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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prologue (1)
여느 때의 아침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아니, 최근 들어 이런 무례한 아침은 처음이다. 다미제놀 두 알을 물
과 함께 꿀꺽 삼키고 상쾌하게 술을 깨며 아침을 맞이하는 게 기즈에게는 익숙했기에 밤새도록 숙취가 못 가신 채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건 일주일 치 체력을 한꺼번에 몰아서 쓴 것 같았다. 천문대는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황폐한 마을
처럼 사람들에겐 신음소리와 어지러움만 남았다.
"흐아아암-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기즈는 천문대 소장인 스투코프의 직속 꼬봉답게 그가 해야 했을 서류 처리와 기자회견과 조사 보고 등 모든 것을 떠
맡아야 했다. 물론 아직 연구소 신입인 그한테 그 외의 별다른 중요한 업무가 있겠냐만은 천체 연구를 하러 들어온 곳
에서 사람 상대하는 일만 하다 보니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근무 시간대가 다른 직원들에 비해 정상적인, 아침에 시작
해 오후에 끝나는 식인지라 퇴근 후에 남들이 일하는 밤에 클럽에서 노는 게 낙이었는데 지난 새벽에는 내내 클럽에
간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원래대로라면 숙소에 들어가 꿀맛 같은 잠을 즐겨야 할 것을 비상소집이 떨어진 통에
새벽부터 오전까지 내리 바쁜 상태다. 게다가 클럽에서 어떤 대학생까지 꼬여버렸기 때문에 이래저래 정신 없어 죽겠
는데, 몇몇 동기들은 안쓰럽게 쳐다보긴 했지만 정작 뭘 좀 부탁하려 하자 부리나케 도망가버렸다.
"크크큭, 너도 고생이다 진짜."
"아, 선배."
기즈가 선배로 부르는 사내는 꼬질꼬질한 흰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말이 흰색이지 이미 뭔가를 마시다 멍청하게
몇 번 쏟았는지 누런 빛이 맴도는 상태였다. 머리 상태도 며칠 동안 숙소 근처에도 발 들여보지 않은 것 같았다. 그
꼴을 보면 3주전 파티에서 만났던 훤칠한 모습의 남자라고는 매치가 되질 않았다.
"자 임마. 커피라도 마셔."
"오 감사요."
선배는 기즈가 꺼내놓았던 약통을 집었다. 그도 먹어 본적이 있을테지라고 기즈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보다도 술꾼
기질이 다분한 사람은 기즈가 아는 사람 중에는 이 선배라는 남자와 예전 여자친구밖에 없었다. 기즈도 나름 주량이 된
다는 축에 속했는데 이 둘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어때. 천문대의 밤을 함께 지샌 소감은?"
"이게 천문대의 밤인가요? 인터뷰의 밤이지."
"많이도 시달렸구만. 난 잘 못 봤는데 엄청 많이 왔다며?"
"으아... 숙취도 안 깨서 죽을 맛이에요 진짜. 게다가 그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을 걸 생각하면..."
선배는 그 말을 듣자 공감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비웃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그 클럽 좀 처음에만 즐기고 얼른 끊으라니까 내가 말했잖냐."
"선배가 할 소리에요 그게?"
"푸핫! 하긴 그건 그렇지."
숙직실에 널브러진 프림 커피의 잔해를 벽 구석에 밀어 넣고 선배는 탁상 위에 뛰어올라 앉았다. 그는 다리를 꼬고는
아직 식지않은 커피를 호호 불며 한모금씩 음미했다.
"좀 쉬어. 내내 일했잖아? 들어가서 쪽잠이라도 자던지."
"아, 5시까진 잠이 쏟아질라 그랬는데 해뜨고 7시 되니까 이젠 잠도 안 와요."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기즈 말대로 창문 사이로 햇빛이 비췄다. 짜증나도록 눈부신 햇살이다. 저걸 누군가는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라고 부
르리란 걸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지금껏 회신메일 기다리고 있는거야?"
"도착하면 바로 사진 뽑아서 가져오라잖아요."
"그래놓고서 지는 쉬고있고?"
"쉬지....는 않아요. 아직도 화가 덜 풀리셨는지 커피만 10잔째 들이키고 계세요."
"으익... 그거 중독 아냐?"
"몰랐어요? 박사님 카페인 없으면 죽어요. 혈소판도 갈색일걸요?"
