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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 도전했어요
큰딸 다솜이
어느덧 28살이 된 큰딸 이름은 다솜이다.
‘다솜’이라는 뜻은 ‘사랑’이라는 말이다. ‘사랑을 펼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다솜이가 태어나기 하루 전에 내가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다솜이는 사랑이 가득한 아이로 성장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을 다솜이에게 부어주고 계셨다. 다솜이는 청소년기를 보내며 여러 기관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때마다 큰 감동과 보람을 맛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하여,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솜이는 눈물이 많은 아이, 공감 능력이 큰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고, 남에게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잘 자라나고 있었다.
아동가족 전공
다솜이는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의 아동가족학과에 입학사정관제로 진학했다.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 시간이 대입에 매우 중요했던 때인지라, 많은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시간을 늘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솜이는 대학에 필요해서 뿐만이 아니라, 전공을 봉사 또는 아동 복지 쪽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에, 실질적인 봉사를 하고자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고, 그것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었고, 소감문도 때마다 기록했다.
다솜이는 이름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었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였기에 아동 복지에 대한 꿈이 손쉽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필요한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하지만 다솜이는 원하는 복지 재단에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불합격의 연속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정규 직원 전형으로 도전한 복지 재단 응시에 서류부터 탈락이었다. 다솜이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사실 실패라는 것을 경험해 보기 전에는, 그 실패의 맛을 잘 모르기 때문에, 다솜이에게는 그 때 불합격의 여파가 더욱 큰 듯했다.
그 무렵 다솜이의 외숙모가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어린이집의 내부 사정으로 학기는 시작되었는데, 담임교사가 급히 필요한 상황이라 다솜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솜이는 복지 재단 준비를 하며 어린이집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숙모의 청에 응했다. 그리고 1년여 동안,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규 어린이집 직원, 아니 거의 작은원장처럼 어린이집에 헌신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복지 재단에 도전을 했고, 그때마다 다솜이는 불합격의 맛을 보아야 했다.
아가들이 좋아요
다솜이는 사랑이 많은 아이다. 그래서 눈물도 많다. 기도로 성장한 아이라서 그런지, 나름대로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았겠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생각을 물으며 잘 성장했다.
초등학교 때 몸이 불편한 같은 학급의 친구를 업고 화장실로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담임 선생님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다솜이로부터 그와 관련된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다솜이는 그렇게 친구를 도운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한 일이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나중에 확인하게 되었다.
아가들을 무척 좋아하는 다솜이, 아픔에 같이 공감하고 눈물지을 줄 아는 다솜이. 나는 다솜이가 우리 부부의 뒤를 이어 교직을 이수해서 교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다솜이는 어린 영혼들을 만나는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다.
하나님 왜 그러세요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더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또한 사람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솜이는 마음에 결심을 하고 어린이집을 나온 후, 열심히 준비하여 같은 복지 재단에 또 도전했다. 또 불합격, 또 도전, 계속해서 도전했다. 다른 복지 재단도 있었지만 다솜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 먹었던 그 재단에 계속해서 도전했다. 그리고 드디어 서류 통과 그러나 2차 전형에 불합격, 이어서 또 불합격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다솜이는 하나님께 기도는 하고 있었지만 자존감이 다 떨어지고 있었고 계속 울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기도하는 아빠 엄마인 우리 부부에게도 “도대체 하나님,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라고 외치기도 했다.
임시직 도전 어때요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녀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루셨다는 간증을 주시며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신다.
나는 다솜이에게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있음을 믿었다.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었다. 다만 그 이루어지는 응답의 시기와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다솜이에게 주지시키며 다솜이를 붙잡고 기도했다.
다솜이는 계속되는 전형에 응시를 하며 스스로 깨우침을 얻고 있었다. 다솜이가 우리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동가족학을 전공했고, 또 복지사 자격증 등 여러 자격증도 있고 하지만, 경험이 어린이집에서 경험이 다잖아. 나이도 어리고, 그래서 내가 경력자들한테 밀리는 것 같아. 내가 이번에 정규에서 안되면 임시직으로 뽑기도 하는데 그렇게 할까?”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우리 부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겠다. 아직까지 복지 재단에 근무해 본 경험은 없으니까, 아무래도 경력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비교하지 말라
그리고 다솜이는 그 다음 번 전형에 또 정규직으로 도전했다. 하지만 최종 면접에서 또 불합격되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이,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면 자습실 문을 마지막에 단속하고 나왔던 아이. 정수리에 하얀 버짐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학업에 집중했던 아이. 원하던 대학에 입학사정관제로 들어갔고, 대학 생활도 잘했던 아이였지만, 사회 생활의 경험은 다솜이에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열등감이 생기지 않던가.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들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다솜이의 마음을 붙잡고 계셨고, 말씀으로 기도로 인도하고 계셨다.
