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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안준영 기자]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격 스포츠클라이머인 김자인 선수가 9월 15일, IFSC(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사상 최초로 리드(난이도) 부문 우승을 거머쥐었다. 스타급 스포츠클라이머의 활약으로 스포츠클라이밍이 더욱 대중화되고 있는 것. 지난 5월 17~18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뚝섬 인공암벽장에서 열린 제22회 노스페이스컵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는 기존에 없던 초등부 경기를 신설하는 등 스포츠클라이밍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2013년 기준, 대한산악연맹에 등록된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는 약 1700명, 업계에서는 클라이밍 인구를 2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13년 전 무엇이 논란이었나
본지 창간호(2001년 10월호)에서는 김기섭 기자가 ‘한국 산악사 최고의 사이버 논쟁’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통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간의 논란을 다룬 적 있다. 이에 창간 13년을 맞이한 지금, 전통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그 위상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당시 논란은 요델 산악회의 백인섭씨가 〈사람과 산〉 2001년 6월호에 투고한 ‘등산을 놀이와 신종 경기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기사로 시작된다. 백인섭씨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때까지 선인봉의 허리길, 표범길 등과 설악산의 범봉리지, 칠형제봉리지, 석주길 등을 개척한 산악인이다. 그는 기사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이란 암벽등반에서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단지 오름 행위만을 추출해서 단순 스포츠화한 것을~(중략)~반대로 스포츠클라이머를 곧 암벽등반가로 착각하는 넌센스 또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생각을 밝혔다.
당시 본지 홈페이지 히말라야즈에서는 백인섭씨의 의견을 지지하는 전통 암벽등반가와 반발하는 스포츠클라이머들 사이에서는 첨예한 논쟁이 있었다. 백인섭씨는 기사에서 스포츠클라이머의 동작을 망토개코원숭이에 비유했다. 이에 대해 “망토개코원숭이가 그렇게 뛰어나더라도 훈련을 통해 5.14 루트를 오늘 수 있는지 보고싶다”라는 반박이 쏟아졌고 논란이 불거지자 백인섭씨는 〈사람과 산〉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서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당시의 논쟁은 전통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간의 논의를 벗어나 감정대립으로까지 이어졌다.
전통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이란 무엇인가

▲ 인공암벽장이 아닌 자연에서의 등반은 함께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동료 간의 우정과 신뢰가 싹튼다.

▲ 최근에는 클라이밍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크게 늘었다. 스포츠클라이밍의 대중화로 산악회보다는 실내 암장을 중심으로 동호인들이 모이고 있다.
전통 암벽등반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1928년에 연세산악회가 최초의 산악회로 알려졌으며, 1930년대에 조선산악회와 백령회 등을 중심으로 서구 근대 등산의 개념이 전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암벽등반가라 하면, 이때부터 이어져온 암벽등반 기술 및 사상을 전수받은 세대를 일컬을 수 있겠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전통 암벽등반에서 파생한 것으로, 1976년에 구소련 코카서스 서부의 돔바이 자연암벽에서 등반경기대회로 시작됐다. 이때의 경기는 톱로핑 방식의 속도 등반이었으며, 지금과 같은 리드(난이도) 경기는 1985년, 이탈리아 바르도네키아에서 “스포츠로씨아(SportRoccia=Sports Rock)”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5월에 국내 최초의 인공암벽인 ‘살레와 월’이 설치됐다. 이후 국내 최초의 실내암장은 서울이 아닌 마산에 생겼다. 이근택씨가 1989년 10월에 문을 연 ‘악돌이 인공암장’이다. 그보다 조금 늦게 서울에서는 고 박현규씨가 1990년 6월에 노량진 클라이밍센터를 만들었다.