과장이 섞인 말이지만 그가 들어온 지 6개월 동안 본 박사의 모습은 천체망원경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며 분석을 검토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려면 약간의 편법이 필요했으리라. 기즈는 그래도
박사가 마약중독이 아니라 커피중독인게 다행이라고 종종 생각했다.
그렇게 연구에 미쳐있는 박사를 앞에 두고 멋대로 자료를 빼앗아가니 화가 안 날리가 없을 것이다. 중앙정보부 요원
들과 캐서린 감사는 박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외교적 문제라든지 우주항공국 상층부의 명령 등을 들먹이며 자료가
나오자마자 빼앗아 가버렸다. 물론 이번 사태가 이례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천문대에서 천체 관측을 하는 자율권조차
침해하는 거냐며 박사는 노발대발했다. 스투코프 박사는 캐서린 감사와 설전을 벌이더니 결국은 근신 처분을 받아버렸
다. 근신 처분을 받으면, 그는 어떠한 연구 활동도 할 수 없게 된다. 전쟁 후 국가 체재가 개편되면서 모든 과학 기술 분
야가 국가 통제를 받게 되는 통에 생긴 이상한 법이다.
"선배들은 뭐하고 있어요?"
"우리? 우린 다시 하던 일 해야지 뭐."
"선배는 퇴근도 안 해요? 씻기라도 해요 좀."
"아... 잠을 좀 자야 할 것 같긴 한데, 일단 쓰던 논문은 다 써야지."
"하이고 참나. 무슨 논문이 한 일주일 만에 써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그 뭐냐, 드래고닉하르크 령 어디 무인행성도
갔다와야 한다면서요. 쉬엄쉬엄 해요."
"걱정해주는 건 고맙다 야. 근데 이번꺼는 확실히 학술지에 오른다니까?"
"풉, 퍽이나."
선배는 내게 건 낸 커피를 확 빼앗았다.
"시꺼 임마."
"크큭. 아 근데 마시던 커피는 다 마셔야죠~"
"됐어 짜샤. 너한테 이 신성한 커피는 한 방울도 아까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숙직실을 나갔다. 기즈는 그런 선배를 바라보며 한번 웃고는 주머니에서 홀로그램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메일함에는 아직도 답변메일 같은건 오지 않았다. 캐서린에게 듣기로는 검토 후에 오전까지 되돌려 주겠다고
했는데 많이 늦는 것 같다. '우주항공국 놈들이 그렇지 뭐.' 라며 기즈는 혼자 중얼거렸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아랫배에서 배고픈 신호가 왔다.
"샌드위치라도 떼울까..."
― 데카일라드, 12:10 pm.
수도 데카일라드에 위치한 원로원 돔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모던한 느낌의 빌딩숲인 시내 중심
가에서 유달리 눈에 띄었다. 거칠은 느낌의 석조 건물인 돔은, 데카일라드 왕국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1000명의 원로의
원이 모여 국정 회의를 하는 곳이다. 왕정체재가 기반인 데카일라드에서 원로원은 왕가 세력 다음으로 국가 정무의 결
정권에 힘을 가진 조직이었다. 물론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전국이 된 이후에는 유명무실한 권력이 되었지만, 외형상, 그
리고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전쟁 이전의 힘을 유지하는 기관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먼저 거대한 돌기둥 장식을 한 돔 정문에서 검문을 마치고, 내부의 회전문을 또 한번 지나 데스크로 가면 안내원 아
가씨가 이렇게 묻는다.
"히케르코그 원로의원님을 뵈러 왔는데요."
"사전 약속을 잡으셨나요?"
"네, 아마......"
안내원은 히케르코그의 의원실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끝난 후 돔 1층 로비 중앙 통로에서 누군가가 남자를 불러세
웠다. 히케르코그의 보좌관인 랄프였다.
랄프는 카드를 찍어 남자를 들어오게 한 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돔 내부는 조금 산만한 느낌이었다. 원래부터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겠지만, 오늘은 사람들 모두 약간은 상기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랄프는 엘리베이터가 도착
하기 전, 남자에게 말을 해야 할 것이 생각났다. 현재 원로원은 긴급 회의가 열렸기 때문에 원로의원인 히케르코그는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적절한 사유가 아닐 땐 회의에서 퇴실은 불가능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자에게 물었다.
"꽤 늦으실 텐데 괜찮으십니까?"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대한 그를 빨리 만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늘 안에는 끝나겠죠?"
