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향속에는
염동원
‘천만송이 국화 축제’ 도로 옆에 나부끼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 나는 가을이 되면 고향을 그리듯 국화 향이 물씬 풍기는 국화 축제를 찾는다. 국화는 황국을 으뜸으로 여기며, 순수한 황색은 땅을 의미하고 일찍 심어 늦게 피는 것을 군자의 덕이라 하지 않던가. 어디선가 국화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하여 발길을 재촉하였다.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국화꽃으로 아취를 만들어 궁전 속 정원을 연상 시킨다. 잔디밭은 국화꽃으로 촘촘히 수놓아져 천만송이를 실감나게 하지만, 노란 소국들이 유난히 강열한 눈길을 주어 사진기로 영상을 담아본다. 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비닐하우스로 들어섰다. 그 속에는 대륜들도 여러 개 있고, 꽃잎 곡선이 아름다운 황무궁이며 자줏빛 귀부인, 백공작, 하늘로 향하는 자세로 눈길을 끄는 송심 앞에서 나는 아버지를 만난 착각을 가졌다. 아버지의 뭉툭한 손가락이 꽃송이 하나하나를 고정시킨다. 그리고 꽃을 피우기 위해 새벽을 가르는 모습엔 꽃과 하나가 되어 있는 아버지의 인자함을 본다.
아버지는 유난히 꽃을 사랑하셨다. 겨울이면 방마다 윗목에는 많은 꽃나무들이 월동을 하는 바람에 식구들은 옹색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우리들이 싫어하는 꽃나무는 손바닥처럼 넓적한 선인장이었다. 잘못하면 가시에 찔려 질색을 했다. 그 중에는 깅깡나무도 가시가 있어 만만찮았으나, 한 겨울이면 으레 작은 귤이 매달리는 신비는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머리맡에 있던 제라늄에 어쩌다 가까이 가면 역겨운 냄새 때문에 매번 고개를 돌렸었다.
봄이면 새벽에 일어나셔서 윗목에서 월동한 국화를 종류 별로 삽목 하셨다. 여러 개 사과 상자에 모래를 넣고 어미 국화나무에서 떼어낸 개체들을 심고 뿌리가 생기면 상자들은 없어지고 어느새 뒤뜰엔 수 백 구루의 국화 화분들이 나열된다. 종류 별로 작은 팻말도 붙여서 식별하기 좋도록 만들고 특히 거름에 신경을 쓰셨는데 두엄자리 옆에 새우젓단지를 놓고 깻묵에 쌀뜨물 등 오물을 섞어 썩혔다. 그 지독한 냄새가 풍기면 모두 코를 막고 달아나므로 항상 뚜껑을 덮는데 각별하신 것 같았다. 그 거름은 너무 강하므로 물을 많이 희석해야 된다는 말씀도 잊지 않았으나 나는 한 번도 그 거름 앞에 가본 적이 없었다. 지금생각하면 관심 없이 살아온 생활이 아버지에게 미안스럽다. 아버지는 출근하시기 전까지 여름 내내 화분을 돌보시느라 조반을 허둥지둥 잡수셨다. 물론 어머니의 잔소리리가 시작된다. 꽃을 좋아하니까 딸들이 많다는 둥 딸린 식솔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둥 특히 돈이 모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꽃 사랑 탓이었다.
아버지는 교직 생활로 일생을 지내신분이다. 정기적으로 때가되면 전근을 가셨다. 이삿짐은 아이들 책상 과 책장 이불, 옷 보따리 그릇 한 상자, 장항아리 나머지가 화분 들였다. 트럭의 반을 화분으로 채운 가난한 이삿짐은 포장이 안 된 먼 도로를 뿌옇게 내달렸었다. 새로 적응하기 어려운 어린 시절 나는 우리 집 화분과 더불어 미지의 읍내로 가서 생활하고 자라났었다.
