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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통신 9호♣♧ 헤드라인: <은토마가 사람잡네~> “은토마야, 그래, 미안하다, 넌 아무 잘못이 없다~~“ 오늘 토욜(4/28), 읍내에 8가지 볼일이 있었다(자전거 타면서 착용할 복장 보강, 여동상 희야가 카톡으로 보낸 조언을 따라서 무릎 보호대, 헬멧 구입, ‘거창통신 2호’에 언급했던 대로 학교 화장실에 샤워기 설치를 위한 설비회사 방문/상담, 자전거 출퇴근할 때 낄 자외선 차단, 도수가 있는 썬그라스 주문, 아내 짐제네가 어제부터 지독한 감기몸살/두통으로 제대로 운신을 못해 귀가하는 길에 찜집에 들러 그걸로 저녁 한 끼 때우는 일, 등등), 8가지 용무 중 7가지를 두루 끝내고 마지막 찜집에 들러 찜이 식기 전에 귀가하여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진지를 드시는 아부지의 규율에 따라 6:30분에 식사 예정, 그러기 위해선 3:30분에 집을 나서야 했다.
집에서 읍내까지는 10킬로 거리다. ‘은토마’로 한껏 들뜬 내가 무정히 그 길을 가겠는가?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어릴 적, 자작나무를 향해 달음질 쳐<1단계>, 나지막한 가지 위에 뛰어 올라<2>, 밟고<3>, 올라타고<4>, 온몸의 체중으로 휘어져 내리는 가지의 탄력을 발바닥으로 즐기며<5>, 건너편으로 착지!!! <6단계>(그의 시 “자작나무” 중) 하듯, 또는, 기존의 ‘쓰카하라 트리플’에서 반 바퀴를 더 비트는 초유의 기술을 개발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양 1”으로 FIG(국제체조연맹)에 공식 등재시킨 양학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뜀틀을 짚고 튀어 올라 허공에서 옆으로 세 바퀴 반, 앞으로 두 바퀴 공중제비 놀음하고는 2. 5초 만에 안전 착지하여 직립한 채로 두 팔을 쫘악 펴며 자신의 신묘한 묘기를 올림픽 국제 심판들 앞에서 마무리하는 그 짧은 2.5초 동안에도 각기 동작의 선후 순서가 있듯, 나의 ‘은토마’ (‘정복’이란 말은 너무 불경하고, ‘길들이기’ 정도로 해두자) ‘다스리기’에도 순서와 단계가 있어야 하는 법, 다시, 집에서 학교가 있는 읍내까지는 10km, 그 중간에 지산 삼거리(3km 주행 지점), 산포마을, 남하초교, 무릉마을(7km 주행), 도원식당 앞 국도 속도제한 60km를 단속하는 카메라, 양평마을, 지나자마자 급 좌회전으로 접어드는 남하교 다리, 국농소마을, 다시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내려다보고 있는 국농소 삼거리, 지나 88고속도로 TG 입구(8.5km), 거창읍 초립 로타리 돌아 메타세콰이어가 늘어선 거창대학로, 대학 정문 앞 로타리를 거쳐 도착하는 거창 사과원예농협 마트까지 이르는, 필살의 코스를 한꺼번에 정복하기는 어렵다. 어제, 지산 삼거리까지는 달려보았으니 오늘은 무릉마을 쯤 까지? 근데, 내 자전거 주행을 한 번도 보지 못해 불안불안한 짐제네가 읍내 마실길에 내가 주행하는 자전거 앞서 지 쏘울차를 운전해 가면서 앞에서 선도를 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좋다, 내 주행도 보호받고, 지쳐 주행을 중단하는 지점에서는 지 차에 자전거 올리고 동승해서 편히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전거 주행속도가 시속 채 20km도 못되기 때매 다른 차량의 흐름을 방해하니 지산 삼거리쯤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출바알~~~, 귓전을 스치는 상큼한 바람, 그러나 과신, 오만은 금물, 마을 내리막길 조심조심, 국도로 접어들었다. 