초창기 스포츠클라이머에게 물었다
손정준씨(손정준 클라이밍 연구소 운영)와 이재용씨(노스페이스 산악지원팀 과장)는 1990년대 초부터 노량진 클라이밍센터에서 훈련을 한 초창기 스포츠클라이머라고 할 수 있다. 손정준씨는 2000년 1월 태국 프라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5.14급 클라이머로 등극했으며, 2002년에 손정준 클라이밍 연구소를 열었다. 그는 전국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바 있으며, 설악산 적벽의 크로니, 에코·독주 등을 최초로 자유 등반한 암벽등반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한편, 이재용씨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산악지원팀 과장이다. 그 역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아시안 X-GAME에서 3연패한 바 있는 스포츠클라이머이면서, 김자하・자비・자인 3남매를 비롯한 국내 유수한 스포츠클라이머를 키워낸 리더이다.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장은 “알피니즘은 자연적 한계 상황에 인간이 도전하고 이를 극복하는 대가 없는 순수한 운동인 까닭에 상업적이고 성과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손정준씨와 이재용씨는 모두 인공암벽에서 처음 암벽등반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산악회를 통해서 암벽등반에 입문했다. 이들이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에는 산악회 선배들의 만류가 강했다고 한다. “초크백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환경파괴자라고 비난받고, 타이즈를 입고 스포츠 루트를 갔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들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며 이재용 과장은 당시 스포츠클라이밍에 대한 기조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스포츠클라이밍을 했던 것은 산에서의 등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재용씨는 “전통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은 단지 시간과 장소가 다를 뿐, 같은 등반”이라고 설명했다. 손정준씨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등반 실력을 향상 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스포츠클라이밍을 통한 훈련”이라며 “자연 바위와 가장 유사한 환경인 인공암벽에서 익힌 기술을 자연 바위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3년 전 기사에서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장은 “스포츠클라이머들이 등반경기 선수로 나가는 것은 엄연히 스포츠클라이밍에 속하는 것이고, 스포츠클라이밍과 암빙벽을 병행하는 경우는 양자에 모두 속하는 것이겠지만 이는 알피니즘적 성격이 짙다”며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이가 더 잘하기 위해 인공암벽을 훈련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알피니즘에 부합한다”고 논평했다.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다’는 산악인의 철학을 잘 엿볼 수 있는 해외 등반가의 사례가 있다. 영국 등반가인 더그 스코트(Doug Scott)는 197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초등과 바인타브락 2봉의 주봉을 초등하여, 영국 정부가 ‘용맹 스포츠상’을 수여하려고 했다. 이에 더그 스코트는 “알피니즘과 스포츠는 성격이 다르므로 받을 자격이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또한, 이탈리아 등반가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1988년 제15회 동계올림픽 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완등한 것에 대해 은메달을 수여하려고 하자,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수상을 거절했다.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장은 이 사례에 대해 “알피니즘은 자연적 한계 상황에 인간이 도전하고 이를 극복하는 대가 없는 순수한 운동인 까닭에 상업적이고 성과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관중의 갈채나 상금, 숫자 기록이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 설악산 적벽. 손정준씨는 설악산 적벽을 최초로 자유등반한 클라이머로 잘 알려져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포츠’의 성격을 띤다. 스포츠에는 경기장, 규칙, 관중 등이 필요하다. 경기장은 선수들이 기량을 다투는 곳이면서 매출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규칙은 공정한 경기를 진행하게 하는 시스템이며, 경기를 만드는 생산자 역할을 한다. 관중은 단순한 관람자를 넘어 관련한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다. 