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리 둬~
뉴질랜드
백동흠
오클랜드 날씨치고는 환상적인 날이었다. 멀리서 밀려오는 새하얀 파도를 바라다봤다. 드넓게 펼쳐지는 Muriwai 비치 골프장 앞에 서니, 가슴이 벌써 설레었다. 구름도 없고 거센 바람도 없었다. 아침기운 따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너울거림에 골프공이 잘 안 보였다. 그게
하나 탈이었다.
매일 운전을 하다 보면 운동도 필요하고 자연 세상도 기다려졌다. 쉬는 날에는 운전하는 이들끼리
골프 치는 날로 정해놓았다. 저마다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다 한 달에 하루만이라도 탁 트인 대 자연속에서
골프를 쳤다. 각양각색의 승객들하고 빚어지는 천차만별의 해프닝을 서로 터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재미와 의미가 있었다.
뉴질랜드는 고국의 대중목욕탕 같은 게 없는 게 아쉬웠다. 그런 터라 게임을 마치고 모두 샤워장에
들러 발가벗고 시원스레 샤워했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면서 옷을 갈아입다 보면 문득 고국의 목욕탕 향수를
맛보기도 했다.
인심도 후하고 음식도 푸짐한 교민 식당에서 먹는 저녁 식사 시간도 별미였다. 함께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구워서 상추쌈에 술 한 잔씩 서로 들이키면 딱맞았다. 정말이지 그 동안 쌓였던 피로와 힘들었던 일들이
봄날 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소시민적인 우리들에겐 이런 게 바로 작은 위안이었다.
골프를 하려면 시간 투자가 기본 아닌가. 제대로 치는 사람들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꾸준히
쳐야 감각도 유지되고 치는 맛도 날 텐데. 겨우 한 달에 한 번씩 치게 되니 칠 때마다 또 새 잽이었다. 결국 동료 운전기사들보다 더 많이 치고 가장 많이 걷는 것은 항상 내 몫이 돼 버렸다.
이렇게 하나 저래 하나 운동은 꼭 해야 하는 필수요소였다. 이렇게라도 푸른 대초원 위를 걸어서까지
운동량을 보충하니 그도 좋았다. 일하다 말고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골프공보다 먼저 푸른 하늘을 날았다.
잃어버린 감각을 살려 겨우 드라이버 샷이 되는가 싶으면 세컨드 아이언 샷이 죽을 쒔다. 그러니
걷고 치고 또 걷게 마련이었다. 5번 홀이었다. 드라이버 샷이 제법
잘 맞아 그 기분을 살려 세컨드 아이언샷을 했다. 맞는 소리가 경쾌해서 기분도 춤추며 골프공을 따라 하늘을
날았다. 세상에서 쌓인 스트레스 덩이가 가슴에서 빠져나갔다.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새 하얀 공의 궤적이 그런대로 볼만했다. 아니 나한테도 이렇게 연속해서 잘 맞을 때도 있나? 의아한 눈으로 지그시 공을 바라보다 말고 소스라치게 외치고 말았다. “아이고머니
나!”
새 한 마리가 뚝 떨어졌다. 뛰어가 보니 참새 한 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그대로 내동댕이쳐
있었다. 날아가던 bird(?)를 잡은 거였다. 함께 골프를 치던 뉴질랜드 현지인, 키위들이 다가와 보더니 “우~ 웁스!” 하고 물러섰다. 아연실색할 수 밖에…. 도대체가 말이 안 떨어졌다.
파(par)도 하나 못 잡고, 보기(Boggie) 게임도 못하면서 Bird(?)를 잡다니?
Birdy를
잡으랬지, 누가 살아있는 Bird를 잡으랬나? 그 와중에도 염치는 있었는지 말이 안 나왔다. 골프 치러 왔으면 얌전히 골프나
칠 일이지, 왜 잘 놀고 있는 참새를 잡냐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안이 벙벙했다. 일도 못 한 사람이 일을 저지른다더니 바로 그 짝이었다. 손
위에 올려놓은 참새는 벌써 저세상으로 갔고, 가벼운 바람에 꼬리 깃털만이 펄럭였다.
새를 나무 아래 숲으로 옮겨 땅을 파고 묻었다. 그 위에 검불로 덮어줬다. 죄도 없이 노닐다가 그만 제삿날이 됐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연못에 무심코
던진 돌 하나가 평화롭게 잘 헤엄치며 노는 개구리를 잡았다. 개구리네 가족에겐 초상집을 만든다더니 바로 그
경우였다. 동화책, 우화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일을 저질렀으니 어떡한다? 그나마도 못 치는 실력에 이젠 양심까지
죄의식으로 가득 찼다. 다음 샷부턴 심하게 땅을 파거나 애꿎은 공 머리만 때리고 말았다.
세상을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애꿎게 비명횡사한 작은 새 생각만 하다가 가까스로 게임을 마치게 됐다.
동료 기사들에게 Bird(?)를 잡은 내 이야기가 큰 화제였다. 실력이
그렇게 늘었냐며 순진하게 놀라는 이도 있었다. 바보처럼 그저 웃고 말았다. 조촐하게
자체적으로 만든 시상식이 이어졌다. 기대치도 않았는데, 특별상(Birdy)을 받았다. 고추장 한 통을 받아 들고서 얼떨떨했다. 그동안 운전자 골프 모임에 자주 못 나왔더니 골프 모임에 빠지지 말라고 격려차 주는 배려였다.
왜 이번 골프 게임에서 다른 선수들이 한 번도 Birdy를 잡지 못했을까? 일찌감치 살아있는 Bird를 한 마리 잡는 바람에 그만 나머지 Birdy는 놀라서 기겁하고 도망을 간 걸까. “참새야! 내가 정말 잘못했다.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용서를 빌게. 잘 가고 편히 쉬렴.”
고추장 매운맛이 진하게 내 마른 속을 헤집었다. Birdy 상으로 받은 고추장 한 통을 든 손에서
참새가 퍼덕이며 외쳤다. 내 생명 다시 돌리 둬~ *
첫댓글 날아가는 새를 잡다니... 대단합니다 ^^
새가 많기는 참 많아요.
음식점에가도 들어와요.
새들의 천국이니까요.
그 중의 한 마리가ㅜㅜ
백작가님 놀라운 실력에 참새가 미리 기절했을지도요.
암튼 삼겹살에 소주는 향수를 달래주는 맛이겠어요.
세상 어디가나 우리는 한국인
그 정서가 어딜 안가지요~
서민의 애환을 함께 싸서~
그 새는 참 ㆍ어쩌다가ㆍ 새가 정말 많은가 봅니다 ㅡ
골프 새잽이한테
참새가 낚였습니다.
^^
천하의 명궁이 아니라 명골퍼 백빈후드님이시군요.
일을 마치면 골프치고 한인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도 한 잔 할 수 있으니,
그곳에서의 삶이 외롭진 않으시겠네요.
세상 어달가나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특히나 외국나오면
애국자가 된답니다.
우리의 정서, 하나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군요. 새가 백 작가님의 수필 소재를 위해 살신성인한 걸로~ㅎ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석이 기가 막힙니다.
역시 회장님은 상상력이 하늘을 날아갑니다.
힘받아 다음 샷을 준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