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세계 III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예일대학교 강연
내려놓음 속에서 찾은 평안의 길
글 이주성 (예일대학교 박사과정생)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강연이 10월 10일 예일대학교에서 열렸다. ‘한 승려의 명상 여정(The Meditation Journey of a Buddhist Monk)’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학생들과 교직원의 높은 관심 속에 성황을 이루었다. 약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헨리 R. 루스 홀 (Henry R. Luce Hall) 강당은 강연 시작 전 이미 만석이었으며,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은 강당 양옆 복도에 서서 강연을 경청했다. 현재 한창 중간고사가 진행 중인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강연의 높은 참석율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내에서 한국 문화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환수 (일미 스님) 예일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장과 스티븐 윌킨슨 (Steven Wilkinson) 예일대학교 글로벌 전략 담당 부총장의 짧은 축사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마이크를 넘겨 받은 진우 스님은 예일대학교 맥밀런 센터 (MacMillan Center)와 동아시아 연구소 관계자들, 학생들에게 먼저 인사를 전했다. 이어서 스님은 예일대학교 총장과 만나 한국 불교학 발전을 위한 기금을 전달했음을 밝히고, 예일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간의 학술 교류 협력에 대한 기대감 또한 표명했다. 이를 통해, 이번 강연이 단순히 진우 스님의 개인적인 명상 여정을 공유하는 자리를 넘어, 예일대학교의 한국 불교학 발전을 위한 한국 불교계의 관심과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자리라는 점이 잘 드러났다.
진우 스님은 자신을 ‘수행자’라 소개하며, 수행자는 ‘괴로움이 없는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스님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하며, 이번 강연의 목적이 괴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했다. 진우 스님에 따르면,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불행이 있으면 행복도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함께 따른다. 따라서 스님은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가지고 사는 것보다 이 둘을 모두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본인은 강연을 하는 이 순간을 포함해 언제 어디서나 ‘평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진우 스님은 본인이 행복, 기쁨, 만족을 추구하지 않으며, 동시에 괴로움, 슬픔, 불만족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스님은 그 비결로 이미 지나간 과거에도, 지금 바로 이 순간의 찰나에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도 모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에서 좋고 싫다는 두 감정을 내려놓아야만 진정한 평안함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하며, 이를 ‘중도’라 명명했다. 또한, 모든 현상은 시간과 공간, 인과 연이 얽히고 설켜 일어나는데, 여기에 개인의 좋고 싫음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모든 것이 어그러진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러운 인과의 흐름이 왜곡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연기법을 믿고, 다만 내려놓고 모든 것을 인과의 법칙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우 스님은 ‘평안함’이라는 개념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스님은 석축 작업 중 손가락을 크게 다친 후 병원을 찾았으나, 젊은 의사는 느긋하게 치료를 준비하며 웃음을 보였다. 그 모습에 스님의 분노는 서서히 끓어올랐다. 고통을 참으며 기다리던 중, 의사는 마취 없이 생살을 꿰매기 시작했고, 고통은 기절할 정도로 심해졌다. 그러나 그 순간, 스님은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고통과 분노의 근원이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의사의 행동은 그 나름의 연기적 조건에 따른 것이지만,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결국 스님 자신의 문제라는 점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깨달음의 순간, 스님은 고통과 분노를 내려놓고 평안을 찾았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안도감을 초월한, ‘진정한 평화’였다.
스님은 이렇게 고통과 분노와 싸우기보다는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좋고 싫음이라는 상반된 감정은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두 감정을 모두 내려놓아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우 스님에 따르면, 내려놓음은 부정적인 감정의 고리를 끊어 윤회와 업을 사라지게 하는 중요한 수행의 초석이 된다. 또한 스님은 내려놓음이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최고의 능률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 수행을 통해 우리가 모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진 강연에서 진우 스님은 일상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명상을 소개했다. 고통과 슬픔도 결국 지나간다는 깨달음을 주는 ‘지나감 명상,’ 모든 현상은 나의 그림자로서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그림자 선 명상,’ 깊은 성찰을 이끄는 ‘화두 명상,’ 그리고 짧은 시간 내에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5분 멈춤 선 명상’ 등이 그 예였다. 마지막으로 강연의 하이라이트로 5분간의 ‘무자 화두 명상’을 실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스님은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무(無)’라는 한 글자에 오롯이 집중하라고 설명했다. 탁탁탁 세 번의 죽비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불교 신자에게는 친숙하지만, 예일대학교라는 장소에서는 이질적인 죽비 소리가 사라진 후, 강당은 깊은 고요로 가득 찼고,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5분 명상을 마친 후, 진우 스님은 내려놓음과 이를 바탕으로 한 명상이 단순한 종교적 수행법에 국한되지 않음을 설명했다. 이는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어디서든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스님은 ‘내려놓음’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이자 정신 습관임을 밝히며, 판단과 집착을 버리고, 좋음과 싫음도 여읜 채,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순간 그저 내려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여러 학생들이 ‘내려놓음’과 삶의 태도 등에 관한 질문을 쏟아내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학생들이 항상 건강하고, 매일 불편함 없이 평안한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예일대학교에서는 일주일에도 수많은 강연이 열리지만, 대부분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강연은 드물며,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자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적 명문 사립대학인 예일대학교의 학생들은 지식이든, 문화적 경험이든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내면에 쌓아왔다. 그런 맥락에서 진우 스님의 강연은 특별했다. 더 이상 쌓기만 할 필요 없이 내려놓아도 된다는 스님의 가르침은, 과중한 학업과 미래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로 다가왔다.
“올 건 오고, 갈 건 갑니다. 다만 걱정하지 마세요. Don’t worry.” 강연의 핵심을 완벽하게 요약한 이 말을 끝으로, 스님은 마이크를 내려놓으셨다. 끊임없이 쌓아온 지식과 성취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다가올 미래와 지나간 과거에 대한 걱정을 버릴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스님의 가르침은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