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백일(100일)이란 말을 자주 쓰고 듣습니다.
100의 의미를 문득 생각해봅니다. 한자로는 百, 우리말로는 백.
100을 " 바람아, 석 달 열흘만 불어라"는 노래 가사처럼 풀어서 말하기도 합니다. 석달 열흘 => 백일
우리 조상님들은 '백(100)'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언뜻 떠오르는 것이 아기가 태어나면 백일 잔치를 합니다.
이웃을 부르는 거창한 잔치가 아닌 집안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마련한 자리인 잔치, 굳이 거창하게 잔치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합니다. 대신 백일떡은 골고루 나눠 먹고 축하하지요. 백일떡은 그냥 먹으면 안 된다고 꼭 답례릃 하는 풍속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벡일떡 비운 접시에 대신 무명실타래를 얹어서 보냅니다. 실처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뜻으로. 아니면 돈으로 복을 빌기도 하고. 백일 떡은 예외없이 흰쌀로 된 백무리떡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아마도 백색의 백(白)과 일백 백(百)이 뜻만 다를 뿐 음도 같고 글자도 거의 비슷하니까, 100세까지 장수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듯하고, 아니면 우리 겨레 풍속에 하얀 것은 신성한 빛깔이어서 숭상하고 있으니까. 흰옷을 입고, 백의민족 아니랄까봐, 소복을 입고, , 설날에는 흰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먹은 것이 되고, 요즘 차 색깔도 대부분 하얀색인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하얀 색 사랑은 체질적인 것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왜 그리 100을 숭상할까요?
궁금하기도 하고,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하나에서 아홉을 지나면 열이 됩니다. 열이 되면 단위가 달라집니다. 일. 시(십) .백 .천. 만. 천만...처럼 바뀝니다.
일은 한자로 한 一로 씁니다. 가로 한 획이죠.
열 십 (十)은 십자가 모양으로 변합니다. 즉 세로로 I 자 모양입니다. 10은 가로와 세로 획이 서로 직각으로 만납니다.
이것은 완전해졌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한약방에서 보약 중의 하나인 십전대보탕의 십전(十全)이란 말은 완벽한 100%의 의미란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십분' 이해했다면 다 알았들었다는 뜻처럼 말입니다.
옛날(당나라) 관리들은 5일 휴가에서 10일( 열흘 旬) 휴가를 얻어 '머리도 감고 몸도 씻는' 이른바 목욕(沐浴)을 했답니다.
이런 완전함을 뜻하는 열이 열 번 있다면 그것은 일백 백이 됩니다. 그리하여 백(百)은 '완전함(十)의 완전함'이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 그런 의미에서 백일날 백무리떡으로 그 기쁨과 기원을 함께 하면서 앞날을 비는 것은 참으로 뛰어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100일 날이 실제 생일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열 달 만에 태어난 아기에게 100일을 더하면 실제 수태(孕胎)한 날이란 뜻으로 본 것입니다. 열 달이 양력 30일짜리 열 달이 아닌 음력 28일 한 달인 열 달이니 280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것도, 대략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열 달을 못 채우고 나온 아이를 흔히 팔삭둥이라고 하듯이..
100일이 지나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니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예전에는 이 때가 지나야 비로소 출생신고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 출생일과 호적 생일이 달라지는 원인이 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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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그 성취를 보게 되는 것은 100일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나타나는 가 봅니다.
이른 봄에 심은 하지 감자(馬鈴薯)가 하지 무렵이면 말방울만큼 씩이나 크게 토실토실 영글어서 보릿고개 넘어가는 데 허기를 채워줍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봄(음 2월)에 심어서 가을 (8월)에 거둡니다. 대충 날 수를 따져 보면 100일 정도 이쪽 저쪽 됩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100일 농사'라는 말을 썼나 봅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날이지만 그 날은 오늘을 만든 어제이었습니다.
오늘은 또 내일의 과거가 됩니다.
그러니 훌륭한 내일을 위해서는 오늘 하루도 미련 없는 하루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요새처럼 날씨가 더웁고 비가 오고 수해가 나는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하루하루를 시지프스 신화 속의 주인공처럼 묵묵히 운명의 바윗돌을 밀어 올려야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랍니다. 100일 정성을 들이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곧 백중이 다가오면 하안거(夏安居)도 끝납니다.
(2024년 7월 19일(토) 카페지기 씀)
(*추가 보충 사항입니다.)
갑골문을 풀이한 <한자밀마>라는 중국 책을 보니,
열 십(十)은 본래 1자처럼 세로로 내려 그어 썼는데, 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내 뻗은 손'을 상형한 것이랍니다. 손가락을 펴서 하나 둘 셋... 다시 오무리며 여섯(六) 이렇게 해서 주먹을 쥐어 열(十)로 마친 모양입니다. 금문(金文)에 가서는 세로 1자 중간에 둥근 점 하나가 첨가됩니다. 이것이 소전(小篆)에 와서 오늘의 十자로 됩니다..
이십, 삼십, 사십은 한 一 에 세로 획 한 개, 두 개, 세 개씩 더해서 나타냈습니다.
예를 들면 20 => 卄 (스물 입)으로 , 설흔 십 =>卄十 , 40=> 卌 (마흔 십) 등입니다.
흰 백 (白)의 갑골문은 엄지손톱을 상형한 것으로 나옵니다. 풍찬노속하던 옛 원시상태의 사람들 손은 온통 검은 색깔 투성이었는데 유독 엄지 손톱 하얀 부분이 두드러져 보인 것 같습니다. 이 원추형 손톱 아래 흰색 부분을 반원형으로 나타낸 것이 白의 갑골문이랍니다. 우리 민족이 배달겨레이니, 백의(白衣)민족이니하는 것은 이 백(白)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화하족은 빨간(紅)색을 좋아하는 데 말이죠.
일백 백(百)은 이 흰색의 백(白)자 위에다 한 일(一)을 덧 붙여서 열(十)의 열(十)배를 나타낸 것으로 갑골문은 되어 있습니다.
신통하게도 白과 百의 중국어 발음은 ' 白 bái , 百 bǎi 바이 ' 입니다. 우리말로 '바이'를 압축하면 '배'가 됩니다. '배달민족'의 '배'와 같습니다. 성조만 다를뿐 입니다.
우리는 '개(狗,犬)'라 하지만 흔히 ' 저 가이'하던 할머니가 쓰시던 말이 생각납니다. '개'는 '가이'로, '아이'는 '애'로 말이지요.
'강아지'도 여기서 가지 쳐 나온 말이 아닐까요?
중국어 '바이'(白, 百) 도 똑 같이 우리는 지금 '백'으로 발음하는 것이 같습니다.
진태하 박사가 주장하는 "한자는 중국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글자"라는 예에 속하는 하나로 보고 싶습니다.
<갑골문 白과 百 보기>
(*2024.07 20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