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 서원 - 들어가보지 못하여 서운하였다.
그러나 답사 시작 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앞으로의 고됨을 예상하지 못하고 한 생각이었을 뿐...
쯧쯧...
옥녀봉쪽으로 다가가다가 심상치 않은 건물이라 얼른 차에서 내렸다.
남, 녀를 구분하여 예배를 드렸다는 교회 건물이었다. 이름하여 한옥교회.
김제의 금산교회가 퍼뜩 생각났다.
강경북옥교회.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용했다던데 현재는 텅 빈 상태였다.
옥녀봉에서 바라다본 수문이다. 일제가 설치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금강 줄기를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마음만큼 되지 않았다.
대신 강경포구가 형성되었을 곳으로 여겨지는 지점을 담아보았다. 옥녀봉 아래이다.
강경 침례교회 건물 앞에서 한동안 우리는 서있었다.
지금은 보수를 하려는지 완전히 폐허 상태였으나 의미가 매우 컸던 것이다.
강경의 힘을 다시 한 번 발견한 순간이다.
한국최초의 침례교회였기 때문이다.
포구로서의 그 중요성과 위상이 더없이 컸던 곳.
외래 신앙의 포교지로서도 으뜸.
봉수대를 복원한 장소로 이동하는 중.
하늘빛이 나무와 어우러져 너무 청명하였고
징그런(?) 탐구자들의 뒷모습이 자랑스러워 사진에 담았다.
봉수대에서 바라본 전경.(아마 계룡산이라고 했던 것 같다.)
흰눈의 흔적이 있다.
이름하야 설산.
그리고 중간 강물같은 곳은 강물이 아니다.
비닐하우스란다.
단지가 엄청나다.
그러나 고즈넉하던 금강 줄기는 그 느낌 그대로 도저히 담을 수가 없었다.
매우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집 앞에서였던 것 같다.
갑자기 이곳에서 해설사 선생님이 멈추시더니 이렇게 중요한 안내문을 읽도록 해주셨다.
멀리 바라다보였던 나바위 성당은 예전에 가보았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비록 터만이 흔적으로 남았을 뿐이지만
그분의 첫 유숙지 앞에 선 나의 마음은 매우 경건해졌다.
천주교 포교와 현재 종교로서의 저력을 심어주신 분이 아니런가.
이곳 강경은 최초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일으켰던 저항의 고장이기도 하였다.
답사 오지 않았더라면 전혀 모르고 지냈을 것.
남일당 약방 건물은 설명에는 한옥 구조라고 써져 있었지만
전통 일식의 건축 양식이 군데 군데 남아있던 매우 특이한 건물이었다.
입구에 걸려있던 곶감이 매우 맛있어서 꼭! 한 개라도 훔쳐먹고 싶었다.^.^
강경 중앙 초등학교 강당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목포에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 떠올라 안을 힘들어 구경해보았더니
터~~엉 비어있었다.
이번 강경, 논산 답사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급하게 사진이라도
정리를 하려고 이렇게 올려본다.
금방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작업 미숙으로 시간은 엄청 걸리고 말았다.
그러니 느낌 글도 부실할 수 밖에.
아이고 어깨 아파라!
2010년 2월 23일
첫댓글 하따, 오진것 인! 고생했소. 이어서 또 올려 주시겄지요.
언제 또 사진을 이렇게 올렸군요 좋습니다. 또 미쳐 올리지 못한 부분은 장샘이 올릴 것으로 믿습니다.수고했어요 역사교사로서 이런 열정을 갖고 열심히 사는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연일 터지는 교육계 비리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