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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사통팔달(四通八達),
막힌 곳이 없이 쭉 뻗어 있는 청석대로(靑石大路)와 그 좌우에 처마를 잇대고 늘어서 있는 무수한 전각들. 간간이 드러나 보이는 울창한 수림(樹林)들은 이국(異國)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고대(古代)에는 태사국(太沙國)으로 지칭되었고, 당대에는 파사국(波沙國)으로 명명되어 있으며 또 무림에서 백만마국으로 불리우고 있는 곳.
파사국의 신민들은 대대로 천연적인 풍요로움으로 인해 그 성품이 온화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파사국은 무서운 긴장을 담은 전운(戰雲)에 휩싸여 있었다.
이럴 즈음, 이 파사국은 단신으로 사막을 횡단해 먼 이국에서 찾아온 한 명의 이방인을 맞게 된다. 바로 옥검령이었다.
"과연 천하제일의 부국(富國)이라 불릴만 하구나."
옥검령이 파사국의 경계로 들어선 것은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 저녁 무렵이었다.
아무도 대동하지 않은 채 단신으로 파사국으로 들어선 그가 첫번째 받은 느낌은 오직 감탄, 그것이었다.
사방에 휘황하게 밝혀져 있는 궁등(宮燈)들과 낮이나 다름없이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실로 불야성(不夜城)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옥검령을 맞이한 것이었다.
이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파사국은 사통팔달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그곳 특산물 또한 천하제일로 손꼽히고 있으니만큼 사시사철 수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고 있어 밤이 되어도 결코 어둡지 않은 것이다.
감탄의 눈으로 천천히 백만마국 깊숙이 걸음을 옮기던 옥검령의 눈이 문득 이채를 발했다.
사면팔방으로 뻗어가던 청석대로가 기이하게 한곳을 향해 집결되어 있는 형상이었는데 청석대로의 그 끝에 한 채의 궁이 우뚝 서 있었다.
허나 궁이라기에는 너무도 화려하다.
새파란 초지가 양탄자처럼 깔려있는 초지 위에 거대한 몸체를 누이고 있는 수정궁(水晶宮), 청자대리석과 수정으로만 이루어진 실로 거대한 위용의 대궁(大宮)인 것이다.
백만마국.
천하제일부국 파사국 내에 하늘로 존재하고 있는 단체, 바로 파사국의 영원한 절대자이며 파사국 모든 신민들의 꿈속의 지배자가 바로 이 백만마국이었다.
그 거대한 백색의 대궁을 바라보며 옥검령이 고개를 내저었다.
"막상 오기는 했으되 어떻게 이곳의 정세를 알아보아야 할지 난감하군."
옥검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청석대로의 양옆으로는 무수한 점포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는 주루와 기루들 또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배부터 채운 뒤 몸으로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옥검령은 눈에 보이는 주루들중 가장 큰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루는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그야말로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주루에 들어선 옥검령은 간신히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 뒤 물끄러니 창밖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창으로 내다보이는 파사국의 모든 정경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대로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밝은 표정이었다.
허나 대로를 오가는 그 사람들을 보며 옥검령은 전혀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양지가 있으면 음지 또한 존재하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곳이 양지라면 반드시 이곳에도 그 반대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옥검령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곳에 가보아야만 진정한 파사국 전체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대충 요기를 한 후 옥검령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허나 이 순간 기이한 느낌이 사방에서 밀어닥치지 않는가.
스슷...!
수십여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소리없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그들은 일체의 기척도 없이 이미 옥검령이 앉아 있는 주루의 전후좌우를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단 한 명의 모습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설마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벌써 알고 대처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옥검령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주루의 밖으로부터 기계적인 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십여 명이 보조를 맞춰 걷는 걸음소리였다.
걸음소리의 주인공들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열 명이었는데 다섯 명씩 두 줄로 나뉘어진 채 주루의 입구로부터 들어서고 있었다.