콧노래, 어느 영화의 주제곡,“오 맑은 햇빛이 온 누리 비치니 우리는 항상 즐겁다, 내 비록 슬픔을 지녔을지라도 햇빛은 밝게 비추네, 오 나의 안식처일세, 햇빛은 지지 않으리, 오늘도 날 위해~~....., 다음, <코시코스의 우편마차>, (https://www.youtube.com/watch?v=piKQiNGUWk4) ”짠 짜라 짠짠 짜라란, 짜란짜란 짜란 짜라라....“
이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 집에서 500m 가량 갔나? 갓길도 없는 길가에 어중간히 깜박이를 켜고 짐제네 쏘울이 기다리고 있다, 중얼중얼 “어허, 지산 삼거리까지 가서 기다리라 캤는데....” 쏘울을 50여 m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접근하는 차가 빵! 크락션하며 내 옆을 스쳐 지난다, 순간, 맞은 편 차로에서 차가 나타난다, 그러니 나를 스쳐간 차가 쏘울에게 막혀서 쏘울 뒤에 정차한다, 그 차도 깜박깜박 깜박이, (나는 곧 앞길이 오르막이라 오른쪽 핸들에 달린 기아변속장치를 저단으로 바꾸는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두 대의 차 뒤에 급정거할 참, 어어어어~~~ 오른손으로 잡아야 할 부레끼가 손아귀에 없다, (변속장치는 핸들의 안쪽, 부레끼는 바깥쪽) 부레끼가 어디 어디~~~, 맞은 편 접근하던 차 지나자, 쏘울 뒤에 차가 빠져나간다, 자전거가 서지 않는다, 이런!, 쏘울 뒤 1m 접근, 박아서는 안되지, 쏘울과 옹벽 사이 50cm의 틈새, 그 사이로 빠져나가려고 핸들을 꺾자, 옹벽에 꽈당~~~!!!! [사고 현장] 그 순간 5가지의 과거 잠재의식 속 기억이 현재의식으로 옮겨오는 번쩍 섬광~~~! 하나,
1995년 어느 날, 그때 근무하던 학교 교무실로 날 찾는 전화가 한 통 왔다. 조근조근 목소리, “윤범아, 내다, GN이다, 잘 사나? 안 바뿌모 통화 잠깐 할 수 있건나?“ 헤어진 지 20여 년, 초등학교 동기 여학생, CGN이었다. 국교 졸업 후 둘이 나란히 마산 M중, M여중, 이어 M고, M여고, 하필 지 자취방이 50여 m 우리 집 아래에 있었다. 사춘기 그 나이, GN이가 여자로 느껴지면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지 자취집 뒷골목으로 돌아가며 호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땅만 보고 걸으며 현재명의 <그집앞>(https://www.youtube.com/watch?v=UMwY5ZQUqPI)이란 한국가곡을 웅얼거렸더랬다. 그 어름 어느 해 성호골 골째기로 봄소풍 간 날, 뺀또 까묵고 보물찾기하고, 장기자랑 시간, 우찌 내가 학급대표로 뽑혀 천 사백 여명의 전교생 앞에서 딱히 생각나는 노래가 없어 그 노래를 불렀다, 변성기 막 지난 남저음 목청으로, 근데 신기한 것이, 다른 학급대표들은 모두 남 진의 “저 푸른 초원 우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나훈아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쓸쓸한 정거장....”같은 도롯또 유행가를 불렀는데, 채점 결과, 고리타분하고 분위기 파악 못한 선곡의 한국 가곡이 일등상을 받았능기라, 아마 채점/심사하는 분이 분명 음악선생님이셨을 거고, 그런 흥겨운 소풍자리에서 뜬금업시 한국가곡을 택한 나를 가상히(?) 여기셨을 듯?, 다시 CGN으로 돌아가자, 사랑의 밀어? 