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 218 (6권 5. 김홍신. 펌글)
원철이 때문에 광철이도 그 바닥에서 뛰쳐나온 것이었다.
대학에 다니다 말고 훌쩍 외국으로 돈 벌러 떠난 뒤로 소식이 끊겼다.
"언젠가 연락 오겠지. 그녀석한테 빚도 많은데."
원철이는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던 의리의 사내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원철이에게 빚이 많았다.
밤을 꼬박 새더라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나 감정들을 다 나눌 수는 없었다.
"쌍놈아, 겨우 그따위나 부탁하려고 찾아왔냐?"
얼큰하게 취한 광철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둘 수 없쟎냐?"
"하긴 그래."
녀석은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죄 털어놓았고 그런 일을 알 만한 녀석을 소개해 주었다.
녀석의 말대로라면 태반이 많이 유출되는 것 같고,
사람의 태반과 돼지의 태반이 비슷하다는 걸 이용해 재미를 보는 친구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태반의 유출은 의료법 제66조에 의해 오 년 이하 징역에 일백만 원 이하의 벌금이란 규정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료인에 해당하고 몰래 빼다 파는 사람들에겐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
고작해야 즉심 정도이기 때문에 그런 조직은 찾아내기도 어렵고 처벌받고 나오면 더 지능적으로 장사를 한다고 했다.
큰 병원에는 자체 소각처리장 같은 게 있어서 자체 처리하는 경우도 많지만,
소각시설이 없는 이와 같은 데에서는 매장이나 묘지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한 화장이나,
시체 운반의 허가를 받은 자나 보사부장관이 인정하는 비영리 의료단체에 위탁 처리할 수 있다는 게 규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흘러나온 태반이 비밀스런 조직에 의해 판매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신선한 것은 붉은 빛깔이 도는 것인데 초산부나 처녀 임신부 것이면 값도 두 배로 뛴다나 봐.
부패된 태반의 경우엔 인체에 해롭다는 데도 그런 경우엔 전기로 말려서 팔기도 하나 보더라.
나도 들은 얘기니까 그녀석 만나서 확인해 보면 속속들이 알겠지."
"그녀석이 얘길 해 줄까?"
"내 얘기하고, 안 되면 한바퀴 돌려 버려. 손 떼라고 해도 그녀석 돈에 눈이 뒤집혀서 내 말 안 들으니까."
"그런 녀석이라면 혼 좀 내 줘야겠다."
"더 나쁜 짓 않고 그걸로 밥먹겠다는 데야 별로 할 말 없더라."
"아무튼 우리 이젠 뭉쳐가며 살자."
우리는 아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원철이 녀석만 나타나면 세 녀석이 뭉쳐 무슨 일을 꾸미든 재미있게 한판 벌여볼 일이었다.
나는 광철이와 헤어져 나오며 원철이의 행방을 추적해 볼 생각을 했다.
많은 친구가 있었지만 원철이와 광철이는 잊을 수 없는 녀석들이었다.
철 모르던 시절, 내 주먹만 믿고 닥치는대로 휘젓고 다닐 때,
녀석들은 내가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늘 조언해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다른 조직의 끄나풀인 계집애를 따라갔다가 감금당했을 때 목숨 걸고 뛰어들어 구해 준 적도 있었고,
무자비한 녀석들에게 끌려가 한강 모래사장에 파묻히기 전에 배반자라는 낙인을 찍혀 가면서도 나를 구해 준 적도 있었다.
집안 형편이 비교적 부유하고 부친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는데도,
나 같은 촌놈과 광철이처럼 오갈데 없는 고아를 항상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고 용돈까지 쥐어 주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일을 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그까짓 주먹을 사내답게 없애 버려야 한다는 얘기도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일이었다.
광철이가 몇 번인가 끌려가 고생할 때도 언제나 인자한 웃음으로 옥바라지를 해 주던,
원철이 어머니의 그 모습도 지워질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녘이라 길거리에 사람도 많지 않아서 녀석을 잡아채기 좋을 것 같았다.