간편한 청의무복의 걸친 중년인들이었다.
"백만마국의 고수들이다!"
"내궁의 무사들이다."
그들이 위압적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대한 주루안의 주객들은 일제히 탄성을 터트렸다. 중인들은 별반 놀라거나 긴장하지 않은 채 그들을 대하고 부러워 하는 표정들 뿐이었다.
허나 열 명의 무인들 뒤를 따라 한 명의 청년이 들어선 순간 그때까지도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던 사람들중 대부분이 사신(死神)을 만난 듯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황의를 걸친 이십대 후반의 청년.
뒷짐을 진 채 두 줄로 도열한 채 늘어서 있는 열 명의 무인들 사이로 천천히 들어서고 있는 그의 기태는 범상치 않았다.
뒷짐을 진 그의 손에는 한 자루 죽도(竹刀)가 아무렇게나 쥐어져 있었다.
죽유(竹儒) 소사.
그렇다! 대군황 신도능비의 삼대제자 중 두번째 인물이며 또한 백만마국 서열 칠위(七位)의 고수가 바로 그인 것이다.
'엄청난 고수다. 나조차 일백 초 안에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옥검령은 죽유 소사가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크게 긴장해 있었다. 영락없이 그 자신때문에 이런 완벽한 포위망이 구축된 것으로 짐작한 것이었다.
팟!
파파파팟!
이때, 죽유 소사가 주루안에 들어서 멈춰서는 순간 열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흩어져 각자 창문과 입구를 막아섰다.
그들의 움직임은 실로 기민하기 이를데 없어 주루안의 인물들중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포위망이 구축된 것은 그야말로 눈깜짝 할 순간의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루안의 상인들이나 주객들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던 것이다.
죽유 소사의 눈길이 천천히 주루내의 인물들을 쓸어보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에 그의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이 꽤나 길어 그의 시선을 대한 사람들이 지루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이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인은 내궁(內宮)에서 나왔소이다."
마치 책을 읽는 듯 낭랑하면서 청아한 음성이었다. 그 음성은 너무도 평온해 도저히 살기를 느낄 수 없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본국의 사람들 이외에도 타지에서 오신 분들이 많을 것...., 본인은 모처럼 본국을 찾아주신 여러분들께 매우 죄송스러운 부탁을 드리러 왔소."
죽유 소사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삼엄한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일기 시작해 감히 대하기 어려운 위엄이 형성되고 있었다.
"사실은 조금 전에 불순한 의도로 본국에 잠입한 인물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소."
이때, 창가쪽의 탁자에 앉아 있는 대여섯 명의 상인들이 일제히 표정을 굳혔다. 그들은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황급히 전후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허나 이내 그들의 눈에 절망의 빛이 솟아났다.
죽유 소사의 수하들만 해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포위망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고수들이 주루의 외곽마저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죽유 소사의 눈이 자연스럽게 한 무리의 상인 집단에 고정되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인 일행은 누가 보아도 영락없이 파사국과 다른 나라 사이를 오가며 물품을 사고 파는 상인들로 보였다. 전혀 의심할 데가 없는 행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유 소사의 눈은 계속 그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해서 이미 내궁에서는 금령(禁令)을 내렸습니다. 하니 여러분들께서는 불편하시더라도 잠시만 참아 주셔야겠습니다."
한 명의 주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잠시라면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주객에게 고개를 돌린 소사의 눈이 부드러워졌다.
"물론 그들을 잡아낼 때까지 여러분들은 어느 누구도 이곳을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주객이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일어섰다.
"하지만 난 오늘 오후에 중대한 약속이 있소. 반시진 안에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소사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맺혔다. 더할 나위없이 부드러운 미소였다. 허나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비정하기 그지없어 그의 이런 부드러운 미소가 오히려 섬뜩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약속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죽은 다음에는 어느 누구도 약속을 지킬 수 없는 법이 아니겠소?"
"......!"
