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자신을 인자로 표현하셨나
1960년, 이스라엘 수상인 다비드 벤 구리온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벤 즈비 대통령의 집을 방문했다. 이어 고고학자인 이가엘 야딘 박사는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 했다.
“각하! 저는 지금 우리가 영광스럽게도 1,800년 전의 이스라엘의 마지막 <통치자>께서 직접 쓰셨거나 그것을 받아쓴 것이 분명한 15장의 문서를 발견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야딘 박사는 그 문서를 찍은 슬라이드 필름을 스크린에 비추었다. 갑자기 침묵과 긴장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날 이 소식은 전 세계 신문에 톱 기사로 보도되었다. 그 문서는 위 사진에서 보듯이 그동안 전설로만 전해져오던 “바르 코크바”의 문서였기 때문이었다.
AD115년부터 로마의 압제에 저항하여 이곳저곳에서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났다. 특히 로마 하드리안 황제가 할례를 금지하자 유대인들은 폭발하고 말았다.
AD132년 시므온 바르 코크바는 로마군에 대항할 만큼 거대한 민병대를 조직하여 로마군에 대항했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였으며 지휘관이었다.
하드리안 황제는 로마가 자랑하는 이집트 참전 용사로 구성된 제21 군단을 보내어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했지만 바르 코크바는 삽시간에 로마 군단을 휩쓸어버렸다. 로마군은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드디어 예루살렘은 다시 유대인의 손에 넘어왔으며 희생 제사가 시작되었다. 바르 코크바는 엘리사를 대제사장으로 아카바를 산헤드린 의장으로 임명했다.
가말리엘(행5:34)의 제자였던 아카바는 바르 코크바가 “메시야”임이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정치적인 왕”으로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로마 제21군단이 바르 코크바에게 패배한 이후 하드리안 황제는 상대가 대단한 군사적 천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전력 참모인 쥴리우스 세베루스 장군을 영국에서 불러 유대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명했다.
전략가였던 세베루스 장군은 포위 작전을 통해 바르 코크바에게로 가는 보급로를 차단했다. 보급이 차단되자 바르 코크바는 더는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봉기 3년 만에 반란군은 진압되었고 그의 머리는 하드리안 황제에게 보내졌다.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단 한 번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요17:1~3). 물론 <간접적으로> 자신이 메시야 또는 그리스도임을 밝힌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메시야를 “정치적인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메시야(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메시야(그리스도)라는 단어 대신에 “인자”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는데 4복음서에는 인자라는 단어가 무려 84회나 등장한다. 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로 표현하셨을까? 막14:61~62을 보자.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 어디서 본 듯한 구절이 아닌가? 단7:13을 보자.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하나님)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이로보건데 예수님은, 군중들이 정치적인 왕으로 알고 있는 “메시야”라는 단어보다는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부활의 의미가 있음) 즉 “인자”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