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자심不欺自心
성철스님 53가지 어록을 간추려 옮겼다.
(1) 만약에 앞으로도 불교 이상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이 옷(장삼)을 벗어버리겠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
(2) 자기를 바로 보자.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다. 자기가 바로 부처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다.
(3)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하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다.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다.
(4) 자기는 본래 순금이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다.
(5)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한다.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불쌍히 여기면 이는 크게 모욕하는 것이다. 모두의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하다.
(6) 현대는 물질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은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
(7)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려고 오셨다.
(8) 눈길을 돌려 밖을 내다보지 말라. 자기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모든 보배가 자기 속에 가득차 있다.
(9) 천하부귀를 다 누린다 해도 내가 본시 진금인 줄 아는 소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0) 뜻은 비로자나불 정수리에 두고, 행실은 동자 발밑에 절하듯 하라. 아이 발밑에 절하듯 겸손하라.
(11)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린아이다. 꾸밈없는 천진함의 진불이다.
(12) 어린아이를 집안에서 주불로 모셔라. 어른이 때 안 묻은 생활을 하기 위해선 어린아이를 본받아야 한다.
(13) 재주나 지식을 경계하라. 지식만능은 물질만능 못지않게 큰 병폐다. 인간 본질을 떠난 지식과 학문은 순진한 인간 본래의 마음을 더럽히고 타락하게 하기 일쑤다.
(14) 나의 법문은 독약이다. 송장이 관속에서 아무리 눈을 떠봐도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것을 바로 안다면 병을 스스로 고칠 수 있다.
(15) 내 밥 내가 먹고 사는데 어째서 남의 집 밥을 구걸하느냐? 부디 내 밥 내가 먹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게 진정한 공부인이다.
(16) 자비란 봉사다. 불교는 자비가 근본이므로 남을 돕는 것이 근본이다. 생활기준을 남을 돕는데 두어야 한다.
(17) 일체 만물은 서로 의지하여 살고 있어서 하나도 서로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이 부처님의 연기법칙이다. 만물은 원래부터 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18)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이익을 받는다.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와라.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남을 돕는 것밖에 없다.
(19) 남을 해치면 내가 죽고 남을 도우면 내가 산다. 이러한 우주의 근본 진리를 알면 남을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가 없다.
(20) 보살도(보살정신)는 행복의 극치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다. 이로써 남이 더욱 안락해지면 나의 행복도 더 커진다.
(21)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부모님이다. 내 집 안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 불공이다.
(22)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이다.
(23) 발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이다.
(24)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이다. 날아다니는 생명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이다.
(25)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이다.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이다.
(26) 절은 불공을 가르치는 곳이지 불공드리는 곳이 아니다.
(27) 나를 해롭게 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가장 존경하고 돕는 것이 참된 불공이다.
(28) 불교의 대상은 일체 중생이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미물이고 할것 없이 일체 중생 모두가 불공 대상이다.
(29) 남을 올려다보라. 언제나 남을 무시하고 깔보면 안된다.
(30) 부처님 앞에서 목탁 치면서 명 빌고 복 빌고 하는 것은 장사하는 것이다. 부처님을 파는 것이다. 그러면 절이 도적의 소굴이 된다.
(31) 일체 중생을 위해, 남을 위해 참회하고 기도하라.
(32) 불교에는 용서란 말이 없다. 일체 중생의 불성은 똑같기 때문이다. 실상이 똑같은데 누가 누구를 용서하겠는가?
(33) 불교에는 구제란 말이 없다. 자비(봉사)가 있을 뿐 구제는 없다.
(34) 배고픈 부처님, 옷 없는 부처님, 병든 부처님이 도처에 있다. 이런 무수한 부처님들을 효자가 부모 모시듯이, 신도가 부처님 받드는 성심으로 여기며 돕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35) 선과 악을 완전히 버리고 그래서 선과 악이 융합되는 것이 불교의 선이다. 그것이 중도의 세계다. 선과 악은 대립되지 않는다.
(36) 선과 악은 헛된 분별이어서 악마와 부처가 이름은 달라도 한 몸이다.
(37) 신심이 성지이다. 보타산, 오대산이 따로 없고 사람마다의 신심이 그곳이다.
(38) 인간의 존엄성을 알고 보면 나도 부처, 너도 부처, 모두 부처이다. 부처가 부처끼리 서로 존경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다.
(39) 생사란 바다의 파도와 같다. 바다에 파도가 일어났다 꺼졌다 하듯이 그렇게 생사가 반복된다. 그러나 바다 자체는 나고 죽음이 없다.
(40)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자체는 진여이며 영원불멸이다. 삼라만상은 천변만화해도 진여는 불변이다.
(41) 인과가 있을 뿐이지 운명은 없다. 결과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힘써 노력하면 좋은 결과는 자연히 따라온다. 자력을 다했을 때 타력이 나타난다.
(42) 업에 따라 귀하게도 되고 천하게도 된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이다.
(43) 불교의 근본인 깨친다는 것은 일체 만법의 본원 그 자체를 바로 아는 것이다.
(44) 손가락 저편에 있는 달을 바로 보아라.
(45)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지 승려를 따라가서는 안된다. 예수를 믿어야지 신부, 목사를 믿어서는 안된다.
(46) 한 법도 버릴게 없는 것이 불교다. 이렇게 활짝 문을 열어놓은 채 자기 자신을 바로 보아라. 자기를 바로 알고 이웃을 도우라.
(47) 철저한 무소유에서 때 묻지 많은 정신이 살아난다.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이유를 알아야 한다.
(48) 마음의 눈을 떠라. 절대의 세계를 딴데 가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 마음의 눈을 뜨면 그대로가 절대의 세계이다.
(49) 마음의 눈만 뜨고 보면 모든 것이 본래 광명 속에 살고 있고, 우리 자체가 본래 광명이다.
(50) 탐욕을 버려야 마음의 눈을 뜬다. 탐욕은 '나'라는 것 때문에 생긴다.
(51) 현실모순을 중도로 극복하라. 현실세계는 선과 악, 옳고 그름, 있음과 없음, 괴로움과 즐거움 너와 나 등 모순과 대립의 투쟁 세계다. 참다운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양변을 버려라.
(52)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알고 나면 일체 만법이 불교 아닌 것이 없다.
(53)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를 속이지 말라. "쏙이지 말그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