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산이 마을의 수호신이다. 우리 가게 마을 사람들은 사계절 산의 베풂으로 많은 혜택을 누린다. 시골 같은 정취에 걸맞은 후덕한 인심까지 철철 넘친다. 산을 든든한 배경 삼아 어우렁더우렁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참으로 정겹다. 그러나 어디든 무풍지대가 없듯 이태 전부터 가슴 아픈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살다 보면 고사 지낼 일이 더러 생긴다. 고사는 계획한 사업 시작할 때나 가게 개업할 때는 번영을, 새 자동차가 식구로 등급 될 때 무사고를, 가내의 우환엔 빠른 쾌유를,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이에겐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바람대로 이루고 싶은 절실한 행위라고 할까. 그 절실한 것을 해야 할 이유가 우리 마을에도 생겼다. 근래 몇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등졌다.
오십 문턱을 넘지 못한 경찰관 젊은이가 급성 직장암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희수를 맞은 아저씨가 심장마비로 밤새 눈을 감고 말았다. 또 환갑을 막 지난 마을의 행복 전도사라고 불리는, 이삿짐센터장이 고가 사다리차에서 직진으로 떨어졌다. 그로 인해 열 달이 넘도록 의식불명인 채 애통하게도 삶을 마감했고, 아주 성실하고 자상한 쉰 후반의 아저씨가 옥상 가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난 사고로 몇 달째 뇌사 상태다.
그 임들이 남긴 따스운 정이 그립고,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다. 이별의 아픔이 특별히 큰 건 막역한 사이였다는 점이다.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한 곳에서 가게를 한, 그 세월만큼이나 이웃들과 사랑이 매우 도탑다. 그동안 좋은 일, 궂은일을 그들과 함께해 왔다. 그 아픔이 곧 내일이나 마찬가지다. 쉽게 범접할 순 없겠지만, 용기를 내어 이 안타까움을 앞산의 산신께 고하고, 그들을 두루 굽어살펴달라는 고사를 지내드리자고 마을 사람들과 입을 모았다.
고사 지내는 날, 나를 포함한 몇몇은 분주했다. 마을 들머리의 야산 벚나무 아래 널따란 자리를 펴고, 간소하나마 정성을 다해 고사상을 차렸다. 삶은 돼지머리 큰 것 하나와 마른명태 한 마리, 고사떡 한 접시와 사과, 배 몇 개, 막걸리 한 병까지 몇 줄로 가지런하게 놓았다. 예를 갖춘 오십 대 아저씨가 고사상 앞에서 고개 숙인 채 고삿말을 더듬더듬 읽었다. 목멘 소리가 떨렸다. 사람들은 나이순으로 잔에 술을 채우고 우리의 절실한 염원을 담아 절했다. 망자들의 명복과 병원에서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진 아저씨가 하루빨리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게 해 달라고. 떠난 임들께 전할 복 돈을 돼지머리에 고이 꽂았다. 그런데도 배추 색 복 돈과 돼지머리는 시무룩했다. 구월의 수척한 나뭇잎들도 흐느적흐느적 흐느꼈고, 까마귀들도 나뭇가지를 넘나들며 깍깍 울어 댔다. 나도 아릿해진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십여 명의 일구월심이 하늘에 닿았을까. 해거름의 맑았던 하늘이 삽시간에 검은 구름으로 뒤덮더니 가는 빗방울이 실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를 지낼 동안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구슬프기만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고사가 끝날 무렵 비는 거짓말처럼 멎었다. 울던 아이의 울음이 뚝 그치듯. 고사 지내는 동안 하늘도 그들이 가여워 울어 준 것이리라.
무슨 일이든 우연히 생길 때가 많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어진 일들을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기엔 가슴에 돌 하나 얹어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나마 고사를 지내드리면 짓눌린 듯 답답한 가슴이 뚫릴 성싶었다. 언젠가 불교대학에서 주지 스님과 도반들이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누군가가 사찰에서 올리는 천도 재는 한 영령께 한 해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드렸다. 스님은 천도재 올리는 것은 마음을 청소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간단명료한 답에 든 깊은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됐다.
고사를 지낸 후부터 마을에 곰비임비 하던 일이 없어지고, 산란하던 마음이 평정해졌다.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제사와 묘사도 마음 다해 지내고 나면 뿌듯함이 차오른다. 그것과 비슷하다는 마음이 조심스럽게 든다. 이와 사뭇 다른, 순전히 가족을 위한 할머니의 지극한 치성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할머니는 손자 손녀가 태어날 때마다 큰 놋 주발에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걸쭉하게 끓인 미역국을 대접에 찰랑하도록 담았다. 손자 손녀를 점지해 준 삼신할미께 상을 정갈하게 차려 놓고 산모의 무탈을, 아기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순둥이로 잘 자라 달라는 비손을 했다. 그 지극정성에 우리 칠 남매는 별탈없이 자랐다. 또 새벽이면 장독 위에 정화수 한 사발 떠 놓고 식구들의 안녕을 위해 두 손 간절히 모았다. 그 밖에도 구석구석 악귀를 내친다며 섣달그믐 밤에는 방, 마루, 부엌, 곳간, 우물, 뒷간, 외양간에다 밤새도록 촛불 밝혀 놓고 날밤을 꼬박 새우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할머니의 그 의식은 가족을 지키는 피뢰침이었다.
그처럼 무엇을 위해, 달풀이와 정성을 다하는 재의 종류는 많았다. 마을마다 장정이 차례로 제주가 되어 매년 음력 정초에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고, 전래 풍습인 정월 대보름엔 사람들이 모여 북과 징 소리 울리는 사물놀이로, 무병장수와 농사 풍년 염원으로 지신밟기를 집집이 돌아가며 했다. 또 어촌에서는 선원들의 무사 귀환과 만선의 깃발을 꿈꾸며 풍어제를 지냈다. 구경꾼들은 진지하고도 흥이 있는 분위기를 축제처럼 즐겼다. 지역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 방대한 굿이나 작은 재들에 담긴 염원의 뜻은 똑같으리라.
아무튼 얼마 전에 지낸 그 고사 덕으로 마을에 드리워진 그늘이 걷어졌다. 비명횡사한 임들도 우리의 바람대로 이승에서 못다 한 삶에 미련을 내려놓았을 테고, 병상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임은 어느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슬그머니 일어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