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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 :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
◦전시기간 : 2024-11-28 ~ 2025-02-16
◦전시장소 : 덕수궁 2층, 1, 2전시실, 3층, 3, 4전시실
◦참여 작가 : 한국작가 총 69명, 중국작가 총 76명(작품수: 148점)
◦전시취지 :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중국미술관이 양국의 근현대 수묵채색화 걸작들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자주적인 관점으로 미술사를 조망하는 한중 최초의 공동기획전이다. 전시는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 등 전통적인 장르부터 현대의 구상, 추상 작품까지 아우르며, 동아시아 미술의 정수인 수묵채색화가 어떻게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해왔는지 보여준다. 특히 같은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양국의 문화적 특성과 정서에 따라 달리 표현된 미적 감각과 개성을 비교할 수 있어, 동아시아 미술의 다양성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전시와 연계된 워크숍과 국제학술대회도 함께 개최된다.
◇한(韓)·중(中) 대표 근현대 수묵채색화 총 148점 한자리에서 조망
- 이상범, 변관식, 이응노, 천경자, 황창배, 박대성 등 한국 작가 69명 작품 74점
- 우창숴(吳昌碩), 쉬베이훙(徐悲鴻), 푸바오스(傅抱石), 린펑몐(林風眠) 등 중국 작가 76명 작품 74점
- 중국 국가문물국 지정 문물(文物) 1~3급 근대미술 명작 32점 대거 포함
◇한·중 작가 초청 대화 등 동아시아 미술 연구 및 협력 지평 확장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중국미술관(관장 우웨이산)과 공동기획으로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를 11월 28일(목)부터 내년 2월 1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수묵별미(水墨別美) : 한·중 근현대 회화>는 양국 유일의 국가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이 소장한 대표 근현대 수묵채색화를 한 자리에서 조망하는 전시이다. 양국의 예술적 교류와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전시 연계 워크샵과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동아시아 수묵채색화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자리이기도 하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2022년에 개최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되어 올해 한국에서 개최하고 내년 중국을 순회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양국을 대표하는 수묵 예술 작품 및 현대 명작을 선별하여, 한국편과 중국편 각각 2부씩 총 4부로 구성했다. 전시는 전통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양국 수묵 예술의 독자적 발전 과정을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전시 구성 및 전시 작품
한국화 제 1부와 2부로 구성된 부문에서는 전통 수묵화의 현대적 변용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화 1부. 근대의 여명과 창신」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작품을 소개한다. 이 시기 전통회화는 근대 이후 재료와 기법, 화면의 크기, 내포하는 의미 모두 큰 변화를 맞이했다. 20세기 초반에는 기존‘서화’란 호칭에서 글씨와 그림이 분리되어 붓과 종이, 먹으로 그린 그림을 ‘동양화’라 부르기 시작하며 수묵채색화의 근대미술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1950년대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입체주의와 비정형 추상 양식이 적용된 수묵채색화를 박래현, 장운상, 안동숙의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1970년대 이후 한국적인 소재에 현대미술 양식을 적용하여 동양의 현대적 창신(創新)을 도모한 이응노의 <구성>(1973)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 수묵채색화들을 선보인다.
산수, 인물, 화조 같은 전통회화의 화목(畵目)들은 근대 이후 시(時)·지(知)·각(覺)의 변화에 따라 재료와 기법, 화면의 크기, 내포하는 의미 모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고종 13년인 1876년에 체결한 강화도 조약과 개항(開港) 이후, 조선에는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서양문물이 조선 사회에 퍼져나가면서 전통회화에도 차츰 시각적인 사실성이 강조되었고, 새로운 느낌의 그림을 접한 화가들은 각자의 고유한 작가의식을 토대로 하여 그림을 그려나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가속화된다.
일제강점기에 이르자 기존에 쓰이던 ‘서화’란 호칭에서 글씨와 그림이 분리되어 붓과 종이, 먹으로 그린 그림을 ‘동양화’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전통적인 관념 산수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양식을 모색하기 위하여 동연사(同硏社)가 결성되었다. 서화미술회에서 안중식에게 사사한 이상범이 주축이 된 동연사의 화가들은 원근법과 명암법 등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나무나 산수 표현 등에서는 전래의 준법을 따르는 절충적인 면모를 발전시킨다.
1930년대에 이르면 점차 수묵은 ‘산수’를, 채색은 ‘인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정착되는 양상을 띠는데, 이로 인해 ‘채색은 일본인의 미의식이 강하게 내재된 그림’이라는 왜색(倭色) 논란에 휩싸여 ‘수묵’과 ‘채색’의 극심한 갈등을 낳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50년대에는 모더니즘이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며, 동양화에도 큐비즘과 앵포르멜의 추상 양식이 차용되기도 하였다.
1960~70년대에는 국가의 민족중흥 정책과 맞물려 ‘한국적인 것의 재발견’을 도모하였고, 그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경관이 아니더라도 우리 생활 주변의 일상적 풍경을 사생한 실경산수화가 ‘국민 그림’으로 등극하였다. 인물화에서는 주변 현장의 일꾼을 묘사하는 그림 등이 출현하였다. 또한 지필묵을 쓰면서도 비구상 형태로 작품을 구현해나가려 한 미술인 단체인 묵림회(墨林會)가 출현하였는데, 이 단체에서 활동한 작가들은 지필묵의 다양한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1970년대 이후에는 한국적인 소재와 현대미술 양식의 조화를 이루며 동양화의 현대적 창신(創新)을 도모하였다.
