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들 예전에는 군사부일체라는 단어도 있었다라하는데,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다들 아시다시피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몸이다 즉 하나처럼 섬겨야 한다는 것이죠.
이 구절의 주인공은 임금이나 아버지가 아니라 師 즉 '스승' 입니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것 만큼 스승도 존경을 해야한다는 뜻으로써 임금과 아버지와 동렬로서 스승을 가져다 놓은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이 단어 중국고전에는 '없습니다'. 중국사람들이 들으면 그런 족보도 없는 단어가 어디있냐? 라고 아마 반문할 겁니다.
뭐야...... 족보도 없는 단어 영화찍느라고 내가 이 나이에 이 고생한거야???
여기까지 들으면 '뭐야 그럼 중국유학에서는 원래 선생을 호구로 봤다는 거임?'이라고 오해를 하실 수도 있는데 그건 당연히 아닙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 혹은 갑질을 견디는 사례야 구절이나 일화가 많지요. 유명한 것 중의 하나가 사기 유후세가편에나오는 장량과 황석공의 만남이죠. 자기 신발 다리 밑으로 던져버리고는 신겨달라고 하고 가르침을 줄테니 시간안정하고 새벽에 만나러 오라고 해놓고 자기보다 늦게왔다고 두번이나 뺑이치게 만들었어도 참을성 있게 장량이 가르침을 얻어낸 고사는 참.....
황석공의 신발을 신겨주는 장량. 나 같으면 속으로 x발 x발 했을텐데...
즉 군사부일체라는 단어자체는 없는데 스승에 대한 존경은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군사부일체의 원 개념(?)에 해당하는 구절이 있기는 합니다.
소학 명륜편에 보면 '백성은 세 가지에 의하여 사는 것이니, 섬기기를 한결같이 해야 한다. 아버지는 낳아 주시고, 스승은 가르쳐 주시고, 임금은 먹여 주시니....(民生於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라는 구절이 나타나죠. 즉 군사부일체의 어원격인 개념이 있었고 그게 군사부일체라는 단어로 재탄생 된 것이죠.
그럼 이 개념은 한반도에 언제 들어왔을까?
소학이 우리에게 성리학으로 유명한 그 주희에 의해서 편찬되었습니다(뭐 정작 쓴 건 제자인 유자징이었지만 알려진건 주희 ㅜㅜ). 그리고 군사부일체라는 단어가 쓰여져 있는 서책인 추구(抽句 혹은 推句)가 조선시대 것이기 때문에 고려말기에 들어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명륜편에 나오는 구절도 주희의 창작이 아니라 원전은 따로 있습니다.
주희가 성리학을 세웠다고 하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아니라 중국 고금의 학문을 집대성을 한 것이 베이스였습니다. 따라서 소학에 있는 저 구절도 당연히(?) 원전은 따로 있지요.
주희 임마! 내가 쓴 걸로 유명해지니까 기분이 좋더냐!!!
(이 아저씨는 사실 좌씨전이 더 유명하지요 근데 그것도 요즘은 관우때문에 더 유명해진 것 같은....)
그 구절이 나타나는 곳은 춘추 말기의 역사가이자 학자인 좌구명(左丘明)이 편찬한 국어(國語)에 있는 진어(晉語)편 입니다. 좌구명의 국어가 언제부터 들어왔을지에 대해서는 사료가 없어서 확인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성리학이 유입이 되기 이전 고려대부터는 군사부일체의 원래 개념이 들어왔을 거라는 것은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고려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엄격했던건 저 구절 때문이 아니라, 관직진출하고 관직생활이 달려있기 때문이기는 했지만요....... 고려 중기부터 지공거 출신들이 세운 사학이 생겨나서 과거시험을 휩쓸더니, 나중에는 아예 스승이나 선배가 시험관일때 과거를 보는게 일종의 문화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 때가 아니라 다른때 시험봐서 합격하면(?) 뭐 합격해도 기존에 관직에 있는 선배들이 가만 안두었겠죠;;
물론 같은 정파가 아니면 스승이 선배고 동문이고 다 쓸어버리는 특수사례도 있었지만요....
스승이나 동문들? 정파가 다르면 당연히 쳐내야 하는 거 아님?
이방원과 다른 개국공신들 : 응 그래. 곧 너도 뒤따라 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