주객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소사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다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부드럽기 그지 없는 소사의 표정에서 단호한 살기를 느낀 때문이었다.
소사가 다시 중인들을 쓸어보며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크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장담하건대 우리는 그들을 지금 곧 잡아내고 말 것이니 말이오."
그의 말에 주루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소사는 다시 질문을 던졌던 주객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이름이 상진걸이 맞소?"
질문을 받은 주객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크게 놀라 더듬거렸다.
"그, 그렇소만... 귀하께서 어떻게 날 알고 있단 말이오?"
소사의 말이 이어졌다. 책을 읽는 듯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말투였다.
"당신의 나이는 지금 서른넷, 중원 사천성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까지는 그곳에서 자랐으나 그 뒤로 본국으로 와 성장했으며 십 년 전부터 장사를 하기 위해 중원과 본국을 오가지 않았소?"
"......!"
"그리고 반시진 뒤에 있다는 약속은 바로 당신의 정혼녀와 만날 약속이 아니오?"
주객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러자 소사가 싱긋 미소했다.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소. 우린 이미 본국의 신민이 아닌 사람들중 며칠 사이에 본국에 들어온 모든 외지인들에 대한 조사를 끝마쳤으니 말이오."
창가에 앉아 있던 상인무리들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의 정체가 발각되었다고 판단해 탈출을 감행하기로 작정한 표정들이었다.
바로 그 순간 소사가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알기로 당신들은 사산의 고수들인데 어째서 변복을 하였소? 비록 사산이 본국과는 적대관계라고 해도 그대들이 당당히 오기만 했어도 우린 크게 환영했을 것이오."
"그, 그건......!"
상인들로 변장하고 있던 사산의 고수들이 당황을 금치 못하며 더듬거렸다.
파파파팍!
쐐애액!
동시에 그들은 일제히 몸을 솟구쳤는데 이미 각기 다른 방향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어 이 한동작만으로도 그들이 평범한 고수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기이하게도 소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모두의 눈에는 단지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비쳐졌다.
눈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한 자루 죽도를 쥔 채 뒷짐을 지고 있는 그의 손이 미미하게 움직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쐐애애액!
돌연 한 자루의 죽검이 허공을 미끄러져갔다.
죽검은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미 전면에서 창쪽으로 뛰쳐 나가고 있는 사산의 고수 한 명을 꿰뚫고 있었다.
뿐이랴!
예의 죽검은 한 명의 목덜미를 꿰뚫은 후 강력한 힘으로 튀어나와 호선을 그리며 크게 방향을 바꿔 이번에는 좌측으로 도주하고 있는 또다른 사산의 고수를 향해 쏘아져 가고 있었다.
퍼억!
한 자루 죽검이 손잡이까지 살아 있는 사람의 등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죽검은 한 사내의 등을 완전히 관통해 앞으로 빠져나온 후 살아 있는 뱀처럼 방향을 바꿔 세번째 사내를 향해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정적이 내려앉은 것은 그야말로 숨 한 번 몰아쉴 짧은 시간 후의 일이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린 사산의 고수는 모두 여섯 명이었다. 허나 그들은 모두 같은 병기에 의해 거의 같은 시간에 절명했다.
가히 백만마국의 절정급 고수다운 무위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쪽에 묵묵히 앉아 이 광경을 대한 옥검령의 눈에 감탄의 빛이 스쳐갔다. 안도의 빛도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단신으로 오기를 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들어서기 무섭게 저들처럼 발각되어 곤욕을 치를 뻔 하지 않았는가!'
사건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여섯 구의 시체를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이것은 백만마국의 정보망이 어떠하다는 걸 입증하는 것으로서 이 모든 걸 지켜본 옥검령으로서는 새삼 백만마국의 힘을 피부로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시체들이 치워지고 주루안이 다시 떠들썩해졌을 무렵 옥검령은 주루를 떠났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백만마국의 화려하고 부유한 도읍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받는 계층이 살고 있는 빈민촌이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