이상범(李象范), 〈초동(初冬)〉, 1926, 종이에 먹, 색, 152×182cm, 국립현대미술관(국가지정 등록문화유산).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은 근대적 산수화를 모색하는 연구 단체인 동연사(同硏社)의 주요 멤버로서, 보다 확장된 화면을 채택하여 한문의 제발을 최소화하였으며, 서양화의 공간감과 원근감을 적극 반영하였다. 이상범은 상상 속 공간이 아닌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풍경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야트막한 야산과 소박한 농가는 향토적이고 한국적인 산수를 추구하는 작가의 지향점을 드러낸다.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초동〉(1926)은 동연사의 실험 성과를 보여주는 초기작 가운데 드물게 현전하는 작품이며, 전통 산수에서 근대적 산수로의 변모를 보여주며 관전 산수화의 전형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초동〉은 선을 위주로 삼았던 전통에서 벗어나 마른 붓으로 찍은 점들로 윤곽을 그려, 뼈대가 앙상한 나무, 추수가 끝난 논밭의 이미지로 이제 막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감을 드러낸다.
장운상(张云祥), 〈구월(九月)〉, 1956, 종이에 색, 200×150cm, 국립현대미술관.
목불(木佛) 장운상(張雲祥, 1926-1982)은 1946년 창설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부 제1기의 첫 졸업생으로 평생 동양화를 그린 작가이다. 또한 1949년 시작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가두점묘(街頭點描)〉를 출품하여 입상한 이래 국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구월〉(1956)은 제5회 《국전》에서 무감사 입선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상반신 여성 누드 인물화이다. 그림을 보면 이리저리 얽힌 포도 넝쿨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도발적인 자세로 앉아 있다. 건강미 넘치는 여인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채 한쪽 무릎을 세우고 있다. 과장된 이목구비와 구릿빛 피부, 왜곡된 신체 비례, 청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린 넝쿨 등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특히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상반신 노출을 강조한 동세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을 연상시킨다.
이종상(李钟祥), 〈장비(装备)〉, 1963, 종이에 먹, 색, 290×2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종상(李鍾祥, 1938-)은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이래 다양한 창작 세계를 펼친 한국화가이다. 1961년 제1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장(匠)〉을 출품하여 특선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었다. 〈장비〉(1963)는 제12회 《국전》 문교부장관상 입상작으로, 말에 안장을 채우는 마부의 역동적인 동세가 표현된 인물화이다. 〈장비〉에 등장하는 노동자는 앳된 청년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각자 자신이 담당한 일에만 몰두할 뿐 서로 마주 보거나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림에서 급박하고 빈틈없이 진행되는 노동 현장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청년 이종상은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노동자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동료들의 일상을 관찰하였고 노동자 연구와 민중 미술에 심취하였다.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명동 시내를 돌아다니며 수습한 구두 밑창의 징을 엿과 바꾸어 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못 쓰는 쇠붙이를 모아 솥에 넣고 끓여 새로운 생산의 도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개혁과 같은 맥락임을 깨달았다. ‘쇠’라는 물성이 간직한 변화의 기능을 파악한 것이다. 〈장비〉는 이러한 체험에서 비롯된 인물화라 할 수 있다.
안동숙, 〈태고의 정Ⅰ(太古的情Ⅰ)〉, 1969, 천에 색, 돗자리, 콜라주, 168.5×122.5cm, 국립현대미술관.
오당(吾堂) 안동숙(安東淑, 1922-2016)은 일제강점기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의 낙청헌(絡靑軒)에서 수학하였고,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동양화를 배웠다. 무릎 제자식 사숙과 정규 제도권 미술 교육을 모두 체험한 작가인 셈이다. 안동숙은 대학 졸업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묵림회에 출품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하였고, 1960년대 중후반부터 국제 미술제에도 적극 참여하며 활동 무대를 해외로 확장하였다. 안동숙은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추상을 시작하였고, 동아시아 창작의 근간인 지필묵 대신 다른 재료를 사용하였다.
〈태고의 정 Ⅰ〉(1969)은 1969년 개최된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으로, 당시 작품 제목은 〈한국의 상(像)〉이었다. 돗자리, 화문석, 대방석, 알루미늄 새시 등을 혼합하여 제작한 100호 크기의 평면 회화로서 독특한 물성이 혼합된 이 작품은 ‘최초의 물감 없는 동양화’로 알려지며 국내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서양화단의 일부 작가들이 옵아트에 민속적 모티프를 혼성하여 한국적 기하 추상을 모색한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서양 전위예술의 일면을 보이면서 동양화의 선과 정적 특징”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안동숙도 지필묵을 배제하고 한국의 전통 재료를 활용하여 ‘안방과 사랑방의 골동품적 예술에서 탈피’하려 했음을 피력하였다. 동양화에 동양성과 현대성과 한국성의 코드를 모두 실현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원문자, 〈정원〉, 1976, 종이에 색, 166×120cm, 국립현대미술관.
원문자(元文子, 1944-)는 1960년대 중반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재학 시절부터 인물, 동물, 화조류 등 모든 화목에 두각을 나타낸 동양화가이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칠면조〉(1970)를 출품하여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면서 이미 20대 중후반부터 국내 최고의 화조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당시 국전 동양화부는 사경산수화가 대세를 이루었으나 원문자는 이와 다른 행보를 선택하여 두각을 나타내었다.
〈정원(院子: Tranquil Garden)〉(1976)은 1976년 제25회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화조화이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작품을 구입한 후 수리 복원을 거쳐 새롭게 단장하였다. 원문자는 〈정원〉에서 분홍색 연꽃이 활짝 핀 연못에 원앙 두 쌍이 평화롭게 노니는 장면을 화선지에 색을 물들이는 선염법으로 맑고 깨끗하게 재현하였다. 연못에서 노니는 원앙, 주변을 장식한 연꽃과 연잎을 화면 가득 배치하여 여백을 거의 남기지 않았는데, 이는 새보다 연못의 풍경에 비중을 둔 소경화조화의 일종이다.
