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일에 봉사만 160년(?)
김영수 그레고리오 마산 Re. 명예기자
성연중 베드로 마산 치명자의 모후 레지아 교육위원을 만나기 위해 마산교구 하대동성당(주임신부 이창섭 아우구스티노)을 방문하였다. 베드로 교육위원은 고교교사로 재직하였으며, 퇴직 후 마산 레지아 교육위원 및 꾸르실료 주간, 교정사목 교구회장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천주교 입문과 레지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1987년 서른아홉 되던 해에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으며, 세례에 이어 대부님의 꼬임(?)에 빠져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선서를 하고 단원으로 지내던 중 활동보고에 매력을 느껴 주변의 비신자들을 모아 교리반에 입교시켜(10여 명) 예비자 돌보기에 전념을 하던 중 이제 1년 가까이 됐으니 Pr. 서기를 하라기에 예! 하고 대답했다. 꾸리아 임명을 받기 위해 꾸리아 평의회에 참석하니 마침 꾸리아 서기를 선출하는 자리였고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투표 결과 내가 당선이 되었다. 경험이 없어 못하겠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레지오 단원은 순명해야 합니다”라는 신부님의 말씀에 묻혀버리고 세례를 받은 지 10개월 만에 꾸리아 서기를 맡게 되는, 요즈음은 상상하지도 못할 초고속 승진을 하고 말았다. 당시는 PC가 없어 수기로 기록하여 청타 맡기고, 교정보러 가고, 찾으러 가고, 근무시간에 짬을 내어 자전거로 매월 3회 왕복하는 수고로움은 덤이었다.
교육위원도 되시고 활동도 왕성하게 하셨다면서요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하던 중 2년 후에는 승격된 꼬미씨움 서기로, 그로부터 3년 후 1993년에 상평 평화의 모후 Co.단장에 선출이 되었는데, 마침 마산 레지아에 교육위원 제
도가 생겨서 레지아 간부들과 함께 가르멜 수도원에서 1박2일 피정 후 박정일 교구장 주교님의 안수를 받고 교육위원에 임명되어 지금도 레지오 교육 요청만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금 있는 하대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쓰러진 청년 레지오를 살려놓고 가라는 후임 Co. 단장의 간곡한 부탁에 샛별 Pr. 단장으로 파견되었다. 첫 주 회합을 혼자서 하고 한 명 남아있던 서기를 불러 함께하면서 주일학교 제자였던 청년들과 대자들을 불러 모아 1년 만에 10명을 확보하여 튼실하게 살려놓고 하대동성당으로 교적을 옮겨 하늘의 여왕 Pr.에 전입신고를 했다. 다른 단체나 봉사는 때가 있어서 나이가 들면 손을 놓아야 하지만 레지오는 나이 제한이 없으니 자숙하면서 일생 다할 때까지 성모님의 군대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레지오 외의 활동도 열심히 하셨다고요
영세 1년 후 신부님의 권유로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를 맡게 되었는데 하계 수련회를 가면 늘 주제 강의는 내가 맡게 되어 신앙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교구 담당사제였던 신은근 신부님께서 “주일학교 봉사는 최소 10년은 해야 합니다.” 하셨다. 그래서 마흔 살부터 쉰한 살까지 11년을 했는데 한 학생은 신부님이 되셨다. 88년에는 성령 세미나를 받고 봉사자가 되었는데 당시 세미나 열풍으로 여러 군데에서 강의 요청으로 우리 교구뿐 아니라 타 교구까지 10여 년을 봉사하면서 성령 세미나 하면 안 되는 게 없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뛰었는데 지금은 같이 봉사하시던 많은 분이 선종하시고 또 흩어져서 봉사 팀마저 없어져 버렸다.
또한 1990년 꾸르실료 교육을 받고 다음 차수 때부터 봉사하게 되었는데 21년간 봉사하는 동안 차수 회장 3차례와 11대 교구 주간으로 봉사하면서 봉사자 양성에도 레지오 정신에 따라 출석을 강조했다. 정년퇴임과 함께 졸업하여 많은 일을 추억 속에 묻어두고 지금은 실버복사 단장, 성체조배 교구 부회장, 교정사목 교구회장 등에 부르심을 받아 봉사하고 있다. 그동안 10년 이상 활동했던 것을 합산해보니 160여 년, 분주한 가운데서도 한눈팔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앞으로 모든 활동의 목표는 10년 이상이다. 하지만 성모님의 도움 없이는 하나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모든 활동은 마리아 정신으로 무장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봉사와 활동들 그리고 본당 간부(포교, 청소년, 전례, 교육부와 본당회장)까지 미사를 제외한 모든 일은 마리아 정신을 생각하며 해왔다. 다락방 기도(마리아 사제운동)에서 배운 것은 연옥에 가는
영혼도 거룩하다는 것, 성령세미나 봉사로 얻은 결론은 완전한 치유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 교도소 봉사자의 자격은 수용자에게 감사하고 섬길 자세를 겸비할 것, 성체조배는 미사성제와 함께 정성을 다해 임해야 할 교회의 본질이며 이 세상에는 나 자신의 변화보다 더 큰 기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기도란 내가 변화되어 봉사하기 위한 준비운동이라 하겠다. 코로나19로 답답하지만 지구가 안식년을 지낸다고 칩시다.
나를 개종시키고 세례명도 지어준 아내 데레사는 개종 후 건강을 되찾아 레지오와 주일학교, 꾸르실료 봉사까지 나보다 더 열심히 했으며 2012년 천주의 성모 Co. 단장이 되어 나에게 청년 Pr.을 만들라는 지시를 하여 2014년 천상은총의 어머니 Pr.(본당 유일의 청년 레지오)을 설립했으며 6년의 임기를 마친 후 지금은 본당의 여러 단체에 봉사하면서 성지순례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수를 믿으라고? 내 주먹을 믿어라!” 하시던 아버님도 손자로 인해 고향인 상주시 서문동성당에서 어머님과 함께 세례를 받고 사시다가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오로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하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 속에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