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가격은 계속해서 오른다. 선두를 견제하는 2, 3위 업체도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비슷한 가격을 책정한다. 동급에서 싼 차를 사려고 해도 선택권이 없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요즘은 정보 홍수 시대다. 검색만 하면 웬만한 정보는 다 찾을 수 있다. 전문적인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도 쉽다. 정보가 방대해지고 접근성이 높아져서 전문가와 일반인의 구분도 의미를 잃어간다. 자동차만 해도 차종부터 시작해 제원과 디자인, 성능 등 각 분야 상세한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자동차를 살 때도 각종 정보의 도움을 받고, 혼자서 기술에 관한 지식을 터득하기도 한다. 자동차를 활용해 취미 생활을 할 때도 어려움이 없다.
자동차 관련 정보가 아주 많지만 유독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가격이다. 겉으로 보이는 가격표에 붙은 가격 정보는 구하기 쉽지만,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들어갈수록 정보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공식적인 할인 정보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영업사원 개인이 해주는 할인 정보는 구하고자 노력해야 얻는다. 비공식 할인은 정해진 게 아니어서 비교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자동차 원가는 알기가 더 어렵다. 아니 거의 모른다고 봐야 한다. 영업비밀이어서 외부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외부로 흘러나올 법도 한데, 자동차 원가 정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간혹 스마트폰이 새로 나오면 부품 가격을 계산해 원가를 추정하기도 한다. 자동차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부품 수가 몇 만 개나 되니, 부품 가격 파악하다 보면 다음 신차가 나올지도 모른다.
원가 정보를 알 수 없으니 가격 적정성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구매자가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데, 업체들은 적정하다고 설명한다. 비싸면 안 사면 그만인데,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상황이라면 불필요한 지출을 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싸게 사고 싶어 하는 구매자와 좀 더 수익을 내려는 제조사 사이에 가격 간극은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지 않는다.
신차가 나오면 당연하다는 듯 가격이 오른다. 가격의 속 깊은 정보를 모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부분변경 모델이 나오면, ‘많은 보강을 했지만 가격 인상 폭은 최소화했다’는 설명 아닌 해명이 으레 따라붙는다.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지만, 적정하지 않으니 내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경쟁이 붙거나 차가 안 팔려서 자동차업체가 알아서 내리기를 기다리거나, 어쩌다 찔끔 할인이라도 해주면 이것만 해도 어디냐 하며 고마워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원가와 적정 가격을 모르니 가격에 대한 잣대도 구매자가 세운다. 구매자는 대체로 기준을 낮게 잡는다. 정보가 없으니 당연하다. 자동차업체는 구매자가 세운 잣대에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특히 구매자들이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은 경쟁을 반영하지 않은 가격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가격이라도 낮춰야 하는데, 경쟁력 높은 차와 뒤따르는 차의 가격 차이가 없다. 선두주자가 낮은 가격을 앞세우면 자동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낮아진다. 이때는 가격이 비슷해도 불만이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은 잘 없다. 선두주자가 가격을 높이면 다른 업체들도 따라서 올린다. 같은 급에서 싸게 사려고 해도 선택할 수 있는 차가 없다.
르노삼성이 QM6를 현대자동차 싼타페 수준으로 팔려면 가격을 낮추면 된다. 쉐보레 이쿼녹스도 마찬가지다. SM6나 말리부가 쏘나타 판매량을 넘으려면 싸게 팔면 된다. 그런데 가격이 비슷하거나 심지어 비싸기도 하니 판매량 차이가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2, 3위 업체에게 선두 업체보다 싸게 팔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업체의 가격 책정은 워낙 많은 변수가 있어서 단순히 보는 이의 판단으로만 적정성을 판단하기도 힘들다. 드러난 가격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제품의 상대적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구매자들은 차의 가격 속에 담긴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차에 대한 지식과 감으로 적정성을 판단한다. 업체들이 가격에 대해 공감을 얻으려면 구매자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구매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가격을 붙여야 한다. 구매자들도 보는 눈이 있다. 제품력이 우수하면 가격이 높아도 적정하다고 여긴다. 제품력이나 경쟁 관계와 무관하게 비슷한 가격대가 형성되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2, 3위 업체에서 선두를 잡겠다고 야심차게 내놓은 차가 가격 때문에 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싸게 팔면 잘 팔릴 텐데’이다. 구매자는 간단한 원칙인데 실현하기 힘든가 하는 의문이 들고, 업체 쪽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치부한다. 많이 팔아야 가격을 낮출 여지가 생기는데, 판매량이 적으니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없고, 그러니 더 안 팔리고…. 이래서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동차업체는 적게 팔더라도 경쟁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매기는 게 수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지 모른다. 구매자들은 마진을 최소화해 가격을 낮춰 판매를 확 늘리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어느 쪽이 이득인지는 직접 계산기를 두드린 자동차업체가 가장 잘 알 테다.
2, 3위 업체가 차를 좀 더 싼 가격에 내놓았으면 하는 구매자의 바람은 단순히 돈을 절약해보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다. 일부는 선두 잡겠다고 나선 차가 너무 안 팔리는 상황이 갑갑해서 그런다. 판이 바뀌거나 균형이 맞았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2, 3위 업체 차들이 치고 올라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쟁차보다 낮은 가격이다.
자동차 가격은 계속해서 오른다. 선두가 가격을 낮추지 않는 이상, 구매자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에 이르는 방법은 2, 3위 업체가 가격을 낮추는 일이다. 당장 손해일 수는 있지만 판매 비중이 균등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다. 자동차 원가를 모르고 자동차업체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일반 구매자들이 볼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