손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지는 부산 경고 다니는 남동생 자취생 밥해주로 부산으로 떠나고, 나는 대학 세 번 떨어지는 재수, 삼수의 길로 접어들어 허랑방탕, 가출, 재가출 생활을 하다 우찌 운좋게 지방대에 붙어(1974년) 대학을 다녔다, 비를 맞고 걷는 걸 취미로 삼고, 세상을 뜰까, 수면제를 사 모으기도 하면서...., 비오는 어느 봄날, 비에 후줄근히 젖어 한 시간 여를 걸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 대문간을 들어서는데 하얀 종이 쪼가리 하나가 눈에 밟혔다. 들어 보니 엽서 한 장, 잉크로 쓴 글씨가 빗물에 번져있었다. “윤범아, 보아라, 나는 지금 부산 해운대 호텔에 있다. 이글 쓸라꼬 일찍 일어나 베란다에 나와 파도소리를 듣는다, 윤범아, 미안하다, 지금 어제 결혼한 남자는 아직 방안에서 자고 있다, 범아, 미안타, 잘 살아다오. CGN.“ 지캉내캉, 무신 혼인의 약속을 한 적도 업섰고, 손 한 번 잡아본 적도 없는 주제에 무신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 참, 이 지랄같고 빌어무글 세상살이가, 청춘의 어리석음이, 사랑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지몽매가....
다시 전화통화로 돌아간다, 나는 걔가 대학교수의 부인이 되어 잘도 살고 있다는 소문을 귓등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범아, 마이 안 바뿌모 내 한 분 만내 줄 수 없건나? 니한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20여 년만의 전화로 하는 간곡한 부탁에, 우짤까 잠시 망설이다, “그래? 그라지 머, 오데서 보꼬? 그라자, 니 사는 거기하고 내 사는 요기하고 중간 지점쯤 되는 부산서 만내모 되것네? 서로 시간 절약도 되고?” 부산 시내 들어갈 것도 없이 지가 버스 타고 와서 내리는, 내가 타고 가서 내리는, 부산 터미널 근처 노래방에서 만났다, 그 당시 남 눈길을 피해 유부남, 유부녀가 만날 수 있는 장소가 고작 그곳, 빌어먹을, 그날도 폭우가 쏟아져 사위가 어두컴컴하고 부는 바람에 우산살을 펼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주앉고,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잠시 버벅거렸다. “그래, 내가 먼지 말하께, 내가 만내자 캣스니....” 뜸적뜸적, 한숨 군데군데 섞어가며 털어놓는 이야기인 즉슨, 요 근래, 자기 남편의 차에 두 아들과 함께 타고 어디를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그날도 비가 왔다나) 맞은 편에서 차선을 넘어 달겨드는 차를 피하려다 핸들 꺾고, 가드레일에 충돌하고, 차가 공중에 붕~~ 뜨는 순간, 일가족 죽음의 예감, 차가 공중에서 한 두 바퀴 도는 찰라, 글쎄, 내 생각이 나더라나, 왜, 한 인간이 세상을 임종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전 일생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재생된다는.... “윤범아, 내가 와 이라능고 나도 모리것다, 꿈자리에서 니 꿈을 종종 꾸기도 하고, 그래서 니를 꼭 한 분 보고 접더라, 그기 다다.” 그러고 서둘러 빗속에서 헤어졌고, 얼마 뒤, 어디서 들었는지 내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쓴다는 소문을 들어서 우편환으로, 그 당시에는 거금이었던 500만원을 내게 부쳐주었다, 감지덕지, 뻔뻔한 나는 그 돈을 술값으로 유흥비로 탕진하고 말았지. 