다솜이는 자신이 말한대로 같은 재단에 임시 계약직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드디어 계약직원으로 재단에 합격이 되었다.
다솜이는 복지 재단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즐거워했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의 사례를 가족들과 나누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해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업, 그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시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직업은 단순히 일이 아니라, 사명이 된다. 다솜이에게 있어 어린 영혼을 살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큰딸에게 사명이리라 생각하며 격려하고 기도했다.
또 정규직을 뽑는대
그렇게 계약직으로 일 년 남짓 지나고 있을 때였다.
“아빠, 이번에 또 정규직 전형이 났는데 도전해야 할까?”
나는 다솜이가 말하는 뜻을 알고 있었다.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또 그것이 반복될까 봐 두려움이 있었고, 창피함도 있었을 것이다.
“아빠, 계약직은 일 년 더 연장해서 할 수 있대. 차라리 더 준비해서 내년에 계약직 끝날 때 할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응, 그것도 좋은 것 같아. 그런데 중요한 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니까, 기도하고 선택하렴. 전형에 응시하는 시기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을 때로 인도해주실거야.”
그리고 나는 다솜이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했다 ,
불합격예요
다솜이는 정규직 전형에 응시했다. 이것은 다솜이가 그 복지 재단에 다섯 번째 도전한 것이다. 그리고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솜이의 한 직장에 대한 도전은 참으로 눈물겹다.
2018년 서류 탈락, 2019년 필기 탈락, 2020년 최종면접 탈락, 2020년 계약직 합격, 2021년 하반기 필기 탈락.
“아빠, 이제 눈물도 안 나와. 여기는 나를 뽑을 생각이 전혀 없나 봐.”
아내도 큰 소리로 한 마디 거들었다.
“야! 그 재단 미친 거 아냐? 너를 안 뽑다니~. 다솜아. 다른 재단에 시험 봐. 거기밖에 없니?”
하지만 다솜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여기에 꼭 가고 싶은데~.”
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솜이를 인도하실지 궁금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다솜이가 경험하게 해 주소서.”
다솜이는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매일 출근하고 있었다.
경력직 전형이 있어요
3월이 지나고 있을 무렵, 다솜이가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아빠, 엄마! 우리 재단에 이번에 경력직 전형으로 정직원을 뽑는다는데, 같은 계열에 경력 4년 이상 우대해준대. 근데 나는 복지 재단 근무가 일 년 조금 넘잖아. 어린이집 경력 포함하면 3년 되지만 말야. 그래서 일단 조건에서 밀릴 것 같아. 넣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넣었어.”
자세히 다솜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솜이는 전형 공지가 난 것을 보고, 재단 인사관리 담당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기의 상황을 말하고 전형에 응시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런 회신을 받았다.
“네, 응시할 수는 있는데, 경력자들이 많을 경우에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응시는 가능합니다.”
다솜이는 기도하는 가운데 특별 전형에 응시했다. 그리고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 듯했다. 일단 조건이나 상황은 다솜이에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던 일차 합격 통보가 왔다. 이번에는 아내와 딸이 동시에 외쳤다.
“미친 거 아냐?”
마치 최종 합격 된 것처럼 기쁜 마음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때까지 승승장구하던 아이가, 계속 불합격이었다가 이번에 ‘합격’이라는 글자를 마주했으니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솜이는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열심히 기도하며 다솜이를 격려했다. 다솜이는 마치 고시 공부를 하는 것처럼 열심히 준비했다.
면접 때 울었어
최종 면접을 하는 날 아침에 나는 다솜이를 위해 기도했다. 특히 이번 전형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솜이에게 보여주시길 기도했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이 참 길다고 느껴질 무렵, 면접이 이미 끝났을 시간인데 다솜이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매우 소란스러웠을 가족 단톡방도 조용했다.
‘면접을 망쳤나?’
생각하며 퇴근을 했다.
다솜이는 자기 방에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 면접 때 울었어.”
그러면서 막 울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접한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다솜이는 울면서 계속 이렇게 말했다.
“나, 바본가 봐. 면접 때 울다니~~. 어떡해, 흑흑흑.”
다솜이는 속상해하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내 마음은 평안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다솜이가 왜 면접 때 눈물을 흘리게 되었는지 말이다.
아이가 생각나서요
나는 미소를 띠며 다솜이에게 말했다.
