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 친해지기 - 손영
무례한 놈이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다
질기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너는 잠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잠보다 먼저 자리에 눕는다
다산이 본성인 너는 끊임없이 새끼를 퍼트리고 뽑아 놓으며 언제 다시 심어져 밤이건 낮이건 쉬지 않고 자란다 침대의 구석에서 더 잘 자란다 방금 태어난 것들은 더 힘이 쎄다 팔을 끌기도 하고 어깨를 붙잡고는 골목 골목으로 나를 끌고 다니다 창틀을 타고 올라오는 덩굴손
너의 따뜻함이 내 목을 조른다 환한 웃음이 가시 투성이 줄기에서 만져진다 너는 파도가 되기도 빙하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되어 떠다니다가 번져가는 근육질의 풀이 된다
잡초는 잡초를 끌고 와 잡초에 갇히고 잡초를 무너뜨리며 자리를 넓혀 간다 형체도 없이 목을 조르고 다리를 감는 이 잡다한 생각 뿌리에게 손을 내민다 너를 꽃이라는 상상을 하며 네가 온 그리운 그곳까지 함께 갈 것이다
나는 잡초의 손을 잡고 이 밤을 오래도록 걷는다
ㅡ계간 《열린시학》(2024, 가을호) ****************************************************************************************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 잡초일 것입니다 저마다 이름이 있지만, 그 종류가 많다는 이유로 제대로 불러주지 않습니다 은퇴 이후 십수년 째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게 파종하고 돌보는 것보다 수확할 때까지 끊임 없이 나타나는 잡초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먹을 것이니 농약을 멀리하고자 하면 푸성귀와 잡초 구별이 안 됩니다 올해는 단 한차례도 제초제를 치지 않았더니 이랑마다 잡초가 무성했습니다만 나중에는 뽑기보다 긁어서 보이지 않게 만들며 수확을 기다렸지요 큰밭을 부치던 이웃은 감자를 캔 뒤에 교통사고로 잠시 후작을 않아 온통 풀밭이 됐습니다 10월 첫주부터 고구마를 캐기 시작한 텃밭에도 어느새 잡초가 무성해졌네요 무서리 내렸나본데 이 넘들은 되레 싱싱해지며 꽃도 피웁니다^*^ 그래도 무와 배추 이랑에는 잡초가 발붙이지 못하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눈치껏 숨탄것 특유의 생명력을 뽐내는 잡초라면 굳이 살생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늦가을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