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말글 생활을 위해서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이러한 어문 규정을 제대로 알고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문법을 가르치는 데 너무 소홀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한편으로는 어문 규정 자체의 애매함이나 모순점 때문에 정확한 말글 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들은 미리 충분한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두었다가 언젠가 어문 규정을 고치게 되면 반드시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그 대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사이시옷’에 대한 규정이다.
사이시옷은 합성어일 경우에 앞말과 뒷말 사이에 첨가하는 요소이다. 그 규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우리말끼리 결합하거나 우리말과 한자어가 결합할 때 다음 조건에서 적용된다.
즉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우(나룻배·귓병 등)
▲뒷말의 첫소리가 ‘ㄴ·ㅁ’일 때 그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잇몸·훗날 등)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나뭇잎·예삿일 등)이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자어끼리 결합할 때는 두 음절로 된 ‘곳간(庫間)·셋방(貰房)·숫자(數字)·찻간(車間)·툇간(退間)·횟수(回數)’ 여섯 개만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 규정대로라면 ‘찻간(車間)’은 되고 ‘기찻간(汽車間)’ ‘열찻간(列車間)’은 안 된다. ‘기차간’ ‘열차간’이라야 한다. 두 음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車와 間이 만나는 현상은 동일한데도 발음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위치에 글자 하나가 더 붙어 있다고 표기가 일관성을 잃게 된 것이다.
또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의 예를 나열하면서 찻잔(茶盞)과 찻종(茶鍾)도 포함시켰으나 이는 명백한 한자어의 결합이다. 이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茶’자의 새김(訓)이 ‘차’였으므로, 한자어 ‘다(茶)’와 구별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견해가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茶’는 본음이 ‘차’이며 이는 ‘房(방 방)’ ‘門(문 문)’자와 같이 ‘차 차’자로 새긴다. ‘다’라는 음은 우리나라에서 관용음으로 파생된 것이어서 ‘차 다’라는 새김도 나오게 된 것이다.
사이시옷은 1차적으로 발음상의 문제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개음화나 받침규칙(말음법칙)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형태상의 표기와 실제 발음 사이에 서로 차이가 나는 단어들은 얼마든지 많다. 표기와 다르게 나는 발음을 생각해서 사이시옷을 첨가해 표시해 준다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이다.
앞에 예시한 단어들을 ‘나루배’ ‘귀병’ ‘이몸’ ‘후날’ ‘나무잎’ ‘예사일’ 등으로 적더라도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 ‘잇몸’을 ‘이몸’으로 표기할 경우 ‘이 몸’과 혼동할 우려가 있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띄어쓰기나 문맥으로 충분히 구별된다. 설사 띄어쓰지 않더라도 동음이의어는 다른 경우에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굳이 우려할 필요가 없다.
또 ‘후날’ 같은 경우 눈에 익지 않아서 약간 어색해 보일지 모르나 단지 습관의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동탯국’ ‘하굣길’ ‘최댓값’ ‘꼭짓점’ 등은 규범대로 적는 것이 더 어색해 보이고 ‘동태국’ ‘하교길’ ‘최대값’ ‘꼭지점’이 더 자연스럽다. 결국 사이시옷 규정은 자체의 모순은 물론이고 대중의 언어 습관을 충분히 고려하지도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북한에서도 역시 이 문제로 고심하다가 지금은 사이시옷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는데 문제없이 잘 시행되고 있다. 우리도 사이시옷을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영봉/ 연세대학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