「한국화 2부. 경계를 넘어, 확장을 향해」에서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화의 변천사를 집중 조명한다. 1980년대는 ‘동양화’ 대신 ‘한국화’란 용어가 정착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거나 기법의 전환을 통해 한국화를 현대 미술 장르의 하나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했다. 이는 석철주 <외곽지대>(1981), 김선두 <2호선>(1985)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화는 미술에서의 장르가 허물어지며 점차 기존 ‘한국화’의 규정, 재료와 소재, 형식과 장르 등 모든 면에서 다른 것들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유근택, 이진주와 같은 현대의 한국화 작가들은 재료와 기법을 넘나들며 수묵채색화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숨은 잠재력을 이끌어내며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1960년대의 앵포르멜과 기하학적 추상, 1970년대의 모노크롬 회화에 이어 1980년대 후반부터는 탈구조 이론과 해체론을 내세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한국 미술계의 흐름에 발맞추어, 동양화단 내에서도 움직임의 변화가 생겼다. 유일한 관전(官展)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외에도 민간이 주도하는 다양한 공모전이 개최되었고, 지필묵으로 완성된 동양화를 ‘한국화’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화’란 용어는 해방 이후 김영기가 처음 제창했지만, 1970년대까지는 여전히 ‘동양화’가 강세를 띠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한국화’란 용어가 정착해 나갔다. 용어 변경에 힘입어 수묵채색화단에서는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거나 기법의 전환을 통해 현대 미술 장르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했다.
종래 수묵채색화에서 보이던 전형적인 소재나 표현방식에서 탈피하여 남다른 시각언어로 동양적 정신성을 표출하고자 한 이러한 노력은, 일련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수묵 표현의 가능성과 동양의 정신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것을 주장하는 ‘수묵화 운동’으로 촉발되었다. 이것이 수묵화 양산의 기틀을 마련하였음은 물론이다. 한편에서는 그와 반대로 채색화가 급부상하기도 했는데, 한국적 색채를 강조하며 굵고 강인한 선, 두꺼운 원색 등을 배열하며,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면서 채색화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한 그림들이 유행하였다.
서정성이 깃든 자연과 산수 풍경화가 등장하고, 새로운 도시 경관을 다양하게 재현한 도시 풍정(風情) 그림들이 등장하며 한국화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1990년대 이후가 되면 동서양의 매체 구별이 불분명해지고 평면과 입체의 경계가 허물어져 점차 미술에서 장르의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이때 한국화는 점점 ‘한국화’의 정의와 규정, 재료와 소재, 형식과 장르 모두에서 다른 것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작가들은 재료와 장르를 넘나들며 수묵추상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지필묵의 숨은 잠재력을 이끌어내며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김아영(金雅暎), 〈옥인동(玉仁洞)〉, 1978, 종이에 먹, 색, 91×62.8cm, 국립현대미술관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하던 지삼(知三) 김아영(金雅暎, 1953-), 강남미(康南美, 1951-), 최윤정(崔允禎, 1956-)은 1977년부터 두 해에 걸쳐 《3인행(三人行)》 전시를 열었다. 이들의 작품은 그간의 동양화와 내용 면에서 매우 달라 당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시대 전통 회화나 근대기 일본에서 유입된 신남화풍의 그림과는 결이 다르게, 주로 현실에서 마주한 풍경을 먹과 맑은 채색으로 그려 내었기 때문이다. 당시 『논어』에서 따온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로 전시회의 이름을 짓고 전시 전반을 주도한 작가가 김아영이다.
김아영의 〈옥인동〉(1978)은 《삼인행》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경복궁 왼편에 있는 옥인동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당시 옥인동에는 인왕산 자락 아래 언덕배기에 오래된 한옥과 허름한 집이 혼재되어 있었다. 김아영은 언덕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큰길 위아래의 시점을 달리하여 아래로는 기와를 덮은 한옥을 부감하여 그리고, 위로는 무질서하게 새로 지어진 가옥들을 소략한 필치로 그렸다. 이러한 현실적인 모습은 1980년대 〈현실과 발언〉으로 대표되는 민중미술과 미술사적으로 연계되는 의미가 있다.
김선두(金善斗), 〈2호선(2号线)〉, 1985, 종이에 먹, 색, 117×150cm, 국립현대미술관.
