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이동통신 기업들이 보조금 중심의 영업 경쟁을 지양하고, 요금제와 서비스 차별화에 주력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이동통신사들은 현재의
수익을 포기하고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가입자를 확대하는 전략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이러한 관점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동통신 보급률이 100%를 넘어서면서 가입자 순증가율이
급격히 줄었고, 이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해도 더 이상 가입자를 늘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보조금을 지급해서 신규 가입자를
유치해도 경쟁사에게 기존 가입자를 빼앗기는 제로섬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 이 같은 현상을 우리보다 일찍 경험한 미국, 일본,
유럽의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보조금 중심의 영업 경쟁에서 저렴한 요금제와 서비스 차별화를 추구하는 마케팅 경쟁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경쟁사의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돈을 쓰는 구조에서, 현
고객을 지키는데 돈을 지불하는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동일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했을 때 신규 가입자 모집보다는 기존 가입자를 유지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요금과 서비스 중심의 마케팅 경쟁이 가장 활발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 이동통신 시장에서 치열했던 보조금 경쟁이 시들해진 배경에는 4위 사업자였던 T모바일(T-Mobile USA)의 영업 전략이
주효했다.
미 이통사 중 실적 압박을 가장 크게 느끼던 T모바일은
2012년 말 존 레저 대표가 새로 부임하면서, 네트워크 투자를 강화해 통신 품질을 경쟁사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이와 동시에 소비자의 이동통신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적극 수용해 마케팅 차별화에 활용했다.
2013년 3월에는 경쟁사와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는
'언캐리어 1.0' 전략을 발표했고, 현재 '언캐리어 7.0'까지 차례로 내놓았다. T모바일은 각 단계마다 ▲약정 폐지 ▲요금제 단순화 ▲단말기
교체 프로그램 ▲100개국 무료 데이터 및 문자 로밍 같은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해 고객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T모바일은 연속된 언캐리어 전략을 통해 고착화된 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2013년 3월 13.1% 수준이던 점유율은 3분기 만에 13.9%로 올랐고, 올해 말까지 14.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T모바일의 성장에 자극받은 AT&T, 버라이즌,
스프린트 3사 역시 무약정 요금제와 단말기 교체 프로그램을 앞다퉈 도입했다. 올해 8월 이후 버라이즌은 무제한 음성통화, 문자, 데이터 2GB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AT&T 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했다. 스프린트 역시 경쟁사 대비 30% 이상 저렴한 가족 간 데이터 공유 요금제를
선보였고, 음성통화, 문자, 데이터가 모두 무제한인 요금제를 80달러에서 60달러로 내렸다.
미국보다 앞서 요금 경쟁이 본격화된 일본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과도한 마케팅 경쟁에 시달렸던 일본의 영업 관행을 바꾼 것은 3위 기업 소프트뱅크였다.
소프트뱅크가 2006년 보다폰KK를 인수할 당시 일본
통신시장은 점유율 50%의 1위 사업자와 20%대의 2위 사업자, 그리고 10%대의 3위 사업자로 고착화된 상태였다. 여기에 가입자 한 명당
평균 수익을 뜻하는 ARPU(Average Revenue Per Unit)도 2004년부터 3년간 16.5%나 감소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휴대전화 1대 당 약 4만엔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반면 위약금은 낮았는데, 휴대전화의 카메라 화소가 비약적인 발전하던 시기였기에 고객들의 가입과 해지가 반복됐다. 당연히 이동통신사들은
그만큼 더 많은 보조금 출혈을 감당해야 했다.
2006년 10월, 소프트뱅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말기 할부와 통신 요금을 분리시키는 '분리 요금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단말기 구매 비용을 24개월 할부로 나누고 여기에 통신 요금을
추가로 받도록 한 것이다.
2007년 1월에는 화이트 플랜 요금제를 선보여 고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이 요금제는 새벽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20시간 동안 망내 무료통화를 제공하는 것으로, 6개월 만에 60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한다. 여기에 경쟁사가 어떠한 요금제를 선보이든 24시간 안에 동일한 요금제를 출시하겠다고 공표하면서 소프트뱅크의 시장 점유율은
올해 말 24.9%까지 오를 전망이다.
반면, 유럽 내 이동통신 서비스 경쟁 본격화는 앞선
국가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럽 내 이동통신사들은 2000년대 초 3G 주파수 경매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지만, 높은 요금제 등으로
고객의 외면을 받았다. 이후 기대보다 낮은 매출이 발생하자 이통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보조금 폐지와 함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요금인하를
단행한다.
시장조사기관인 인포마 텔레콤앤미디어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이미 유럽의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 30여 곳이 보조금을 완전히 혹은 일부 폐지한 상태로 탈 보조금 전략이 대세로 부각되고 있다.
보조금을 폐지한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 중 대표적인 곳은
스페인의 텔레포니카다. 2012년 2월, 텔레포니카는 비용 부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보조금 제도를 폐지했다.
보조금 폐지 후 약 2개월 동안 총 257만 명의 가입자가
이탈했고, 텔레포니카의 점유율은 2011년 말 41.3%에서 2013년 말 기준 37.3% 정도로 하락한다.
그러나 당초 우려와는 달리 보조금 지급을 중지한 가입자 이탈
현상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오히려 재무성과가 개선됐다.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률이 2011년 29.5%에서 2013년에 48.9%까지 오른
것이다.
통신서비스는 타 산업에 비해 망 투자 등 고정비 비중이 매우
높아 가입자 유치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가입자 증가에 따른 추가적 비용이 낮기 때문에 가입자 확대로 인한 매출 증가의 상당 부분이 수익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이통사들은 가입자 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왔다. 또한 목표 달성을 위해 집중적으로 보조금 지급이라는 수단을 활용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LTE가 경쟁의 메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마케팅 경쟁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외국에 비해 더 높은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보조금 경쟁 이후의 마케팅 경쟁은 주로 요금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요금 중심의 경쟁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요금제는 모방하기 쉽기 때문에 차별화 요소로 작용하기 힘들다. 따라서
단순한 요금 인하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고객 가치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
T모바일과 소프트뱅크 등의 차별화 전략은 단통법 시대에
돌입한 국내 이통사에게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요금인하라는 금전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국내 이통사들의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