“다솜아, 면접 때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왔다는 말이지? 왜 그렇게 된 거니?”
다솜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면접관 질문 중에, 규칙이나 원칙을 지키려 했는데 손해 보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라고 했거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어. 그래서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잘 생각이 안 났는데, 규칙을 따르다 보니까 아이를 도울 수가 없었던 사례가 생각나서 그 얘기를 했어. 질문 의도랑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대답은 다 했는데 더 걱정되기도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다가 그 돕지 못한 아이가 생각이 나서 운거니?”
“응, 아빠. 자꾸 눈물이 나는데, 참으려고 했는데, 참아지지가 않는거야. 그 아이한테 너무 미안하고, 상황은 너무 안 좋은 아인데 현재 제도로는 도울 수가 없더라구. 그래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랬구나~.”
진심이면 된거야
다솜이는 어느덧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이야기를 차분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면접관도 좀 황당한건지, 당황한건지 한참 있다가 나한테 왜 우는지,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라는거야. 그래서 설명했지, 그러다가 또 울었어.”
나는 다솜이의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만약 내가 면접관이라면 다솜이같은 지원자를 대할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를 떠올렸다.
다솜이는 사례에서 얘기했던 그 아동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픔이 느껴졌고 돕고 싶었는데 돕지 못한 것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나는 다솜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다솜아, 너는 진심이었구나. 그 아이를 도우려고 했었고, 또 결과는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다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솜아, 진심이면 된거야. 예상치 않게 눈물을 흘린 것도 네 의지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눈물이네~~, 설령 면접 결과가 불합격이어도 진심이면 된거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인도하시거든. 기도하며 기다려보자. 내가 면접관 같았으면 너 뽑았을거야. 게다가 넌 여섯 번째 도전이잖아. 끈기 하나는 검증된 것 아니니? 잘했어. 하하하.”
최종 합격했어요
면접 날로부터 사흘 후에 최종 합격 발표 통보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이었다. 둘째 딸 다빈이에게서 가족 단톡방을 통해 연락이 왔다.
“언니 울어?”
나는 깜짝 놀라며 톡에 올려진 글을 읽었다.
“우리 언니 최종 합격됐다.”
다솜이는 운전중이었고, 다빈이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 재단에서 연락이 왔고, 결과는 정직원 전형에 최종 합격되었다는 것이다. 다솜이는 운전을 하며 폭포수같은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붙여줄 거면 진작 붙여주지, 왜 꼭 이렇게까지 하고, 붙여주냐고???”
그 어려움 속에서 합격되었다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옆에 있던 다빈이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고, 이것을 보고 있는 나도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4년 이상 경력자 우선이라고 했는데 어찌 된건지 의아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며 끝까지 나아갔던 다솜이와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간증을 허락하시며, 다솜이를 청소년 시절부터 꿈꾸었던 어린이 복지 재단으로 인도하고 계셨다.
한밤중의 축제
합격 발표가 된 날도 다솜이는 퇴근하자마자 복싱 운동을 하러 갔다.
둘째 딸 다빈이가 비밀리에 가족들이 모두 언니의 합격 축하를 해야 한다고 하며, 여러 물품들을 준비했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했다. 나와 아내도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밤 10시경 현관으로 들어서는 다솜이를 환영하며, 춤을 추는 아내와 나, 그리고 다빈이. 머리에 불빛 띠를 띠고 이렇게 한참 동안 온 가족이 춤을 추었다. 밤 10시 넘는 시간, 이게 무슨 짓인가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또 춤을 추었다.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었다. 축복이었고 사랑이었다. 다솜이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다솜이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울며 웃으며 함께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내 아내의 품에 안겼다.
춤을 추는 이 장면을 영상으로 남겨 놓았는데, 보면 볼수록 그날의 기쁨이 새록새록 일어나며 웃음이 터져나온다.
춘천에서 생활하며
다솜이는 춘천에 있는 사업 기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약 1,2년 가량 현장에서 피해 아동들을 접하고, 가정을 지원하는 등의 일을 한다고 했다. 합격의 기쁨을 뒤로 하고 바로 춘천에 방을 얻었고, 온가족이 함께 가서 찬양하고 기도했다.
다솜이를 보며 또 한 번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인도하심을 우리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또 알아서 인도해주시니 얼마나 든든한가. 그저 우리가 할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순종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다솜이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길 기도한다.
다솜이의 일이 단순한 세상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기를 기도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
큰딸의 직장을 통해서, 우리 가족들에게 인내와 소망을 갖게 하시고, 계속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여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