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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극히 큰 약속
2021, 8,
벧후1 : 1-11
오늘 내가 여러분들에게 전할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절에서 11절의 말씀을 통해서 전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분 특유의 단순 명료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시는 사도이십니다.
그래서 알아듣기 쉽고 가슴을 깊이 파고드는 말씀입니다.
비록 내가 전하지만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말씀처럼 들으시기 바랍니다.
1-2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많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서신마다 인사말로 서두에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는 말은 그냥 인사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하나님의 그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있으며 그 말씀으로 인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 143절에서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다윗은 또 시편 119편 56-57절에서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니이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우리의 것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행한 그 영화와 존귀와 능력입니다.
다음은 “평강”입니다.
철학자인 파스칼은 평강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사람이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공허함은 명예와 권세와 부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그 공허함은 하나님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마음에는 공허함이 아니라 평강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평강이 있습니까?
3절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의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우리를 부르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그 사람이 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아는 그 사람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알고 믿음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아 라는 뜻은 우리의 중생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요, 주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분의 실제를 아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거듭나고 중생하여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교회 다니는 허다한 사람들이 자기들도 복음을 알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했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습니다.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들의 죄에 대한 값을 주께서 그의 몸으로 지불하신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도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고 예언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의 복음에 대한 지식과 이해와 논리는 확실합니다.
흠 잡을 데가 없을 만큼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 받았다고 스스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복음에 대한 지식과 이해와 논리는 이성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믿는 것은 사람의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안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다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이성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복음을 알되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이 세대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큰 감동으로 받은 말씀이 없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들 안에는 약속으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더 분명한 증거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자기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은 말씀도 없고, 또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도 없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사랑이 크고,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잘 알고 믿는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고는 주의 생명 되시는 성령을 얻지 못합니다.
복음은 알아도 거듭나지 못한 것을 안 나는 주님께 오래 동안 기도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나는 더 이상 나의 거듭남을 위해서 이 이상 더 깊은 기도를 할 수 없는 것을 주님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에 나의 부족한 기도라 할지라도 나의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나의 모든 것을 다한 내 기도를 받으시고 나를 거듭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이 보다 더 깊은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도 초기에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지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면 주님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주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먹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이 내 영혼의 기둥처럼 박혀 있게 됩니다.
또한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성령이 주시는 증거입니다.
이제 4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시오 영이신 성령을 약속하셨고, 또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복음을 믿는 자가 받으며, 성령을 받은 자는 죄 사함을 받았고 영생을 얻었다는 보증이요 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자라는 보증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가 주의 말씀을 순종하며 주님을 거룩하게 섬길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주를 섬기는 능력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을 때에 그 말씀을 우리의 영이 되고 생명이 되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에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의 영이 되게 하시고 주의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제 밤 큐티 시간에 어떤 집사님이 말하기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주의 말씀을 떠나 우리 마음대로 행하면 그것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행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끼게 하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면 우리가 주의 말씀을 떠나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어리석고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옛 습관대로 하는 말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지 못하고 육신만 가지고 있다면 골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주의 말씀대로 살 수 없고 또 우리의 양심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주께 순종 하며 주를 섬기는 삶을 살게 하고 우리 양심에 아무 거리낌 없는 깨끗하고 정결한 삶을 살게 하실 수 있습니다.
4절 중반에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여.”라고 하실 때의 “정욕”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모든 욕심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된 불의한 삶을 살고 그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는 이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욕심을 버리고 주의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성경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번역되었지만 전에 보던 성경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번역되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썩어질 육신의 욕심에 따라 행하는 것을 버리고 우리가 경건하게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산다면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보배롭고 지극히 큰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음으로 받고 마음에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5절에서 7절은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 곧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는 신의 성품,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라고 했습니다.
신의 성품을 얻기 위해서 자기 마음을 다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기 위해 의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육신의 본성에 따라 살면서 신의 본성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을 자명한 사실입니다.
“너희 믿음에 덕을 여기서 덕이란 뜻은 선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덕에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하는 지식입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는 우리 육신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의미하고 절제에는 인내가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얻기 위해 육신의 행위를 죽이며 인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인내에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은 깨끗한 양심으로 거룩하게 주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성장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요일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8절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 즉 신의 성품을 얻는 것은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힘쓰며 신의 성품을 얻기에 항상 힘쓰는 자들이 신의 성품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흡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있다면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요 우리 영혼이 살아계시는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살아계시는 주님과 연합되어 행하기 때문에 얻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 열매가 열렸다는 것은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 즉 신의 성품이 그에게 나타나는 자는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11절에 “이 같이 하면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열매를 얻기를 항상 힘쓰는 자는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에 나타나는 주의 성품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12절 말씀은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은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돈에 대한 탐심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함을 따르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안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영생을 취하라 이것을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영생입니까?
성령의 열매인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얻으라 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결코 얻지 못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영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