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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청양 장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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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부여에서 청양으로 들어갈수록 산이 깊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보고 동생 지현은 여기 처음 오냐고 물었다. 청양에는 몇 년 전에 혼자 버스 타고 와서 놀란 적이 있다. 그 날만 유독 그랬는지 읍내 거리에 차도 사람도 별로 없었다.
칠갑산 휴양림에서 장곡사까지 산을 넘어서 갔다. 청양이 푸를 청(靑) 자를 쓰니까 나무들은 온통 관록 있어 보일 것 같았는데 산 속에는 여리게 보이는 나무가 많았다. 뱀이 독오를 계절이었지만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은 산 속에서 여유를 부리며 갔다. 세 시간쯤 걸었나? 마을이 가까워졌는지 듬성듬성 일궈 놓은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콩밭을 좋아하는 나는 진짜 콩밭을 보자 재밌어졌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노래도 있지만 주로 논두렁 밭두렁에 콩을 심기 때문에 진짜 콩밭은 오랜만에 봤다. 그래선지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스르르 나타난 뱀 두 마리를 보고서 웃음도 나도 싹 얼어붙었다.
청양은 그 때 모습이랑은 많이 달라 보였다. 사람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지만 강산이 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두 번 세 번 와 봤지만 처음 온 것처럼 낯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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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가다 본 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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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작은 마을을 지나치는데 박이 보이길래 차를 세웠다. 지현은 차 안에 있고, 화경과 아이, 나만 내렸다. 우리 집 쌀독에도 박 바가지를 쓴다. 어쩌다 박이 열린 걸 보면 아이보고, 저 속을 파 낸 게 우리 집에서 쓰는 거라고, <흥부 놀부>에서는 박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고 해도, 아이는 “옛날 술 먹는 병이잖아”하고 만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장곡사 조금 못 미쳐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차를 세웠다. 나무 그늘에는 평상 말고 벤치가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놀다 가라고 하셨다. 벤치 옆에는 돌로 된 장기판이 있어서 아이는 제 이모와 장기를 뒀다. 내가 알기로 둘 다 장기를 두지 못한다. 그저 둘이 차례대로 돌만 움직이고만 있는데도 승부가 나는지 아이는 제가 이겼다고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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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티나무 그늘이 좋은 마을에서 쉬어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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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그늘에서 지현과 화경이 싼 도시락을 폈다. 할아버지들한테도 우리가 싸온 과자도, 수박도 드렸다. 마을 앞으로 맑은 물이 흘렀다. 구멍가게에 있는 화장실 앞으로도 맑은 물이 흘렀다. 충분하게 쉬었다 싶어서 짐을 꾸리는데 할아버지들은 “아가씨들, 더 놀다 가.” 하셨다. 아이를 달고 다니는데도 끝까지 ‘아가씨’라고 불러 주는 할아버지들의 센스!
장곡사 조금 못 미쳐 밥집 앞에 차를 세웠다. 은행나무 길을 걸어서 장곡사로 갔다. 노랗게 물든 길을 걸어가도 좋겠다. 이 다음에 화경이 군산에 또 온다면, 거기가 어디든 다시 지현과 길을 나선다면, 나는 운전수 노릇을 또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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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곡사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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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장곡사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대웅전이 두 채다. 부르기 쉽게 위에는 상대웅전, 아래는 하대웅전이라고 한다. 볼 줄 아는 사람은 나라에서 정한 보물인 불상을 보지만 내 눈에는 상대웅전 옆 응진전의 맹하게 생긴 나한들과 동생 지현이 좋아하는 수국이 보였다. 하지만 그네들은 장곡사 마당에서 놀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 중에 유난히 생활력이 센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장곡사도 그랬다. 보통 절집 마당에는 꽃이나 나무를 심어놓는다. 스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텃밭을 따로 가꾸는데 장곡사는 절집 마당에 고추나 채소를 심어놓았다. 상대웅전 올라가는 길에는 우리 엄마가 보셨다면 군침 깨나 흘렸을 머우 나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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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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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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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장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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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내려와 보니까 지현과 화경, 아이는 나무 그늘에서 놀고 있었다. 몸이 끈적끈적했다. 나는 먼저 달려가 차에 에어컨을 켜놓고, 지현과 화경은 아이 몸을 씻겼다. 장곡사 들어오면서 보았던 장승 공원에 들렀다. 청양은 예전부터 칠갑산 언저리 마을 곳곳에 장승을 세워놓고 장승제나 산신제를 지냈던 고장이다.
몸매도, 국적도, 표정도, 제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서 있는 장승들을 둘러보는데 <칠갑산>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계속 흘러나왔다. 까불면서 걷다가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 산 산마루에...’ 가 들리는데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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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공원, <칠갑산> 노래를 틀어놓고 있어서 사람 마음이 흔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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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배지영 |
| 도로가 나기 전, 청양은 진짜 첩첩산중이어서 칠갑산 한티 고개 넘는 일이 너무나 큰일이었다고 한다. 노래 속 여자는 어떻게 엄마를 두고 시집갔을까? 산마루 너머 시집가면 진짜 끝인 거나 다름없어서 엄마 장례식 때나 올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 엄마는 왜 고단한 자기 삶을 딸에게 똑같이 물려줬을까?
올 해 쉰일곱인 우리 엄마는 한 10년 전쯤에 남의 딸 결혼식만 가면 눈물이 나셨다. 이녁이 결혼해서 좋은 것도 없었으면서 “아이고, 나는 언제 우리 딸 셋을 여우나?” 코끝만 빨개지셨다. 아빠는 그 시대(1970년대)에도 하우스 수박을 먹던 한량이어서 엄마는 평생 돈 버는 일을 쉴 수도 없었는데 왜 딸 셋을 못 여울까 봐 눈물부터 핑 돌았으끄나?
돌아오는 내내 화경과 아이는 끝말잇기를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끝말잇기지만 무슨 거창한 대회의 예선처럼 뜨거워졌다. 거기에 ‘저녁내기’까지 붙으니 자연스레 편이 갈라져서 <놈팡이, 고스톱, 일수 돈> 같은 것까지 나왔다.
화경은 매운탕을 좋아한다고 했다. 군산에서 가장 맛있다는 매운탕 집으로 갔다. 우리 자매는 매운탕을 시키면 물고기 얼굴이 보여서 저어하긴 한다.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물고기를 따로 시래기로 가려놓고서 먹었다. 생각보다 많이 먹었다. |
첫댓글 절 늙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