"그게... 점심 휴식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의원님께서 시간이 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온 나라가 카라카스 콜로니 폭발 사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긴급 회의의 의제도 이와 관련된 것일 게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아리아드네 공주 납치사건이었다. 그러나 납치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도 채
안돼서 콜로니가 폭발하고, 오히려 전쟁 때보다 더 난리법석인 상황이다. 아침부터 뉴스는 카라카스 콜로니의 폭발과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카라카스 행성의 본국인 아레아워프에서는 더 난리였다. 워낙 순식간에 폭발해서 탈
출 셔틀도 제대로 뜬 게 없었기 때문에 9천만 인구 중 생존자는 몇 천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각 언론의 기자들이
몰려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따내느라 야단이었다. 아레아워프는 이례적으로 타국 언론사의 몇몇 기자들을 국외로 추
방했다.
데카일라드는 물론이고 행성계의 거의 모든 국가 정상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데카일라드의 론라드 국왕과 제르의
부족 연합 대표, 오르팔트의 교황청 및 루드마네의 총리와 파르쉘의 대통령 등... 아레아워프의 대총통 조르그 세드릭은
대변인을 통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또 이번 폭발의 여파로 모든 콜로니의 환경 조성 장치를 패널 에어리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쏙 들어가버렸다. 대
부분의 전문가들은 부정했지만 언론과 여론 등의 방향은 모두 패널 에어리어의 오작동으로 카라카스 행성이 날아가버
렸다는 믿음으로 향했으니까. 더불어 각국의 패널 에어리어를 장착한 콜로니의 대표들은 패널 에어리어 제작 회사인
카스사(社)를 고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행성계 전체가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4층 408호실에는 서늘한 바람과 히케르코그 의원이 틀어놓고 간 TV소리밖에 없었다. 창 밖에서는 돔 앞 광장의 시끌
벅석한 소음이 넘쳐났지만 돔 내부까지 들리진 않았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 불안감을 느낀 콜로니와 관련된 사람들이
리라. 최근에도 신 콜로니 이주 계획이 크게 이뤄진 터라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했다. 이런 탓에 조만간 대대적 시위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경찰에서는 경계령을 두 단계나 급상했다. 이미 아레아워프령 콜로니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는 소식이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예... 물 좀..."
방안에는 물주전자와 잔이 들어있는 진열대가 있었다. 쪼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랄프는 잔에 물을 따랐다. 생수기를
쓸 수도 있었지만 굳이 이런 불편함을 사랑하는 건 히케르코그의 취향이었다. 그는 마치 구시대의 귀족을 흉내 내듯 기
품이 묻어나는 행동을 따라 하는걸 좋아했다. 물론 요즘 들어서 귀족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뜻이 좀 변질되긴 했지
만...
"보좌관님?"
"네."
"당신도 콜로니에 가족이 있습니까?"
"네. 어머니와 누님 부부가 신도시로 이주했거든요."
남자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불안하시겠군요.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렇죠. 게다가 그곳도 운할트라는 최근에 세운 곳이라..."
몇 년 전부터 신 콜로니 건설에는 기존 테라 시스템 대신 패널 에어리어를 사용하도록 필수 조항이 수정되었다. 카스
사의 입김이 강하기도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패널 에어리어의 뛰어난 안전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
다가 기존 테라 시스템에 비해 코스트가 더 적고 고효율을 자랑하는 패널 시스템이었기에 조항은 별탈 없이 통과됐다.
그 후로 전 국가의 신 콜로니 건설에는 패널 에어리어가 채택됐다. 그 중에서도 카라카스와 운할트 등이 대표적이었다.
랄프도 오전까지만 해도 불안감에 운전대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와 누님이 있는 운할트도 카라카스처럼 폭발
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형부의 직장 동료가 여긴 무사하다고 전화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정상적인 상태로 있
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곳에 불안함이 있었다.
"당신도 제 아버지가 누군지 아시죠?"
"네."
"알면서도 화는 내지 않으시는군요."
랄프는 물주전자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제 가족이 죽은건 아니니까요. '아직'이지만."
"........."
남자의 이름은 한스 일리브란트. 패널 에어리어 발명가인 레오 일리브란트의 아들이다. 지금 분위기에 길거리에서 걷
는 도중 그가 누군지 사람들이 안다면, 성경에 나오는 창녀보다도 더 호되게 돌에 쳐 맞아 죽을 것이다.
"당신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분노는 당신에게도 향하겠지만 굳이 지금도 자신의 마음을 스
스로 깎아먹을 필요는 없어요."