1980년대 한국화 분야에서는 낯익은 도시 풍경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시민의 삶에 주목한 젊은 작가군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작가군을 대표하는 한국화가로 구산(久山) 김선두(金善斗, 1958-)가 있다. 당시 20대 후반의 청년 작가였던 김선두는 친근한 도시의 일상과 비주류의 인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휴월〉을 1984년 제7회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하여 대상을 수상하였다. 김선두는 이 작품에서 장지 기법이라는 채색 방법론을 고안하였는데, 두껍고 질긴 장지 위에 엷은 채색을 여러 번 중첩하여 밑에 칠해진 바탕색이 은은히 우러나도록 하는 발색법이다. 이 기법을 통해 김선두는 발효된 토속 음식의 숙성된 맛처럼 화면에 연한 안료를 스며들게 하고, 그 위에 얹기를 반복하여 색상의 깊이감을 추구하였다.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출품작인 〈2호선〉(1985)에서도 장기 기법이 활용되었다. 이 작품에서 김선두는 이른 새벽 텅 빈 2호선 전철을 타고 일터로 나가는, 고단한 삶에 지쳐 졸고 있는 청년을 탁월한 데생과 사생의 필력으로 표현하였다. 인물상을 포함한 지하철 내부는 맑고 호흡이 긴 필선으로 묘사한 뒤 신체 위에 군청의 원색 물감을 진하게 얹어 발색 효과를 더했는데, 화면 전체에 바탕색이 드러나도록 담색을 바른 후 원색을 얹는 장지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김선두가 연출한 수묵과 채색의 경계를 허문 청회색 톤 분위기에서 도시 생활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황창배(黄昌培), 〈20-2〉, 1987, 종이에 먹, 색, 120.5×12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정(素丁) 황창배(黃昌培, 1947-2001)는 1978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한국화 비구상 부문으로 최초의 대통령상을 받으며 등단하였고, 1987년 《선미술상》 수상 개인전을 개최하며 스타 작가로 부상하였다. 동서양의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넘나들었지만 결국은 지필묵을 지켜 낸 전형적인 한국화가이다. 황창배는 내용과 소재는 구상에서 출발하지만 거칠면서도 속도감 있는 필치와 사실적 형태는 보이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뒤섞여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20-2〉(1987) 역시 특유의 색감으로 나무와 바위 등이 뒤엉켜 있는 사이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종이에 물감을 뿌리거나 일필휘지로 그은 필획에서 강한 속도감이 느껴지며, 화면 오른쪽 하단에 적혀 있는 ‘4320’은 단기(檀紀)로 1987년에 제작하였음을 알려 준다.
민경갑(闵庚甲), 〈자연과의 공존 99(与自然共存99)〉, 1999, 종이에 색, 148×192cm, 국립현대미술관.
유산(酉山) 민경갑(閔庚甲, 1933-2018)은 전위적인 청년 화가들의 결집체인 묵림회(墨林會, 1960-1964)의 회원으로서, 당시 불어닥친 앵포르멜의 물결 속에서도 수묵추상화를 고집하였다. 그러다 1970년대에는 구상으로 회귀하여 재료와 기법에 대한 탐구를 거듭하며 종이와 안료가 만들어 내는 번짐 효과를 실험하는 데 매진하였다.
1980년대 중반, 전통 채색화가 활기를 띠며 한국화의 지형에 큰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는 화려한 반추상의 채색 산수화로 전환하며 수묵의 바림 기법을 채색에 응용한 〈자연과의 공존〉 연작들을 발표하였다. 〈자연과의 공존 99〉(1999)는 원색을 사용하여 산과 나무를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하고, 평면적이고 과감한 화면 분할을 통해 화면의 구조를 색면으로 간결하게 처리한 대작으로 유산 양식을 구축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정재호(郑载頀), 〈황홀의 건축-청계타워, 현대오락장, 종로빌딩, 용산병원(辉煌的建筑-清溪塔、现代娱乐场、钟路大厦、龙山医院》, 2006-2007)〉, 2006-2007, 종이에 먹, 색, 194×130cm(×3), 191×130cm, 국립현대미술관.
정재호(鄭載頀, 1971-)는 한국의 산업화 시기,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탄생하여 이제는 사라져 가는 쇠락한 도시의 풍경을 회화로 기록한다. 1960년대 이후 도시민의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등장하여 선망의 주거 방식으로 추앙되던 아파트와 상가, 빌딩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재개발 대상이 되었고, 작가는 철거를 앞둔 지역을 찾아가 그 일대를 한지에 먹과 채색 안료를 사용하여 보이는 그대로 담아내었다.
〈황홀의 건축-청계타워, 현대오락장, 종로빌딩, 용산병원〉(2006-2007)은 네 지역의 건물을 한 화면에 옮긴 것이다. 한때 영화로 가득 찼던 건물들의 쇠락은 정재호를 비롯하여 삶의 부침을 겪는 인간 일반의 삶을 닮아 있다. 최근 작가는 화면에 공간을 구축하는 데 보다 유리하다는 점에서 캔버스에 유채 물감으로 전환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진주), 〈볼 수 있는 21(可以看到的21)〉, 2024, 이정배블랙 수제물감, 광목에 색, 108.7×81cm, 국립현대미술관.
이진주(李珍珠, 1980-)가 그리는 사건이나 사물은 그가 현실과 일상에서 겪고 마주한 상황, 대상, 풍경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작가의 기억 속에 얼마간 묻혀 있다가 다시 꺼내어져 화면으로 묘사되는데, 그려진 장면은 현실의 세계와 주관의 세계가 만나 환상적이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전달한다.
〈볼 수 있는 21〉(2024)은 이진주의 ‘블랙 페인팅’ 작업의 하나로, 직접 제작한 검은색 물감을 사용하여 새까만 어둠 속에 떠오른 손이나 얼굴, 몸의 일부 등을 극도로 세밀하게 그려 내었다. 이진주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그의 채색 기법에서 기인하는데, 광목에 아교포수를 하고 엷은 수간 안료를 중하여 채색하는 방식이다. 이 작업은 무한한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유화나 아크릴 물감과는 전혀 다른 무광의 독특한 질감과 선명한 발색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진주의 작품들이 정적이면서도 세부를 찌를 듯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유이다.
허건, 〈목포교외〉, 1942, 종이에 먹, 색, 137×171.5cm, 국립현대미술관.
서정태, 〈언덕위에 빨간나무〉, 1985, 종이에 먹, 색, 개인소장.
홍석창, 〈결실〉, 1990, 종이에 먹, 색, 182×144cm, 국립현대미술관.
박노수, 〈소년과 비둘기〉, 1983, 종이에 먹, 색, 96×165.5cm, 국립현대미술관.
박대성, 〈금강전도Ⅰ〉, 2000,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숙자, 〈작업〉, 1980, 종이에 먹, 색, 146.57×113.25cm, 국립현대미술관.
