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나오면 좋지만’이라는 잘못된 말
1976년 1월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해준다. 이로 인해 온 나라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빠졌다. 신문은 장밋빛 일색의 기사로 채워졌고, 주가는 연일 폭등했다. 당시 대학 1학년을 마친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국가들이 석유 덕에 잘산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고 1973년 말에 갑자기 들이닥친 1차 오일쇼크가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 독재자의 발표가 미심쩍기도 했지만 산유국의 국민이 된다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석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1980년 5월 이란 혁명정부의 초대 대통령 아볼하산 바니사드르의 혁명일기를 읽는 동안 사라졌다. 일기에서 그는 독재자 팔레비 시대 이란의 경제상황 분석을 통해 석유 의존이 한 나라 경제에 어떻게 “중대한 파멸적인 결과를 발생”시키는지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오일머니 없이 “생활할 수 없게 된다면 (…) 석유 없는 시대에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후 그전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석유를 바라보게 되었다.
바니사드르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은 것은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1976년 박정희의 발표대로 포항 지역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왔다면, 우리나라는 석유나 가스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노르웨이, 네덜란드, 베네수엘라 중 독재와 쿠데타의 반복 속에서 국제 원유가격 등락에 따라 경제와 정치가 요동치는 베네수엘라와 같은 상태가 되었거나, 독재에서는 벗어났더라도 네덜란드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허덕이는 처지가 되었을지 모른다.
수출할 만큼 석유가 많이 나오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석유의 저주’에 걸려 신음한다. 경제가 과도하게 석유에 의존하게 되어 산업발전이 저해되고, 석유를 차지하려는 국내외 세력들의 각축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중동의 여러 국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선진화된 국가라고 해서 석유가 반드시 ‘축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북해 유전을 나눠 가진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중에서 앞의 두 나라는 석유와 가스가 경제와 사회의 발전이 아니라 그것을 가로막거나 지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네덜란드 병’이라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반면에 노르웨이는 석유 덕분에 수십년 안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이유는 민주주의적 합의, 에너지 정책 면에서 달랐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처음부터 석유가 가져오는 돈을 “질적으로 더 나은 사회” “더 큰 평등”을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지만, 영국은 새처 정부에서 북해석유회사를 민영화하고, 석유로 얻은 돈은 대부분 세금—특히 부자의—을 깎아주는 데 쓰며 ‘탕진’해버린 것이다. 영국의 어느 수상이 ‘신의 선물’이라고 칭한 북해 석유는 노르웨이에게는 ‘선물’로 작용했지만 영국에게는 ‘저주’로 작용한 것이다. [전문 읽기]
이필렬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