"...고맙군요..."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조금 소홀하게 오신 것 같군요. 방금 전 아래의 안내원은 당신을 눈치 챈 듯 보였습니다.
정말로 눈치챘다면 어쩌면 소문이 퍼져서 돔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 수도 있습니다."
한스는 그것까지는 생각 못 한 듯이 움찔했다. 하마터면 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의원님과 말씀이 끝나시면 제가 차로 모셔다 드릴겁니다. 의원님도 동의하실 거구요. 볼륨 줄여."
랄프의 말이 끝나자 TV는 자동으로 소리를 줄였다. 대신 한스의 손톱 깨무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울려퍼졌다.
현재 시각은 12시. 조만간 점심 휴식시간이 되겠지만 그건 그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한스는 너무 성급하게 찾아 온
것은 아닌지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돔 회의장 내부는 둥그런 형태를 하고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원로의장의 단상이 있었다. 그 옆에서 기록원은 빠르게
기록을 글로 남겼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태의 원인이 어디 있느냐 라는 겁니다. 정말 환경 조성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
문에 일어난 일일까요? 콜로니 내 내분의 가능성, 드래고닉하르크의 공격 등 지금 제 머릿속에서만 떠오르는 또다른 가
능성만도 수십 가지 됩니다.”
회의 조정자인 원로의장이 명패를 흔들며 말을 꺼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건 의원님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시나리옵니다. 설마 시나리
오의 비현실성을 가지고 늘어지겠단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시죠? 재조사의 중요성은 이미 몇번이나 나왔습니다.”
“하지만 비현실성도 비현실성이거니와 너무 초반부터 급작스럽게 패널 에어리어의 오작동일거라는 확신에 초점이 맞
춰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다시 검토해보잔 겁니다. 그정도에 잠깐 시간을 투자하는걸 의원님들께선 왜 그렇게 꺼려하
시는 거죠?”
한 의원이 반론 버튼을 누르며 의장에게 승인을 요청했다. 의장은 불빛 표시가 뜬 좌석을 흘깃 보고는 허락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 가이사 지구의 워싱턴 의원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확률의 문제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패널 에어리어의 안전성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닙니다. 히케르코그 의원은 가동 된지 겨우 5년밖에 안된 시스템이 폭발을 일으켰는데 이
에 대한 재검토가 왜 불필요하다고 그러시는 거죠?”
“방금 말씀하신 그겁니다. 왜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고서 패널 에어리어가 문제점을 드러내 벌어진 일이라고 확신
하시는 거죠? 시스템에 대한 조사는 분명 필요합니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해주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하
지만 제 말은 패널 에어리어에 대한 조사만이 아니라, 우룰 제국과 드래고닉하르크에 의한 공격의 가능성도 염두 해두
자는 것입니다. 허황된 말일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 공격의 가능성 아닙니까?"
실내가 술렁였다. 그도 그럴게 방금 전 그의 발언은 제국에 대한 반감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통치권을 크게 행
사하지 않고 있는 제국이라지만 지난 전쟁 탓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데카일라드로선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빌미
같은 건 절대 생겨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의장이 급하게 히케르코그의 말을 끊었다.
“그에 대해선 각 지구당과 의원들 모두 인지하고 있습니다, 히케르코그 의원. 그러나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패
널 시스템 조사 및 재검토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이해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날선 비판을 쏟아냈지만 아직도 회의장 내부는 히케르코그의 의견에 대해서는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어차피 그 스스
로도 이미 기울어진 여론을 등지고 다른 주장을 펼쳐도 씨알도 안 먹히리라는건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지구당
의원조차도 그를 말리는 눈치였다.
"(패배의식에 쩔어있는 겁쟁이들 같으니...)"
단지 이렇게나마 변론을 한 이유는 패널 에어리어와 그 이면에 있는 레오 일리브란트, 그리고 카스사에 대한 필요 이
상의 압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 한 것이었다.
또한 여기 모두 생각하고 있지만 쉽사리 꺼내지 못한 말, '제국이라면... 이런 짓을 하고도 남는다.'는 잊고 있었던, 그
리고 잊으려 했던 또 하나의 가능성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
"...없습니다."
"그럼 일단 휴식시간을 가지시겠습니다. 회의 재개는 1시 반까지이니 모두 잊지 말고 참석해 주십시오."
― 데카일라드 북부, 아에스토르고, 8:10 am.
“메일을 전송 받았습니다.”
기즈는 방문을 들어서자 왠 불청객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투명했던 오른쪽 벽면에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 있었다.