자전거가 쌔맨 공구리 옹벽을 들이받는 순간 죽음의 예감 속에 스치는 두 번 째 기억, 어릴 적, 신나게 까불랑대며 깨춤을 추며 빙그르르 돌며 내달리다가 순간 중심을 잃고 땅바닥에 나둥그러지던 기억, 피가 머리 쪽으로 확 쏠린 느낌, 일단 몸 아픈 거는 둘째고, 그보다 더한 절망감/낭패감/자책감/수치심/좌절감이 더 아팠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있으면 벌떡 빨리 털고 일어나 태연한 척하지만, 그러나 빈 운동장, 빈 골목이면 한참 그 자세 그대로 다섯 가지의 열패감이 정리되고 수습될 때까지 자빠진 채로 그 자세 그대로 있다가, 이윽고, 누운 채로 코피 문지르고, 까진 물팍 아리쓰리 참으며 잇발 지그시 물고 무릅 펴고 후줄근히 툴툴 털고 일어나 여기저기 사지의 안부를 확인하였다. 셋째, 내 고향 지미(치명) 동네 설, 또는 추석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술 잘 마시는 정씨 집안, 제사 후 음복자리,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하느니라. 아나, 받아라, 니또 술 한 잔 할 나이다.” 성년 된 조카에게 삼촌이, 할배가 손자에게 일배부일배, 그 말석에 낑기 앉은 다섯 살배기 나, 그 조카, 그 손자가 “아나, 니또 마시바라, 무글만 하다,” 귓속말로 술상 아래로 건네주는 술잔 한 두 잔, 홀짝홀짝, 그리고는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쪼그만 또랑가를 따라, 크윽, 술트림을 해가며 비실비실 끄뜩끄뜩 걷다가, 어어, 풍덩~~! 넷, 연날리기, 하늘의 연만 고개 돌려 쳐다보며 내달리다가 시골 들판 여기저기에 있는 웅덩이(떰붕)에 첨벙~~~! 의 기억, 다섯, 똥 가두리에 가슴까지 빠졌던 흑사, 이 사연의 전후좌우 사정은 대충 생략한다, 또 한 여인, KWS를 끌어 들여야 하니, 1996년 어느 어름 밤중, 갸를 집에 데불다 주고 막차 버스를 놓치고 터벅터벅 지향없이 돌아오는 길, 어어, 저 멀리 창문마다 불을 환히 쪼르르 밝히며 창원역 역사로 달려 들어오는 기차 골패가 보이네?, 우리 집 쪽으로 향해가는 그 기차를 잡아보려고 한밤중 시골 들판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후두두두, 허억허억, 순간, 내달리는 발밑이 미꺼덩, 푸우욱, 내 몸 전체가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 무신, 자다가 밤중에 봉창 뚜들기는....., 일단 동작을 멈췄다, 움직이면 서서히 더 가라앉을 본능적 예감에, 일초, 이초, 삼초,.... 똥냄새가 코를 찌렸다, 그라모 요오가(왜, 옛날 구식 통시이, 떡가래같은 그거 한 줄기 낙하시키면 도로 엉디이까지 튀어오르는 그거 물 피하자고 엉디이를 번쩍 치켜 들어야 했던 뒷간, 요즘같은 보드라븐 휴지가 오데 인노, 겨우 귀했던 신문지 쪼가리 두 손으로 부벼 뒷처리하면 오감코, 대개는 용변 후 옆에 적당한 높이로 매어놓은 새끼줄에 걸터 앉아 엉디이 똥꼬를 전후로 마찰시켜 뒷처리하던 똥간, 그 똥간 쌩똥 오줌물을 똥장군에 철벅철벅 지고나가 밭에 뿌리면 그것의 맹독성 성분 때매 작물이 모달티리 삭아버려서 짜낸 선열들의 지혜, 들판 한가운데 웅덩이를 파서 거기 가두어 오래오래 사카서 부패/발효/숙성시키는 장소, 똥가두리, 거기 내 가슴까지를 파묻고 있는 상황, 서서히 가라앉고, 그러나 일단, 호랭이 등에 업혀 가더라도 정신줄만 놓지 않으면 산다, 최대한 움직임을 줄인 상태로 똥늪 수면위로 손을 움직여 더듬으니, 앗싸라비야, 흙두덩이가 손에 잡힌다, 살금살금 그 두덩이를 잡고 끌어당겨서.....(이후 셀프 라이프 세이브, 밤중 불빛 보이는 외딴 여관 헤매어 찾아 마당 우물가 두레박 목욕, 똥칠갑 옷 빨가 벗고 손세탁, 그걸 지켜보던 여관집 아줌마가 멀찌건히 던져 주는 축 처진 속곳,.....)