아파트 문 앞에서 몇번이나 녀석을 깨워야 하는지 날이 환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질이 급한 놈이었다.
기다린다는 걸 참을 재간이 별로 없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몇 번이고 그렇게 눌렀다.
"누구요?"
한참 만에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광철이 형이 급한 일로 만나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누구요?"
"광철이 형요."
"날 밝거든 오슈."
의외의 반응이었다.
"광철이 형이 급한 일로 상의할 게 있답니다."
"할 얘기 있거든 거기서 하쇼."
녀석은 작은 유리구멍으로 나를 확인한 뒤 이렇게 말했다.
광철이가 새 사람으로 소문 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무시해도 그만이라는 배짱이 생긴 것 같았다.
광철이가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노여워하진 않을 일이었다.
광철이는 그만큼 소갈머리가 넓은 녀석이었다.
"광철이 형이 알면 뭐라겠소?"
"당신은 뭐하는 사람요? 광철이 형하고 어떤 사이요?"
"심부름하는 사람요."
"광철이 형한테 무슨 일 생겼소?"
"그러니까 온 거 아뇨?"
"귀찮게 굴지 말고 가요. 가서 전하쇼. 나는 먹고 사느라고 뼈가 빠지는 놈이라고."
"돈 보태달라고 온 게 아뇨. 잠깐 얘기만 하면 됩니다."
"귀찮다니까 왜 이래."
그리곤 그 다음부터 초인종도 내려놓고 대답을 끊어 버렸다.
나는 이녀석을 혼 좀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짝 바로 뒤에 숨을 죽이고 서 있다가 멱살을 잡아챌까도 생각했지만,
저런 녀석들은 조심성이 많아서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곧장 내려와 차를 몰고 아파트를 빠져나오면서 얼핏 올려다보았다.
유리창의 커튼을 젖히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한바퀴 돌아서 다시 주차장으로 차를 댄 뒤에 아파트 문짝 뒤에 숨어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숨어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어둠이 꽤 많이 걷혀서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뜨일 것 같았다.
도구만 가져왔으면 문짝을 뜯어내고라도 들어갈 텐데....
문고리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손잡이가 돌려졌다. 내 예상대로였다.
내가 돌아간 뒤에 곧장 광철이가 달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피신하거나 애들을 불러모아,
옛날처럼 광철이에게 얽매어 살 인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려고 할 녀석이란 게 적중한 셈이었다.
나는 문짝을 잡아채고 녀석의 멱살을 옭아 내던졌다.
그리고 문을 잠가 버렸다.
"누구?"
녀석은 엉겁결에 구둣주걱을 쥐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한차례 더 걷어차 소파 위에 벌렁 눕게 했다.
"광철이 친구 장총찬이다."
"예에?"
얼굴빛이 금세 창백해졌다.
녀석도 그런 곳에서 밥먹은 적이 있어 내 소문을 들은 것 같았다.
"광철이는 알겄냐?"
"예, 제 형님입니다."
"그런데 아깐 왜 모른 체했어?"
"그런...."
"싸가지 없는 놈은 된맛 좀 봐야지. 한때는 형님 형님 하면서 붙어먹다가 네 배가 부르니까 깝신거려?"
"총찬이 형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제가 밥 좀 먹으니까 하도 귀찮게 구는 사람이 많아서 반사적으로 그랬습니다."
하긴 녀석의 변명이 일리는 있는 얘기였다.
"광철이마저 그렇게 봤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그 형님이야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 나가서 무슨 짓 하려고 했냐? 내 성질은 알겠지?"
"형님 얘기 압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나가서 광철이 형님이 어떻게 됐는지 소문 좀 들어서 대책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 형님을 도울 일이면 돕고 귀찮은 일이면 피하려고요."
"이자식아, 사람 가려가며 그런 짓 해얄 거 아냐?"
나는 두어 대 더 쥐어박고 녀석을 소파 위에 꼼짝 못하고 앉아 있게 했다.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뭇한 채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 나한테 네가 먹고 사는 얘기 좀 해 봐라."
