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찬양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자신에게 있었던 구원과 은총의 사건들을 노래합니다. 5절에 보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이 시인에게는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고통을 준 자들 중에는 고관들도 있었고 뭇나라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10~12절에 의하면 이 시인을 에워싸고 덤벼들었습니다. 또한 13절에 보면 시인을 밀쳐 넘어뜨리려 했습니다. 이 시인의 대적들이 가진 모토는그를 끊어버리자, 그를 죽게 하자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인을 도울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왜? 6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이 되심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모하는 자와 당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의 편이 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붙들자 응답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답답한 곳에 있었는데 넓은 곳에 세우시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역사하시자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 보응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이 끊쳐졌습니다. 12절에 의하면 가시덤불의 불 같이 다 없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였기에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당신의 오른 손을 높이 드시어 구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두 번째 구원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17절에 보면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 시인은 아주 중한 질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자신의 죄 때문에 온 병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도리어 살아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선포하겠노라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응답이 되었습니다. 21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라고 합니다. 구원의 기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세 번째 기적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22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라고 합니다. 전문가인 건축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 시인은 버린 돌이었습니다. 쓸모없는 돌이었습니다. 다윗은 일개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눈에 천한 나사렛 사람이었으나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버린 돌을 들어 머릿돌이 되게 하시니 이보다 인생 역전 드라마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이 시편처럼 인생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바랍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버려진 돌이나 주님이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면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임받는 것을 믿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 복을 누림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