"뭐야?"
"아, 왔냐? 아니 좀 궁금해서 찾아와봤는데 너가 없더라?"
"내가 없으면 그냥 들어와도 되는거냐?"
동기인 알렌은 처음 만날때부터 아니꼬운 인간이었다고 생각했다. 기즈는 멋쩍은 듯 웃고 있는 알렌을 무시한 채 뒤
통수를 붙잡고 앞으로 쭉쭉 끌어당겼다. 예전에 봤던 『샐러리맨의 책상 앞 스트레칭』에서 나온 동작 중 하나다. 뒷목이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목을 툭툭 치고 홀로그램의 한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다운로드 중…’이라는 글자
가 투명하게 비춰졌다.
"드디어 되돌려 받는 거야?"
알렌은 수신인으로 표시된 어떤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몰라. 그냥 정크 메일일수도."
"윽... 너, 그걸 여태껏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던 거야?"
"스투코프 박사님 명령이야. 군말말고 기다리래."
"하하... 역시 너 잘못 걸린게 확실하네."
"..........."
‘다운로드 완료’라는 글자와 함께 메일은 자동으로 내용이 뜨기 시작했다. 제발 이번에는 [환상 카지노 미녀 딜러와
한판] 따위가 아니길.
[ 우주항공국 데카일라드 지부, 부국장님의 승인으로 자료 회신합니다. 일부 자료는 보안상 수정되었으니 착오 없으시
기 바랍니다. – 아에스토르고 담당 감사 캐서린 J. ]
"오오, 드디어!"
알렌은 마치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이 눈이 초롱초롱거렸다.
"기즈, 얼른 파일 열어봐!"
하지만 기즈는 대답 없이 스크리너를 홈에 꽂아 넣고 파일을 스크리너에 옮겼다. 알렌은 그가 아무런 대꾸 없이 자신
을 무시하자 눈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다.
"야, 기즈. 한번만 좀 보자니까?"
"박사님이 메일이 도착하는 대로 당신께 전해달라고 했어. 중간에 명령체계가 깨진걸 알면 누가 과연 징계를 받게 될
까?"
"아니 그러니까 잠깐만 보겠다고..."
"그리고 이거 엄밀히 따지면 기밀 문서야. 정보부에 꼬리 안 잡힐 자신 있어?"
알렌은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알았다면서 신경질적인 태도로 궁시렁거리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 알렌."
기즈는 중얼거리며 짜증스럽게 자신의 책상을 뒤지는 알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너무 들뜬 거 아냐? 사람이 몇 천만이 죽었는데."
기즈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애초에 동기고 뭐고, 저런 사리분별 못하는 인간과는 상종도 하기 싫
었다. 사회에 나와서까지 동기 들먹이며 친한척 하는 것부터 귀찮았지만 일단 인간부터가 글러먹었다. 그는 자기도 모
르게 심한 말이 나와버렸다. 그냥 무시해버려도 될 것을.
"(......윽.)"
"아무튼, 나가줘. 메일 삭제할 테니까 괜히 소문 내서 방 앞에 사람들 줄 서있다간 알아서 해... 어차피 박사님도 보시고
나선 공개하실 테니 좀만 기다리고."
"알았어, 알았다고. 거 쫑알쫑알... 괴짜 박사 밑에 있더니 설교 실력도 늘었냐? 재수 없는 자식. 알았다 꺼진다 꺼져."
알렌은 끝도 없이 기즈를 향해 쏘아붙이고는 방문을 사납게 닫았다.
"후우우......"
기즈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너무 심하게 말한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보았다. 확실히, 밤샘 철야의 후유증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밤새도록 들이닥친 기자들과 카메라들 때문에 쪽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으니까. 계속 바보 같은 질문만
해대는 통에 뇌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자꾸만 지끈거렸다. 천문학자에 비하면 지식인을 자칭하는 그들도 일반인 수준
의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그들은 마치 뭐라도 되는 양 온갖 주워들은 별자리 이야기들을 지껄여댔다. 멍청
한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해주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산화(散花)한 카라카스 행성( 언론은
Carakas 90-5 행성의 ‘폭발’을 그런 ‘예술적인’ 방식으로 묘사했다 )이 별인지 행성인지 같은, 어렸을 때 본 과학 만화에
도 나오는 상식을 질문한다든지 말이다. 물론 이번 현상이 특이한 케이스이긴 하다. 행성이 아무런 사전 징후 없이 그
렇게 순식간에, 엄청난 빛을 내뿜으며 폭발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언론은 콜로니의 패널 에어리어의 폭발이 아
니냐는 이상한 추측이나 하고 있지만 기즈는 그 시스템에 대해 대학원 논문까지 낸 사람이기에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발상인지 잘 알고 있었다. 패널 시스템의 주 동력이 되는 에크나는 그런 폭발성을 지닌 자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료.”
