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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창동염광교회 김진철목사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시몬입니다. 매우 흔한 이름이지요. 아마도 여러분들은 저의 이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의 고향은 '구레네'입니다. '구레네'가 어디쯤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알기 쉽게 말한다면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한 한 도시입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 말하면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트리폴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바다인 지중해에서 15Km정도 떨어진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원래 유대인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저 멀리 팔레스틴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민세대인 셈입니다. 어쨌든 저는 구레네에서 그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그 푸르른 하늘과 울창한 수풀은 언제나 저의 가슴 깊숙한 곳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멀리 내다보이던 지중해의 물결은 저에게 매우 친숙한 친구와도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도 여러분처럼 이런 저런 꿈이 많았습니다. 유대인의 가문에서 태어난 저에게 부모님들은 많은 기대를 하셨지요! 그 기대 가운데 으뜸은 제가 '랍비'라고 하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랍비라고 하는 고지는 제가 인생 전체를 걸고서라도 점령할 수 없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저 안식일이면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을 찾아 율법을 배우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 되면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것이 저의 신앙의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유년시절 보들보들 하던 나의 피부는 어느 덧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 위해 부모님께서 정혼해 놓으신 여인과 결혼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하는 두 아들을 저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녀석들을 품에 안았을 때에 얼마나 기쁘던지요! 마치 세상을 품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후 아이들은 건강하게, 그리고 유대인들이 중요시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잘 커주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저의 인생은 정말로 평이하고, 그다지 들여다 볼 것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저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가부터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틴에서 가장 천시받는 땅 가운데 나사렛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란 청년 한 사람이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 민족은 구약시대 이래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민족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 자신을 메시야라고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당시 우리는 그 일에 있어 어느 정도 신물이 나있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소문이 들릴 때에 어느 정신병자가 또 등장을 했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면 이 소문도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 사람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입으로 가르치는 말씀이 꿀송이 같다느니, 각종 병자들이 이 사람을 통해 고침을 받았다느니, 아니 심지어는 죽었던 자도 살려냈다는 등등의 소문이 무성해져 갔습니다. 저 역시 소문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절 때가 되어 예루살렘에 가면 혹시 이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그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그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만을 안 것이 고작입니다. 그저 그렇게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습니다. 제가 예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지 3년이 채 못되었을 무렵입니다. 유월절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기 위해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 '예수'라고 하는 사람에 관한 무성한 소문이 또 제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며칠 전에 나귀 새끼를 올라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왔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환대했는지 마치 왕의 행렬을 보는 것 같았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평소 데리고 다니던 제자가 12명이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의 스승을 돈을 받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 넘겼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제 곧 사형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소문을 듣게 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도 뭐 별 볼일 없는 사람 아니야! 지금까지 스스로 메시야임을 자처했던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네. 이 사람 역시 자신이 영웅인 것으로 착각했던 사람이었어." 이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오전 일찍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올라가 제사드리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뒤로 한 채 말입니다.
