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품에 안기는 이순(耳順)
文 熙 鳳
고향은 떠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떠나 있으므로 애잔한 단어이다. 뿌리를 옮겨 보지 않는 사람은 그 말에 담긴 절절함을 모른다. 추억이 있고 싱그러운 마음이 항상 머무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나는 충청남도 당진에 태를 묻었다. 그러하기에 기억 되는 것들이 많다.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로 유학하여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교단에 서기 시작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 아니다. 들판 한가운데 백여 호가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아온 곳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들판뿐이었다. 산에 오르자면 시오 리나 이십 리는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합덕제(合德堤)’가 빤히 바라다보이는 ‘신석리 하흑’이라는 동네다.
자고 나면 보이는 것은 봄, 여름엔 초록물결, 그리고 가을엔 황금물결뿐이었다. 농약을 그리 많이 하지 않던 때라 메뚜기와 방아깨비들이 우리들의 친구로 어깨를 펴고 살았다. 한여름이면 물놀이를 하면서 넘어가는 해를 아쉬워했다. 그래서 지금도 확실한 영법은 아니지만 수영을 조금은 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과의 추억이 아련하다. 짚더미를 사이에 두고 벌였던 ‘해산놀이’도 나를 유년으로 안내한다. 천렵의 재미 또한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들이다.
내 고향 당진은 특이하게 윤무하는 잠자리 떼들의 유희를 볼 수 있게 한다. 건너 마을 어여쁜 소녀의 수줍은 미소를 닮은 들국화를 보내 옛날을 추억하게 한다. 새색시의 한복 치마폭처럼 붉게 타는 노을과 함께 하는 영광도 준다.
아침 일찍 마당에서 심호흡을 하며 ‘야호’를 외치고, 이어서 체조로 온몸의 닫힌 관절을 풀면서 하루를 계획하다 보면 아침이 절로 열렸다. 강아지를 앞세우고 아버지의 정성이 자라고 있는 논을 한 바퀴 돌면 고향의 뜨락은 나에게 미래를 보는 혜안을 선물했다.
언제나 푸르고 누런 율동적인 들판은 마치 소녀의 치마폭에 은은히 비치는 보드라운 살결같이 아름다웠다. 어디로 보나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 이만큼 애틋하고 호화스런 잔치를 또 어디서 감상할 수 있으리오.
내 고향 당진은 유구한 문화유산과 넉넉하고 풍요로운 인심 그리고 아름다운 산천과 바다와 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왜목마을, 서해대교, 난지도해수욕장, 제방질주(방조제), 솔뫼성지, 도비도해양체험장, 함상공원, 아미망루 등을 ‘당진 8경’으로 꼽는다.
신암사 금동불좌상, 남이흥장군유품, 면천 두견주, 기지시줄다리기, 송산면의 회화나무, 안국사지석불입상, 안국사지석탑, 영탑사금동삼존불 등이 ‘국가지정문화재’이고, 합덕성당,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한 필경사, 신라말기 견훤이 축조한 방죽인 합덕제, 김대건신부 생가지 등은 ‘도지정문화재’로 관광객의 발길을 예인한다. 당진은 명실 공히 첨단 농업과 관광, 그리고 철강 공업과 항만 물류가 어우러진 전초 기지로서 비상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 제일의 맛을 자랑하는 해나루쌀과 산소농법으로 생산되는 면천 꽈리고추, 동양최초의 함상공원과 7.3km의 우리나라 최대인 서해대교는 신 관광 상품으로 각광 받고 있다.
나는 지금도 생활이 무료해지고 지칠 때면 고향으로 달려간다. 애지중지 키워주시고, 사랑해주시던 부모님의 유택에 먼저 들러 인사를 올린다. 지친 내 육신을 쓰다듬어 줄 것 같은 기대로 고향을 찾으면 구수한 사투리가 제일 먼저 나를 알아보고 반긴다. 더불어 귀에 익은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친구들이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어 나의 피로는 반감된다.
내 고향 당진은 떠났던 사람들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전설을 간직한 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 준다. 언젠가 외국여행을 할 때 “대한민국이 바로 내 고향이다.”라는 위대한 발명을 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자랑스런 내 고향 당진이다.
당진은 과거를 딛고 미래를 꿈꾸는 환희로 숨 가쁘게 움직이는 도시다. 당진은 충청남도의 미래 모습이다. 인구 15만을 향해 달리면서 시로 승격된 곳으로 동북아의 해양관광물류도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코흘리개, 싸움쟁이, 꺽다리, 심술보, 뱀을 잡아 휘두르며 여자 친구들의 고무줄놀이를 방해하던 그 애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가? 눈 감으면 펼쳐지는 들판, 민물고기 떼 지어 노닐던 농로를 끼고 있던 그 냇가, 이제 그 물결 어디만큼 흘러가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이 아침도 고향을 품에 안고 거닐어 본다.
아, 살가운 내 고향, 당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