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 국민 (양곤서신-230호 230823)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과거 영국이 1886년부터 1947년까지 62년간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였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1824년부터 1826년까지 제1차 영국버마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이후부터 미얀마 일부 지역을 다스리기 시작했던 기간을 포함하면 100년 이상 미얀마를 다스린 셈입니다. 이 기간 동안 미얀마 국민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외부인인 영국인은 1등 국민, 본토인들은 2등 국민이었죠. 제가 왜 이번 서신에 이 내용을 싣는가 하면, 미얀마에서 우리 선교사들이 바로 1등 국민, 미얀마 현지인들이 2등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저만 봐도 그렇습니다. 미얀마 사람들과 비교하여 저는 저들보다 좋은 집에서 살고, 저들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저들이 없는 차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고, 제가 당시의 영국인들과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문화와 체질이 다른 이국땅에서 살면서 현지인들처럼 살 수는 없죠. 현지인처럼 살다가는 건강문제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철수할는지 모릅니다. 제가 당장 현지인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현지인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를 대폭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바꾸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현지인들을 진심으로 좀 더 존중해야 되겠다. (2)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내세워 내가 현지인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온전히 버려야 되겠다. (3) 선교적인 관점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권한들을 가능하면 좀 더 일찍 현지인들에게 이양해야겠다. (4) 중요한 행사들을 수행하면서 현지인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나는 뒤로 빠져야겠다. (5) 미얀마에서 나는 2등 국민이고, 미얀마나라의 주인인 현지인들이 1등 국민이다. 이외에도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학장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현지인 교수들이나 직원들이 저의 눈치를 보며 제게 굽신거립니다. 아,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남의 나라에 사는 제가 1등 국민으로 살다니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됩니다. 정말 제 생각을 바꿔야겠습니다. 현지인들이 돈이 없다보니 정작 자기네 땅에서 살면서 2등 국민으로 살아야하다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사랑하는 파송교회와 여러 협력교회들 그리고 개인 후원자들 및 양곤서신을 읽어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리며, 변함없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구온난화로 여름이 되면 한국도 미얀마에 못지않게 무덥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정치, 경제, 환경, 등 여러 면에서 이전보다 더 살기 힘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기에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하여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사람들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1. 가족근황. 미얀마 경제가 몹시 어렵습니다. 그동안 미얀마 경제발전 위해 한 몫을 담당했던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하나 둘 철수하고 있습니다. 한국계 은행들도 사업을 접고 철수를 하려고 합니다. 덩달아 많은 투자회자들이 사업을 줄이고 있습니다. 하루 10,000장 와이셔츠를 생산하던 회사가 5,000장으로 줄였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달러화 유출 방지를 위해 자동차수입을 막다보니 중고차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올 초만 해도 5,000만짯 하던 차가 1억짯이 넘었습니다. 좋은 차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제 차의 가격도 많이 올랐습니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좋아할 수 없는 게, 차를 팔면 그 돈 가지고 다른 차를 못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저와 아내는 건강에 별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에게 더 절실히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일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우리의 생명,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 주변 환경, 관계하는 현지인들, 등등... 모두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와 동우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가게를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경이는 제주도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2. 사역현황. 제가 사역하고 있는 신학교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의 장입니다. 이번 학기 들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없이, 학생들은 착실하게 공부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우리 학교에 핫이슈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 번 서신에서 기도부탁을 드렸던 신학과 1학년 ‘마에에’라는 여학생은 여전히 ‘문제아’입니다. 나흘 전 밤 9시나 되어 혼자 울면서 학교기숙사 밖으로 나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 그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면 거의 강도를 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염려가 되어 남녀 학생 각 한명씩 뒤를 따라가서 겨우 위험을 면했습니다. 저도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학교차를 몰고 나갔는데, 저희가 현장에 도착하니 마에에가 동네 병원 벤치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치료가 끝나는 대로 차에 태워 같이 간 학생들과 함께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이 학생은 입학한지가 불과 3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 아주 정상적이었다가 때론 정신이상현상을 보여 왔습니다. 사실, 받지 말아서야하는 학생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조건이 충족되었음으로 모르고 받았는데, 불과 며칠 만에 주변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내보내야하는데, 문제는 갈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의지하는 지인으로부터 버림받아, 도무지 갈 데가 없습니다. 수업시간도 수시로 빼먹기 때문에 도저히 학교에 놔둘 수 없는데, 당장 갈 데가 없다니 학교에서 강제로 쫒아낼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일부 교수들과 학생들이 저를 찾아와 마에에를 내보내달라고 보챕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학생을 불러 3가지 옵션을 들어 이렇게 조치를 취했습니다. (1) 한 번만 더 말썽을 부리면 그 때는 바로 학교를 나가야 한다. (2) 조용히 지내면서 너가 정말 학교 다녀야겠다면 다음 학기부터 다시 공부시작해라. (3) 학교 다닐 마음 없이 지낼 곳이 없어 속이고 학교를 왔다면 직장을 찾아봐라. 직장 찾으면 바로 학교를 떠나라. 이 학생은 모태신앙이고, 머리도 좋고, 통신대학을 공부하고 있고, 외모도 괜찮은 학생인데 이 모양이니, 하나님께서 그 학생을 온전히 변화시켜주시지 않는 한, 학교에 있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마에에로 인해 주변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교수들과 학생들을 위해 이런 말로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 5:41).” 이 말씀을 이번 일에 적용해보면, “우리 크리스챤들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여러 이유로 불편을 겪는 것을 합당한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기뻐하는 자들이다.”
이제 서신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시키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입은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알리면서 불편한 것들을 기쁘게 감수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학생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역시도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지금껏 미얀마선교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지 계시지 않습니까?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미얀마 선교를 위해 애써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영육간의 복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하며 이만 줄입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손한락/안미숙 드림.
(기도제목)
1. 미얀마개혁장로회신학교가 종교개혁과 성경에 입각한 개혁주의 신학을 미얀마에 전파하는 차별화된 신학교가 되고, 미얀마를 복음화 시킬 마음으로 불타는 훌륭한 목회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가 되도록 (연중 동일).
2. 미얀마개혁장로교단 산하 47개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의 헌신위에 든든히 서고 성장해 가도록 (연중 동일).
3. 미얀마개혁장로회신학교의 장기 비전인 신학교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교수들의 학문의 질 향상과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도록. 아울러 개설된 M. Div. 과정이 잘 운영되도록 (연중 동일).
4. 수년 내로 남자기숙사 신축과 현지인 교수사택(빌라형 8세대) 건축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재정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도록 (장기 기도제목).
5. 신학교 재정에 어려움이 없도록. 이와 관련해 이사 충원과 후원처 확보되도록.
6. 미얀마 정국이 속히 안정되고, 경제가 회복되어,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도록(지난달에 이어).
7. 3주 남은 수업과 기말고사 잘 치르면서 이번 학기 잘 마무리하고, 9월 27일로 예정된 2023년 졸업식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아울러 한국에서 졸업식에 오시는 손님들의 미얀마입국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8. 문제의 여학생 마에에(신학과 1학년)가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한데,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지난달에 이어).
9. 온 가족의 건강과 바울이와 동우의 가게가 주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형통하고, 하경이의 앞길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도록.