"무슨 말씀이신지?"
"너, 태반 빼돌리고 있지?"
"예에."
"나눠 먹잔 얘기 아니니까 명단 좀 대 봐. 어디서 빼다가 어디에 팔아먹는지."
"형님, 왜 그러시죠?"
녀석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망설이고 있었다.
"이자식아, 나도 태반탕 좀 먹고 정력이 남아돌고 싶어서 그런다. 빨리."
녀석은 한대 더 맞고 나서야 불었다.
"전 강남 쪽만 맡고 있습니다. 한 이십여 군데쯤 됩니다."
"얼마씩 빼내냐?"
"개당 오백 원씩입니다."
"어떻게 빼내냐?"
"수거하는 애가 있어요. 현찰박치기입니다. 병원 쪽에 손 닿는 사람을 통해 상하지 않게 냉동상태로 빼냅니다.
초산부 거나 처녀애 거면 표시를 했다가 탕집으로 빼고 나머지는 한약중간상을 연결하는 애들에게 넘깁니다."
"한약중간상엔 왜?"
"거기서 말려서 분말 처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중간상이 다시 넘길 땐 천 오백 원쯤 합니다."
"탕집은 어디어디야?"
"요즘은 경기가 없어서 너덧 군데밖에 안 돼요. 퇴계로하고 이태원 쪽하고 강남 쪽에 좀 있어요."
녀석은 내가 시키는대로 약도를 그려나갔다.
비밀리에 운반하고 비밀리에 영업을 하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선 찾아낼 수 없는 귀중한 정보였다.
태반탕은 한약재를 넣어 태반사물탕이니 태반인삼탕이니 해서 상당히 비싸게 팔리고 있으며 오래된 단골 가운데에는,
태반을 잘게 썰어 참기름에 회를 쳐먹기도 하며 불고기처럼 구워먹는 여자 손님도 꽤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초산부 것은 비싸다며?"
"예, 개당 이천 원까지 쳐 줍니다."
"달릴 땐 돼지 태반도 섞어 팔지?"
"저는 그런 짓 않습니다. 다른 애들은 더러 그러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돼지 태반은 귀신처럼 압니다."
"좋다. 너는 태반 말고 가짜 해구신도 만들어 팔고 중공제 가짜 우황청심환도 만들어 배가 불렀지?"
"형니임....."
녀석은 내가 너무 정확하게 알고 온 것 때문에 무릎을 덥썩 꿇었다.
태반 판매에 재간이 있다면 그런 쪽에도 밝을 거라는 내 짐작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가짜 녹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한번 따져볼 생각이었다.
"임마, 나는 벼룩의 간 빼먹는 놈이 아냐. 해구신은 어떻게 만드냐?"
녀석은 입을 딱 봉했다.
이만한 아파트를 지니고 자가용 몰고 다닐 정도라면 태반 장사만 해서는 어려울 것이다.
보나마나 다른 짓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입을 열지도 않을 일이었다.
"성질 건들지 마라. 내 주먹은 쉬고 싶으시다."
내가 주먹을 치켜들어 허공을 한번 휘두르자 녀석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소리로,
마치 작은 소리로 얘기하면 가짜 해구신 제조방법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다.
"황견으로 만듭니다. 저희들은 진품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 밀수하는 애들도 있는 모양인데 전문가 얘기론 그것도 거의 모조품이랍니다.
물개가 흥분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베어낸 것이 효과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어차피 먹고 효과가 있다니까 우리들도 만들어서 대 줄 수밖에 없습니다."
"가짜 해구신 먹고도 힘이 남아돈다 이거냐?"
"그런 모양입니다."
의학에서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어서 밀가루같이 별것 아닌 물질로 암시작용을 하여 병을 치유시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탐험가가 원주민에게 치약가루를 먹여 만병치료를 했다는 기록이나,
배멀미 환자에게 밀가루환을 먹여 치유시킨 예가 우리나라에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