조인호, 〈청풍-석문〉, 2017, 종이에 먹, 130x190cm, 개인소장.
중국화 부문 제 1부와 2부에서는 전통의 계승과 혁신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난 100년 동안 중국은 거대한 변화를 겪으며 민족적 각성과 문화적 계몽을 이루었다. 그 안에서 중국 미술가들은 ‘고전을 바탕으로 현재를 열고’, ‘동서양의 융합’이라는 이념을 실천하며, 민족성을 담은 수많은 걸작을 창조해 내었다. 이 작품들은 사상이 깊고, 주제가 분명하며, 형식이 참신하고, 내포된 의미가 풍부하다. 비록 시대의 변혁에 따라 그 면모가 바뀌었지만, 강인한 불굴의 민족 기상은 절대 변하지 않았고, 자강불식(自强不息)의 민족정신 또한 흔들리지 않았다. 중국의 고전 수묵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무한한 매력을 발산하고, 무한한 생동감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중국화 1부. 전통의 재발견」에서는 중국 근대미술 100년의 역사를 대표하는 수묵예술 대작을 소개한다. 중국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중국 국가문물국 지정 1~3급 문물(文物)을 대거 출품하였는데 1부에서는 1급 문물 5점을 비롯하여 2급 21점, 3급 6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중국 국가문물국 지정 문물은 희귀성, 역사성, 예술성을 기준으로 국가문물국에서 규정하고 관리하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1급을 포함하여 총 32점의 문물이 전시된 것은 국내 어떤 미술관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중국 미술가들은 전통을 계승하며 현대적 해석을 더하고, 동서양 예술의 조화로운 융합을 통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해냈다. 우창숴의 〈구슬 빛(珠光)〉, 치바이스의 〈연꽃과 원앙(荷花鴛鴦)〉, 쉬베이훙의 〈전마(戰馬)〉, 장다쳰의 〈시구를 찾는 그림(覓句圖)〉, 린펑몐의 〈물수리와 작은 배(魚鷹小舟]〉, 푸바오스의 〈타오구에게 주는 글(陶穀贈詞)〉, 류하이쑤의 〈붉은 연꽃과 비취색 깃털(紅荷翠羽)〉, 리커란의 〈용수와 물소(榕樹水牛)〉, 리쿠찬의 〈연꽃과 물총새(荷花翠鳥)〉 등이 수묵 작품의 백미라 할만한 대작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대대로 중국 예술의 대가들은 진정한 감정과 진실한 마음, 진정한 예술로 역사와 시대를 표현하고, 사회와 삶을 반영하였으며, 인문학과 자연을 드러내는 여러 고전적인 미술 작품을 창작하여 시대의 정신과 예술미를 한껏 발산하였다. 이 작품들은 현대 중국 수묵 예술의 풍모를 더욱 포괄적으로 보여주고, 문화적 공명과 감정적 공명을 끌어내며, 작품마다 지닌 독특한 매력을 통해 전 세계에 중국의 예술적 면모를 전달한다. 아울러 중국식 미적 취향과 초월적인 민족적, 지역적 문화 가치를 이번 전시 작품을 통해 체감할 수 있다.
우창숴(吳昌碩), 〈구슬 빛(珠光)〉, 1920, 종이에 먹, 색, 139.6×69cm, 중국미술관.
우창숴(吳昌碩, 1844-1927)는 중국 근대 미술사에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예술 거장이다. 그는 서예의 필법과 금석(金石)의 매력을 회화에 접목하여 활달하고 호방한 예술 스타일을 형성하였다.
〈구슬 빛(珠光)〉(1920)은 등나무를 묘사한 작품으로, 붓놀림은 겉보기에는 무질서하고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숙련된 기법이 드러나며, 지렁이가 기어가고 뱀이 놀라는 듯한 기세와 리듬이 느껴진다. 화면의 전체적인 구성은 풍부하고 생동감 있으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어 호쾌하고 자유로운 예술적 개성을 보여준다. 이는 그의 만년(晩年)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치바이스(齊白石) 〈연꽃과 원앙(荷花鴛鴦)〉, 1955, 종이에 먹, 색, 137.7×67.8cm, 중국미술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는 20세기 중국 예술의 대가로, 시(詩)·서(書)·화(畫)·인(印)을 모두 겸비하고 있으며,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를 두루 잘 그렸고, 공필화와 사의화를 함께 중시하였다.
〈연꽃과 원앙(荷花鴛鴦)〉(1955)은 그가 만년에 자주 그렸던 화조화 소재로, 그림 속 연잎은 먹의 농담이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고, 연꽃은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묘사되었다. 붉은 꽃과 먹빛 잎이 서로 어우러져 흥미로운 조화를 이루며, 화면은 화려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을 준다. 연 줄기는 주로 마른 붓으로 표현되었고, 두 마리의 원앙은 깃털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흰 물결 위에서 더욱 또렷하게 돋보인다. 전체 그림은 고상하면서도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며, 간결한 이미지와 적절한 밀도의 구도로 소박하고 순수한 예술적 분위기를 풍긴다.
쉬베이훙(徐悲鴻), 〈전마(戰馬)〉, 1942, 종이에 먹, 색, 110.5×61.3cm, 중국미술관장.
쉬베이훙(徐悲鴻, 1895-1953)은 평생 서양화의 사실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중국화를 개혁하는 데 힘썼으며, ‘서양화로 중국화를 윤택하게 한다’라는 평을 받은 중국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미술 교육가, 한 시대의 미술 거장이다.