아버지가 삽목 하시듯 모르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의 뿌리는 힘겹게 적응하며 생활을 했었다. 인간의 길이 홀로 걷는 길이란 것을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던 것 같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아버지는 더 일찍 일어나신다. 꽃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신 것은 타고난 천성이 아니 였을까. 개화기를 위해 정성을 기우리는 모습은 대단하셨다. 대륜제작은 색깔 별로 여러 개를 제작했는데 둥근 쟁반처럼 제작한 모양은 꽃송이들이 활짝 피면 마치 보름달이 뜰에 내려앉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노을에서는 이중색깔이 나면서 고운 비단옷을 연상시켰고 백공작 홍공작이 주는 아름다움에는 공작새의 우아한 몸짓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 그 아름다움에 가을볕이 멈추어 있기를 마음에 담은 적도 있었다. 그득히 핀 향기로운 국화를 보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자식들도 키울 때 뿐 이라는 것을 아쉬워 하셨을까, 모든 괴로움이 꽃이 되어 날아가 버리길 기원하셨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국화 향 그득한 뒤뜰 전시회가 열리면 읍내 손님들 동내 분들 학교 선생님들 학생들도 줄지어 감탄 하며 구경들을 했다. 장관을 이룬 이천여 개의 국화화분은 특별한 기술로 만들어낸 지상에서 하나뿐인 전시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모든 분들께 자식 같은 국화꽃화분들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뜰에는 내년을 위해 몇 개의 화분만이 집을 지켰었다.
아버지 마음 한구석엔 텅 빈 공허가 있었음을 안다. 어깨에 매달린 많은 식솔들, 결손 가정이 많은 동기간의 아이들이며 특히 어릴 때 밑 며느리로 시집와 홀로 된 형수님 등 힘겨운 살림을 묵묵히 우직한 마음으로 지탱하신 아버지, 고독한 마음을 꽃을 가꾸며 사신 것을 생각하니 많은 회한을 느낀다. 왜 살아생전 좀 더 가까이 모시질 못했을까. 아버지를 어렵게만 생각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어주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 돌아가신 후에도 창가에는 국화화분들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듯하여 하나를 안고 서울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열심히 길렀었다.
이젠 썰물이 가듯 모든 세월을 보낸 요즈음 아버지의 고독을 실감 있게 느낀다. 국화 향기는 영혼을 깨우는 순수함으로 곁을 맴돌고, 노란 송심 앞에서 아버지를 그리며 나를 반성한다.
작게 갖은 것을 아쉬워 말고 큰 것을 바라지 말라고 늘 하시던 말씀이 국화 향속에서 들려온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파인 선생님. 아버지를 그리는 선생님의 눈망울이 선~합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를 또 그립게 하는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마음 한구석엔 텅 빈 공허가 있었음을 안다. 어깨에 매달린 많은 식솔들, 결손 가정이 많은 동기간의 아이들이며 특히 어릴 때 밑 며느리로 시집와 홀로 된 형수님 등 힘겨운 살림을 묵묵히 우직한 마음으로 지탱하신 아버지, 고독한 마음을 꽃을 가꾸며 사신 것을 생각하니 많은 회한을 느낀다. 왜 살아생전 좀 더 가까이 모시질 못했을까. 아버지를 어렵게만 생각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어주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 아버님을 그리시는 선생님,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요.^^
'썰물이 가듯 모든 세월을 보낸요즈음 아버지의 고독을 실감있게 느낀다... 노란 송심앞에서 아버지를 그리며 나를 반성한다.'
잔잔한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선생님.
국화 향기는 영혼을 깨우는 순수함으로 곁을 맴돌고, 노란 송심 앞에서 아버지를 그리며 나를 반성한다.
작게 갖은 것을 아쉬워 말고 큰 것을 바라지 말라고 늘 하시던 말씀이 국화 향속에서 들려온다...감사합니다..국화향 그윽한 추억에 취해 갑니다..
아버지!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여식의 마음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제와서 아버지의 고독을 실감하시는 선생님의 성숙앞에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득히 핀 향기로운 국화를 보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자식들도 키울 때 뿐 이라는 것을 아쉬워 하셨을까, 모든 괴로움이 꽃이 되어 날아가 버리길 기원하셨는지 모르겠다 국화향이 가득하군요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그리며 애잔하게 쓰신 글속에는 국화 향기가 그윽한것 같네요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