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천광암 칼럼]“1호 영업사원” 윤석열, ‘퍼스트 비즈니스맨’ 바이든
천광암 논설주간
입력 2023-03-13 03:00업데이트 2023-03-13 03:00
바이든, 작년 한미 정상회담 등 계기로
한국 기업서 ‘100조 투자 보따리’ 챙겨
“지원” 약속하고 IRA·반도체법 ‘밑장빼기’
尹 4월 방미 시 바이든 ‘말빚’ 받아낼 책무
천광암 논설주간
사업가를 뜻하는 영어 단어 ‘비즈니스맨(Businessman)’은 원래 영국에서 ‘공직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단어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부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은 어떤 나라보다 공직과 비즈니스 간의 경계가 희미하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비즈니스다(The chief business of the American people is business).” 캘빈 쿨리지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이런 점에서는 외교통이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금까지 한국과의 관계에서 보여 온 행보를 돌이켜 보면 ‘퍼스트 비즈니스맨’이라는 칭호가 가장 어울려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5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대기업들로부터 44조 원의 ‘투자 선물 보따리’를 챙겼다. 이어 지난해 5월 하순에는 한국을 직접 방문해 한국 대기업들의 ‘투자 보따리’를 100조 원으로 키워서 가져갔다. 이런 투자 계획들이 구체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 어떤 외국 기업보다 많은 일자리를 미국 안에서 만들어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기업에 ‘러브콜’을 보낼 때마다 지원 약속을 빼놓지 않았었다. 지난해 방한 당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나서는 “투자에 보답하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도록 지원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고,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해서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양국 간 기술동맹을 통해 더욱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과 공언(公言)은 현재로선 ‘공수표’가 된 상태다. 현대차는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현대차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기습공격”이라고 평가했고, 현대차 공장을 유치한 조지아주 팻 윌슨 경제개발부 장관은 “불이익과 모욕”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나마 배터리 업체들은 IRA의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으나 미국 기업과 중국 기업이 손을 잡고 ‘IRA 우회로’를 찾으면서 자칫하면 헛물만 켠 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는 더 심각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로 각각 33조 원과 22조 원을 투자해 놓은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의 ‘업그레이드’에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될 처지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서 보조금을 받을 경우 영업기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부대조건을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