홈 주위에 테두리가 푸른 빛을 띠면서 스크리너가 약간 밖으로 튀어나왔다. 기즈는 그것을 빼내 들고서 스투코프 박
사의 연구실로 향했다.
이윽고 연구실 앞에 다다르자 그의 비서와 박사가 하는 애기가 복도로 들려왔다.
"아침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박사님?"
"이 상황에 아침은 무슨.... 됐다. 사진현상 부탁한 것은 돌아왔나?"
"기즈 연구원이 조만간 가져올 겁니다."
"지금이 몇 시지?"
"오전 8시입니다. 조금 더 주무시죠? 두시간 밖에 못 주무셨을 텐데..."
"필요 없어. 망할 중앙정보부 놈들이 빼앗아 가지만 않았어도 참 편하게 잘 수 있었다고."
박사는 새벽에 있었던 해프닝이 아직도 억울했었나 보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카라카스의 현재 상황 사진은 자동 화
질 처리가 되자마자 캐서린 감사와 중앙정보부 요원이 압수해갔으니까. 천체망원경 한번 시동 거는데도 나랏님의 허락
이 필요하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상층부의 지장이 찍힌 다음에야 볼 수 있단 말에 스투코프 박사는
터져버렸다. 근신 처분을 받은 이유는 그 일이 8할일 것이다. 예전부터 캐서린 감사와 스투코프 박사는 천적 관계나 다
름 없었다. 이번 해프닝이 더욱 눈에 띄었을 뿐이다.
기즈는 노크와 함께 박사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유타 선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복 차림이어서 예전에 봤던
드레스 차림의 섹시함은 느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운동화 대신 작은 굽 구두를 신었으면 어땠
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기즈입니다."
"아, 그래! 사진은 돌아왔냐?"
"네.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스투코프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크리너를 켜 '회신 메일'이란 이름의 폴더를 열었다. 박사가 황당한 듯 기즈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건?"
"왜 그러십니까?"
유타 선배가 박사의 등 뒤로 돌아서며 물었다.
"화질이 뭐 이리 개뼈따구야? 이거 우리가 찍은 거 맞아?"
"예, 그런데 메일 내용을 보시면 보안 상의 이유로 수정됐을 수도 있으니까 착오 없길 바란다고..."
박사는 그의 백발을 쓸어 넘기며 짜증나는 듯이 스크리너를 바닥에 내던졌다. 스크리너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세게 던졌는데도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 게 역시 새로 구입한 카스사의 제품이었다.
"하프스크린이로군. 제길."
"정말입니까?"
"지들이 뭘 안다고 내 자료를 도둑질해가?"
기즈는 스크리너를 집어 올려 연구복으로 화면을 닦아보았다. 분명 처음 찍었을 때의 상태하고는 확연한 차이가 보였
다. 찍었을 당시에는 자동 화질 조절 덕에 제 3 행성의 여광이 그리 밝게 보이지 않아 둥둥 떠다니는 콜로니의 파편 조
각도 볼 수 있었는데 상층부를 지나 다시 그의 손에 돌아온 사진은 뿌연 연기만 그 안에 가득할 뿐이었다. 심지어 몇몇
부분은 잘려 나가기까지 했다.
"이리 줘봐."
유타 선배가 그의 손에 들린 스크리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즈는 군말 없이 그것을 건내주었다.
“일개 천문관측소 따위가 감상할 수 있는 사진은 아니란 건가? 아니, 현장도 뛰어보지 않고 위에서 우리가 꼬박꼬박 챙
겨주는 자료들로 연명하고, 논문 써가며 자랑질 해대는 놈들에 비한다면야 내가 더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있어. 무지하
기 짝이 없는 우주항공국 나부랭이들 같으니. 지들이 나보다 뭘 더 안다고 내 자료를 빼앗아 가고 난리야? 제기랄!”
