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 3-17에
또 업을 느끼는 것이 다섯 가지라 오무간이라 합니다.
그 다섯 가지란,
3-18
첫째는 겁을 거듭하여 낮이나 밤이나 죄보를 받는데
3-19
둘째는 한 사람만으로도 가득 차고 많은 사람이 있어도
역시 가득 차므로 무간이라고 하는 것이며,
3-23
성모여, 무간지옥에 대한 것을 대강만 말씀한 것이 이러하오니
만약 지옥의 형벌기구 등의 이름과 모든 고통을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한 겁 동안을 말하여도 다 할 수 없습니다
.3-24
마야부인은 이 말을 듣고는 근심 깊은 얼굴로
합장 정례하고 물러가셨다.
지장경을 독송하면서 오무간지옥에 대한 내용을 읽어보고
무섭다거나 불안해 하지 마시고
오무간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장 좋은 답은 악연을 만들지 말고
보살행(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내가 보살이 되어
다른 중생들에게 복을 나누어야 하며
보현행원품 67쪽의 보살의 37가지 수행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마음씨도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가난에 찌들고 어렵게 살거나
욕심도 많고 이기적인 사람이 부자로 잘 사는 것을 보는 경우에
부처님 법을 의심하는 분들이 종종 있으시지요?
그 이유는 전생, 전전생에 통장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자로 여유있게 사는 사람들은 전생의 복을 쌓아서
통장 잔고가 많이 있어 지금 사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러한 부처님 법과 윤회의 원리를 알게 되면
무간지옥의 삶을 살지라도 마음은 무간지옥에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장기도하시는 안심정사 법우님,
육체는 현재 힘이 들더라도 마음은 긍정의 생각으로
기도 정진하시면 극락정토의 행복을 누리며
현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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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영가 천도하는 지장도량 보성 대원사
전라도 보성은 차의 고향이다.
태아 영가의 천도를 위하여 재를 지내는
우리나라 유일의 태아영가 지장도량이
바로 보성 대원사이다.
대원사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원사를 품고 있는 천봉산(天鳳山)은 해발 609m 로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서기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경상북도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은 하룻밤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말하였다.
아도!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아도!” 하는
봉황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 봉황이 날개 짓 하는 것을 보았다.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3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메다가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내고
기뻐 춤추며 산 이름을 천봉산이라 부르고
대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구려 보장왕 때 도교를 받들고 불교를 박해하면서
많은 고승대덕들이 일본과 백제 땅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평양에서 수도하던 열반종의 보덕화상이
박해를 피해 전주 고달산으로 절을 옮겨와 가르침을 베풀었다.
보덕화상의 제자 되는
일승(一乘), 심정(心正), 대원(大原) 대원사에 머물며
열반종의 8대 가람으로 발전시켰다.
고려시대에는 (1260년 원종1년) 조계산 송광사의 16국사 중
제5대 자진원오국사가 55세때 대원사를 크게 중창하여
정토신앙과 참선수행을 함께하는
선정쌍수(禪淨雙修)의 도량으로 발전하였다.
그때 선문염송을 대원사에서 판각하여
참선교재로 널리 사용했으나
여순사태의화재로 많은 전각과 함께 불타고 말았다.
대원사판 선문염송의 판각본은
현재 규장각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영조35년(1759년) 현정선사의 발원을 통해
극락전, 지장전, 나한전, 천불전, 사천왕문, 봉서루, 토성각, 선원, 상원암, 불출암, 호적암 등이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근대에 이르러 민족의 비극인 여순사태와 6.25를 지나면서
대원사는 극락전과 석조물 몇 점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리는 비운을 맞게 된다.
대원사에는 우리나라 유일한
‘지장보살 김교각 박물관’이 있다.
김교각 지장 박물관의 전시 벽화를 소개합니다.
1. 석가세존 열반 1500년 되는 서기 696년 신라 왕가에 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의 부친은 성덕대왕이고, 그의 모친은 성정왕후이다.
아이의 처음 이름은 교각僑覺이며 학명은 수충(守忠)이라 하였다.
2. 당나라에 유학하여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고승대덕을 찾아 불법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고국에 돌아온 교각은 산라왕실의 다툼을 보고
24세 되던 해 불법으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서원하고 출가하였다.
3. 김지장은 당나라로 가면서 선청이란 삽살개와 황립도라는 볍씨,
금지차라는 차 종자, 신라송이라는 잣 열매, 조 씨앗 등 다섯 가지
생물자원을 중국 구화산에 전하였다.
4. 절강성 항주에 도착하여 꿈 속에서 본 수려한 풍광을 지닌 명산을 찾아
안휘성의 구화산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5. 모든 이웃을 복되게 할 절을 짓고자 하니, 가사 덮을 땅을 시주해 달라고
구화산의 주인 민양화에게 말하였다. 민양화가 승낙하자 지장스님이 입고 있던
홍가사를 벗어 던지니 구화산 99개 봉우리를 모두 덮어 버렸다.
6. 지장스님이 구화산의 동굴 속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니, 구화산의 산신이
그를 시험 하고자 예쁜 여인을 보내 유혹하였다. 그러나 반석 같은 지장의
신심에 산신이 감동하여 바위에 구멍을 뚫어 샘물이 솟구치게 하였다.
7. 구화산 천봉대에 오른 지장스님은 49일간 시간을 잊고, 정토삼부경을 독송하였다.
경을 읽던 바위 위에는 지장스님의 두 발자국이 뚜렷이 남아 있어 <고배경대>
라 불린다.
8. 청양현의 장자 제갈절이 구화산을 유람 왔다가 동굴 속의 지장스님이
침식을 잊고, 수행하는 모습에 감동 받아 시주를 모아 절을 지어 바쳤다.
구화산 최초의 가람 화성사가 완성되었다.
9. 지장스님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된 동자를 구해주고, 제자로 삼았다.
그러나 산속의 적막감을 이기지 못한 동자가 속가로 돌아가니, 그를 보내며
시 한수를 남겼다. 그때의 시는 당시집唐詩集에 수록되어 있으며, 한국인
최초의 차시茶詩이다.
10. 서기 794년 (음)7월 30일 지장스님은 99세를 맞이하여 대중들에게
유언 법문을 남기고 앉은 채 입적하였다. 그 때 산이 울리고 돌이 무너지고
화성사의 종이 아무리 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11. 지장스님의 육신은 가부좌한 채 석함에 안치되었다.
삼년 후 석함을 열었더니 얼굴빛이 생전과 다름이 없었다.
대중들이 스님의 육신에 금분을 입히고 탑에 모셔 받드니
지금의 육신보전이다.
12. 누구든지 김지장 삼존불을 참배하고 지장왕 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서원을 나의 서원으로 실천하는 이는 업장을 소멸하고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계속
첫댓글 감사감사드립니다
선생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오로지 꾸준히기도정진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해설을 바탕으로 많이 배움니다 신심이 깊어 짐을 느낌니다 ()()()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사랑합니다
지장보살 ()()()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글올려주시고 ~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덕분으로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됩니다.
늘 감사합니다.
나무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 ()()()
나무아미타불()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함니다
감사합니다 ᆢ ()
선생님 많은것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