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의자를 바라보는 정오 - 이병일 뼈가 있는 말은 애써 돌아가는 강물 같고 뼈를 때리는 말은 활시위를 떠난 촉 같다 의자가 의자를 바라보는 정오 피로 닿지 않을 곳이 없다는 사백년 된 나무 죽어 제 굳어진 심장을 꺼내볼까
나무는 죽는 것 말고도 능선이 가질 수 없는 벼랑을 끌어당긴다 벼랑을 뚫고 오는 새떼 발목이 없다 어스름 낮달 같다
뒤로 밀리는 것들아 막, 꽃을 떨군 것들아 말라비틀어진 몸도 한 손에 물병 들고 섰구나
골짜기 딛고 올라간 것들아 축축한 것의 몸을 가르면 구약전서가 나올까 천국은 여전히 멀고 요한계시록보다 교독문을 더 좋아하는 나는, 예언자가 아니지만 죽은 나무에서 걸어나오는 신을 본다 신은 벌떼에서 떨어져나온 폐허 같다
나는 복사뼈가 부러진 채로 나와 신의 바깥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부활과 구원엔 참도 거짓도 없었다 기도하며 나쁜 피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죄지으면서 죄를 씻듯이 나는 아가야, 소리와 함께 양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아버지의 이름을 모른다 —계간 《詩로 여는 세상》(2024, 여름호) *************************************************************************************** 발달한 현대과학으로도 증명해내지 못한 것이 천지창조입니다 태초로부터 대대손손 이어지는 천지만믈이 현재를 이루고 있으니 지구촌 곳곳에는 그들만의 신앙이 존재하고 다양한 신(god)이 추앙받습니다 그럼에도 지구촌은 기후재앙에 시달리고 사람들끼리의 다툼으로 전쟁도 불사합니다 그 어디 쯤에 신의 돌봄이 남아 있는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기도하는 곳마다 사람이 들끓어도 죄악은 줄어들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오늘에 죄를 지으며 어제의 원죄를 씻어버리고자 애쓰다 보니 의자에 앉거나 무릎꿇어 명상할 시간이 없다보니 참과 거짓이 헷갈립니다 그저 현실에 서있는 자리가 내것이고 영원했으면 좋겠다 싶어 헛기침만 요란합니다 조용하면 누가 듣겠지 하며 '사랑한다'고 '이해한다'고 중얼거립니다 예배시간과 예불시간을 빼면 텅 비어있는 교회와 불당 그리고 많은 기도처의 좌석을 생각하는 정오 햇살이 깨끗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