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씀을 볼까요?
고전15:30~34 말씀을 보겠습니다.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우리의 사도께서는 몸의 부활에 대한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진 고린도 교인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
자신의 일을 들어 몸의 부활의 확실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라는 사상을 가진 <에피큐리안>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하여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오늘 즐기자는 미명하에 불의에 빠지게 하고
죄를 경시하게하는 풍조가 일게 하였습니다.
34절을 보면 사도께서는 의를 더럽히고 죄 가운데 행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한 말씀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천명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사도께서는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을 위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오늘도 죽음을 무릎쓰고 의를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먹고 마시며 즐기자 하는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고 죄 짓는 것을 가벼이 여기나
부활의 소망이 있는 자는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함으로 핍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맥 속에서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성도들은 장래 부활을 소망하며 의를 위하여 죽음을 무릎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께서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부활의 소망과 의를 위한 죽음을 불사하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하시는 것입니다.
더불어 사도께서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이라고 까지 확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죽노라"의 헬라어 원어는 <아포드네스코>입니다.
아포드네스코는 사람이나 생물의 죽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죽은 것으로 간주하거나 임박한 죽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생물의 호흡이 끊기는 육체적 죽음을 말할 때는 <텔류타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의 종말을 말합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마2:19)."
즉, 사도께서 이 구절에서 말씀하실 때
아포드네스코한 것은 옛 계명이나 율법에 대해서가 아니라
몸의 부활과 의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과 환란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죽기까지 몸의 부활을 전하고 의를 행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고후4:17)이기 때문입니다.
@frens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산다는 것이 왜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보는지요?
@frens 그럼 뭐예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아라 해서 아멘했더니 율법이라 그러고,
그러면 어차피 의롭다 여김을 받을 터이니 죄를 지어도 되느냐 했더니 죄 짓지 말라고 그러고,
새 계명은 율법이라 그러고,
도대체 뭐를 말씀하시고 싶으시죠?
뭔가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있으신 모양인데,
별도 글로 올려 보시죠!
@frens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대면합지요!
자꾸 대면하면 님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겠지요!
@frens 그리스도인의 자람과 성장은 죄 안짓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도 포함됩니다.
장성한 자는 어린 아이의 것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 안짓고 착하게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배우고 확신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4:21~25)."
@frens 말을 참 거꾸로 하시네요~!
저는 심령이 새로워진 것이나 새 사람이 된 것도 믿음으로 된 것을 말하고,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된 자는 죄 안짓고 착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 안짓고 착하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누가 죄 안짓고 착하게 살아서 자기를 구원한다고 했나요? ㅎㅎㅎ
말 귀를 못알아들으시는 것 같네요~!^^
저는 구원 받은 자의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frens 장성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게 하십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2:19)."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말씀과 반대로 주장하시네요? ㅎㅎㅎ
@frens 성경은 믿음의 초보에게도 의를 율법의 행위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ㅎㅎ
내가 너를 위해 일하니 나를 믿고 의지하여 내 말을 따라오라 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보혜사 성령님이 괜시리 보혜사이시겠습니까? ㅎㅎ
생명에는 생명이 일하고
사망에는 사망이 일합니다.
@frens 생명있는 자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열심히 행할 일입니다.
"Wherefore, my beloved, as ye have always obeyed, not as in my presence only,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빌2:12)."
저와 온 믿는 자는 말씀을 듣고 따르겠습니다.
님은 님의 장성한 생각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frens frens님은 장성한 자라 하면서 말씀의 기본적인 해석도 안되시나 봐요? ㅎㅎ
빌2:12말씀에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온전한 회개에 이르기 위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행하라는 말씀이 아니죠!
"이루라"는 <카테르가조마이>인데,
이 단어의 본래 뜻은 "행하다(work out)", "실천하다(perform)"라는 뜻입니다(롬1:27;7:15-18; 엡6:13).
이는 곧 구원받은 것을 행하라, 구원을 실천하라,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라(live out)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열매를 맺거나 결과를 제시하라(produce, manifest)"는 뜻입니다.
구원의 결과물을 제시하고 나타내고 구원받은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frens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전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나 공로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오늘 성경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frens님 처럼
두려움과 떨림으로 최선을 다하여 온전한 회개에 이르기 위하여 열심히 행하라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라는 말씀일까요?
@frens 죄 짓고 사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구원이 없죠!
@frens 말씀 드렸지요?
천편 일률적으로 말씀을 적용하지 마시라고요!
믿음이 있더라도 그 믿음이 미약하거나 연약한 자의 분량이 있고,
믿음이 없는 자 혹은 믿음이 허락되지 않는 자의 행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누구의 믿음에 대한 재판자로 세우심을 입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형제들 중에 혹이 믿음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는지를 돌아보아
두렵고 떨림으로 서로 격려하며 도우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교회를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차지 못했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이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믿었다고 합시다.
그후에 성장하며, 말씀도 듣고, 성경을 읽습니다.
frens 님이나. crystal sea 장로님은 구원받는 다른 복음은 없다는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여야 하는데, 말씀보다 다른 복음을 붙든 것입니다.
여기서 그 동안의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었다, 자기 스스로 착각한 신념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불법신앙, 저주받는 다른 신앙으로 빠졌기에 나올 마음도 없고, 나오지 못합니다.
장로도 내려 노아야 하고 그 동안 쌓은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말씀을 거론할 자격도 없습니다.
심판 때에, 주님께서 모른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전혀없는 망상가들입니다
목사님! 그러지 마셔요!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서 겸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맡겼더니 사사로이 이용해 먹으면 그 벌이 더 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