막바지 제사준비를 위해 여관에서 나와 시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시장으로 가는 길이 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사람들 어깨 너머로 앞을 내다본 순간 저는 거기서 매우 처절한 모습으로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가는 한 젊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기다란 가시채로 만들어진 가시관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기나긴 가시의 일부가 머리에 박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그의 옷은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었고, 찢어진 옷 사이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절하던지 저는 절로 눈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곧 이 사람이 내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구레네에서 살면서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를 지금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이 사람에 대한 나름대로의 동경이 있었습니다. '혹시나'라고 하는 바램이 저에게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날 저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그 모든 것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 역시 내가, 아니 우리가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에 불과했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는 유월절 제사준비나 해야겠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막 그곳을 떠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쿵" 무엇인가 육중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요! 그때 바로 저의 눈앞에 예수라는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가 지금까지 지고 왔던 커다란 십자가가 옆으로 넘어져 있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의 옆에서 빨리 일어날 것을 재촉했습니다. 험한 말을 섞어 가면서 채찍을 내리치면서 예수를 재촉했습니다. 예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시금 십자가를 지려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십자가를 질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막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봐, 당신! 이리 좀 와!" 예수를 쳐다보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디를 쳐다보는 거야. 바로 당신 말이야!" 저는 곧 로마 군병의 소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 저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 말입니까?" "그래. 당신! 당신이 저 예수 대신 이 십자가를 져야 되겠어." 이렇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가 미처 변명도 할 겨를도 없이 로마 군병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들어 저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갑작스런 일을 당한 저의 어깨는 천근만근을 짊어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불평, 불만을 품고 힘겹게 한 걸음을 뗄 때였습니다. 저의 눈은 땅에 쓰러진 몸을 일으키던 예수라고 하는 사람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그때 저는 참으로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 분의 눈빛이 너무나도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녀리지만 분명하게 그 분의 입가에 미소가 머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온화하고 당당하신지! 제가 조금 전 보았던 처참한 그 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재촉에 저는 십자가를 지고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지고 앞으로 가면서도 힐끔힐끔 바로 저의 뒤를 따라 지친 걸음을 옮기시는 그 분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이 십자가 행진의 종점은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라고 하는 분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 언덕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제 머리를 맴도는 그 분의 온화하고 당당한 얼굴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그처럼 무겁게 느껴지던 십자가의 무게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언덕 꼭대기에 이르렀을 무렵 저의 가슴은 이상한 뜨거움으로 용솟음 쳤습니다. 그 동안 제가 '혹시나'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구세주, 메시야가 바로 이 분이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 용기가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예수', 그 분이 메시야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주변의 환경이 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습니다. 저 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지 하는 마음이 솟구쳤지만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무리들 가운데 저라고 하는 존재는 너무나도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언덕에 올라가자 로마 군병은 저에게서 십자가를 빼앗았습니다. 그들은 뒤따라오시는 예수님을 잡아끌더니 십자가 형틀에 뉘였습니다. 이내 들려온 망치 소리! "쾅, 쾅, 쾅" 저는 지금도 그 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이 못에 박히던 그 소리 말입니다. 그 소리를 듣노라니 어느 새 저는 성난 군중들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로 얼굴을 가득히 덮은 채 말입니다. 수많은 조롱과 멸시의 함성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로 쏟아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입술이 움직였습니다. 그 동안 무던히도 침묵을 지키시던 그 분의 입술이 말문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 구석구석까지 메아리 쳤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던 무리들이 한 순간 움찔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저주하신들 예수님께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난과 고통의 자리에서 오히려 우리들을 염려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조롱하던 무리들은 하나 둘 떠나 갔습니다. 저는 이 위대한 말씀 앞에 무릎을 꿇었구요. 그리고 그 곳에서 계속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말씀들입니다. 저는 이 말씀들이 하나씩 들려질 때마다 더욱 많은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먼발치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조차도 그 분의 고통을 아는지 태양이 빛을 잃고 사방이 암흑으로 가득차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예수님과 하고픈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날 저는 확실히 믿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 분은 바로 죄인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저를 사랑하신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갖은 고통 속에서도 그 분은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기뻐하시면서 말입니다. 훗날 어느 믿음의 사람들은 이 날 제게 이루어진 일을 가리켜 '강요된 은총'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나 적합한 표현입니다. 그 날 제가 짊어졌던 십자가는 정말 강요된 것이었습니다. 저의 의지와 생각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평과 원망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제게는 은총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저같이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로 눈앞에서 뵐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눠 질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날은 제게 은총의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 두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에게 이 날의 경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온화하고 당당하셨던 그 모습을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알렉산더와 루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십자가는 이제 더 이상 수치와 모욕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징표임도 전했습니다. 훗날 저의 두 아들은 부족한 이 아버지보다 더욱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 함께 사역하는 영예를 누렸으니 말입니다(롬 16:13).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까지가 저의 간증입니다. 이제는 이 간증의 후속편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이제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제가 만났던 예수님! '강요된 은총'으로라도 저를 구원하시고자 하셨던 우리 주님의 위대한 사랑의 사건을 이젠 여러분들의 삶에서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여러분이 머무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이 사랑의 드라마의 후속편이 쓰여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요? 이 위대한 십자가의 사건은 저와 여러분만이 아닌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중차대하고 꼭 필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가서 전합시다. 2,000년 전 십자가 위에서 있었던 일이 바로 나를 위한, 당신을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음을 전하고 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