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 방
-한강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
처음엔 외출할 때마다 놀랐다
이렇게 밝은 날이었구나
겨울까지 익혀왔다
이 방에서 지내는 법을
북향 창 블라인드를 오히려 내리고
책상 위 스탠드만 켠다
차츰 동공이 열리면 눈이 부시다
약간의 광선에도
눈이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햇빛이 돌아왔는지 끝내
잿빛인 채 저물었는지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조금씩 사전을 읽는다
투명한 잉크로 일기를 쓰면 책상에 스며들지 않는다
날씨는 기록하지 않는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문학과 사회’(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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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걸 두고 이런저런 구설이 끊이지 않습니다
혹자는 '역사왜곡'이라 하고, '종북좌파 사고'에 젖은 이념작가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보이듯 '북향'이란 낱말을 놓고도 구설이 생길 듯합니다
제주 4.3사건이나 5.18광주민주화운동 역시 온전한 역사적 평가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모든 역사에는 양지와 음지가 섞여 있는만큼 모든 생각은 그저 개인적 영역일 뿐입니다
먼 옛날 왕조 시대에도 '북'은 임금이 머무는 곳을 상징했습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현대인 중에 '북'은 북한을 상징하는 낱말로 믿고 있는 이도 있을 뿐입니다
시인은 그저 '북'을 밝은 곳으로 이미지화 하고 있을 뿐이고요
'북'과 '밝'은 생각하기에 따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게 문학이고 시상이며 이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