박사는 그나마 식었던 머리가 다시 치밀어 오른 듯 온갖 쌍욕을 허공에 퍼부어댔다. 복도 끝까지 그의 욕지거리를 들
을 수 있을 정도로 고성을 질러대며 화를 내뿜었다. 억울한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약간은 장난감 빼앗긴 아이의 이미
지가 겹쳐 조금 우스웠다. 하지만 이해는 충분히 갔다. 아무리 이곳이 산하 조직이라도 이렇게 강압적으로 자율권을 침
해받는건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헬렌! 커피 한잔 타와. 그리고 넌, 캐서린 그 여자한테 전화를 수십 번이고 때려서라도 원본을 요청해! 그렇게라도 안
되면 직접 찾아가서 빼앗아 오든지 해!”
"예? 직접이요?"
"좀 진정하세요 박사님.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좀..."
"얼른!"
헬렌과 기즈는 박사를 소파에 앉히며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당최 이 불 같은 성격은 언제 적응되는 건지 기즈는 한
없이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그를 조용하게 만드는 방법은 익히 알고 있었다.
“(유타 선배. 여기는 내가 맡고 있을 테니 얼른 커피 서너 잔 뽑아와요.)“
"뭐?"
기즈는 표정은 박사를 향해 웃음지으면서도 눈은 헬렌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조용하게 속삭이며 이러쿵 저러쿵 명령
을 내렸다.
“(박사님 카페인 중독이니까 커피 좀 마시면 진정하실 거에요.)”
“(아… 알았어.)”
헬렌은 급하게 방을 나가 숙직실로 향했다. 박사의 연구실에 있던 커피포트는 당최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커다
란 원서더미 안에서 그걸 찾다 보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진정하세요 박사님. 이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럼 어쩌라고?”
“일단 말씀하신 대로 캐서린 씨에게 전화해보겠습니다. 그래도 안되면, 박사님이 직접 학회에 문의하셔서 압박을 해보
세요. 그럼 그쪽에서도 섣불리 무시하진 못 할겁니다. 다른 원로교수님들도 요즘 왕정의 태도에 불쾌해하긴 마찬가지니
까요.”
의외로 술술 납득할만한 해결책을 내놓자, 스투코프 박사도 흔치 않게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어리벙벙한 눈으
로 기즈를 바라보다가, 계속 말해보라고 시켰다.
“...박사님도 사실 카라카스 상황이 궁금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어느정도 있으시겠지만 상층부 사람들이 저희
관측자료를 아무런 보상 없이 빼앗아 간 게 화가 나서 이러시는 것 아닙니까? 저희도 그렇습니다. 다들 그래요. 그러니
까 혼자만 화내지 마시라구요. 저희는 화 못 내서 이러는 줄 아십니까? 다들 참고 있는거라구요."
기즈로서는 박사를 향해 이렇게 대놓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이 다 끝나자마자 아차 싶었다. 하지만 염려와는
다르게 스투코프 박사는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솔직히 기즈는 더 말할 것도 없는데 굳이 시키는 게 못마땅했다. 그는
그저 빨리 헬렌이 커피를 들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 네 말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다. 캐서린에게 전화하라고 한 명령은 취소. 그랬다간 초장부터 꿇고 가는 거야.
대신 학회에 연락해놔. 내가 조만간 찾아간다고. 아주 날 물로 보고있어 이 자식들.”
“그… 알겠습니다(어쨌든 진정됐으니 일단은 안심해도 되려나?).”
“그것보다, 아까 새벽에 내 대신 기자들 상대했다고 들었는데 언론은 패널이 폭발한 게 아니냐고 그런다지?”
새벽에 기즈가 천문대 앞에서 인터뷰 하는걸 그도 들은 모양이다. 하긴 조금 시끄러운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
각해보면 정보부 요원들이 자료를 빼앗아 가는걸 기자들이 찍을 수 있게 어디로 빠져나갈 건지 귀띔을 해줬으면 어땠
을까라고 기즈는 뒤늦은 상상을 해보았다. 마침 그때쯤 그들이 차를 타고 천문대를 나가는 참 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라도 했으면 골탕 좀 먹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레오 그 녀석... 고생 꽤나 하겠군."
"(응?)"
방금 기즈가 잘못 들은게 아니라면 박사는 패널 에어리어 개발자인 레오 일리브란트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긴데... 그 때, 때마침 헬렌이 커피잔을 들고 방으로 들와왔다.
"아, 왔군. 책상에 올려다 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둘 다 나가게. 나가서 좀 쉬어 들."