〈전마(戰馬)〉(1942)는 그가 말을 소재로 그린 동물화 중 하나로서, 중일 전쟁이 교착 상태에 있던 시기에 창작된 작품이다. 전투마가 발걸음을 멈추고 전장의 황량한 풍경을 갑작스럽게 되돌아보는 모습을 담았으며, 전투마의 위엄 넘치는 기세는 자연이 근원이나 그의 독특한 창작 기법에서 비롯되기도 하였다. 화가는 빛에 의한 명암의 대비를 활용해 대담한 흑백의 조화를 이루었으며, 간결하고 힘 있는 필치로 선을 그리며 번짐 기법을 사용하여 거친 골격과 생동감 넘치는 수묵 효과를 만들어 냈다. 이는 강렬한 시각적 충격과 함께 강한 정신적 감동을 준다.
린펑몐(林風眠), 〈물수리와 작은 배(魚鷹小舟)〉, 1961, 종이에 먹, 색, 31×34.5cm, 중국미술관.
린펑몐(林風眠, 1900-1991)은 현대 화가이자 예술 교육가로, 그의 수묵화는 간결한 선과 대담한 먹의 사용, 리듬감 있는 구성을 통해 고요한 물새와 황량한 자연 풍경을 표현하며, 내면의 고독과 민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
〈물수리와 작은 배(魚鷹小舟)〉(1961)는 이러한 특징이 반영된 대표작 중 하나로, 몇 번의 옅은 먹 터치로 하늘과 땅, 물을 넓고 멀리 있는 듯한 느낌으로 묘사하였다. 굵은 먹으로 표현한 작은 배와 갈대, 서로 의지하는 두 마리의 물수리는 생동감이 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여운을 남긴다.
리커란(李可染), 〈용수와 물소(榕树水牛)〉, 1961, 종이에 먹, 색, 69.2 × 46cm, 중국미술관.
리커란(李可染, 1907-1989)은 산수화와 인물화에 능하였으며, 특히 소를 그리는 데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묵직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지니며, 시대적 특색과 독특한 예술적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용수와 물소(榕樹水牛)〉는 먹을 주 색조로 하여 여백과 간격을 통하여 대조를 이루는데, 마치 태극도의 음과 양이 서로 맞물리는 듯한 구성을 보여준다. 거대한 먹으로 그린 용수가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며,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면서도 빛이 스며들 듯 투명한 느낌을 준다. 하단부에서는 여백을 물로 표현하였고, 두 명의 장난꾸러기 목동이 물소 위에 타고 있어 마치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다. 이 장면은 시골의 소박한 정취를 가득 담고 있어 순수한 동심과 함께 화가의 필묵에서 느껴지는 천진난만한 매력을 드러낸다.
「중국화 2부. 다양성과 번영」에서는 현대 중국 수묵 예술의 발전은 풍부한 문화적 토양의 양육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중국 예술가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혁신적인 기법을 더해 새로운 시대의 역동성과 찬란함을 그려냈다. 새로운 조형과 회화기법을 중국화에 적용한 후밍저(胡明哲), 공필화조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쑤바이쥔(蘇百鈞), 현대적인 수묵채색 작품의 대가 추이진(崔進) 등의 작품을 통해 중국 전통의 수묵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맥락과 중국 예술의 확장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필묵은 시대를 따라야 한다” 필묵을 통해 시대의 풍모를 드러내고, 대중의 마음을 기르며, 민족의 자신감을 고취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새 시대의 예술적 명제이다.
중국 현대 수묵 예술가들은 시대 발전의 목격자이자 기록자로서, 각자의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시대의 맥박을 파악하고, 시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시대의 과제에 답하며, 시대의 미적 요구를 반영한 예술 창조의 정점을 발현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들은 시대의 정신적 내포를 발굴하고 표현하며, 조국의 웅장한 경관을 그려내어 다양한 각도에서 조국의 찬란한 발전상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작품은 고양된 정서와 개척 정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고정관념을 깨고 혁신적인 기법으로 새로운 시대의 역동성과 찬란한 성취를 노래한다. 시대와 보조를 맞추며 새로운 시대의 위대한 창조 속에서 창작 주제를 발견하고 혁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켜 현대 중국 수묵 예술의 다양성과 번영을 드러내는 현대 중국의 수묵 예술가들. 이들이 지금, 중국식 현대미술 발전의 새로운 장을 써 나가고 있다.
추이전콴(崔振寬), 〈쯔양 2(紫陽之二)〉, 2000, 종이에 먹, 192×140cm, 중국미술관장.
추이전콴(崔振寬, 1935-)은 산시성(陝西省) 국화원의 일급 미술가로서, 그의 작품은 진한 먹으로 그린 산수화를 특징으로 한다. 이 작품은 전통 중국화의 다양한 묘법(描法)과 준법(皴法), 점법(點法)을 사용하여, ‘다른 사물’을 통하여 ‘이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중국화의 비유적 조형 의식을 반영하였는데, 이러한 필묵의 내포는 단순한 회화 형식을 넘어선다. 다양한 준법과 점, 선으로 응축된 자연 풍경은 화가가 필묵의 언어를 탐구하고 실험한 결과로, 지리적 지형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묵의 형식과 기호가 예술적 탐구의 주제가 된다.
팡쥔(方駿), 〈연기 나는 마을, 강남에 기대다(煙村倚江南)〉, 2008, 종이에 먹, 색, 56.28×120.4cm, 중국미술관.
