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May 4th Wednesday: 1st Day Story of 3N4D Sketch Journey ( Buyeo, Gochang, Damyang, Byeonsan and Chungyang)
with Saterday Painter Association
2022 5월4일 :
토요화가회 연휴사생첫째날 Story,
아침 8시반 출발, 184km 거리, 2시간 40분걸리는 부여 무량사로 갑니다. 아침 일찍 출발이라 집행부가 정성스럽게 포장한 떡, 과일, 음료수를 준다! 감사합니다!!
도중에 정암 알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무량사 주차장 10시50분 도착! 와~ 공기가 다릅니다. 신선하고 기분좋은 청아한 풀입냄새가 코끝에 감돕니다!! 이곳 평일날 한적하고.. 날씨는 청명, 동네는 시간이 정지된 느낌, 봄바람은 살살 부네요!!
이희권 변호사님과 천천히 사찰 구경하려고 입구로 갑니다. 주변 기념품과 식당들도 한가롭고..
만수산 무량사 일주문 통과 하면서 ( One Pillar Lined Gate: 일주문 설명도 드렸다. 일주문을 경계로 사바세계 와 부처님 나라 라고).그리고 사천왕문(
The four heavenly guardians gate ; 4방향이지만 의미는 모든 방향에 악을 방어하는 )
신라 천년고찰로
무량’(無量)이라. 셀 수 없다는 말이다. 목숨을 셀 수 없고, 지혜를 셀 수 없는 곳은 바로 극락이니 극락정토를 지향하는 곳이 바로 무량사라 한다
극락보전에 건물이 2층으로 웅장하고 삼존불( 중앙에 아미타불, 왼쪽에 관세음 보살, 오른쪽에 대세지 보살)도 크다.
삼배하고.. 여기저기 화우님들이 포진하고 있으면서 스케치 열중 모드이다
극락보전이 보이게 구도 크게 해서 12시 부터 파스텔 10호 사이즈로...그리기 시작.. 3시쯤 대충 마무리하고 세밀 묘사는 숙제로 한다. 오늘 그릴때 아주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 좋왔습니다.
점심은 아침에 받은 떡과 과일 그리고 내가 가져간 케익이 있어서 ..산채비빔밥 10,000원을 절감했읍니당~ㅎ
5시에 마감하고 122km 거리( 1시간 반 거리), 고창으로 가서 개별 자유 석식하고 아리랑 호텔( 601호 독방!) 자고 내일은 담양 매타세콰이어길 과 외국풍 마을 그리러 갑니다.
6시반에 고창 아리랑 호텔 도착..이번 여행 48인승 대형버스인데 25명으요 마감하고 여행해서 버스내 여유가 맗네요^^
아리랑 호텔 더블 베드에 시설도 괞찮은편 25만에 추가하여 독방은 32.5만원 3일밤을 혼자 지내니 그만한 금액 가치는 충분!!
이곳 고창은 풍천 장어로 유명! 큰 식당 둘러보지 않았다 지방 여행중 혼자가면 대우 못받는다.. 혼자 식사하기 가장 좋은곳은 강남역/ 신논현역이다 가격도 좋고 품질도 훌륭하고 손님 대접도 잘 받는다.
숫불갈비집.. 번호표 받고 줄서있다.. 등록만 하고 다른곳 기웃거리다 아주 적당한 작은 식당 찾아서 차돌박이 2인분 시켰다 ( 1인분은 안된다!).: 와우 무척 좋게( 계란찜, 상추) 반찬이.나와서 정말 오붓하게.음식맛 음미하면서
다음에.오면 들리고 싶다!
내일 아침 개별 자유 식사할 콩나물 해장국밥집도 챙겼당~ㅎ
아래 내용은 인터넷 검색한 것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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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無量寺
충남 부여군 외산면(外山面) 만수산(萬壽山) 남쪽 기슭에 있는 절.
신라시대에 창건. 주위의 산림(山林)이 울창하여 거찰(巨刹)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보물 제356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드물게 보는 2층 불전(佛殿)으로 내부는 상 ·하층의 구분이 없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당시의 목조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극락전 내에는 거대한 좌불(坐佛)이 안치되었는데 중앙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좌고(坐高)가 16자, 가슴둘레 24자이며 좌우의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각 좌고가 16자에 가슴둘레가 18자이다. 또한 여기에는 석가불화(釋迦佛畵)가 있는데 길이 45자 8치, 폭이 25자 2치나 되는 조선 인조 때의 불화로 기구(機構)가 장대(壯大)하며 묘법(描法)도 뛰어나고 채색도 선명하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보물 제185호로 지정된 5층석탑, 보물 제233호인 석등, 지방문화재인 당간지주(幢竿支柱), 김시습 부도(金時習浮屠) 등이 있다. 이 절은 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있다가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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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金時習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등을 지었더.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에게 불려가 총애를 받았다.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저술.
1465년(세조 11)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다.
1481년(성종 12)에 환속(還俗), 안씨(安氏)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1483년 다시 서울을 등지고 방랑의 길을 나섰다가 충남 부여(扶餘)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죽었다.
그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고,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1782년(정조 6) 이조판서에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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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지보살 大勢至菩薩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위치하여 아미타불의 지혜문을 상징하는 보살. 아미타삼존
이 보살은 다른 보살들처럼 독립적으로 조성, 예배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서방극락세계의 보처보살로서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의 협시불(脇侍佛:主佛의 좌우에 모시는 부처) 형상을 띠고 나타난다.
즉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수행하는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이를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라고 부른다.
아미타불의 왼쪽에서 자비문(慈悲門)을 관장하는 관음보살과 함께 대세지보살은 오른쪽에서 아미타불의 지혜문(智慧門)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지혜광(智慧光)으로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비추어 보고 삼도팔난(三途八難:세 가지 나쁜 세상과 여덟 가지 재난)의 고통에 떨어져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 보살의 위신력은 실로 크고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경전에 따르면 대세지보살은 발을 한번 구르면 삼천대천세계뿐만 아니라 마귀의 궁전까지 뒤흔들 정도의 힘을 지녔다고 한다.
머리에 이고 있는 천관(天冠)에는 오백 가지의 보화가 있으며 보화 하나 하나에는 각각 오백 보대(五百寶臺)가 갖추어져 있다. 그 보대 하나하나에서 무변광이 비추어져 나온다. 머리 위의 육발은 발두마화(鉢頭摩華:붉은 연꽃)와 같으며 육발 위로는 하나의 보배병이 얹혀져 있다.
이 보배병 속에는 온갖 종류의 광명이 담겨져 있으며 이로서 대세지보살은 보현불사(普現佛事)를 하는 것이다. 그 외의 나머지 모습은 관세음보살상과 거의 차이가 없다.
첫댓글 매번 사생때마다
읽을거리 해주셔서 넘 넘좋아요
상세한 글 또 배웠습니다ㆍ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