스포츠의 특성을 갖는 순간 스포츠클라이밍은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경기장에 오르는 스포츠클라이머들은 직업으로써 등반에 임하기 때문에 경기 성적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로서는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손정준씨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려면 자연 바위를 가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클라이머인 린 힐(Lynn Hill)을 예로 들었다. 미국의 자유등반가인 린 힐은 1986년부터 12차례의 각종 국제자유등반대회에 나가 9차례나 우승한 클라이머다. 그러나 그녀를 말할 때 따라오는 것은 ‘무슨 대회에서 우승했다’가 아닌 ‘엘캡 노즈를 자유등반으로 오른 클라이머’이다. 린 힐은 1994년 9월 19일에 피치를 제외한 엘캡노즈를 자유등반으로 23시간만에 올랐으며, 이는 남성 클라이머들조차 해내지 못한 성과였다. 만약 그녀가 인공암벽에서만 등반을 했더라면 세계적인 클라이머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스포츠클라이밍을 통한 트레이닝을 바탕으로, 이전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등반을 해냈기 때문에 클라이머로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한 취지에서 손정준씨는 올해 7월에 ‘손정준과 함께하는 월드클라이밍투어’를 진행하여, 12명의 청소년 스포츠클라이머들과 함께 스페인 로데야르 암벽등반지를 다녀왔다. “아이들 머릿속에 어떤 대회에서 우승한 기억은 오래 가지 못해도, 자연 바위에서의 추억은 오래 남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공암벽장은 시설의 변형 또는 철거로 인해 일정 공간에서 유한하다. 반면, 자연 암벽은 풍화침식이 있을지언정 거의 무한하다. 공간의 유한성과 무한성의 차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비약적이나, 오름의 행위가 무한한 자연에서 이뤄졌을 때 그 행위 자체 또한 무한성을 얻는다고 볼 수 있다.

▲ 손정준씨는 청소년 스포츠클라이머들에게 다양한 클라이밍을 체험시키기 위해서, 12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올해 7월에 스페인 로데야르 암벽등반지를 다녀왔다. 사진 손정준.
“한 나무의 열매가 크기, 빛깔이 다르다고 다른 열매인가요?”
전통 암벽이냐, 스포츠클라이밍이냐에 대한 결론은 이미 13년 전에 나 있었다. 전통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을 이분화시키지 않고, 각자의 장점을 취해 궁극적으로 등반의 발전을 꾀하자는 것. 클라이머 개인에게서는 이 모습이 보이고 있다. 프로 선수들이야 경기 성적을 위해서 인공암벽 등반에 더 치중하고 있지만, 전통 암벽등반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인공암벽에서 트레이닝을 하고, 스포츠클라이밍부터 접한 입문자들도 어느 정도 실력을 키워 자연 암벽장을 찾아가고 있다. 당시 ‘전통 암벽등반 VS 스포츠클라이밍’이라는 주제로 논란이 됐던 것은 개인의 입장보다는 그 동안 우리나라 산악계를 이끌어온 기성세대의 우려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 산악회에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새로운 입문자들은 산악회가 아닌 실내 암장을 찾아가는 추세였다. 이제 와서 보면 기성세대와 차세대의 단절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한 논란이지 않았을까.
한편, 단체의 입장에서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스포츠 특성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다. 국제산악연맹(UIAA)에서는 현재 아이스클라이밍 대회만을 주최하고 있으며, 국제스포츠클라이밍대회는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에서 주최하고 있다. 국제산악연맹 내에서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가 점점 확대되며 분리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대한산악연맹이 스포츠클라이밍 대회를 주최하고 있으며, 대산련 산하인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가 그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향후 그 관계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클라이머 개인으로서는 단체 간의 알력보다는 개인의 등반이 우선이다.
이재용씨는 “다른 가지에서 나온 열매가 크기가 빛깔이 다르다고 다른 열매가 아닌 것처럼, 전통 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은 등반이라는 나무에서 열린 같은 열매”라며 “두 분야 모두 등반에 대한 철학은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금 클라이밍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지’ 생각하길 바란다”며 “곁가지가 나무인 것처럼 생각하면 겨울이 와 열매가 떨어지면 길을 잃지만, 본 줄기를 알면 겨울을 견디고 다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름’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은 오늘밤에도 일을 마치고 실내 암장과 인공암벽장으로 발길을 향한다. 또는, 산으로 갈 주말을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