팡쥔(方駿, 1943-2020)은 난징예술학원 교수로서, 이 작품은 절벽처럼 솟아오른 산과 느긋하게 흩어지는 구름, 간간이 보이는 마을의 집들이 어우러져 마치 무릉도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 세상의 삶이다. 그의 산수화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품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림 속 ‘강남(江南)’은 단순한 추상적 형식에 그치지 않으며, 그의 삶과 함께 울고 웃는 고향과 여정의 애환을 담고 있다. 이는 그가 작품의 낙관에 적어 놓은 시구와도 같다. 이 시구는 작가가 강남산수에 대해 가지는 정서적 함축을 잘 표현한다.
하늘빛이 논밭을 비추고, 가벼운 구름이 들판에 내려앉네.
한 줄기 푸른 산이 멀리서 보이고, 연기 나는 마을이 강남에 기대어 있네.
(天光映水田, 雲輕落陌阡. 一抹蒼山遠, 煙村倚江南.)
쑤바이쥔(蘇百鈞), 〈가을 운치(秋韻)〉, 1993, 천에 색, 180×150cm, 중국미술관 소장.
쑤바이쥔(蘇百鈞, 1951-)은 중앙미술학원 교수로서, 송원(宋元) 공필 화조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왔다. 〈가을 운치(秋韻)〉(1993)는 명말 이후 등장하여 링난화파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한 당수(撞水), 당색법(撞色法)을 사용한 전형적인 기법이 돋보인다.
그는 서남쪽 들판을 산책하던 중 황금빛 가을 노을이 익은 콩깍지 위에 내려앉아 빛나는 장면을 보았고, 이를 화폭에 담아내었다. 이러한 자연 현상의 유기적 결합을 바탕으로 빛과 그림자, 명암을 세심하게 처리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선으로 나뭇가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뒤쪽의 리드미컬한 느낌을 주는 오리를 배경으로 전체적으로 매우 감동적인 장면을 완성하였다.
추이진(崔進), 〈노방(怒放)〉, 2019, 종이에 먹, 색, 116×64cm, 중국미술관 소장.
추이진(崔進, 1966-)은 중국예술연구원 국화원 상임 부원장으로서, 그의 창작은 주로 현대적인 채색 수묵 작품을 위주로 한다. 〈노방(怒放)〉(2019)은 꽉 찬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인물은 여러 겹의 사물 속에 숨어 있다.
그의 필묵 속 인물들은 고요한 기운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미학의 깊은 내면에서 시적 정취와 낭만을 추구한 결과이다. 이는 화려함이 물러난 후 찾아오는 평온함과 담백함, 고요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전체는 형식적으로는 자유롭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어 관람자는 이 독특한 화면 구성을 통해 작가의 세계로 이끌린다.
톈리밍(田黎明), 〈먼 산(遠山)〉, 1996, 종이에 먹, 색, 66×88cm, 중국미술관 소장.
톈리밍(田黎明, 1955-)은 중국예술연구원 전 부원장이다. 그의 인물화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평온함을 탐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으로 현실을 관찰한다.
〈먼 산(遠山)〉(1996)은 그의 〈초상 시리즈〉 수묵화 중 하나로, 주로 이미지 기법과 담백한 색조를 사용하여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융합하였다. 나무 아래에 기대어 있는 소녀는 자연 속에서 자라나는 듯하다. 색채는 신선하고 밝으며, 차분한 필치에는 도시의 번잡함과 소음 속에서 고요한 삶을 갈망하는 화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천다위, 〈끓어오르는 마강〉, 1960,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쫑치샹, 〈쟈링강의 뱃사공〉, 1945,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자오룽, 〈하얼빈, 안녕하세요〉, 2014, 종이에 수채, 중국미술관.
궈이충, 〈바다와 함께 춤을〉, 1996,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티웨이(特偉, 1915-2010), 〈무뽑기(拔蘿蔔)〉, 1954, 종이에 색, 중국미술관.
진메이성(金煤生, 1902-1989), 〈채소가 무성하고 박이 풍성하여 수확량이 높다(茶瓜肥産量)〉, 1955, 종이에 색, 중구미술관.
김기창, 〈군마(群馬)〉, 1955년, 종이에 먹, 색, 4폭 병풍, 212×122cm(4), 국립현대미술관.
허백련, 〈두백농인(頭白農人)〉, 1973년,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안상철, 〈영 62-2〉, 1962, 종이에 먹, 색, 돌, 국립현대미술관.
정종미(鄭鐘美, 1957-), 〈보자기 부인〉, 2007, 닥종이, 천, 인료염료, 187×187cm,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조풍류, 〈종묘 정전〉, 2023, 천에 색, 개인 소장.
송수남, 〈붓의 놀림〉, 1997, 종이에 먹, 국립현대미술관.
석철주, 〈외곽지대〉, 1981, 장판지에 먹, 국립현대미술관.
안중식, 〈백악춘효(白岳春曉)〉, 1915년, 종이에 먹 색, 국립중앙박물관.
김보희, 〈항착〉, 1913, 패널에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도영, 〈기명절지〉, 1927년,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최석환, 〈묵포도도(墨葡萄圖)〉, 1877년, 종이에 먹 색, 119×365cm, 국립중앙박물관.
노수현, 〈망금강산(望金剛山)〉, 1940년, 종이에 먹 색, 34.5×139,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허건, 〈풍속도〉, 1945년, 종이에 먹 색, 개인 소장.
변관식, 〈금강산 구룡폭포〉, 1960, 종이에 먹.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은 먹을 엷게 발라 윤곽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진한 먹을 칠해 나가는 방식으로 적묵법을 활용했다. 또한 그렇게 그려진 선 위에 진한 먹을 튕기듯 찍어 선의 형상을 파괴하면서 리듬감을 주는 특유의 파선법을 선보였다.
