학교 때 장사가 잘되었죠.
어머니가 서울에서 남대문 가서 가져왔어요.
어머니는 남대문가실 때 황지에서 기차 타고 갔어요.
집 안에 사진찍는 분이 계셨어요.
그 당시 칼라사진을 찍어서 일본에 인화를 맡기기도 하셨죠.
집에서 찾아보면 사진이 많을 거예요.
어머니는 황지에 계세요. 서예동호회에 다니세요.
머리하얗고 최정향... 84세 청솔아파트에 사세요.
살던 집은 화광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사택단지에 살았어요.
그 때 단지를 일본식으로 정목(丁目)이라 불렀죠.
장성시내 추억담
조흥은행이 있어요.
황지는 은행이 없었는데 석공이 있으니
돈이 왔다갔다 하니 월급날 돈을 줘야 하니깐 은행이 있어야 하잖아요.
경찰서도 있고 그랬죠. 경찰서가 작았죠.
지금은 4층이고, 망루가 있죠.
하장성, 365세으프 타운 넘어가면 돌구지고,
옛날 학생들이 버스 없으니 동점아이들이 넘어왔죠.
철암동점아이들이 싸웠죠. 다 걸어다녔죠.
저도 화광동에서 걸어다녔죠, 자전거도 타고 다니고..
걸어 다니면 아침에 학생들이 많았어요.
중학교 1학년 9반까지 있었어요. 67명 70명..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았죠.
여학생이 앞에 가면 마음이 두근두근
뒤에서 다리가 풀려서 긴장되어 걷지를 못했어요.
협심동 출렁다리였어요.
울렁울렁 남학생이 여학생 오면 다리를 흔들고
여학생들은 다리 붙잡고..
협심다리 식육점 주인은 바뀌었죠.
장성에 영화관은 한 개로 석탄회관, 유정웨딩홀
옛날에는 영화관이었죠.
철암 1개, 황지에 2개 있었죠.
80년대에는 황지가 부자였죠.
영화관에 가면 영사기잖아요.
필름을 끊어요. 쓰레기가 있어요.
환등기처럼, 전구 놓고 렌즈 놓으면 보고 있어요.
옛날 영화에 야한 장면이 있어요. 한 컷보고 좋아했어요.
키스신 한 장면 주워서 봤어요.
쓰레기 뒤져서 버려진 필름 찾고 저녁에 모여서 환등기 만들어서 봐요.
상상하죠. 그 나이에 혈기왕성해요.
장성이 더 컸어요. 그 다음에 철암, 철암은 번화가였어요.
철암역 앞에 네온 싸인 있고 대단했어요.
1980년 이후 태백시
태백사진첩 시청(1980년 이후)안에 정기복 사진사가 다 찍은 거예요.
그 분은 퇴직하고 태백에 사세요.
1988년에는 태백시인구가 14만이었어요.
동장이 지금은 8명이었지만 그때는 16명이었어요.
풍물시장 화장실 돈내고 다녔어요.
지키는 분이 계셨어요.
철거할 때 시청 공무원들 고생했어요.
만들 때도 반발, 없앨때도 반발... 보상하라고 했어요.
시에서 상인들 도로 가 장사한 것을 집단화했는데
재 위험 있어 떠나라 하니깐 보상해달라 했죠.
여기는 무상으로 해준거죠, 영업권 달라고 했죠. 이주할 영업권 비용을 줬죠,
황지시내 농협 앞에 지금은 미림인데 사진관이었죠.
광부로 8개월
광업소에 근무했어요.
탄광사고가 나면 거의 다 가스 질식이에요.
사람들이 다 쓰러줘요. 채광에서 일했죠.
8개월 하고 죽는 거보고 안했죠.
광업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친구들 돈 버는 게 부러워서 했죠.
놀면 뭐하니 석공에서 일했던 거죠.
옛날에 철암저탄장에서 근무했죠. 선탄과 품질 검사하는데 였죠.
예전에는 석탄공사에 서울대 자원공학과, 한양대에서 와서 일했죠.
옛날에는 공기업 중에서는 최고였죠. 돈 많이 주니 엘리트들이 많았어요.
화전에 광업소들이 많았어요. 술집이 많았어요. 석탄합리화사업하면서 안산으로 많이 이주했죠. 공단이 있었으니깐
문곡 역 앞에 저탄장이 있었죠. 황지에서 나온 탄을 문곡역에 실어서 옮겨갔죠.
시청에 일할 적에
저는 86년부터 공무원 생활했어요.
고려의원 자리가 옛날 시청자리예요.
지금은 들어가라 하면 시청건물 못들어가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장비가 많잖아요. 복사기, 컴퓨터..
여기서 공무원 생활을 했어요. 35년 했어요.
복사기 없어서 가래방 긁어서 지하실에 가서 하고 나면 잉크 다 묻어요.
등사했던거죠. 옛날에 선생님들이 많이 했었죠.
글씨 잘 쓰는 분들은 먹지에다가 펜으로 썼죠. 못 쓰는 사람들이 타이핑했죠.
옛날에 시청도로 앞에 다방이 많았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업자들이 와 갔고 과에다가 커피 10잔, 20잔씩 시켜요.
다방아가씨들이 보자기 싸서 왔어요.
과장님들이 엉덩이 만지고 그랬 던 거죠.
미투 그런 거 그때는 없었죠.
책상에서 담배피고, 여직원들은 얼마나 곤욕스러워요.
겨울 되면 문 닫았죠. 얼마나... 힘들었을까
10월 10일 장환영선생님 들려주는 장성 태백이야기.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