휴우~~, 이 다섯 가지의 기억이 동시다발적으로다가 0.3초 동안 스치는 거라,
쌔맨 공굴 옹벽 아래 처박혀, 사지와 몸통과 자전거 앞,뒤 바퀴가 이리저리 서로 얼크러 설크러져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다시, '호랭이, 정신만, 산다', 똥가두리에서도, 교통사고 당해 수 차례의 대수술을 받고도 살아남은 나다, 내게만 유독 자애로우신 하눌님, 짐제네가 차에서 황급히 내려 나를 붙든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 때문에....” 울상, 글썽글썽, 아이이, 이 상황에, 아녀자가 이 사태를 좀 더 거리를 두고 침착하게 수습할 방도를 찾아야지, “개안타, 죽지는 안컷다, 비켜 서라, 기다리 바라,” 몸통에서 먼 곳부터 하나하나, 먼저, 손꾸락, 꼼지락꼼지락, 오케이, 발꾸락, 꼼작꼼작, 오케이, 팔목, 발목, 어깨, 이미 아작난 허리의 안녕이 최대 관건, 자빠진 채로 당장 확인 불가, 슬슬 엉킨 자전거와의 실타래를 살곰살곰 풀며, 분리, 빠져나와 옹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개애안십니꺼?” 글썽, “내 때미네”, 울상, 그 판에 오 헨리의 단편소설 한 구절이 떠올랐다, 와, 제목은 생각 안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노숙 부랑자 하나가 이 추운 겨울을 그나마 따숩게 지낼려면 감옥소에 들어가야기 때매 ,범법 사고를 크게 한 건 치려고 밤길을 방황하다 어느집 담부랑을 타고 넘다가, 착지를 잘못해서 지금 내 꼬라지, 내 모양새를 당해서 정신을 사알살 수습하는 그 장면을 묘사한 구절, (“그는 천천히, 마치 목수가 나무로 된 접이식 자를 한마디, 한마디 펼치듯, 그렇게 구겨진 네 개의 사지를...”) (그 구절이 너무나 희화적이고 적절한 비유이기에 많이 웃었지)이 그 상황에서 떠오르데, 긁히고, 멍들고, 씨씨이고, 아리아리한 부위는 여기저기 있으나, 뼈와 살이 결정적으로다가 뿔라지고 물캐진 데는, 당장은 없어 보였다, 마누라 걱정을 빨리 덜려고 후딱 일어섰다, 허리도 지금은 개안아보였다, 팔다리를 휘두르고 걸으며 재점검해보니, 후유, 119는 안불러도 되겠다 싶다, 읍내 볼일도 여러 가지니 이대로 자전거 쏘울에 담아 싣고 출발하려다, 애래기, 니 안죽으모 내 안죽는다, ‘은토마’야, 미안하다, 사랑한다, 놀랜 니 상태도 점검할 겸, 다시 니랑 같이 길 나서자,
껄적껄적 안장에 올라타고, 휘이이이잉, 짐제네는 걱정이 되어 내 뒤를 조심조심 따라온다, “아이, 제발 내 주위를 깔짝대지 마아!” 고함, 그 소리 들은 사고 발생의 장본인, 나를 휘익 지나쳐 달아난다, 깜박이 끄는 걸 잊은 채로, 내 귓전에 들리는, 씽씽, 씨잉씽, 차르르, 차르르....... https://www.youtube.com/watch?v=d-tKf-XmT2A [Bebe · Sin palabr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