금강산 외금강의 구룡폭포를 묘사한 대표작 중 하나로 사실적으로 표현된 바위와 폭포의 수직적 구성은 극적인 구성을 준다. 나아가 경외하듯 자연을 올려다보는 근경의 인물을 통해 폭포의 크기를 체감할 수 있다. 산 아래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연연하고 갈등하는 그것이 별일 아니라는 듯 폭포는 단단하게 떨어지고 세상에 부딪치고 흐른다. 폭포를 보며 겸손을 배우고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폭포는 누군가 미워했던 마음을 씻어준다. 작고 부족한 인간의 품을 감싸안으며 유연하게 살아갈 것을 일깨운다. 겸손한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자연이 주는 교훈이다.
박생광, 〈제왕〉, 1982, 종이에 색, 136×138cm, 국립현대미술관.
김은호, 〈애련미인도〉, 1921년, 비단에 색, 144×51.5cm, 국립현대미술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는 근대기를 대표하는 수묵채색 인물화가이다. <애련미인도(愛蓮美人圖)>는 김은호의 매우 희소한 초기작이며 《제1회 서화협회전》(1921)에 출품한 것으로 주제는 전통적인 사녀도를 따랐다. 작가는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얼굴은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초상화 기법을 사용했고, 연꽃과 괴석, 난간과 다리 등은 전통적인 화풍을 따라 정교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김은호의 절충적인 양식은 이후 일본화의 영향을 받아 점차 섬세하고 평면적인 미인도로 변모하게 된다.
이유태, 〈인물일대(人物一對): 탐구(探究)〉, 1944년, 종이에 색, 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 〈노점(露店)〉, 1956년,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우향 박래현(1920 ~ 1976의 ‘노점(露店)’은 6.25전쟁이 끝난 뒤 노점상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박래현은 우리 전통문화를 서구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으로 이 그림에서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의 화풍이 느껴진다. 박래현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화가 김기창과 결혼하였다. 대표작품으로 ‘이조 여인상’, ‘작품 14’등이 있다.
천경자, 〈노오란 산책길〉, 1983, 종이에 채색, 97x74cm, 개인 소장.
손동현, 〈왕의 초상(피.와이.티.)〉, 2008, 종이에 먹, 색, 194×130cm, 국립현대미술관.
서새옥, 〈사람들〉, 1988, 종이에 먹, 187×187cm, 국립현대미술관.
이철량, 〈도시새벽〉, 1986, 종이에 먹, 국립현대미술관.
허진, 〈유전(流轉) 2〉, 1991, 종이에 먹, 색, 개인 소장.
천즈포, 〈기쁨을 알리는 까치〉, 1959,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리쿠찬, 〈연꽃과 물총새〉, 연도 미상,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판제쯔, 〈석굴 예술의 창조자〉, 1954,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양즈광, 〈광산의 새로운 일꾼〉, 1972,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장딩, 〈항국의 작은 마을〉, 1950,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린쑹녠, 〈남국의 붉은 여름 과일, 여지〉, 1973,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우쭤런(吳作人, 1908-1997), 〈고비사막길(戈壁行)〉, 1978,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한궈전(輔国臻, 1944-1998), 〈인민가수 리유위안(人民歌手 李有源)〉, 1976, 종이에 먹 색, 130x190cm, 중국미술관.
랴오빙슝(廖冰兄, 1915~2006), 〈자조(自嘲)〉, 1979,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항아리 모양으로 웅크린 한 남성. 그 앞엔 쩍 갈라진 항아리가 있다. 자신을 가뒀던 항아리가 깨졌는데도 그대로 웅크린 이 사람. 그림 위엔 ‘4인방이 사라진 뒤에야 나 자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비웃으려 이 글을 쓴다’고 적혀 있다. 4인방(四人帮)이란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1966-1976) 때 권력을 장악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측근, 마오쩌똥의 후처 장칭(江靑, 1914~1991)ㆍ야오원위안(姚文元, 1931~2005)ㆍ왕훙원(王洪文, 1935~1992)ㆍ장춘차오(张春桥, 1917~ 2005)를 일컫는다.
오랫동안 항아리에 갇혀 있다가 항아리가 깨진 후에도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랴오빙슝은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만화를 창작하는 유명한 만화가로 그의 작품은 내용이 진지하며 소박한 스타일 속에서도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을 지닌다. 작가는 날카롭고 힘있는 필치로 자신을 변화시킨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자조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혼란과 우울을 표현하였다. 그는 이러한 솔직한 자기고백을 통해 사회와 시대상황을 반성하고 이를 통해 굳어버린 동료들을 깨우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문득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힌 사회, 불통의 시대다. 온ㆍ오프를 막론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고 무시하고 지탄한다. 무리지어 조롱한다. 정치ㆍ사회ㆍ젠더ㆍ환경ㆍ소수자 갈등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서로 자기가 옳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반대편에게 홍위병 노릇을 한다. 점점 목소리를 숨기고 고개를 움츠린다. 어디가 선(善)이고 악(惡)인가. 무엇이 정의(正義)고 불의(不義)인가. 같은 신(神)을 믿고도 다른 것을 기도한다. 애국(愛國)의 이름이 다른 색깔 다른 모습이다.
전시해설 프로그램이 매일 세 차례 운영되고,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전시 감상 자료도 제공된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웨이산 중국미술관장은 “풍부한 역사적 깊이를 지닌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 유전자인 수묵 예술을 통해 한·중 양국의 문화적 공명을 증진하고, 양국 국민에게 아름다운 향연을 선사할 것”이라며 “이번 전시가 한·중 회화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중 양국의 문화예술 협력을 공고히 하며 전시 연계 워크샵 및 국제학술대회 등을 통해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를 전개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동아시아 미술에 대한 연구와 협력의 지평을 더욱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정보》,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