...헐? 쉬라고? 정말 저 악마 같은 작자 입에선 절대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는 박사는 다시
일어나 책상 서랍을 뒤적이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헬렌과 기즈는 안중에도 없는듯 말이다. 헬렌은 박사를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기즈에게 물었다.
“(뭐야 기즈? 커피 같은 건 필요 없잖아? 대체 저 괴짜를 어떻게 구워 삶은 거야?)”
“(낸들 아나요? 약간 대놓고 말했더니... 일단 빨리 나가요. 언제 또 불러재낄지 모르니까.)”
“그래 그건 동감.”
"엉?"
헬렌은 자기도 모르게 속삭이다가 본심을 크게 말한 탓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박사는 그 둘을 아리송한 눈으로 쳐다
보고는, 정신이 번쩍 돌아온 듯 버럭 호통을 쳤다.
"이봐! 나가라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기즈와 헬렌은 허겁지겁 물건을 챙기며 방을 나갔다. 그런데 기즈는 방문을 닫는 사이,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스투코프 박사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은, 전화기였다. 내가 그가 나를 통해 연락하는걸 제외하고 따로 통화하는걸 본적
이... 있었나? 그다지 신경써야 할 건 아니지만, 생소한 박사의 모습이 조금 신경쓰였다.
"유타 선배."
"어? 왜? 아니 그것보다..! 야 나한테 그 비법 좀 알려주라 하하! 무슨 방법을 쓴 거..."
"아니 잠깐. 먼저 물어볼 게 있어요."
"엉? 뭔데?"
"선배, 스투코프 박사님 비서 생활을 한지 얼마나 됐어요?"
"어? 어... 음... 글쎄. 꽤 오래된 것 같긴 한데?"
뜬소문이지만 헬렌은 천문대 소장 후임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었다. 박사가 비서로써 그녀를 가까이 두고 소
장일을 가르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나이 들어서 영계 찾는게 아니냐고 주위에서 수근수근댔지만 그녀의 남
자 못지않은 강인한 태도에 박사와 몇번 맞부딫치는 걸 목격하고나서 부터 그런 소문은 사그라들었다. 캐서린 못지않
게 박사와 천적 관계인 듯한 헬렌이 왜 박사의 비서로 내정되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럼 그 동안에 박사님이 누구랑 통화 하는 거 본적 있어요?"
"...없는 거 같아. 그게 왜?"
기즈는 복도를 돌아서서 박사의 연구실 문을 바라보았다.
"아까 나올 때 좀 이상한걸 봐서요. 핸드폰을 들고 있더라고요."
그녀는 그게 뭐가 이상하냐는 듯, 멈춰선 기즈의 어깨를 툭 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야야, 저 괴짜도 사람인데 누구랑 통화할 일이 있나 보지. 그게 뭐가 이상한 거라고."
저 인간이? 기즈는 왠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 사람도 전화하며 사나 라는 그 문제보다, 더 근원적으
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왜 하필 지금? 다른 때도 아니고 왜 콜로니가 폭발하는 사태 따위가 일어나니까 핸드폰을 집는거지?
"풋… 그것 보다, 카페테리아 가서 뭐라도 먹자. 내가 쏠게. 좋지?”
"아까 샌드위치 먹었는데요."
"샌드위치로 배가 채워지냐? 얼렁 이 누님 따라와!"
"에휴... 네네."
헬렌은 기즈에게 팔짱을 끼며 아직도 시선이 박사의 방에 고정된 그를 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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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코알라입니다.... 일단 공지를 보고 오신 분이 많으실텐데요... 프롤로그를 올리고 나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말이 안되는 연결고리에다가 분량도 저한텐 만족스럽지도 않은 분량이라... 폭풍 수정을 부득이하게 했습니다(-_-);;;; 감
사하게도 조회수가 30을 넘고 다음편 기다려주신 분도 있을 텐데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최대한 시간을 쥐어짜내서
빨리 다음편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첫댓글 뭐라 소개하기도 좀 그런, 아직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꾸역꾸역 연재를 하면서 배워가겠습니다.
비평과 오타 수정 및 건의 환영합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은 찬양합니다.
신입 작가 피그코알라입니다.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p.s - SF의 부흥을 위해!
부드럽게 읽혀서 좋네요ㅎㅎ. SF라는거 보니 스케일이 우주급인가봐요^^
그러길 바라면서 쓰고있습니다ㅋ;;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건필해주세요ㅎ
저도 달빛 아래서 재밌게 보고있습니다ㅎㅎ 다음편 못 내고 수정본 내놓아서 죄송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